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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오늘(27일) 중국과 평가전을 가졌습니다. 김귀현 선수는 투병 중인 아버지 앞에서 태극마크 데뷔전을 가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희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김귀현의 아버지 김직 씨는 의료진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선천성 청각장애에 만성 폐질환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 울산까지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태극마크를 단 아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아버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습니다.
김귀현은 7년 전 아르헨티나로 축구 유학을 떠나 올해 초 1부리그 벨레스에 입단했습니다.
꾸준한 노력 끝에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았고 아버지 앞에서는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로 피곤했어도 후반 6분 교체 될 때까지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김귀현/올림픽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 경기 잘 해서 정말 다행인 것 같고요. 또 아버님께서 이 모습 보시고 몸이 빨리 쾌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를 마친 뒤에는 아버지를 찾아 손을 꼭 잡았습니다.
역시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는 아들을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고요. 가서 열심히 해서 정말 멋진 아들이 될게요. 사랑해요.]
올림픽팀은 전반 12분 김귀현의 긴 패스로 만든 찬스에서 정동호의 크로스를 김동섭이 결승골로 연결해 중국을 1대 0으로 꺾었습니다.
(영상취재 : 정상보, 영상편집 : 이재성)
임자도 소년 김귀현,
아르헨티나를 거쳐 태극마크를 달다!
다가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중국과의 평가전이 예정된 올림픽 축구대표팀 소집명단에 '김귀현'이라는 낯선 이름이 있다. 그러나 축구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유망주 김귀현의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축구팬들은 그가 가진 한국 최초의 아르헨티나 리거라는 인상적인 이력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뽑히기까지의 감동적인 성장 스토리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길을 걸어온 선수일까? 또, 무엇때문에 그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일까? 홍명보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무엇때문에 수많은 청소년대표팀 출신 선수들을 뒤로 한 채, 그에게 기회를 주었을까? 남미 축구리그의 유일한 '꼬레아노' 김귀현에 대해서 알아보자.
자신이 누빌 벨레즈 홈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귀현 선수 -출처:일간스포츠-
전라남도 신안출신의 1990년생 김귀현은 아르헨티나 리그 진출 후, 7년만에 유소년 클럽을 거쳐 아르헨티나 1부리그 벨레즈 사르즈필드와 3년 계약을 마쳤다. 명실공히 아메리카 최고의 축구리그인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프로팀 정식계약을 맺은 것은 김귀현이 한국선수 최초다. (이전에 에스파뇰에서 뛰었던 정철영이라는 선수가 있었으나, 이민자 출신이다.) 리그 내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벨레즈 청소년 팀 시절 주장 완장을 꿰찼을 정도로 실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를 홍명보 감독이 소집한 것이다.
사실, 김귀현이라는 이름이 안방에 알려진 것은 "KBS 인간극장"을 통해서가 먼저였다. 전라남도의 임자도 소년 김귀현은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님 밑에서 어렵게 축구를 해왔고, 남해 축구 교실의 아르헨티나 인 아르만도 마르티네스 코치가 김귀현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그를 아르헨티나로 데려가고, 그에 앞서 가족들과 이별준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도 시청자 게시판을 포함한 인터넷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어 그의 효성과 성장스토리에 모두가 함께 울고 웃었다.
축구를 했던 외삼촌의 권유로 13세에 축구를 시작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열심히 훈련했고, 그의 성실함과 발전가능성을 주시한 아르만도 코치가 자비를 들여 아르헨티나 축구유학을 책임졌다. 그가 좋은 선수가 되기까지 그를 뒷받침해준 아르만도 코치의 따뜻한 마음씨도 분명 칭찬받아 마땅하다.
벨레즈 청소년 팀 시절의 김귀현 선수 -출처:연합뉴스-
"인간극장"에서 기억되는 김귀현은 부모님과 떨어져 혈혈단신으로 아르헨티나로 건너갈 생각에 슬퍼하는 영락없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차별을 실력으로 극복해야만 했던 소년은 강해져야만 했다. 몸이 불편한 부모님과의 이별에 슬퍼하던 모습의 소년은 지금의 그와 전혀 오버랩되지 않는다. 냄새나는 동양인이라 차별받으며,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가 할 수 있던 것은 이를 악물고 의지를 다듬는 일과 경기장 내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뿐이었다. 임자도를 떠난 뒤, 7년만에 그는 호전적이고 거친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터프하고 정신력강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그라운드에서 털어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벨레즈 청소년팀을 거쳐 벨레즈 1군 성인대표팀까지 오르기까지의 경쟁률이 20만대 1인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지독히 연습에만 매진했는지 알 수 있다.
벨레즈 사르즈필드 홈페이지에 게재된 김귀현 선수 소개 -출처:벨레즈 팀 홈페이지-
성인 국가대표팀 차출로 인해, 선수 선발에 고심하던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김귀현을 소집하며, "아르헨티나에서 1군계약을 맺었다면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확신을 더했다. 사실, 김귀현은 2008년 캐나다 세계청소년월드컵을 앞두고 소집되었다가 3일만에 부상으로 다시 짐을 싸게 된 전례가 있다. 이번 중국 전에서 만큼은 아무런 부상없이 7년간 아르헨티나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며, 한국의 중원을 튼튼하게 지켜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축구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정신적인 요소 또한 훌륭하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안타깝게 일찍 선수생활을 끝마치거나 방황하는 경우가 있는데 7년간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했던 김귀현만큼 정신력이 강한 선수도 없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벨레즈 팀 감독은 선수를 평가하는 항목중 그의 정신력을 최고 중의 최고로 평가했다.
<벨레즈 팀 연습경기에 나선 김귀현 선수 -출처:벨레즈 홈페이지-
축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다. 환경이 불리한 선수도 있을 것이다. 운동선수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어떤 결과를 내왔느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극복해왔느냐는 것이다. 누구보다 어려웠던 환경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절치부심하며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김귀현 선수야말로 이 말 뜻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스포츠스타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평발을 극복한 박지성이 그랬고, 재일동포라는 편견과 차별을 뚫고 성공한 추성훈이 그랬듯이 어려운 환경을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스토리만큼 감동적인 것은 없다.
7년의 인고의 세월을 등에 업고,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줄 감동적인 스토리의 시작이 기대된다. 아메리카 축구 리그의 유일한 COREANO, 22살 청년 김귀현은 찬란하게 빛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