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적겨자 물김치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과거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난 딱 부러지게 답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만큼이나 부족하고 아쉬움이 많은 삶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내가 선택하여 이루어 낸 결과물들! 작고 초라하지만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부족한 내 능력 탓에 이루지 못한 꿈들도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단 1초라도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현재로 만족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아내를 선택한 기준이 무엇이었냐고. 나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사랑 다음으로 중요한 기준이 무엇이냐 비웃듯이 다시 물었다. “없다.”라고 몇 번이나 답했지만 하나만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마법의 손을 가진 여자가 최고지.” 사랑이란 식탁에 정성이 가득 담긴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을 차려주는 아내라면 더 바랄 게 무엇인가. 내 경우에는 음식이다.
색이 예쁘다. 물김치 국물이 분홍색이다. 무와 쌈채소 적겨자로 담근 물김치다. 국물의 색만큼이나 알싸한 맛이 시원하다. 맛이 적당하게 들어서 먹기에도 만족스럽다. 물김치에 오이를 썰어 넣어도 좋다. 6월이 되면 더운 날씨도 많아질 텐데 시원한 물김치가 딱 맞다.
자랑하고 싶다. 적겨자 물김치를 한 통 더 담 대전 처가에도 아들 태영이 집으로도 택배로 보내고 싶다. 맛있으니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어깨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아지니 이보다 더 좋 게 있을까.
살아보니 알겠더라. 손맛이 최고더라.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도 아내의 손을 거치면 달라진다. 마법의 손이다. 돼지고기 수육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 주말에 사촌 동생들과 누나가 구례에 다녀갔다. 아내의 손맛에 모두가 행복한 한끼를 먹었다. 그날 적겨자 물김치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때는 생각을 못 했다. 예쁜 색의 국물과 알싸한 적겨자 줄기의 아삭한 식감을 맛보여 줬어야 했는데. 그래서 아쉽다. 국물조차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겠다. 먹고 남은 물김치 국물은 원샷이 제격이다.
비닐하우스를 적겨자로 채워야겠다. 매미가 맴맴 울어 젖히는 여름날 점심은 적겨자 물김치 국물에 식은밥을 말아먹고 싶다. 적겨자 물김치가 궁금하면 구례 귀농귀촌지원센터로 오라. 대신 물김치 담글 시간 정도는 넉넉하게 주면 좋겠다.
첫댓글 언니는 다 잘하지 못하는건 1도 없다 진짜다
비밀로 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