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협 자운서원.숭의전.반구정 문학기행
일시: 2004년 5월 23일 일요일
장소:자운서원.숭의전.반구정
* 운현궁 앞에서 출발
한국시인 협회에서 봄철 문학기행으로 금년에는 임진강변의 숭의전에 간다. 운현궁에서 오전 9시까지 모여서 관광버스로 출발한다는 소식지를 받았다. 전철역 안국역에서 하차하여 4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운현궁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 따라 날씨도, 온도도 쾌적하고 여행하기에 좋은 일기다. 8시 30분경 도착했다. 한국시협은 대인원이 움직이기 때문에 제대로 시간을 지켜주어야 한다. 길어야 10분 정도 기다려 줄 뿐이다. 몇 분 늦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를 전년에 본 적이 있다.
하나 둘씩 회원들이 모인다. 대형버스가 4대다. 한국시협 문학기행에서 금년이 최대 인원이라고 한다. 그 이유로는 우선 오늘 가는 코스가 임진강변 문학기행으로 숭의전, 자운서원, 반구정 이 모두가 잘 가보지 않은 명소이고 또 한국시인협회 회장님이 이근배 회장님에서 김종해 새 회장님으로 바뀌어 임시 총회를 갖기 때문이다.
임시 총회는 회칙을 약간 개정하는데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편으로 개정되는 정관에 동의한다는 서약을 날인하여 보내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내 곁에는 김민자 시인님이 앉았다. 통성명으로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마음으로 떠났다. 운현궁 맞은 편에는 강석호 주간님이 이끄시는 수필 문학 사무실이 있는 수운회관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한국시협 사무실도 가까이 있다. 운현궁 옆에는 덕성여대가 있다. 오전 9시 20분에 북한산을 바라보며 차가 출발했다.
운현궁 정문
* 자운 서원
오늘의 주여행지는 숭의전인데 가는 길에 신사임당과 율곡의 묘소와 기념관이 있는 자운서원에 들렀다.
자운 서원: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서원. 1973년 7월 경기도기념물 제45호로 지정. 1615년 광해군 7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되어 1650년 효종 원년에 자운(紫雲)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음.
이이 : 1536∼1584 조선학자, 문신 호 : 율곡 강릉외가 오죽헌에서 태어나 훌륭한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교육을 받았다.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금강산에 입산하여 불교의 이치를 깨닫고 왔다.
먼저 기념관 앞에 모여 여자분의 안내 설명을 들으며 전시물을 관람했다. 신사임당의 그림과 글씨, 그 아버지로부터 남긴 재산분배내력서 등 여러 기념물이었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그 조선시대, 여자는 재산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아 이름도 없이 묻혀 살았을 텐데, 사임당 아버지는 안견의 그림을 구해다 딸에게 주며 그림 공부를 교육시켰다는 대목이다. 항상 훌륭한 사람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포도나무와 풀벌레 그림이 주로 있고 자수 병풍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신사임당의 자녀들의 필체와 그림도 서로 비슷하다. 안견의 그림을 보고 함께 그렸기 때문이라고 안내원은 설명한다. 기념관 맞은 편에 사당이 있고 내부 깊숙한 곳 양지바른 동산에 무덤이 있다. 율곡과 부인의 묘가 맨 위에, 그 큰 아들, 그리고 신사임당 부부묘 등 위에서 아래로 나란히 놓여져 있다. 그러니까 신사임당과 그 남편 이원수의 가족 묘소인 것이다. 정확히 순서를 나열하자면 산위 높은 쪽에서부터 율곡부인―율곡―율곡형(신사임당 큰아들)―신사임당과 남편 이원수 부부―율곡 아들 이런 순서다.
율곡부인의 묘가 맨 위에 있음은 가장 먼저 죽어서 그렇지 않은가 추정한다고 했다. 묘소 앞에서 간단한 묵념을 올리고 내려왔다. 아버지로부터 딸에게로, 딸에게서 아들에게로 효심과 교육열이 전수되어 훌륭한 가문을 이루어 후손에게 귀감이 됨을 보았다.
특히 이 자운서원은 자주빛 상서로운 구름이 머문다는 한자 풀이대로 율곡이 향약에 대한 굳건한 기둥을 세워 그 공의가 자주빛으로 흐르고 있다.
자운 서원 신사임당 가족 묘소
* 숭의전
자운서원을 출발하여 더 북쪽으로 달렸다. 임진강 변에 고려의 16공신 위패와 왕건의 영정을 모신 숭의전이 있다.
숭의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사원. 1971년 12월 28일 사적 제223호로 지정. 숭령전, 숭인전, 숭덕전, 숭렬전 등과 함께 역대 왕조의 시조를 제사지내던 곳. 고려 태조 및 혜종 정종 광종 경종 목종 현종 등 7왕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지냈다. 1452년 문종 2년에 숭의전이라 부르기 시작했음.
버스에서 내려 약간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느티나무 보호수 두 그루가 가파른 절벽에 서 있고 숭의전과 그 부속건물이 몇 채 있다. 중앙에 태조 왕건과 8대 현종, 11대 문종 등 고려 역대 왕 중에서 업적이 큰 세 왕을 모신 숭의전이 있고 좌측으로 제사지내려고 온 후손이 머무르는 앙암제와 제기를 보관하는 진사청이 있다. 앙암제에는 왕건이 중국 유림과 나눈 친필시가 어필 액자로 마루에 놓여져 있다.
우측으로는 16공신을 모신 배신청과 위패를 보수할 때 잠시라도 소중히 모셔두는 이안청이 있다. 배신청에는 나의 조상이신 김부식을 비16인의 고려 공신(배현경, 홍유, 복지겸, 신숭겸, 유금필,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조충, 김취려,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위패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숭의전은 창덕궁에 있는 종묘처럼 고려의 종묘다. 왕건이 장군일 때 청남대처럼 오가며 쉬던 곳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고려의 웅혼이 깃든 곳이다. 군에서 직원이 나와 일일이 설명을 해 주어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다.
숭의전 전경
* 강물을 거슬러 오른 위패
이성계가 공양왕을 삼척에서 죽이고 왕씨들을 살기 좋은 섬으로 보내 주겠다고 속여서 배에 태운 후 바다 한 가운데에서 그 배를 침몰시켜 모두 수장시켰다.
그런데 이성계의 꿈에 고려를 세운 고려 태조 왕건이 나타나서 왜 왕씨를 그렇게 죽이느냐고 따졌다. 놀라서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불러서 말하니 대답하기를 위패를 배에 태워 띄워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배가 반대로 물을 거슬러 자꾸 위로 올라왔다. 임진강과 한탄강 사이에 쇠로 묶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줄이 썩는 것을 보고 결국 이곳 잠두봉으로 그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꿈의 신통함을 깨닫고 태조 6년(1397)에 숭의전을 건립했다. 16공신은 배현경, 홍유, 복지겸, 신숭겸, 유금필,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조충, 김취려,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이다. 이 곳에서 고려의 한 시대 풍운을 다 보고 가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경내를 다 둘러보고 문을 나서니 아름드리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1399년 정종 1년에 왕건 외 8인 위채를 모시다가 공신 16위패가 추가되었다.
* 느티나무 두 그루
임진강변 깎아지른 절벽에 571년 된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까치가 모이면 그 해는 경사가 나지만 까마귀가 모이면 줄초상이 난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흐른다. 그 날의 구슬픈 왕조사를 다 알고 세상보는 눈이 그만큼 예리함을 읊은 것이리라.
그 아래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는데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풀려 들어갈 정도로 깊이가 깊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옛날 위패가 거슬러 오르던 그 강물의 자리에는 지금도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인다고. 얼마나 한이 고였으면 아직도 고여 있을까 짙푸른 5월의 하늘만큼 눈이 시리다.
숭의전 느티나무
* 어부동에서 점심식사
숭의전에서 내려와 얕으막한 임진강 둑길을 건너가면 「어부동」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에 민속음식을 판다. 우리 일행은 토종닭 백숙으로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다. 자유로운 시간에 긴 강 둔덕을 타고 임진강 가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 바라본 숭의전 자락의 잠두봉은 정말 누에머리같다. 그 아래로 90도 각도로 내리꽂힌 절벽이 보는 것만으로 아슬하다.
몇 시인이 다시 숭의전에 가 보자고 다시 강둑을 건너갔다. 자세히 경내를 둘러보고 산봉우리 잠두봉에도 가 보자고 올랐다. 조금 오르니 무시무시한 절벽이 있다. 아까 맞은편 어부동에서 보았던 그 절벽이다.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보다 더 가파른 절벽이다. 아쉽게도 시간 관계로 봉우리까지는 못 가고 다시 어부동으로 건너와 단체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임진강변 어부동에서 점심식사 후 기념사진 촬영
한국시협 봄철 문학기행 단체 사진 - 숭의전 맞은 편에서 점심식사 후(2004년 5월 23일 일요일)
* 반구정
더 북쪽으로 달렸다. 임진강 변에 철조망이 쭉 쳐져 있는 곳까지, 금방이라도 북녘땅에 이를 것 같은 마을로 접어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반구정에 올랐다.
반구정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1983년 9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로 지정. 1449년 세종 31년 명재상 황희가 87세의 나이로 18년간 재임하던 영의정을 사임하고 난 후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곳. 임진강변에 자리해 맑은 날이면 멀리 개성의 송악산을 볼 수 있음. 반구정 옆에는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영당이 있다.
황희 정승이 갈매기와 벗하며 구순의 여생을 보낸 반구정은 인적마저 끊겨 정자에는 오르지 못하도록 금줄이 쳐 있고 먼지만 주인인 양 앉아 있다. 강물도 울다 지쳤는지 진흙뻘로 누워 있고, 갈매기만 나른다.
나의 스승님 성찬경 교수님과 난간에 기대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단 이야기와 시인의 길, 사명에 대하여 늘 귀감이 되어 주시는 은사님의 말씀은 보석처럼 소중하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정원에 높게 세워진 황희 정승의 비문을 읽고 그 직계 가족의 제사를 지내는 곳인 사당을 둘러보았다.
님은 아실까. 임진강 저 건너가 건너가지 못하는 남북분단 대결의 눈물겨운 땅임을.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님의 울 안을 떠나 다 여 버스 4대가 통일로를 달렸다. 무장한 군인이 지키는 곳곳의 초소와 갈대밭 임진강변의 두터운 철조망, 긴장감이 무겁게 흐르는 곳이다.
통일을 염원하며 봄철 문학기행을 마무리했다. 서울 시내 종로 청진동에 하차하여 어느 시인님께서 저녁식사로 「청진동 해장국」을 사 주시어 모두들 맛있게 먹고 아쉽게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2004년 한국시인협회의 봄철문학기행 큰 행사가 보람되게 마무리되었다.
반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