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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달라진 해(1992 년)
a, 눈 구경
1992년에 접어들면서 바르셀로나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제전을 앞둔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국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그들의 움직임은 절박하면서도 소란스러웠다.
서울 올림픽 때 자원봉사자로 뛰었던 기억 때문일까.
인야는 내심 바르셀로나의 준비 과정을 서울과 비교하고 있었다.
효율과 속도 면에서는 서울을 따라오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2년 가까이 지켜본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변화도 그들에겐 경이로운 분투였다.
그 이면에는 마드리드 중앙 정부에 맞서 ‘카탈루냐’의 자부심과 독립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그들의 오랜 갈등과 한(恨)이 서려 있다는 것을, 이방인인 그도 점차 알아가고 있었다.
세상은 축제 분위기로 어수선했지만, 인야는 생뚱맞게도 눈(雪)을 향해 있었다.
'눈 내리는 한국에 딱 며칠만 다녀올 수 있다면……'
밋밋하고 습한 바르셀로나의 겨울은 한국의 늦가을처럼 허전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며... 그는 1991년의 마지막 날을 맞아 홀로 새해 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밀린 빨래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으며... 이불을 탈탈 털어내는 것으로 마음의 먼지까지 털어냈다.
후배 심이 어딘가를 함께 가자는 제안과, 또 아랫집의 저녁 초대도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혼자만의 침묵 속에서 비노(Vino) 두어 잔을 마시자 머릿속이 기분 좋게 얼얼해져 오자,
인야는 허공에 대고 나직이 기도를 읊조렸다.
“하늘이여, 새해에도 어머니를 건강하게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여기 바르셀로나에 있는 이유를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1월 1일 새벽, 전화 벨 소리에 깨어 받아보니 한국의 친구 P였다.
반갑게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으며 인야는,
"내 대신 우리 어머니께 전화 좀 해 줄래?" 하고 부탁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인야와 그의 친구 두 전화를 받으신 기분일 터라, 새해 아침이 조금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새해의 시작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성당 작업실에 앉아 몇 시간을 버텼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붓 끝은 무거웠다.
기다리는 한국에서의 편지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적막한 집 안에서 그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가?'라는 자문을 반복하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글학교 교사들 몇몇이 함께 어울려 '헤로나(Gerona)' 지방의 ‘올롯(Olot)’이라는 마을로 나들이를 떠나, 그곳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새벽 3시까지 이어졌지만... 이튿날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지독한 숙취와 함께 깨어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너진 하루를 보냈을 뿐이었다.
1월 중순 어느 날 아침, 일본인 친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갑자기 일이 생겼는데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다며 인야에게 그 일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평소 신세를 지고 있던 터라 인야는 앞뒤 재지 않고,
"그래, 알았어!" 하고 승낙했다.
그런 뒤 전화를 끊고는 약간 후회했다.
‘내가 애기를 봐 준다고?’ ‘그런 일을 할 수나 있을까?’
바삐 서둘러 그 친구 집으로 내려가면서도 인야는 갈등이 아니 될 수 없었다.
물론 인야는 그 친구 부부의 ‘결혼식 보증인’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누구 못지않게 속내도 털어놓으며 서로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이긴 한데, 게다가...
'그들이 오죽했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도움을 청했을까?'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었기에 복잡하면서도 묘한 감정으로 그 집에 도착했다.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그들 부부에게 오늘은 아주 급하고도 어쩌면 중요할 수도 있는 손님이 와서, 갑자기 아이를 맡길 데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아기를 맡기고 싶지도 않던 차에 인야가 떠올랐다며(그동안 서너 차례 그 집에 가서,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인야의 모습이 떠올라 그 정도면 안심이었다면서),
"어떻게든 빨리 돌아오도록 할 테니, 한 나절만 봐 줘!" 하며 쩔쩔 매는 것이었다.
인야가 봐도 사정이 퍽 딱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뭐래도 그들을 위해 해주고 싶었던 인야인지라, 기왕에 해 주는 김에,
“걱정 말고, 가서 일이나 잘 하고 돌아와!” 하면서, 친구를(그의 처는 이른 아침에 이미 나갔다는데) 안심시키며 일을 나가게끔 해주었다.
아기의 똥오줌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들이 미리 준비해 둔 우유도 데워서 먹이고, 중간에 재우고 깨어나면 달래고......
남자 아기가 순하긴 했지만, 인야는 몇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무 정신이 없었다.
사실 인야에겐 이런 일이 생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4남매 중 막둥이였던 인야는 어렸을 때부터도 아기를 좋아했고, 또 사춘기 이후에는 형들과 누님의 조카들이 생겨서 그들을 돌보기도 했었기에... 그 경험과 기억 등을 참고로 그나마 애기 돌보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후 네 시 쯤 헐레벌떡 돌아온 친구는, 어쩌면 감동어린 표정이자 얼굴 가득한 안도감으로 정중하게 고맙다면서,
“그렇지만, 인야! 이 돈은 꼭 받아야 해! 미안하고, 고마워!” 하면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 같은 하얀 봉투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야는 그 돈을 받을 수가 없어,
“이게 무슨 일이야? 난.. 돈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닌데? 이럴 순 없어!” 하고 뿌리쳤는데,
그는 인야의 손을 꼭 쥐면서,
“많은 돈은 아냐, 인야! 그렇지만... 어쩌면, 이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일 수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인야 너를 어떻게 대할 수 있겠어?” 하니,
인야는 멍하니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 봉투를 더 이상 뿌리치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저녁을 해 먹고 가라고 인야를 잡았지만,
“나도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 하면서 그 봉투를 들고 나왔다.
인야는 평생 몸에 살점이 붙지 않는 ‘마른 체형’으로,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특히 겨울에는,
“아이, 코끝이 얼얼한 추위마저도 그립다!” 하곤 했다.
겨울인지 가을인지 밋밋하기만 한 현지 기후에 대한 인야의 역설적인 불평이었는데, 그가 결코 추위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부른 자의 투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뭔가 뚜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제법 컸다.
무슨 일인가 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어둠 속인데도 마당에 조그만 덩어리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우박이었다.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러더니 천둥과 번개가 치기도 하고, 비까지 내렸다.
‘까딸루냐’ 내륙지방엔 눈이 상당히 내렸다고도 했다.
그날, 땅거미가 질 무렵 비가 오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끌라우디아’에요......”
인야는 흠칫 놀랐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에 인야는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일기에조차 쓰기 힘들었던 그녀였는데......
그녀는, 얼마 전에 한국식당에 갔다가 심을 만났고, 둘이서 인야에 대한 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도 인야는 심을 만났었는데, 그러나 인야를 위해서 그랬는지 그 얘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걸로 보면, 심도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차렸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를 걸요?” 하고 그녀가 말했고,
“글쎄, 나도 변해있을 텐데, 뭐...... 나, 이상한 사람이잖아?” 하고 인야가 받았고,
“물론, 잘 알지요.”
“그래?”
“그럼요!”
그런 대화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인야에게 만나자고 했고,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동안 인야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인야는 시내에 나갔고 약속 장소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그녀는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담배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야가 ‘담배 피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야가 깜짝 놀랐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얼마 전에 배웠어요......” 하고 고백하듯 말을 했는데,
“음!” 하고 엉거주춤 대응해주기는 했지만, 그게 긍정의 뜻인지 부정인지는 인야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내가 무슨 권리로?’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독립할 집을 구하고 있는데, 집을 구하면... 당신 그림을 하나 사고 싶어요." 했는데,
인야는 아무 대답을 해주지 않고(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약간의 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는 변해 있었다.
퇴폐적이면서도, 뭔가 대담해졌다고나 할까?
‘나 때문일까?’ 하고 인야는 생각했지만,
그런저런 갈등에 복잡함을 느끼면서도... 인야는 끝내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려고도 했지만, 결국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헤어지는 길, 그녀는 인야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악마 같은 남자(놈? Muchacho de diablo)!”
인야는 흠칫 놀랐지만,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알지는 못했다. 그 말이 원망인지, 아니면 여전한 애정의 역설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 자체로만 본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내가 너라는 ‘놈팽이’ 때문에, 못 살아!’ 거나, ‘왜 이리, 나를 정신없게 굴어(힘들게 해)?’ 하는 뜻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경우는, 무슨 뜻일까?’ 잠시 헷갈리기는 했다.
분명 좋은 뜻이 아닌 게 분명할 텐데,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못할 말도 아닐 수 있을 터라서... 평소에 순하기만 하던 그녀가 자신에게 과감하게 내뱉은 말이니까.
순간, 그런 생각은 들었다.
‘그러게...... 너와 나는 이렇게, 서로의 진심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사이인 거야.’ 하는.
그녀는 인야를 홀로 대하기가 힘들었던지, ‘응원군’의 역할로 사전에 ‘심’에게 연락을 취해 놓았던 듯... 그럴 즈음에 심이 나타났다.
역시 인야가 조금 놀라긴 했지만,
“선배, 차에 타세요.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 게요......”
인야는 잠깐 머뭇거리긴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차에 올랐고,
그가 인야를 ‘깐 까라예우’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 안에서도 그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이 차 돌리기 쉬운 산 동네 삼거리에 차를 세워서야,
“고마워. 수고했다!” 고 인야가 인사했고,
“주말에 봐요.”(한글학교에서) 하는 말로, 그가 다소 느릿느릿 차를 돌리며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인야는 ‘침묵의 집’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인야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면서, ‘그럼, 뭐가 더 남아 있겠는가?’ 하고도 있었다.
‘원래는, 한국 나들이 때에, 어머니께 뭔가 그 얘기를 하려고도 했었는데, 나 자신에게도 확신이 없어서 미적대다 끝내 꺼내지도 못한 채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었던 건데...... 그렇게 다시 만났던 그녀에게 난.. 그러니까, 그 순간.. 그녀는 나에게 매달리지 않았고, 나는 얼음이 돼버렸던 거야......’ 하고 눈만 깜빡이던 이 인야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야!’ 하면서......
다음 날, 인야가 간절하게 갈구했던 눈 구경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글학교 교장 부부가 전화를 걸어와,
“이 선생, 우리 피레네 (산맥)쪽으로 눈 구경을 가려고 하는데, 시간 있으면... 함께 갈 거야?” 하고 물어온 것이었다.
“정말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인야는 환호성을 질렀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부는 차를 타고 인야를 데리러 왔고, 출발을 했는데, 어차피 부부는 앞에 앉았고, 뒷좌석에 홀로 합류했던 인야는, 정말 뜻밖의 눈 구경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겨우 내내 그리워했던 일이었다.
초반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레리다(Lerida)’ 지방에 접어들면서 눈이 조금씩 보이면서는,
“와! 이거.. 얼마 만에 보는 눈이야?” 하고 교장 부인이 감탄을 연발했고,
“이 선생, 거기 비노 박스 있어. 어차피 현지에 도착하면 뭔가 먹게 되겠지만, 나야.. 운전해야 하니 술은 못 마시지만, 그리고 이 선생, 비노 좋아하잖아? 혹시 술 생각이 나면, 거기서 한 병 꺼내 마셔도 되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거기, 약간의 안주 같은 것도 있어요, 선생님!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마셔도 되는데, 그렇게 하세요. 좋으시면......” 하고 부인도 거들었다.
그래서 보니, 인야 안 쪽 바닥의 박스 주변엔, 아몬드 봉지와 올리브 깡통(작은 것들)도 있었고, 그 아래엔 포장된 ‘초리소’도 있었다.
“잘 됐네요!” 하고 좋아라 했던 인야는, 여섯 병들이 박스에서 한 병을 꺼내 조용히 코르크를 딴 뒤,
“그럼, 혼자 마십니다!” 하고는, 종이컵도 있긴 했지만 차가 흔들리는 탓에 그냥 병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즈음 그 부부는 자기들 집안 얘기를 하고 있었고, 인야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눈 풍경에 푹 빠져 있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는지... 아예 마치 자기들만이 차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도 있었다.(어차피 한국에 있는 양쪽 집안 얘기였으니까.)
상황이 그러다 보니 인야 역시 앞쪽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치 혼자 기차 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그저 차창 밖만 바라보면서 병째로 꼴짝꼴짝 비노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좋기도 했지만, 뭔가 꽉 막혀 있던 가슴이 서서히 뚫리는 것 같은 해방감도 맛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됐던 비노는 과했고, 아니 지나쳐서...
그들이 현지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인야는 거기가 어디였는지 모른다. 기억이 희미할 뿐이다.) 인야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선생, 이제 내려야지?” 하던 그들은,
“어? 어떻게 된 거야? 이 비노 병은?” 하다가, “아니, 이 많은 비노를 혼자 마시고 있었단 말에욧?” “아이, 이 선생!” 하고 경악하고 있었다.
인야는 이미, 한 박스의 비노 상자에서 네 병째의 비노 코르크를 딴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 둘러싸인 어떤 마을에 내려 제법 널찍한 눈밭을 밟았던 인야는, 눈을 비벼보려고 제일 먼저 맨손으로 눈을 집어들다가,
“눈이 굳었네요!” 하는 말을 한 것까지는 기억에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은 이미 굳어 있었던 것 같았고, 반 얼음이 되다시피한 눈밭에서도 푹푹 빠지는 기분을 낼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직접 밟아본다는 기분만이라도 느끼려는 듯(미쳐서) 애들처럼 이리저리 뛰다가 넘어졌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지금 무릎이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뒤 다시 차에 실린 인야는 그대로 골아떨어졌고, 결국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왔다.
돌아오는 중간 한 시골 길에서 토하기 시작했는데(취했음에도 차 안에 토하지는 않았고, 자신이 부탁을 하자 교장이 차를 세워주었던 것 같고... 어딘가 길 가 풀밭이거나 깜깜한 언덕에서 토했다.),
‘침묵의 집’에 도착하여 그들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눕혀지는 것도 어렴풋한 기억일 뿐이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에도 인야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헛구역질을 해대며... 밤을 새웠다.
고통 속에서도,
'정말 이러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하는 공포가 밀려왔고, 살기 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술에 심신을 통째로 맡겨버린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만 이틀이 지나서야 인야는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스페인에 오기 전해 겨울에 한국에서 눈을 본 뒤 만 3년 만에 마주한 ‘눈 구경’은,
그렇게 요란하고도 처참하게 끝이 났다.
VI. 달라진 해(1992년)
a. 눈 구경
1992년에 접어들면서 바르셀로나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제전을 앞둔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국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그들의 움직임은 절박하면서도 소란스러웠다.
서울 올림픽 때 자원봉사자로 뛰었던 기억 때문일까. 인야는 내심 바르셀로나의 준비 과정을 서울과 비교하고 있었다.
효율과 속도 면에서는 서울을 따라오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2년 가까이 지켜본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변화도 그들에겐 경이로운 분투였다.
그 이면에는 마드리드 중앙 정부에 맞서 '까딸루냐'의 자부심과 독립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그들의 오랜 갈등과 한(恨)이 서려 있다는 것을, 이방인인 그도 점차 알아가고 있었다.
세상은 축제 분위기로 어수선했지만, 인야는 생뚱맞게도 눈(雪)을 향해 있었다.
'눈 내리는 한국에 딱 며칠만 다녀올 수 있다면......'
밋밋하고 습한 바르셀로나의 겨울은 한국의 늦가을처럼 허전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며... 그는 1991년의 마지막 날을 맞아 홀로 새해 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밀린 빨래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으며... 이불을 탈탈 털어내는 것으로 마음의 먼지까지 털어냈다. 후배 심이 어딘가를 함께 가자는 제안과, 또 아랫집의 저녁 초대도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혼자만의 침묵 속에서 비노(Vino) 두어 잔을 마시자 머릿속이 기분 좋게 얼얼해져 오자, 인야는 허공에 대고 나직이 기도를 읊조렸다.
"하늘이여, 새해에도 어머니를 건강하게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여기 바르셀로나에 있는 이유를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1월 1일 새벽, 전화벨 소리에 깨어 받아보니 한국의 친구 P였다.
반갑게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으며 인야는, "내 대신 우리 어머니께 전화 좀 해 줄래?" 하고 부탁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인야와 그의 친구 두 전화를 받으신 기분일 터라, 새해 아침이 조금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새해의 시작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성당 작업실에 앉아 몇 시간을 버텼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붓 끝은 무거웠다. 기다리는 한국에서의 편지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적막한 집 안에서 그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가?'라는 자문을 반복하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글학교 교사들 몇몇이 함께 어울려 '헤로나(Gerona)' 지방의 '올롯(Olot)'이라는 마을로 나들이를 떠나, 그곳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새벽 3시까지 이어졌지만... 이튿날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지독한 숙취와 함께 깨어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너진 하루를 보냈을 뿐이었다.
1월 중순 어느 날 아침, 일본인 친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갑자기 일이 생겼는데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다며 인야에게 그 일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평소 신세를 지고 있던 터라 인야는 앞뒤 재지 않고, "그래, 알았어!" 하고 승낙했다.
그런 뒤 전화를 끊고는 약간 후회했다. '내가 아기를 봐 준다고?' '그런 일을 할 수나 있을까?'
바삐 서둘러 그 친구 집으로 내려가면서도 인야는 갈등이 아니 될 수 없었다.
물론 인야는 그 친구 부부의 '결혼식 보증인'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누구 못지않게 속내도 털어놓으며 서로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이긴 한데, 게다가... '그들이 오죽했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도움을 청했을까?'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었기에 복잡하면서도 묘한 감정으로 그 집에 도착했다.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그들 부부에게 오늘은 아주 급하고도 어쩌면 중요할 수도 있는 손님이 와서, 갑자기 아이를 맡길 데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아기를 맡기고 싶지도 않던 차에 인야가 떠올랐다며(그동안 서너 차례 그 집에 가서,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인야의 모습이 떠올라 그 정도면 안심이었다면서), "어떻게든 빨리 돌아오도록 할 테니, 한 나절만 봐 줘!" 하며 쩔쩔매는 것이었다.
인야가 봐도 사정이 퍽 딱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뭐래도 그들을 위해 해주고 싶었던 인야인지라, 기왕에 해 주는 김에, "걱정 말고, 가서 일이나 잘하고 돌아와!" 하면서, 친구를(그의 처는 이른 아침에 이미 나갔다는데) 안심시키며 일을 나가게끔 해주었다.
아기의 똥오줌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들이 미리 준비해 둔 우유도 데워서 먹이고, 중간에 재우고 깨어나면 달래고......
남자 아기가 순하긴 했지만, 인야는 몇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무 정신이 없었다.
사실 인야에겐 이런 일이 생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4남매 중 막둥이였던 인야는 어렸을 때부터도 아기를 좋아했고, 또 사춘기 이후에는 형들과 누님의 조카들이 생겨서 그들을 돌보기도 했었기에... 그 경험과 기억 등을 참고로 그나마 아기 돌보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후 네 시쯤 헐레벌떡 돌아온 친구는, 어쩌면 감동 어린 표정이자 얼굴 가득한 안도감으로 정중하게 고맙다면서, "그렇지만, 인야! 이 돈은 꼭 받아야 해! 미안하고, 고마워!" 하면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 같은 하얀 봉투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야는 그 돈을 받을 수가 없어, "이게 무슨 일이야? 난.. 돈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닌데? 이럴 순 없어!" 하고 뿌리쳤는데, 그는 인야의 손을 꼭 쥐면서,
"많은 돈은 아냐, 인야! 그렇지만... 어쩌면, 이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일 수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인야 너를 어떻게 대할 수 있겠어?" 하니, 인야는 멍하니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 봉투를 더 이상 뿌리치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저녁을 해 먹고 가라고 인야를 잡았지만, "나도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 하면서 그 봉투를 들고 나왔다.
인야는 평생 몸에 살점이 붙지 않는 '마른 체형'으로,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특히 겨울에는, "아이, 코끝이 얼얼한 추위마저도 그립다!" 하곤 했다.
겨울인지 가을인지 밋밋하기만 한 현지 기후에 대한 인야의 역설적인 불평이었는데, 그가 결코 추위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부른 자의 투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뭔가 뚜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제법 컸다. 무슨 일인가 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어둠 속인데도 마당에 조그만 덩어리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우박이었다.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러더니 천둥과 번개가 치기도 하고, 비까지 내렸다. '까딸루냐' 내륙지방엔 눈이 상당히 내렸다고도 했다.
그날, 땅거미가 질 무렵 비가 오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끌라우디아'에요......"
인야는 흠칫 놀랐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에 인야는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일기에조차 쓰기 힘들었던 그녀였는데......
그녀는, 얼마 전에 한국 식당에 갔다가 심을 만났고, 둘이서 인야에 대한 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도 인야는 심을 만났었는데, 그러나 인야를 위해서 그랬는지 그 얘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걸로 보면, 심도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차렸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를 걸요?" 하고 그녀가 말했고,
"글쎄, 나도 변해있을 텐데, 뭐...... 나, 이상한 사람이잖아?" 하고 인야가 받았고,
"물론, 잘 알지요."
"그래?"
"그럼요!"
그런 대화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인야에게 만나자고 했고,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인야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인야는 시내에 나갔고 약속 장소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그녀는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담배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야가 '담배 피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야가 깜짝 놀랐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얼마 전에 배웠어요......" 하고 고백하듯 말을 했는데, "음!" 하고 엉거주춤 대응해주기는 했지만, 그게 긍정의 뜻인지 부정인지는 인야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내가 무슨 권리로?'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독립할 집을 구하고 있는데, 집을 구하면... 당신 그림을 하나 사고 싶어요." 했는데, 인야는 아무 대답을 해주지 않고(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약간의 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는 변해 있었다. 퇴폐적이면서도, 뭔가 대담해졌다고나 할까.
'나 때문일까?' 하고 인야는 생각했지만, 그런저런 갈등에 복잡함을 느끼면서도... 인야는 끝내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려고도 했지만, 결국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헤어지는 길, 그녀는 인야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악마 같은 남자(놈? ¡Muchacho del diablo)!"
인야는 흠칫 놀랐지만,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알지는 못했다. 그 말이 원망인지, 아니면 여전한 애정의 역설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 자체로만 본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내가 너라는 '놈팽이' 때문에, 못 살아!' 거나, '왜 이리, 나를 정신없게 굴어(힘들게 해)?' 하는 뜻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경우는, 무슨 뜻일까?' 잠시 헷갈리기는 했다.
분명 좋은 뜻이 아닌 게 분명할 텐데,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못할 말도 아닐 수 있을 터라서... 평소에 순하기만 하던 그녀가 자신에게 과감하게 내뱉은 말이니까.
순간, 그런 생각은 들었다. '그러게...... 너와 나는 이렇게, 서로의 진심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사이인 거야.' 하는.
그녀는 인야를 홀로 대하기가 힘들었던지, '응원군'의 역할로 사전에 심에게 연락을 취해 놓았던 듯... 그럴 즈음에 심이 나타났다.
역시 인야가 조금 놀라긴 했지만, "선배, 차에 타세요.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인야는 잠깐 머뭇거리긴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차에 올랐고, 그가 인야를 '깐 까라예우'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 안에서도 그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이 차 돌리기 쉬운 산동네 삼거리에 차를 세워서야, "고마워. 수고했다!" 고 인야가 인사했고, "주말에 봐요."(한글학교에서) 하는 말로, 그가 다소 느릿느릿 차를 돌리며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인야는 '침묵의 집'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인야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면서, '그럼, 뭐가 더 남아 있겠는가?' 하고도 있었다.
'원래는, 한국 나들이 때에, 어머니께 뭔가 그 얘기를 하려고도 했었는데, 나 자신에게도 확신이 없어서 미적대다 끝내 꺼내지도 못한 채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었던 건데...... 그렇게 다시 만났던 그녀에게 난.. 그러니까, 그 순간.. 그녀는 나에게 매달리지 않았고, 나는 얼음이 돼버렸던 거야......' 하고 눈만 깜빡이던 인야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야!' 하면서......
다음 날, 인야가 간절하게 갈구했던 눈 구경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글학교 교장 부부가 전화를 걸어와, "이 선생, 우리 피레네(산맥)쪽으로 눈 구경을 가려고 하는데, 시간 있으면... 함께 갈 거야?" 하고 물어온 것이었다.
"정말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인야는 환호성을 질렀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부는 차를 타고 인야를 데리러 왔고, 출발을 했는데, 어차피 부부는 앞에 앉았고 뒷좌석에 홀로 합류했던 인야는 정말 뜻밖의 눈 구경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겨우 내내 그리워했던 일이었다.
초반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레리다(Lleida)' 지방에 접어들면서 눈이 조금씩 보이면서는, "와! 이거.. 얼마 만에 보는 눈이야?" 하고 교장 부인이 감탄을 연발했고,
"이 선생, 거기 비노 박스 있어. 어차피 현지에 도착하면 뭔가 먹게 되겠지만, 나야.. 운전해야 하니 술은 못 마시지만, 그리고 이 선생, 비노 좋아하잖아? 혹시 술 생각이 나면, 거기서 한 병 꺼내 마셔도 되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거기, 약간의 안주 같은 것도 있어요, 선생님!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마셔도 되는데, 그렇게 하세요. 좋으시면......" 하고 부인도 거들었다.
그래서 보니, 인야 안쪽 바닥의 박스 주변엔, 아몬드 봉지와 올리브 깡통(작은 것들)도 있었고, 그 아래엔 포장된 '초리소'도 있었다.
"잘 됐네요!" 하고 좋아라 했던 인야는, 여섯 병들이 박스에서 한 병을 꺼내 조용히 코르크를 딴 뒤, "그럼, 혼자 마십니다!" 하고는, 종이컵도 있긴 했지만 차가 흔들리는 탓에 그냥 병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즈음 그 부부는 자기들 집안 얘기를 하고 있었고, 인야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눈 풍경에 푹 빠져 있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는지... 아예 마치 자기들만이 차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도 있었다.(어차피 한국에 있는 양쪽 집안 얘기였으니까.)
상황이 그러다 보니 인야 역시 앞쪽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치 혼자 기차 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그저 차창 밖만 바라보면서 병째로 꼴짝꼴짝 비노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좋기도 했지만, 뭔가 꽉 막혀 있던 가슴이 서서히 뚫리는 것 같은 해방감도 맛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됐던 비노는 과했고, 아니 지나쳐서...
그들이 현지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인야는 거기가 어디였는지 모른다. 기억이 희미할 뿐이다) 인야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선생, 이제 내려야지?" 하던 그들은, "어? 어떻게 된 거야? 이 비노 병은?" 하다가, "아니, 이 많은 비노를 혼자 마시고 있었단 말이욧?" "아이, 이 선생!" 하고 경악하고 있었다.
인야는 이미, 한 박스의 비노 상자에서 네 병째의 비노 코르크를 딴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 둘러싸인 어떤 마을에 내려 제법 널찍한 눈밭을 밟았던 인야는, 눈을 비벼보려고 제일 먼저 맨손으로 눈을 집어들다가, "눈이 굳었네요!" 하는 말을 한 것까지는 기억에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은 이미 굳어 있었던 것 같았고, 반 얼음이 되다시피 한 눈밭에서도 푹푹 빠지는 기분을 낼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직접 밟아본다는 기분만이라도 느끼려는 듯(미쳐서) 애들처럼 이리저리 뛰다가 넘어졌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지금 무릎이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뒤 다시 차에 실린 인야는 그대로 골아떨어졌고, 결국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왔다.
돌아오는 중간 한 시골 길에서 토하기 시작했는데(취했음에도 차 안에 토하지는 않았고, 자신이 부탁을 하자 교장이 차를 세워주었던 것 같고... 어딘가 길가 풀밭이거나 캄캄한 언덕에서 토했다),
'침묵의 집'에 도착하여 그들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눕혀지는 것도 어렴풋한 기억일 뿐이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에도 인야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헛구역질을 해대며... 밤을 새웠다.
고통 속에서도, '정말 이러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고, 살기 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술에 심신을 통째로 맡겨버린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만 이틀이 지나서야 인야는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스페인에 오기 전해 겨울에 한국에서 눈을 본 뒤 만 3년 만에 마주한 '눈 구경'은, 그렇게 요란하고도 처참하게 끝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