적산법화원은 신라인 장보고가 건설한 것이다. 장보고는 해운사업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하여 적산에 절을 짓게 되였는데 당시 주변지역에서 처음으로 지은 절이다. 이 절에 제일 처음으로 거주한 스님들이 천대종파로서 그들이 읊는 경이 <경중지왕>--<법화경>이다. 이로 인하여 이 절은 <적산법화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였다. 법화원은 당조시기에 명성이 자자하여 경을 들으러 오는 민중들이 많을 때에는 200명도 초과하였다. 법화원은 당시 규모가 비교적 큰 절 중의 하나이다. 엔닌법사는 저서중에서 적산법화원에 대하여 상세한 묘사를 하여 적사법화원으로 하여금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하였다. 영성시는 민족문화를 빛내기 위하여 200여 만위안을 투자하여 1989년에 법화원을 재건설 하여 개광의식까지 올렸으며 1990년 5월에 정식으로 대외로 개방하였다. 재건설 때 법화원은 당조시기의 건축을 모방하여 지었으며 건물 배치는 엔닌법사가 <입당구법여행기>에서 묘사한 것과 대체로 일치하여 물이 정원을 관통하여 서에서 동으로 흐르며, 동쪽은 바다를 향해 트여 있으며, 남서북쪽은 산봉우리가 병풍을 이룬다. 법화원에서 동남방향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령화봉이 있다. 령화봉우리에는 두 개의 기둥으로 된 기념탑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장보고 기념탑이다. 탑의 높이가 15m, 정면이 동쪽으로 향하여 한국의 인천시와 멀리 마주 보고 있으며 탑신 전부가 석도홍으로 만들어졌고 두 개 기둥은 한중 양국을 상징함으로 하여 한중 양국국민의 우의가 천고만길 할 것을 뜻한다. 탑신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 <장보고기념탑>이 새겨져 있다. 이 탑에는 한중 양국국민이 장보고장군에 대한 심심한 그리움이 재현되어있으며 한중 양국 국민의 새로운 이정표이기도 하다. 적산법화원은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특수한 역사배경으로 인하여 자체의 특수한 역사적 지위와 작용을 가지고 있다. 법화원은 역사가 유구하며 또한 한,중,일 삼국 국민의 정이 배여 있어 1990년부터 대외로 개방을 시작한 이래 일본, 한국 손님이 반드시 들려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