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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축인가, 비유인가
학교에서 시를 공부하면 할수록 왜 시와 멀어지는 것일까? 시를 왜 어렵고 모호하고 복잡하고 이상한 물건으로 여기게 될까? 혹시 교과서가 시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과서에서는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 이라고
나는 이 케케묵은 사전적인 정의를 대폭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의 내용을 이룬다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애매하다. 이 말을 '사람의 생각과 느낌'으로 순화시켜 읽어도 마찬가지다. 또한 시 아닌 다른 문학 장르에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다루지 않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함축과 운율'이 시의 형식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시는 운율적 결속력이 대단히 미미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율을 따지는게 난처할 때가 많다.
또 시에서 함축은 긴 내용을 '줄여 말하기'가 아니라 '비유해서 말하기'다. 길이의 단축이 함축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의 함축은 오히려 감추어 말하기'에 가깝다. 독자의 입장에서 함축의 의미는 '시인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시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즉 함축이란 겉으로 드러난 언어의 뜻을 좇는 게 아니라 언어가 내포한 속뜻과 암시하는 바를 살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행간을 읽으라는 말이다.
이남호는 시의 함축성보다는 오히려 시가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점을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긴 이야기를 짧게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의 사용"이 시의 특성에 가깝다는 말이다(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현대문학, 2001).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의견이다.
시를 느끼고 이해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창작자도 시의 사전적인 정의에 갇혀 있으면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인간의 사상을 한 자루의 펜으로 표현하겠다고 대드는 일은 무모할 뿐이다. 한 편의 시가 인간의 사상적 체계에 관여하고 거기에 기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상을 해설하거나 추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시가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감정과 유사한 용어인 감성. 정서·느낌을 종이 위에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2025. 1. 16
맹태영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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