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와 메일
어제 이른 아침의 전화벨 소리는, 바르셀로나의 친구 '누리아(Nuria)'였습니다.
한 동안 뜸했었는데, 보름쯤 전에 내가 메일을 보낸 것에 대한 답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난 그녀에게서 온 메일을 확인했는데요,
내가 보냈던 메일을 읽고 난 뒤 바로 쓴 듯, 한국인 친구 J에게... 내가 '전화걸으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겠다는... 문구도 있었습니다. 난 이미 며칠 전에, J의 전화도 받은 상태였잖습니까?
그런 걸로 봐서는 그 메일이 도착하는데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누리아의 메일과 전화의 순서가 뒤바뀌었던 것이지요.
어쨌든, 내가 메일을 보낸지 보름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서 내내 궁금했었는데, 오늘 걸려온 전화로는......
누리아는, 이 번 여름 휴가 때... 한국에 오리라 합니다.
물론 메일로 내가, 그녀의 그럴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긴 했었지요.
그녀의 표현으론,
본인의 상황이 좋질 않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한국에 오겠다는 것입니다.
작년 여름 휴가는 사업과 연결시켜, 겸사겸사 중국의 상하이로 갔었그든요. 그러면서는, 나에게... '그 쪽으로 올 수 있냐'고 물었었지만, 내가 그럴 형편이 되질 못해 가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이 '둔터니'로 와서 살고 있고, 또 김 선생님과 자주 만나 술자리를 같이 하면서... 그녀 얘기도 한다는 둥의 얘기를 메일로 써 보냈더니, 바로 한국행을 결정한 듯싶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동양 침술에 관계되는 일을 하는 누리아는, 이미 그 전에 두 번 정도의 한국 여행을 하면서... 그 와중에 내 소개로 김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김선생님도 그 사이에... 프랑스에 가 있던 아들을 찾아갔다가, 바르셀로나에도 들러 누리아 집에서 머물었기 때문에... 서로가 아는 사입니다. '안젤스'라는 누리아의 친구와 함께 온다는데, 그녀 역시... ‘침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 같이오기로 했다고 합니다. 근데, 안젤스 역시... 김 선생님과는 구면인데다(몇 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이미 인사를 하고), 또 그 뒤 김선생님도 스페인에 가서 그녀의 집에서도 머무는 등... 모두가 아는 사이랍니다.)
내가 스페인에 살 때, 현지의 한국인과 일을 하면서 카운셀러 역할을 하던 누리아와 알게 되었고(그녀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도 준 사람입니다.), 내가 귀국한 뒤에도 몇 번인가 한국을 왔다 간, 누리아는 한국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녀가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고향인 '군산'에도 데려 갔었고... 거기서 김 선생님과 인사를 시켰던 것이, 이런 사이로 발전한 것이기도 한데요, 이제는... 그들 상호간도 아주 가까운 사이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이를 들먹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지만, 회원(읽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거론하면...
누리아는 김 선생님보다 연상이면서도 젊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좋은 친군데요,
내가 누리아를 '그 분' 대신 '그 녀'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스페인식 생활 관습이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그런 것이... 상호 훨씬 더 편하고 친하다는 의미이기도 해서거든요. 게다가 서로가 그리워하기 때문에, 여름 휴가가 한 달이나 되는 스페인 사람들로써는... 한국에 와서 한 달을 보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에... 이렇게 온다는 건데요, 무엇보다도...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이 번의 메일에서도, '한국은 자기의 '제 2의 고향''이란 표현을 썼더군요.
내가 여기 둔터니 마을로 와 1 년 정도 살 거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김 선생님 댁과는 차로 한 시간도 못되는 지역이라는 것 등) 굉장한 관심을 갖던 그녀는, 급기야 내 메일을 받고는 한국행을 결정한 것이지요.
와서, 이 분위기를 느껴보고... 또 즐겨보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그녀도 이미 우리들의 사는 모습을 잘 알고 있거든요.
사람의 마음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같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전화'와 '메일'.
내가 받았던 두 개의 통신수단이, 같은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뒷맛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전화를 받고, 그녀가 온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저 반가운 마음뿐이었는데(오히려 전화가 먼저였는데도), 메일을 읽고 나서는... 뭔가 깊은 맛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뭐랄까?.. '그리움' 같은 여운 말입니다.
전화를 받을 때는 직접적인 현실감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일을 읽을 때는 허상같기는 했어도, 어쩐지 정을 확인하는 기분이 남더라는 겁니다. 문자를 통해 마음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던 것이지요.
그런 걸로 보면, 글의 힘이 크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똑 같은 말이라도 글로 전달 받으면, 은근하거든요. 마음까지 느껴지는 것 같구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더욱 진지해지는 기분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편지는 더욱 간절하겠지요......
그런데...
내가 편지를 받은 것은 언제였던가. 편지를 써 보낸 것은 또 언제였던가......
사실,
나는 편지를 주고 받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그 것도 매우 간절하게......
그래서 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도 시작된 것이지요.
수년간의 외국생활을 하면서, 늘 목마르게 기다리던 편지......
아무래도 나는 그 갈증을 풀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에게 그 갈증을 풀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쓰고 싶은 편지를 누군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라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받을 수 없는(그런 걸 염두에 두지도 않는) 일방적인 편지이긴 하지만요......
얘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네요......
아무튼,
전화와 메일이 퍽 다른 느낌이었다는 얘깁니다.
새삼스럽게도......
7 . 15
사실 전화를 받은 날인 어제,
기로는 바로 김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그 얘길 해주었다.
그랬더니 김 선생님도, 퍽 좋아하면서도...
"잘 대접해서 보내야 허는디..." 하는, 걱정부터 했다.
그리고 밤엔, 김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아침에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렸는디... 어쩐 일이래?" 하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전화 소식만을 들은 게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로가,
"누리아가요, 제 메일에 뿅 가서... 한국행을 결정하고 온대잖습니까? 근데, '안젤스'도 같이 온다는 것 같은데요." 하고는, "선생님도 그립다고 하던데요?" 하자,
김 선생님 역시,
"그 사람들이 오믄... 잘 대접해서 보내야 허는디......" 하며, 아침과 똑 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일단 둘이는,
그들이 오면 뭔가를 해 줘야 한다면서,
다음에 만나면, 간단하나마... 그들을 위한, 여기서의 '짧은 여행'이라도 시켜주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기로가
아침에 일어나 나와 보니, 하늘엔 짙은 구름이 떠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한 바퀴 돈 다음, 기로는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들고 다시 나와 쉼터에 앉았다. 그러면서는,
'이렇게 기동성 있는 노트북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게, 퍽 다행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쉼터에서 노트북을 이용해서 글을 쓰다 보니, 일단 주변 꽃들에 대한 얘기로 글이 되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쉼터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맛도 새롭기만 합니다.
그리고 어젯밤 그 눅눅했던 기운이 쾌적하게 바뀐 것도 이상하네요......
옆집의 무궁화는 피고 지고...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펴댑니다. 그래서 무궁환가 봅니다.
겹꽃으로 색깔이 눈부시도록 하얗기 때문에, 산뜻한 맛은 있어 보입니다.
우리 나팔꽃도 많은 꽃송이가 피지만, 아침 나절 잠깐 필뿐... 이내 꼬스라들어 버리곤 하네요.
나팔꽃은, 왜 이렇게 허망하게 피고 지는지......
내가 잔뜩 기대를 걸었던 도라지도, 이제 서너 송이 남보라 색 꽃을 피우고 있는데, 땅이 척박한데다 바람맞이에 심어놓아선지... 옆으로 쓰러지거나 키가 작은 모습이라, 썩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그 자태는 별로 볼품이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마당 꽃밭의 채송화는 선홍빛의 세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근데, 채송화 색깔이 저렇게 생생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생생하군요.
봉숭아는 여전히 소박하게 꽃을 피우고,
축대의 달개비도 작은 꽃송이를 펴대다간 시들어지는데, 그 왕성한 잎에 비해 꽃은 너무나도 초라하구요.
아, 이렇게... 꽃들이 한창인 시절입니다.
하고,
노트북으로 '夢想?' 주변의 꽃 소식을 적다가, 무슨 생각이어선지...
기로는 얼른 작업방에 들어와, 유화 하나를 잽싸게 했다.
역시, 그 전에 해 놓았던 드로잉을 유화로 옮기는 작업이라... 힘들 것은 없었다.
다만, 재료를 바꿨고... 크기도 달라, 조금 다른 분위기를 내보이긴 했지만.
‘호수 가운데’.
'섬세한 부분은 일단 오늘 칠한 물감이 마른 뒤에 해야겠다.' 하면서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8 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종일 흐렸다.
비록 해가 나오진 않았지만,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시원하기는 했다.
평상에 잠깐 누워있다가 생각하니, 하모니카를 불어보고 싶어서... 기로는 다시 들어가 하모니카를 가지고 나왔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조용히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불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바람’을 부는 것으로 끝을 냈다.
# 상사화
이사 오자마자 수선화인줄 알고 뒤 언덕에서 포기나누기를 해 주었던 상사화가 드디어 연분홍 꽃을 피웠습니다.
그 꽃은 잎을 다 꼬슬려 말려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 싶더니, 몇 달 뒤에 꽃대가 쑥 솟아 나와 밝은 꽃을 피운 것입니다.
처음에 나는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밭에 올라가는 길에 무성한 풀을 낫으로 쳐준 뒤에 밭에 올라 토마토 서너 개를 따고 내려오는데, 뭔가 밝은 색이 녹색 풀로 무성한 언덕에 눈에 띄는 것 같드라구요. 그래서 시선을 주니,
"아!"
나리 같이 생긴 꽃인데, 밝은 분홍의 꽃송이 두 개가 활짝 펴있던 것입니다.
그 순간까지도 그 주변 풀숲과는 너무도 생뚱맞기도 해서, 어디선가 꽃송이들이 날아와 꽂혀있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옆에도 꽃봉오리가 져있었고... 다른 쪽에도 꽃대가 쑥쑥 솟아 나와, 곧 꽃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건 ‘상사화’였던 겁니다.
그런 걸 알지도 못했던 나는, 지난번 김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정말 그럴까?' 하고 의아해했었거든요?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이른 봄에 멋지게 잎을 내 놓더니, 차츰 잎이 꼬스라들어 볼품없이 사라지기에... (그 꽃데 대한 얘기는 들은 뒤였지만)저절로 잊어버린 채 지내고 었었던 것인데,
아, 이렇게... 맑은 꽃을 내 뵈다니!
꽃과 잎이 같이 붙어 피는 게 아닌, 잎이 무성하게 자란 뒤... 다 사라지고 난 다음, 또 얼마가 지난 뒤... 거짓말처럼 꽃대가 불쑥 솟아 나와 꽃을 피우는......
참, 신기한 꽃이었습니다.
시골에 오자마자 내 손으로 직접 뽑아다 심어놓고, 그 과정을 다 지켜본 화초였습니다.
(비록 잊고 있긴 했지만......)
'근데, 한 여름에 꽃이 피네?'
7 . 15
하고 써놓긴 했는데,
아침에 써두었던 편지와 '상사화'를 합해서 홈페이지에 올리려고 하다간,
'두 편지가 서로 어울릴 것 같지가 않네......' 하면서, '에이, 그냥... 뒷 것만 올리자!'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