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선교의 아름다운 꿈을 가진 전유숙 권사와 성기병 장로, 선교의 열매가 귤처럼 탐스럽게 열려 세상 곳곳을 밝게 하리라 | 제주, 아름다운 땅이다. 사람을 부르는 땅이다. 어디를 걸어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어디에 가 앉아도 옥빛 바다와 하늘이 가깝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제주가 궁금하다. 제주에 가는 것을 꿈꾼다. 제주에 가면 행복해질 것 같다. 실제로 제주 올레길을 걷기 위해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1년에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행복했으리라. 상하고 지친 영혼도 온전히 치유되었으리라. 외국의 어느 여행지보다도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땅 제주도, 제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있다.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한사랑농장, 전유숙 권사가 남편 성기병 장로와 함께 일구어 가는 땅이다. 노오란 귤들이 하늘의 별처럼 열려 있는 귤 농장은 만 평이 넘는다. 다른 농장들은 귤 수확이 거의 끝나가고 있지만 한사랑농장은 4월에 수확하는 귤도 있다. 그래서 한사랑농장은 봄 햇살 환한 4월 중순까지 귤 냄새가 향긋하다.
경찰공무원이었던 남편이 퇴직하면서 관리만 하던 농장으로 아예 이사를 했다. 그리고 이젠 농군이 다 된 남편을 도우며 온전히 제주 사람이 되었다. 전유숙 권사는 서울 목동 한사랑교회의 권사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며, 담임목사님을 사랑하는 일에 뒤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 전유숙 권사의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은 제주도에 온 후로 더 활활 타오르고 있다. 올해 초에 남편은 제주 기적의교회(담임 정성학 목사)에서 장로로 임직되었다. 교회에서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만 평이 넘는 한사랑농장, 땅값이 비싼 제주도에서 만 평이 넘는 농장을 가지고 있으니 전유숙 권사는 부자다. 그러나 전유숙 권사는 자신을 조금도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줍게 웃는 전유숙 권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젊은 시절 양말장사, 인견이불장사 등 정말 열심히 살았지요. 경찰공무원인 남편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뜨거운 사람이었어요. 경찰공무원 아내의 자리가 사실 힘든 자리인데 남편은 저를 조금도 힘들게 하지 않았어요.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이들을 돌봐주는 등 가정을 잘 지켜 주었지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우리에게도 힘든 시간이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 주셨고, 주님께서 전폭적으로 주시는 은혜의 시간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많은 복을 저희 가정에 주셨지요. 우선 자녀들 셋을 하나님 사랑 안에서 잘 자라게 해 주셨고, 이 농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겁니다. 지금은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30년 전 땅을 살 때는 평당 천 원도 안 되는 작은 금액이었어요.” 전유숙 권사의 미소가 봄 햇살처럼 곱다. 하지만 농장이 너무 크다. 그들 부부가 꾸려가기에는 벅차지 않을까? 전유숙 권사가 다시 곱게 웃는다.
“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우리 남편 성기병 장로가 좀 힘들겠지요.” “권사님이 더 힘드실 것 같은데요.” 전유숙 권사가 다시 웃는다. “남편 소원은 퇴직하면 전국 개척교회를 돌며 선교하는 것이었어요. 어려운 교회 찾아가서 같이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고, 목회하다 지치신 목사님들께 맛있는 밥도 사드리고... 그런데 농장에 박혀 일만 하고 있으니 힘들겠지요. 하지만 머지않아 남편이 선교에 나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여건을 마련해 주실 거예요.
남편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전유숙 권사의 목소리가 한 템포 높아진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귤 농장이 참 크다. 이 많은 귤을 다 어떻게 파는지 궁금하다. 전유숙 권사의 얼굴에 또 미소가 가득하다. “우리 농장은 직거래가 많아요. 제초제 사용 안 하고, 가능하면 농약도 덜 쓰려 애쓰는데 그런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참 많네요. 그리고 요즈음 귤을 이용한 양갱이를 만드는 일에 전심전력하고 있어요. 이번에 만든 양갱이 한번 보실래요?” 전유숙 권사가 내놓는 귤양갱이, 우선 모양이 예쁘다.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나 입에 넣으니 맛이 참 좋다.
“우리 딸이 만든 겁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이면 승산이 있을까요?” 두 번째 양갱이를 입에 넣으며 나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렇게 맛있고, 이렇게 영양 가득하고, 이렇게 모양도 예쁜 양갱이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전유숙 권사는 딸 이야기를 조금 더 한다. “우리 딸 손끝이 참 여물어요. 이렇게 귤양갱이도 만들고, 귤전병도 만들고, 귤고추장도 만들어요. 또 귤쨈도 만들지요.” 양갱이를 먹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사람이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농장에 들어온다. 전유숙 권사가 반갑게 맞으면서 말한다.
| | | ▲ 영양 가득하고, 모양도 예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귤양갱이, 맛도 일품이다. | “저쪽에 있는 나무에 귤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좀 따가세요.” 이미 수확이 끝난 귤나무, 그런데 뒤늦게 익은 귤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을 들고 농장 주인을 부른다. 하지만 바빠서 드문드문 뒤늦게 익은 귤은 딸 수가 없다. 그래서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따가라고 말한다. 귤을 따러 온 이웃이 말한다. “작년에 이렇게 따간 귤로 쥬스를 만들어서 냉동고에 넣었더니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었어요. 마트에서 사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맛있어요.” 이웃집 아낙을 따라서 나도 바구니를 들고 귤나무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전유숙 권사의 이야기가 나를 붙든다.
“10년도 넘은 오래 전의 이야기에요.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아들과 함께 장애인시설에 봉사를 간 적이 있었어요. 아들은 장애인 아이를 자주 집에 데려와서 함께 지내고는 했지요. 덕분에 우리 가족은 장애인 아이들과 공도 차고, 함께 여행도 다녔어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장애를 가진 보육원 아이들과 친하게 되었는데 말을 못하던 장애인 아이가 어느 날 나를 보고 ‘엄마!’ 라고 부르는 거여요. 그 때 받은 충격과 감사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 아이가 말을 못하는 것은 물론 대소변도 못 가리고 있었는데 ‘엄마’라고 부르고 나서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랑과 관심이 장애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은 저에게 놀라운 변화를 주었어요. 그즈음 남편이 경찰관 바쁜 업무 중에도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공부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아직 청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활짝 웃는 전유숙 권사, 얼굴이 참 곱다. 그녀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신실하게 살아왔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갑상선암을 이긴 전유숙 권사의 이야기는 더 큰 감동을 준다. “병원에서 갑상선암이 굉장히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진단이 아니어도 너무 심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지경이었지요. 그런 때에 딸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딸을 일본에 혼자 보낼 수가 없어서 암 진단을 받고도 딸과 함께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저는 하나님께 많은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대부분 ‘하나님이 살려주시면’이라는 전제가 붙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생명을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요.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유숙 권사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엄마가 아픈데도 유학을 떠나야 했던 그 강건했던 딸의 눈에서도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렀을까? 전유숙 권사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딸을 일본에 데려다 주고 와서 수술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히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으니 이제 제 삶은 온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전유숙 권사의 고백은 계속된다.
“인생은 참으로 짧아요. 절대로 길지가 않아요.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죄 짓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해요. 하나님은 죄를 싫어 하시니까요. 갑상선암을 통해서 육체의 그릇이 아주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저에게는 참으로 큽니다.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고치려 하지 말고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고난 앞에서도 감사를 할 줄 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기쁜 일 앞에서 하나님께 먼저 감사한다. 제주 기적의교회 전유숙 권사, 그녀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강한 신뢰 때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