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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하동군 이명산(570m)
'등신불'의 고향 산을 가다
다솔사-(20분)-제1쉼터-(20분)-봉명산-(10분)-제2쉼터-(15분)-보안암-(20분)-456봉-(30분)-관통도로-(40분)-이명산-(15분)-마애석조여래좌상-(20분)-한솔수련원 3시간10분 소요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고,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적은 자기의 목에 걸었던 염주를 벗겨서 사신의 목에 걸어 주고 그 길로 곧장 정원사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만적은 화식(火食)을 끊고 말을 잃었다."
김동리의 소설<등신불>의 한 부분이다. 하늘을 가리운 아름드리 소나무가 빼곡이 늘어선 산사의 오름길. 솔 향을 느끼며 길손은 다솔사로 향한다. 천년의 무게로 이 땅을 지켜온 다솔사의 불교문화만큼이나, 길손의 마음이 이토록 설레는 것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의 고향방문이기 때문이다. 오늘 다솔사에서 김동리 문학의 편린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등신불>이 이곳 다솔사에서 탈고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길손의 가슴은 마구 설렌다.
소설 '등신불'의 고향 다솔사
다솔사 대양루 옆 층층길을 내려서니 샘에서 물이 넘쳐나고 있다. 바가지로 물을 떠 한 모금 마셔본다. 물맛이 예사롭지가 않다. 야생차의 뿌리를 적시며 땅속으로 스며들어 이곳에 모인 물은, 마치 세번째 우려낸 차의 은은함으로 살포시 혀끝에 전달된다. 우리는 연거푸 몇 바가지씩 물을 마시고 산으로 향한다.
군립공원 봉명산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끝나지 않은 장마의 궂은 날씨로, 키 큰 소나무와 편백나무 아래 등산로는 한낮의 어두움이 깔린다. 위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보퉁이 하나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또 뭔가를 들고 내려오다 길손 일행을 보더니 보퉁이를 내리시고 "깡냉이 하나만 팔아주소" 라며 보자기를 펼친다.
김이 무럭무럭 오르고 있었다. 이헌광(45세)씨와 문춘자(46세)씨가 한 묶음씩 집어들고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한 묶음에 이천원. 사천원을 건네 받은 할머니는 돈에다 퉤-하고 침을 뱉고는 머리에 쓱쓱 문지르며 "첫 마수 재수 있거라!" 하신다. 장사 잘 하라며 인사하고 오르는 우리 등 뒤에서는 "고맙소! 고맙소" 하는 할머니의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할머니는 만점에서 텃밭에 옥수수를 심고 거두어 매주 일요일이면 옥수수를 한 솥 쪄 이곳으로 올라와 등산객을 상대로 옥수수를 판다고 했다. 절 앞으로 내려가 전을 펼치면 이곳보다는 많이 팔 수 있으련만, 등산로 가장자리에 보따리를 풀고 뜸한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할머니는, 아마도 다솔사 주차광장 장사꾼들 텃세 때문에 아래쪽으로 더는 내려가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솔바람에 실려 온 솔향기
산마루에 올라서니 봉명산의 첫번째 휴게소가 나오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나중에는 결국 만나야 하는 두 길의 오른쪽 오름은 봉명산 정상 길이고, 왼쪽으로 난 평탄한 길은 보안암으로 향한 지름길이다. 우리는 정상 길로 접어든다. 정상을 향한 오름길 등산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반들반들 닳아 있고, 시작과 함께 끝나는 꼭대기까지 연이어진 경사는 가파르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고 올라온 길을 되돌아 다리 쉼을 하노라면, 솔바람에 실려 온 솔향기가 식혀주는 땀 맺힌 이마가 상쾌함으로 느껴진다.
봉명산 꼭대기에는 노송의 틈을 비집고 목조 전망대 하나가 높다랗게 서있다. 사람들의 얘기소리가 들려오는 전망대 위로 올라가, 키 큰 소나무 가지 사이로 눈길의 초점을 맞추어 본다. 내려다보이는 사천 바다의 그림은, 희뿌연 구름의 장막 속에서 고요하게 잠들어 있다. 꿩 대신 닭이라더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구름 속 남쪽바다 앞에는, 노송의 굵은 가지와 솔잎의 하늘거림이 새로운 모습으로 돋보인다. 언제나 아래서 올려다만 볼 수 있는 키 큰 소나무 위 부분이, 지금 이 순간 길손과 같은 눈 높이에 있기 때문이다.
뒤쪽에 있는 '봉명산 408m' 라는 정상석을 지나쳐 내림길로 접어든다. 가파른 경사길 한 고비를 내려서 헬기장에 도착하여, 내려온 봉명산을 치켜 올려다보니,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면서 빗발이 들기 시작한다. 잰걸음으로 두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첫번째 휴게소의 갈래길이 만나는 곳이자, 또 다시 약수터, 서봉암, 보안암으로 갈려지는 오거리의 정점이다.
길손은 석불을 만나기 위해 보안암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보안암에 도착할 무렵 찔끔거리던 빗줄기는 신나게 한줄기 쏟아 내린다. 스님은 결재중인 듯, 조용한 암자의 사립문에는 외인출입금지 푯말이 나붙어 있다. 긴 장마에 마를 날 없었던 보안암의 석축과 돌계단 길은 파란 이끼로 뒤덮여 습하고 미끄럽다. 조용히 조심스레 석굴로 올라간다.
고려말에 창건하였다고 전하여지는 보안암 석굴은 뒷산 언덕을 파내고, 바위로 석실을 쌓아 올린 형태가 마치 경주 석굴암과 비슷하다. 석굴 안 본존불은 돌로 쪼아 만든 석가모니 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좌상을 중심으로 뒤와 좌우에는 16구의 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보안암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왼쪽으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능선에 올라선다. 절에서 땔감으로 준비해둔 몇 개의 나무 무더기가 있고, 아래쪽에는 서봉암으로 연결되는 넓은 산책로가 나온다. 여기서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25,000분의 1 지형도를 펼쳐 살펴보자.
국토 기본도의 오기, 오자, 탈자
먼저 봉명산 북서쪽에표기된 미륵암이 실제 지형 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보안암의 본래 이름이 미륵암이라 했으니 이것은 지도의 오기다. 그리고 곤명면 초량리 봉암산 남쪽에 표기된 보안암은 서봉암의 오자다. 석굴의 석불이 위치하고 있는 현재의 보안암은, 봉명산 남서쪽 만점마을에서 북서쪽으로 휘감아 도는 작은 골짜기 끝에 위치해야 하는데 이것은 완벽한 탈자다. 국립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국토기본도가 이러할지니, 이런 지도를 믿고 산행을 하는 데는 무리가 뒤따른다.
길손은 오른쪽 넓은 산책로를 버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여 나무와 풀, 가시덩굴이 우거진 희미한 산마루 길을 찾아 들어선다. 이명산으로 이어지는 이 희미한 마루 길의 시작은 나무더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생각없이 걷다보면 아래쪽의 넓은 산책로로 빠져들어 버리기 쉬운 곳이다. 계속하여 이명산으로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봏안암과 석불이 등붙여 기대어 살아가는 456봉의 오르내림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간간이 빛바랜 리본이 달려있긴 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뵈질 않는다. 시야는 트이지 아니하고 청미래와 가시덩굴이 엉기어 가랑이를 잡아끈다. 잡목 뒤덮인 꼭대기를 지나 한참동안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서니 차 소리와 음악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하동군 북천면 2번 국도에서 사천시 곤양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이명산과 456봉 사이의 재 마루를 관통하여 지나간다. 통행이 한적한 고개마루에 세워둔 트럭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차에서 내린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노래 가락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길 건너 이명산 자락의 산판 임도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보인다. 등산로로 들어서 조금 오르면 고압전신주 철탑을 만나게 되고, 왼쪽의 임도를 살짝 비껴 등산로는 복분자 덩굴을 헤집고 계속해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봉명산에서 이명산으로 연결되는 산마루의 기복은 무척 큰 편이다. 산정에서 아래의 재까지 일직선으로 곧장 떨어져, 다시 일직선으로 곧장 오르는 형세의 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손은 이 길을 '부처님의 길' 이라 부르기로 했다. '부처님의 길' 에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부처님이 되는 길이고 하나는 부처님을 만나는 길이다. "부처는 네 안에 있다"고 석가세존이 말했듯이, 부처님이 되는 길과 부처님을 만나는 길이 어쩌면 같은 길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미칠 때 길손의 무거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듯하다.
군락 이뤄 꽃피운 이명산의 패랭이
이명산 꼭대기에 올랐다.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는 분홍색 패랭이와, 잎사귀를 하늘거리며 춤추는 자귀나무가 없었다면, 이명산 정상 넓게 트인 땅에 우거진 수풀이 좀 황량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수풀 속에서 작은 키를 빼꼼이 내미는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경남정보고 OB산악회 이름과 "理明山 想思峰' 이라 새겨져 있다.
여기서 <산경표>를 한번 보자. 낙남정맥은 취령에서 황치로 이어져 분2기(分二)하여 옥산과 차점으로 갈래를 친다. 옥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정맥의 기둥줄기가 되고 차점은 가지가 된다. 이곳 차점은 이맹점으로 이어져 또다시 명봉산과 금오산을 분기한다.
산경표와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를 비교하여 맞춰보면, 이맹점은 이명산으로 명봉산은 봉명산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현 지형도상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봉명산을 이명산에 포함시켜 동일시하는 게 현실이다.
<동국여지승람>의 하동현조에는, 이맹굴이 이맹고개에 있다는 사실과 이맹점에 전하는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전설은 이맹산을 동경의 비보산이라 말하고, "이맹산정에 용지가 있기 때문에 동경에는 맹인이 많아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용지에 화철석을 묻었더니 용은 산 너머 진교 깊은 연으로 옮겨가 버렸고 그리하여 불려진 이름이 지금의 진교라 적고 있다.
오늘 이명산 정상에서는 전설 속의 용지도 찾을 수 없었고, 사천 앞바다에 떠오르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그림도 보지 못한 채 길손은 하산길로 접어든다. 이제 오늘 산행의 마지막 여정인 마애석조여래좌상을 뵈러 가야한다.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 내려선 산마루에 시야가 툭 트이는 바위가 나온다. 조망의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하산하는 길손의 마음을 다독거리기나 하듯,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동군 양보면의 농촌 그림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맑고 청명한 풍광의 그림도 좋지만, 희뿌연 구름의 장막에 가리어 아련히 다가오는 저 그림 또한 가슴을 뭉클거리게 한다.
조금 아래로 내려서니 삼거리길이다. 동경산과 황치산은 서진하는 마루길이고, 마애불은 오른쪽이라고 표시된 이정표를 지나 5분쯤 걸어 내려간다. 갑자기 눈앞에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 올린 듯, 여럿 같아 뵈는 커다란 바위덩이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바위의 서쪽 언덕배기 트인 땅에는 조릿대가 가득 뒤덮여 있다. 여기가 바로 1974년 12월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이명산 석불사지다. 원래는 석굴사원의 절터로 파괴된 석굴 2기가 있었던 지점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맹고개에 이맹굴이 있다고 한 내용으로 봐 2개의 석굴이 바로 이맹굴로 추정된다.
이곳 석불사지에서, 마루턱의 커다란 바위를 돌아 동쪽 아래 부서진 바위를 딛고 내려서면,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된 마애석조여래좌상이 나온다. 불상은 화강암으로 된 절벽에 새겨져 있고, 마치 절벽 아랫부분의 바위면이 떨어져 나간 곳에 감실형의 부조를 새겼다. 불상의 얼굴부분은 크고 두드러지게 돋을 새김을 하였으며, 아래쪽으로 갈수록 선각은 얕게 새겨져 언뜻 보면 얼굴만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명산 마애석조여래좌상은, 제작수법으로 미루어 봐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명산의 마애석조여래좌상
누군가가 기도하고 관리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긴 장마 뒤라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하다. 불상 아래 배례석에 나란히 놓여있는 세 벌의 물그릇은 먼지와 티끌이 떠있고, 표면의 도료가 벗겨져 빛바랜 목탁도 소리없이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다.
문춘자씨와 길손은 불상과 떨어진 한쪽에서, 파이프를 따라 흘러나오는 물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해간 김밥으로 때늦은 점심공양을 한다. 공양을 마친 문춘자씨는 불상 앞 배례석으로 다가가 물그릇을 옮겨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물을 받아 제 자리에 놓고는 합장하고 발길을 옮긴다.
그렇다. 부처의 마음은 네 안이라 했었지. 저렇게 겸손한 마음이련가. 김동리 문학 속의 '등신불'의 만적이, 진심으로 이복동생을 위하여 곡기와 말을 끊고, 결국은 소신공양으로 온몸을 부처님께 바치듯...
길손은 하산하는 시간 내내, 하반신의 일부가 흐릿하고 부서져 마치 머리만 허공에 떠있는 듯한 마애석조여래좌상과, 허리도 제대로 펴 앉지 못하고,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 웃는 듯 찡그린 듯,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을 가진 문학 속의 부처님 등신불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나긴 세월 혈육의 슬픈 이산은 그리운 고향 땅으로 돌아와, 슬픔과 기쁨의 눈물로 상봉하고, 문학 속의 만적과 이복동생 사신의 잔영이 겹쳐질 때, 현실 속 '마애석조여래좌상'과 소설 속의 부처님 '등신불'이 하나로 겹치어 동일시되어지고 있었다.
*다솔사
다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로, 511년(지증왕 12년) 연기조사에 의해 영악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절 안에는 대양루를 비롯하여 적멸보궁, 나한전, 천왕전, 요사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다솔사 대양루는 1749년(영조 25년)에 세워진 2층 맞배지붕으로, 106평에 달하는 건축물로 경상남도유형문화재 8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1978년 2월8일에 있었던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됨에 따라, 이 절에서는 성보법당을 탑 안에 설치하여 적멸보궁사리탑을 건립하였다. 그리하여 다솔사 적멸보궁에는 실내에 모셔진 금동와불과, 창 바깥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다솔사 명물로는 적멸보궁 뒤쪽 야산에 사철 푸름을 더하는 야생차밭을 꼽을 수 있다. 한때는 절 주위에서 채취된 죽로차가 반야로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가지기도 했었다. 한국차 보급의 중심에 효당 최범술 스님이 계셨고, 그에 의해 이곳에서 <한국의 다도>가 집필되었음을 말하듯, 다솔사의 차밭은 오늘도 변함없이 길손을 맞고 있다.
*산행길잡이
천년의 솔바람 불어오는 부처님의 산
다솔사-(20분)-제1쉼터-(20분)-봉명산-(10분)-제2쉼터-(15분)-보안암-(20분)-456봉-(30분)-관통도로-(40분)-이명산-(15분)-마애석조여래좌상-(20분)-한솔수련원 3시간10분 소요
경전선 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목포로 가다 보면, 사천시 곤명면 봉계리 시골마을에 다솔사역이 있다. 통일호만 잠깐 섰다 지나가버리는 조그만 간이역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6km쯤 내려가면 신라고찰 다솔사가 있다. 다솔사란 명칭을 한글음으로 풀이하여 '소나무가 많은 절'로 생각하기 쉽지만, '많은 군사를 거느린다'는 뜻의 이름이다. 다솔사와 봉명산 일대에서 솔 향기를 품어내며 서있는 수많은 아름드리 소나무들 모두가 호국의 그 첨병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한때 다솔사는 만해, 효당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모의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했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사천시는 다솔사 일원과 봉명산을 군립공원으로 지정 보호관리하고 있다. 봉명산과 이명산은 산세가 흐르는 형태로 보면 하나의 산이지만, 사천시와 하동군의 인위적인 행정구획선에 의하여 두 개의 산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낙남정맥에서 갈라진 산줄기로 산마루에 올라서면 남쪽바다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그림이 일품이다. 그리고 울창하게 우거진 한적한 숲길을 거닐고, 솔바람에 땀을 식히며 천년의 미소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산이다.
*교통
승용차:남해고속도로 곤양IC에서 1005번 지방도를 따라 다솔사로 들면 된다.
기차:경전선 철도 다솔사역에서 내려, 곤명에서 직행버스 이용 다솔사 입구 하차. 하행 부산진 05:20-다솔사 08:48, 부산진 12:25-다솔사 15:49, 마산 17:05-다솔사 18:59. 상행 순천 06:05-다솔사 07:19, 송정리 06:50-다솔사 10:23, 순천 16:40-다솔사 18:02.
고속버스:진주로 와서 사천 서포행 시외버스를 타고 다솔사 입구 하차. 동서울터미널에서 진주행은 1일 5회(07:00, 10:00, 12:30, 15:20, 18:00), 남부터미널에서 진주행은 1일 7회(08:30, 11:00, 13:30, 15:30, 17:30, 19:30, 23:00).
시외버스:진주나 사천버스터미널에서 다솔사 방향 버스 이용.
다솔사 입구(1005번 지방도)에서 다솔사까지 약 2km 구간은 대중교통이 없음.
*숙박
사천시 곤명면에 라스베가스모텔(055-852-5110), 곤양면에 곤양파크여관(854-5366), 서포면에 송도여관(852-5646), 수정장여관(854-5491)이 있다.
*먹거리
옥정식당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에는 한복순(56세)씨가 내 가족의 상을 차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내는 소담한 집 옥정식당이 있다. 허름하고 볼품없는 슬레이트지붕 식당이지만, 고향의 정과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산행을 마치고 출출한 배를 안고 부담없이 들어가, 막걸리 한 사발과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주막같은 집이다. 엄마나 누이 같고 혹은 딸 같은 편안하고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아주는 주인 아줌마의 모습에서 고향의 내음을 맡을 수 있어 좋다. 정식 4,000원, 국수 2,500원, 라면 2,000원. 055-882-9345.
*주변 볼거리
사천팔경
1. 창선-삼천포대교: 사천시 대방동과 남해 창선을 연결하는 연육교다. 총연장 3.4km 로 삼천포대교, 초양교, 늑도교, 단항대교, 엉개교 등 5개의 교량이 각기 다른 공법으로 시공되어, 특산물의 원활한 유통은 물론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울려 명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야간 연출조명이 빚어내는 푸른 바다와 빛의 조하는 장관이다.
2. 실안낙조: 바다와 섬을 지나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의 심포니 저녁노을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 9대 일몰 중의 하나다. 주변의 죽방렴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원시 정치망으로, 이곳에서 어획되는 멸치의 맛과 품질은 우수하다. 부채꼴 모양의 참나무 말뚝으로 만든 죽방렴과 섬, 바다가 어울린 일몰은 과히 환상적이다.
3. 남일대 코끼리바위: 고운 최치원선생이 남녘땅 제일의 경치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남일대다. 코끼리가 물을 빠는 형상의 코끼리바위와, 서부경남 유일한 조개껍질 모래 해수욕장과 지널전망대는, 여름바다를 찾는 많은 피서객들의 멋진 휴양지다. 특히 겨울바다 위를 수놓은 갈매기의 군무는 한 폭의 그림이다.
4. 선진리성 벚꽃: 충무공께서 거북선을 건조해 처음으로 출전하여 왜선 13척을 함몰시켜 승전을 거둔 곳이다. 인근에 조명군총과 귀무덤 등 역사의 현장이 있고, 성내 1천여 그루의 벚꽃이 만개하면 은백색의 꽃물결이 장관이다.
5. 와룡산 철쭉: 와룡산은 높고 낮은 봉우리 아흔아홉 개로 형성되어 구구연화봉이라 전해지고 있다. 기암괴석과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 중의 절경지다. 5월의 철쭉이 만개하면 온산이 진홍색으로 물든다.
6. 봉명산 다솔사: 군립공원 봉명산에 위치한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503년)에 창건한 고찰이다. 일제 때 만해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던 곳이다.
7. 사천읍성 명월: 백성을 보호하고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사천읍성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천읍성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사천시가의 그림과 달맞이는 황홀감을 불러 일으킨다.
8. 비토섬 갯벌: 비토섬은 월등도, 토끼섬, 거북섬, 목섬을 거느리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와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하루 두번 육지와 섬 사이에서 떠오르고 사라지는 갯벌은, 해상과 육상의 생태계 완충지역이며 생명의 보고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9월호
하동 이명산(570m)
뛰어난 풍광에 묻혀 풍류를 즐기는 강릉 사람들은 경포대의 달을 두고 하늘에, 호수에, 술잔에, 그리고 자기 마음 속에서 떠올라 네 개나 된다며 경포대의 아름다움을 반 허풍으로 말한다.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허풍은 무미건조한 사실보다 훨씬 진실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봉명산 자락에 숨어 있는 다솔사는 다섯 개 멋진 밭을 갖고 있다. 솔밭, 차밭, 대밭, 그리고 항상 일렁이는 바람밭, 마지막으로 다솔사를 찾은 그대 가슴에 안겨주는 생애 대한 그리움의 밭이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에도 다솔사에 오면 울울 창창한 노송 숲에서 수많은 솔잎이 정갈히 빗질한 청랭한 바람을 어김없이 그대 가슴에 일렁이는 여인의 머릿결로 안겨준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어 삭막하니 무슨 재미로 살아 가느냐며 한탄하는 그대 휑하니 척박한 가슴밭에도 고요함과 다정함의 씨를 한 점 두 점 다독이며 심어 주는 것이다.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천 오백년의 고찰로 도선국사가 중창한 유서 깊은 절이다. 1748년(영조2년)에 세운 대양루는 맞배지붕 중층 누각으로 대단한 규모이며 한때 쓰러질 듯 기운 것을 근래에 바로 세워 놓았다. 응진전, 극락전과 함께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솔사는 독립운동가이며 녹차를 대중에게 전개시킨 효당 최범술 스님이 거처했던 곳이다. 특히 효당과 원화 보살의 운명적 만남은 당시 굉장한 화제를 낳았다. 효당에게 다도와 녹차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원화 보살이 만든 반야차는 맛과 향, 질에서 뛰어나 현재도 다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솔사에는 오래된 다구가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또 다솔사 샘물은 맛이 좋아 진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 길러 온다.
다솔사에서 보면 봉명산은 경주의 왕릉이나 다소곳한 뒷동산 아니면 여인의 유방마냥 봉곳이 솟아 정감이 든다. 등산로는 절 왼쪽 옆으로 널따랗게 잘 다듬어진 오솔길이다. 다솔사에서 보안암으로 빠지는 고개를 통과해 20분이면 정상에 선다. 정상에는 정자를 지어 놓고 군데 군데 의자도 만들어서 솔바람 소리와 향기에 취해 휴식하기 더없이 좋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2m 넓이의 잘 닦여진 산책로가 곧장 나타나고 보안암까지 20분이면 간다. 다솔사 뒤의 고개에서 봉명산 정상을 가지 않고 곧장 보안암까지는 산책하기 좋은 평탄한 반 시간 길이다.
보안암은 80년대 초에 제2석굴암이 발견되었다고 신문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한 적이 있다. 널따란 판석을 쌓아 석굴을 만들어 그 안에 마애불을 모셔 놓았다. 토함산 석굴암을 본떠 만들었는데 크기와 형태 모두 석굴암에 미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축조한 중요한 석굴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보안암에는 비구니 스님이 거처 한다는데 한 번도 뵐 수가 없었다. 평상시에는 석굴은 안으로 잠가 놓아 석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등을 갖고 가서 비치면 석불을 볼 수 있다.
보안암에서 좌우 능선으로 조그만 산길이 나 있다. 암자에서 뒷봉우리까지는 10분이면 되고, 봉우리에서 서쪽 이명산을 오르는 깨사리고개까지는 10분 더 가면 된다. 깨사리고개는 지도상에 도로가 뚫린 것으로 나와 있으나 실제 북천쪽에서 고개까지 2차선 포장도로가 나 있고 남쪽 진교의 백토골로는 도로가 나있지 않다.
깨사리고개에서 이명산 정상까지는 아주 잘 나 있는 30분 정도의 숲길이 이어진다. 정상에는 원래 용지라는 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 가뭄이 심할 때면 이곳에서 항상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에서 사방이 툭 트인 조망은 일품이다.
남으로 금오산과 다도해가, 서쪽으로 백운산, 서북으로 장대한 지리능선, 북으로 황매산, 서남으로 와룡산, 동북으로 자굴산이 에워싸 산첩첩 물첩첩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명산 꼭대기에 용지라는 못이 있고, 그곳에 못된 용이 살았다. 산 아래 장님이 많이 태어나 이상하게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산신께 제를 올리니 용지에 사는 못된 용의 장난이라며 용을 퇴치하는 방법까지 산신이 알려 주었다. 그런 후 마을 사람들은 돌을 불에 달구어 못을 메우고 난 후로 장님이 생겨나지 않았다. 용지에 사는 용은 쫓겨나 남쪽 진교 민다리 아래로 도망가 숨었다고 전한다. 진교 마을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으며 그래서 이명산을 일명 이맹산(이盲山)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이명산 북쪽 마을에 착한 삼형제가 살았다. 산속의 동물과 꽃을 좋아하며 사이좋게 행복했는데 한 가지 걱정은 용지의 못된 용이 산의 동물들을 잡아 먹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서로 의논 끝에 번갈아가며 시루떡을 해 용에게 바치면 용도 마음을 고쳐 먹을 것이라 믿고 매일 정상 아래 능선에 시루떡을 바쳤다. 삼형제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떡을 먹지 않아 마침내 떡이 쌓여 큰 바위가 되고 양식도 떨어져 더는 어쩔 수 없어 낙담하고 있었다.
그날 밤 꿈에 산신이 나타나 떡 속에 부처를 조각해 놓으면 용이 보고 놀라 달아날 것이라 알려주었다. 이튿날 삼형제는 몸을 정갈히 씻고 떡에 불상을 조각해 놓고 내려왔다. 이를 본 용이 달아나 진교 민다리 아래로 숨었다는 것이다. 그후 삼형제는 이명산에서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전설을 뒷받침 하듯 이명산은 정상 아래 등산로에 시루떡을 꼭 닮은 바위가 셋이 있고 제일 위의 시루떡 바위에는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정상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이쪽으로 200m 오다 두 갈래 길에서 남쪽의 보다 뚜렷한 산길을 택해야 한다. 정상에서 마애불상까지는 15분이면 된다. 마애불 머리 위에는 벌집이 달려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곳은 샘이 있고 제단이 마련되어 있어 심심치 않게 기도객이 와서 치성드리는 장소로 소문나 있다.마애석불은 경남 유형문화재 136호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에서 곧장 능선 아래로 내려 오면 작은 고개인데 곧장 북으로 뻗은 능선을 20분 오르면 계명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동북으로 20분 내려서면 계산 마을이고 이곳에서 북천역까지는 지척이다. 이명산은 일명 이맹산이라 하지만 용이 울었다 하여 용명산이라 하며 봉명산, 계명산과 함께 삼명산이라 한다.
*산행 길잡이
권하고 싶은 코스는 다솔사에서 시작해 봉명산~보안암~이명산~마애불~계명산을 올라 삼명산을 마치고 북천으로 와 차를 타는 것이다. 이 길은 4시간이면 되는 산뜻한 하루 코스다.
다른 코스를 하나 더 권한다면 이명산에서 서쪽 다람재로 하여 남쪽의 월운으로 내려서는 것인데 도중에 약수가 나는 샘을 마시고 진교에서 차를 타면 교통이 편리하다.
*교통
승용차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와 곤양인터체인지에서 빠져 10분 안쪽이면 다솔사에 도착한다. 대중 교통은 직접 다솔사까지 오지 않아 약간 불편하다. 동쪽은 진주로 와 곤양~옥종 가는 버스나 곤양~남해 가는 버스를 이용해 다솔사 입구에서 내린 다음 다솔사에서 30분 정도 걷는다. 서쪽은 먼저 하동으로 가서 곤양까지 온다.
열차는 경전선 비둘기호를 타고 완사역에서 내려 곤양행 버스를 타든지, 택시를 타면 된다. 다솔사 입구를 지나는버스는 약 한 시간 간격으로 있다.
*숙박과 먹거리
곤양면 소재지에 용문장, 곤양파크가 있다. 남쪽인 진교면 소재지에는 해원장여관이 있다. 진교는 한우 고기 요리가 유명하다. 특히 사향조가든(인터체인지 입구)에서는 사향조(야생오리) 요리가 인기 있다.
*볼거리
시간을 내어 사기리 새미골 도요지를 찾아가 우리 전통 도자기 재현에 혼을 바치는 최정간님을 만나 봄도 큰 기쁨이 된다. 사기리 새미골은 일본의 국보인 이도다완의 고향이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첫댓글 여기로 번개산행 가자는기요? 그라모 날짜 시간 집합장소, 준비물 등을 공지 하셔야지? 안그런가요?. ㅠㅠㅠㅠ
그라고 컴 모니터 작은 사람 보기 어렵게 하지말고 ...폭을 조금 줄여 올리지요? 한줄한줄 읽고 넘길 때마다 커즈 옮기기가...
가자는기 아니고 이런데도 있다는 깁니다. 모두들 열차타고 또 차타고 귀찮아서 이리는 몬하다요~!! 기양 보고 넘어가마 됩니더~!! 코스모스 축제나 댕기오까 싶으네~!!
다시 생각해 보니 이번 추석 연휴 때 속닥하게 조짜서 가는 것도 좋겠네~! 코스모스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