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에 상존하는 위험들 기온이 급강하하는 겨울철 등반은 다른 어느 계절보다도 많은 위험을 지니고 있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폭설과 혹한, 눈사태, 극심한 체력 소모로 인한 피로동사와 저체온증(하이포서미아) 등은 겨울 산에 상존하고 있는 복병들이다.
또한 눈에 덮인 지형지물의 변화로 인해 판별력을 잃고 정상적인 등산로를 이탈한 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고도 있다. 그 동안 겨울철에 이런 유형의 조난사고들이 여러번 발생했다.
길 잃은 사고 가장 많다. 주등산로에서 판단 착오로 지형이 험난한 계곡 또는 지릉 등으로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하다가 종내엔 조난하여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최근에 와서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1987년부터 5년동안 집계된 설악산 구조대의 자료에 의하면, 여러 유형의 사고 중 길을 잃고 조난하는 사고가 가장 많으며, 이런 유형의 사고는 전체 사고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특히 겨울 산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평소 익숙한 지형일지라도 지표면의 지형지물이 눈에 덮일 경우 판단이 흐려져서 자칫하면 정상적인 등산로를 이탈,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쉽다.
겨울 산에서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또는 일몰 후까지 운행할 경우 이런 유형의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강설로 시계가 하얀색 일색으로 변할 경우 원근감이 없어져 판단이 흐려진다.
특히 방향감각이 흐려짐은 물론, 설면과 공간과의 경계를 식별하기 어렵게 되어 마침내 길을 잃고 환상방황을 하다가 조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고는 연간 약 300만명이 찾는 설악산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설악산 천불동의 비선대에서 양폭산장으로 가다가 칠선골로 들어가거나, 희운각에서 양폭산장으로 하산도중 무너미고개 부근에서 가야동계곡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겨울철 칠선골 입구의 철제다리 밑에 나 있는 발자국( 빙폭등반 연습을 하는 전문산악인들이 출입하고 있음)을 따라 가다가 험한 지형의 칠선골로 들어가게 되어 조난하는 경우가 많다.
1991년 2월 5일과 6일 사이에 이 지점에서 일어났던 사고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겨울 설악산에 등산을 온 김형수씨(28) 외 2명은 양폭산장으로 오르던 중 칠선골로 길을 잘못 들어 이틀동안 계곡 속에 갇힌 채 조난하였다가 동사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고교동창생인 이대환(19)과 김철민(19)은 설악산이 초행이었는데, 속초시내 한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난, 설악산 경험이 많다고 허풍을 떠는 김형수씨와 동행이 되어 길을 잃었던 것이다.
겨울산에서의 조난의 90%는 무경험과 부주의, 준비부족 등으로 발생하는 것이 상례이며, 영웅심이나 무모한 허장성세는 자신은 물론 동행자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990년 12월 30일 경남 거창의 기백산에서 이경환씨(49. 교사)가 영하 10도 씨의 산속에서 4박5일동안 길을 잃고 방황하며 죽음과 사투 끝에 극적으로 구조된 사례도 있다.
등산로 이탈시 대처방안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침착한 자세로 주변의 지형등을 살펴본 다음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최선책이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감지하였을 때는 이미 정상 등산로에서 상당한 거리에 이르렀을 때이다. 이 때 혹시나 하는 기대심리를 갖고 이리저리 움직인다면 체력소모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눈보라가 친다든지 안개가 짙게 끼었을 경우와 일몰 후에는 즉시 행동을 멈춘 후 적당한 은신처(비박장소)를 찾아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 때 설사 지도나 나침반을 휴대하고 있다 해도 출발지점에서부터 방위각을 설정하고 위치를 판정하지 않은 채 운행하였다면 이런 용구들도 별 소용이 되지 않는다. 서슴지 말고 아는 길(최초의 진입로)까지 되돌아 나오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등산로를 이탈하여 조난하였을 경우에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일몰 후에는 마른 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피워 추위에 대처함은 물론, 조명구를 사용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거린다든지, 소리를 외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
주말을 이용한 당일산행일지라도 비상시에 대비하여 조명구, 예비의류, 비상식량, 방풍의, 판초 등을 휴대하여 이런 경우에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피로동사와 저체온증
탈진상태와 추위가 겹쳐서 일어나는 사고가 피로동사이다. 다른 계절에 비해 체력소모가 극심한 겨울 산이므로 무리한 산행일정을 일단 피해야 한다. 자칫 동사와 동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불충분한 영양 섭취와 바람과 눈에 대한 미흡한 대비로 인해 탈진상태에 이어 하이포서미아(저체온증)에 걸리기도 한다.
1986년 1월 26일 남설악 주전골에서 탈진으로 피로동사한 국립공업시험원 직원인 채모씨의 그 사망사고가 그 전형이다. 당시 이들 일행은 망대암산과 1158봉 사이의 바람이 세차게 부는 능선상에서 부실한 복장으로 장시간 몸을 노출하여 체열을 빼앗겼으며, 하산도중 허기진 상태에서 찬 눈을 먹어 열저하를 더욱 가속시켜 결국은 사망하였다.
또한 1991년 2월 14일 남설악의 오색에서 대청봉을 향하여 오르던 3명중 2 명이 탈진과 추위로 동사하고, 유일한 생존자인 김병규씨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심한 동상으로 양발의 무릎 아래 부위를 절단한 비극적인 사례도 있었다.
겨울 산에서는 행동한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며, 필요한 양의 영양 섭취, 기상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풍. 방수의류 휴대, 비박용 막영구의 준비와 버너같은 열기구의 지참은 필수이다.
또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체력의 30정도는 항상 남겨두어 탈진을 막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탈진에 이르기 전에 열량 높은 행동식으로 소모된 열량을 보충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체온증에 대한 대책
젖은 옷은 건조한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20배나 빠르게 몸의 열을 빼앗아 가며, 최초의 저체온증상이 나타나서 허탈상태에 이르기까지는 1시간이 채 걸 리지 않는다. 이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빠른 시간내에 건조한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하며, 열량이 높은 음식물(더 운 당질의 차나 쵸콜렛, 캔디 등)을 섭취해야 한다. 저체온증상의 환자는 침낭속에 동료가 함께 들어가 몸으로 감싸주어 체온을 유지시켜야 하며, 환자에 대한 가온 조치는 점차적으로 해야 한다.
눈사태 발생 지형
눈사태는 대개 25~55도 경사에서 발생한다. 그 중 30~45도의 경사가 가장 위험하다. 55도 이상의 급사면인 경우는 눈이 쌓이지 않으므로 오히려 눈사태 안전지역인 것이다.
한편 내린지 오래되어 굳은 눈은 경사에 관계없이 대개 안전한 편이다. 그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눈사태 지역의 특성을 살펴보면, 대개 경사진 암벽이 V자형(깔대기형)의 협곡(설악산 죽음의 계곡, 설악골 등)을 이루거나, 매끄러운 완경사의 슬랩암반(오련폭포 난간 위쪽 사면), 경사진 사면이 길게 이어지는 지형(설악산 공룡능선, 한라산 장구목 등)이다.
이런 지형을 통과할 때는 기온, 눈의 상태 등을 면밀히 관찰한 후 행동해야 한다. 특히 굳은 눈 위에 신설이 덧쌓였을 경우가 위험하다.
눈사태의 예견
눈사태는 산지 협곡의 경사면에 쌓인 눈이 자체 무게 또는 기온, 바람 등의 작용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현상이다. 이 눈사태는 특정지형에서 반복하여 발생한다. 그동안 설악산 등지에서 많은 산악인들이 눈사태로 희생되었으며, 눈사태에 매몰되었다가 생환한 경험을 지닌 산악인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사태지형에서 막영중에, 또는 등반중에 한꺼번에 10여명이 몰살한 경우도 있었다. 대 부분이 압사나 질식사했다. 통계에 의하면, 눈사태로 희생된 사람의 약43%는 부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사태지형, 사태가능 경사도, 사태예견지형에서의 행동방법, 사태지형에 대한 사전정보를 갖고 산행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행 전에 사태지역이 어디인가를 알아두고 그 지점을 통과할 때는 대원간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뒤, 격시운행을 하여 눈사태 발생시 즉시 구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되도록이면 이런 지형을 피하여 운행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동안 대부분의 눈사태는 전문산악인들의 훈련대상지인 험난한 지형에서 발생하였으나, 일반 등산로에서도 있었다. 1986년 1월 23일 설악산 오련폭포 위쪽 등산로에 가설된 철계단을 통과하던 코오롱등산학교 동계반 수강생 일행 9명이 눈사태에 휩쓸려 내려가 눈더미 속에 매몰된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평소 눈사태에 관한 지식이나 예견능력을 키워 나가지 않는 한 안전할 수 없다. 일반적인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산에서 적설량이 제일 많은 계절은 1월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눈사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2월이다.
대부분의 눈사태는 신설이 내리는 도중이나 눈이 멈춘 다음 하루 사이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많은 양의 신설이 내린 후 하루이틀 동안은 행동을 중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태가 예상되는 지형은 비교적 기온이 낮은 오전 중에 일찍 통과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신설이 쌓인 다음날 기온이 상승하면서 눈이 습해지고 무거워지면 곧 눈사태로 이어진다. 여기에 비 마저 온다면 눈사태의 위험은 한층 증가 한다.
아무튼 한낮의 강렬한 햇빛이 복사중일 때는 경사가 급준한 바람맞이 사면을 통과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굳은 눈층이나 얼음 표면에 내려 쌓인 신설은 작은 충격이나 진동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1987년 1월 3일 죽음의 계곡 100m폭에서 제트기 비행음의 진동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눈사태가 이를 입증한 실례다. 여러 사람이 좁은 협곡에서 한꺼번에 북적거리며 설사면에 충격을 가하며 행동을 하거나 고성방가하는 일도 눈사태를 유발의 원인이 된다.
눈사태 예견지역 통과지침
눈사태가 예상되는 지형을 통과할 때는 사람 사이의 간격을 50m이상 유지해야 하며, 나무나 바위같은 것을 이용해 행동하도록 한다. 굵은 나무나 든든한 바위 뒤쪽은 유사시 대피소로 삼는다.
능선 바로 아래에 급경사 협곡을 통과하는 일도 매우 위험하다. 1989년 1 월 19일 코오롱등산학교 동계반 수강생들이 공룡릉에서 눈사태에 매몰되었다가 살아난 예가 있다.
능선종주중 이런 걸리(gully)를 만났다면 최대한 위쪽 경사면을 횡단하는 것이 안전하며, 비스듬히 오르는 것보다는 직등하는 편이 낫다. 오르고자 하는 대상 산의 등산로 중에 사태지형에 대한 정보를 현지주민, 산장관리인 등에게서 미리 입수해둔다.
또한 등반대상지역에 대한 기상정보도 알아두어야 한다. 장기간 맑은 날이 계속되다가 눈이 내릴 경우는 폭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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