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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의 알기쉬운 주역풀이 제5회>
제13강 진실한 믿음과 기다림의 지혜:
수천수(5), 천수송(6)
◆ 아버지와 아들
수천수水天需 괘卦를 보면 하늘(건☰) 위에 물(감☵)이 있다는 것이다. 물이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된다. 그래서 하늘 위의 구름이라 한다. 또 하늘을 아버지라고 하면 물은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등에 올라가 있다. 그것을 수천수水天需라 한다. 수需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듯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자라나길 기다린다. 이렇게 수천수는 생명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의 지혜를 말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수천수水天需 괘卦를 180도 뒤집으면 천수송天水訟이 된다. 천수송天水訟 괘卦는 하늘(☰) 아래 물(☵)이 있다. 즉 물이 하늘 위에 있으면 수천수, 물이 하늘 아래 있으면 천수송天水訟이다. 수需는 기다림이요 송訟은 다툼이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되는데 욕심으로 기다리다 보면 요구하게 된다. 기다림이 지나치면 요구가 나온다. 요구하면 서로 다툼이 일어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틈이 갈라져 다투게 된다. 이런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 수천수水天需
수는 기다림이다. 믿음과 진실을 가지고 기다려야 빛나고 형통하고 의롭고 행복하게 된다. 큰 내를 건너가는 것이 이롭다.
(수需는 유부有孚하여 광형光亨이요 정길貞吉하니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니라.)
수천수, 하늘 위에 구름이 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을 수천수水天需라 한다. 왜 비를 기다리는가? 비가 와야 만물이 자라고 곡식을 얻게 된다. 비는 생명의 물이다. 비가 와서 곡식을 얻게 되고 곡식으로 밥과 술을 지어 먹고 마시는 것이 기쁨이다. 기다림에는 믿음과 진실함이 있어야 빛나고 형통한다. 기다릴 때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진실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빛나고 형통하게 되며 의롭고 행복하여 큰일을 해낼 수 있다.
◆ 괘를 판단해본다. 수는 기다림이다. 위험이 눈앞에 있다. 강건하여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그 의로움으로 곤궁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단왈彖曰 수需는 수야須也니라. 험재전야險在前也라. 강건이불함剛健而不陷이니 기의불곤궁의其義不困窮矣니라.
수需에는 ‘기다린다’는 뜻 외에도 ‘요구한다’는 뜻이 있다. 기다림도 중도에서 벗어나 지나치면 요구함이 된다. 서로 요구하게 되면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기다림은 자칫 요구함이 되기 십상이니 위험한 상태가 눈앞에 있다는 말이다. 수천수水天需의 수(☵)를 길을 가다가 만난 눈앞의 강물처럼 위험한 것으로 본다. 눈앞에 위험이 있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건剛健’해야 곤궁함에 빠지지 않는다. 강을 건너려면 물에 뜰 수 있는 법을 가져야 하고 자력이건 타력이건 물을 건널 힘을 가져야 한다. 수영 실력과 체력을 가져야 한다. 또는 타고 갈 배와 연료를 준비하면 된다.
강건이란 무엇인가? 정신이 강한 것을 강剛이라 하고, 육체가 강한 것을 건健이라 한다. 노자는 강건함을 허심실복虛心實腹이라 한다. 정신의 강건함을 빈 마음이라 하고 육체의 강건함을 뱃심이 가득 찼다고 한다. 욕심 없는 마음이라야 온몸에 원기가 가득 찬다. 나라나 단체도 이렇게 강건해야 위험과 곤궁에 빠지지 않는다. 지도자는 욕심이 없고 구성원들이 활기로 가득 차 있으면 결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 강건한 정신, 즉 그 의로움 때문에 위험에 빠져서 곤궁에 처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바다를 건너가는데 튼튼한 배가 있고 상세한 지도를 가진 선장이라면 어찌 바다에 빠지거나 길을 잃는 곤궁함이 있겠는가.
◆ 기다리는데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니 빛나고 형통하고 의롭고 행복하다. 무슨 뜻인가? 하늘의 지위에 올라가서 정중正中이 되었다는 말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함은 무슨 말인가? 나가서 공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수需는 유부有孚이니 광형光亨하고 정길貞吉함은 위호천위位乎天位하야 이정중야以正中也니라.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니 왕유공야往有功也니라.
하늘의 지위란 무엇인가? 수천수 괘에서 물(☵)의 가운데 획인 구오九五를 말한다. 초구初九를 백성으로 보고, 그다음 차례로 과장, 국장, 장관으로 보고 구오九五를 대통령으로 본다. 우선 대통령부터 정중正中이 되어야 한다. 정중正中이란 무엇인가? 괘에서 홀수 번째 자리에 양이 오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가운데 처하는 것을 중中이라 한다. 정이란 올바른 것이요 중이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의지함이 없이 한 가운데 처하는 것이다. 수천수 괘의 5번째 자리를 보면 가운데 양효로 되어 있다. 그래서 구오九五는 정중正中이 된 것이다.
정중正中은 무엇을 말하는가? 앞에서는 강건剛健이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정중正中이라 한 것이다. 강건이 개인적 차원이라면 정중은 사회적 차원이다.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입장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정正이요 하는 일마다 시대와 상황에 알맞게 처리하는 것이 중中이다. 또는 정正이란 사회에 정의의 기운이 가득한 것이고 중中이란 온 씨알과 백성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일이다. 지도자는 정신을 차리고 정중正中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면 정의의 기운이 강하여 올바로 서서 온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진실한 지도자라 한다.
수需는 기다림이다. 자녀의 성숙을 기다리는 사람은 부모요 나라가 성장하길 기다리는 사람은 지도자다. 부모는 자녀 앞에 있는 위험을 볼 수 있고 나라의 지도자는 국가의 앞날에 위험이 다가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위험의 위기 앞에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 기다림의 지혜이다. 어떻게 기다리는가? 진실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유부有孚, 생명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생명은 스르로 함이요 저절로 됨이다. 자주 자립 자유로 성숙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광형光亨, 정길貞吉이다. 빛나는 지혜로 형통케 하는 굳센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자녀들이 올바로 자라나서 행복하게 된다. 자기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날아가는 자유의 기쁨이 행복이다.
나라에서는 누가 이렇게 해야 하나, 대통령부터 해야 한다. 어디서나 올바른 지도자가 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강건과 중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씨알과 구성원들이 호응하면 나라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큰 강을 건널 수 있고 나가서 공을 이루게 된다. 이섭대천利涉大川이요 왕유공야往有功也니라.
◆ 수천수 괘卦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 구름이 하늘 위로 올라간 것을 수천수라 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을 편안히 즐긴다.
상왈象曰 운상어천雲上於天이 수需이니 군자君子 이以로써 음식연락飮食宴樂하느니라.
수천수는 기다림의 지혜라 하였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자녀가 성인이 되고 집안이 바르게 되고 나라가 발전하고 온 세상이 천국이 되어야 한다.
정역의 저자 이정호는 수천수 괘를 기독교식으로 해석했다. 즉 진실한 예수가 나와서 믿음으로 온 인류를 죄악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하는 큰 공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천국에 올라가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기쁨의 연회를 베푸는 것으로 해석했다.
수천수 괘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먹고 마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수는 기다림인데 몸과 마음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때 기다림의 지혜는 먹고 마시는 일을 아무 때나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꼭 정해진 때를 기다려서 먹고 마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사를 끄니(끊이)라 했다. 먹는 것을 끊었다가 때에 맞춰 먹는 것이 식사의 법이다. 밥이 되는 것도 때를 기다려야 한다. 밥솥에 쌀과 물을 넣고 불로 끓인 다음에 밥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어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솥의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을 보고 밥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맛있는 밥을 즐길 수 있다. 요즘이야 전기밥솥이 자동으로 해주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이처럼 때의 지혜를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는 아쉬움이 있다.
무엇이나 알맞게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지혜다. 먹는 것도 때가 되어야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을 편안하게 즐기는 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를 기다려야 된다는 것이 또한 수천수에서 말하는 기다림의 지혜다. 어디서나 무슨 일이나 기다림의 지혜가 부족하면 지나친 요구가 되어 서로의 틈이 벌어지고 다툼과 송사가 일어난다.
◆ 천수송天水訟
천수송天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즉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말하는데 이 비가 차가운 북쪽 하늘에서 떨어지면 눈이 된다.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얼어붙고 결빙으로 뒤덮이게 된다. 그런데 하늘의 비가 따뜻한 지방에 내리게 되면 만물을 살려주는 생명수가 된다. 따뜻한 봄에 내리는 비는 만물을 살리는 단비가 되어 초목들이 생기를 얻고 살아나지만 같은 하늘의 물이라도 겨울철 눈으로 내리면 만물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다.
송訟이란 글자는 사사로움이 없는 공공公公한 말씀(言)이라는 뜻이다. 말씀(言)이 모든 만물을 살리는 생명수처럼 되면 진리眞理라 할 수 있지만 공공하다는 말씀이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면 그것은 도그마의 이념理念이요 교조주의敎條主義가 된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나 무엇이건 하나의 사상이 주의主義(ism)가 되면 그것이 절대의 주主가 되고 그것이 가장 옳은(義) 것이 되니까 다른 사상이나 생각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주의主義 속에 빠진 사람은 그 이념에 얼어붙어서 꼼작 못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다석 류영모는 일체의 주의(ism)를 배격하였다. 진리는 고정될 수 없는 미정고(아직 완성되지 못한 작품의 원고)라 하였다. 체계화되고 굳어진 사상이나 이념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입장은 늘 ‘모름지기’라 하였다. 문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모름을 지키는 ‘모름지기’라야 진정한 구도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것은 진리라 하면 그것은 이미 참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 참 진리가 아닌 그것을 진리로 붙잡고 있으면 많은 생명을 억압하고 죽이는 교조주의가 된다.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모름지기다.
◆ 송은 도그마의 싸움이라 믿음의 힘이 있지만 막혀있어 두려운 것이다. 중도에 길함이 있으나 마침내 망한다.
송訟은 유부有孚이니 질척窒惕하여 중길中吉이나 종흉終凶이니라.
송訟은 다투는 것이다. 왜 다투게 되는가? 도그마 때문이다.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가 가장 옳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도그마 속에 있는 사람에게도 믿음의 힘이 있다. 누구보다 강한 자기 확신이 있다. 그래서 자기는 누구보다 정의를 위해 열정을 바치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위험한 확신이 있다. 그것을 ‘송유부訟有孚’라 한다. 송이라는 도그마 속에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이다. 사탄에게도 세상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 있다.
‘질窒’은 막힌 것이다. 두려워할 척惕이다.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막혀서 생각이 얼어붙은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동태처럼 얼어붙어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탄에 사로잡힌 독재자가 지배하는 공포의 세계다. 그런 독재자가 다스리는 세계는 도중에 잠시 잘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독재자는 자신의 길이 더욱 옳다고 확신하며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약속한다. 그런데 그 거짓된 진리가 어떻게 영원히 지속될 수 있겠는가? 마침내 망하고 만다. 그래서 ‘종흉終凶’이라 했다.
◆ 대인을 봄이 이롭다. 큰 강을 건너가는 것은 이롭지 않다.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니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이니라.
도그마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신을 구원해줄 대인을 만나야 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좋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야 미망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이다. 큰 강을 건너는 일은 이롭지 않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미망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인을 만나야 되지 않겠는가? 평천하를 위해서는 먼저 수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수신위본修身爲本이라 한다. 다석 류영모는 같은 뜻을 우리말로 바꿔서 ‘나므름 없이 제계로부터’라 했다. 예수의 말로 하자면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 속의 들보부터 빼내라는 말이다.
◆ 천수송괘를 판단해본다. 송訟괘를 보면 위는 강하고 아래는 험하다. 위험하고 씩씩한 것이 송이라는 도그마다.
단왈彖曰 송訟 상강하험上剛下險 험이건송險而健訟
도그마의 집단은 힘이 있으나 막혀있기에 두려운 것이다. 중中이 길하다 함은 강한 것이 와서 가운데를 잡았다는 말이다.
송訟은 유부有孚하여 질척窒惕이니 중길中吉은 강래이득중야剛來而得中也이니라.
현대에 도그마가 지배하는 대표적인 사회가 공산주의다. 그래서 송訟을 공산주의라고 보면 위에는 독재자가 있고 그 밑에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아주 험악한 권력집단이 있다. 독재 세력이란 대개 깡패의 집단이다. 그래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긴다. 독재자는 강한 힘을 가지고 지배하기 때문에 그 사회는 폐쇄되고 막혀있어 두렵고 위험한 것이다. 그런 강력한 독재자가 지배하면 한 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끝내 죽고 만다는 말은 거짓된 도그마의 이상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흉終凶 송부가성야訟不可成也
사탄의 세계는 결국 망하고 만다. 거짓된 도그마의 이념이 실현될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로마제국, 몽고제국, 일본제국, 소련 등 모든 독재국가는 다 멸망하고 말았다.
큰 사람을 만나야 이롭다 함은 중정을 숭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견대인利見大人 상중정야尙中正也
큰 강을 건넘이 이롭지 않다 함은 깊은 바다에 빠지기 때문이다.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 입우연야入于淵也
이념의 도그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 철인을 만나야 된다. 대인을 만나야 한다. 대인을 찾는 것은 중정을 숭상하는 것이다. 중정을 잃은 것이 도그마요 이념이요 천수송이다. 한번 물에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구원자를 만나야 된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더 깊은 물에 빠지고 만다.
◆ 천수송 괘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가는 것을 송이라 한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사업을 시작할 때 철저한 준비를 한다.
상왈象曰 천여수天與水 위행違行이 송訟이니 군자君子는 이以로써 작사모시作事謀始 하느니라.
송은 다툼이다. 하늘은 아버지요 물을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과 다르게 간다. 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 어긋나면 불화하게 된다. 사람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하늘의 심판을 받는다. 송은 심판하는 일이다. 서로 다투면 재판을 하게 되는데 재판의 기준은 하늘의 말씀이요 또 공공의 말씀인 법률이다. 송의 뜻에는 이처럼 다툰다는 뜻도 있고, 재판이라는 뜻도 있고, 법이라는 뜻도 있고, 진리라는 뜻도 있고, 도그마라는 뜻도 있다. 모든 심판은 공공의 말씀이 한다.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군자가 바라는 것은 이런 다툼이 없고 재판이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거나 미리미리 잘 헤아리고 준비하여 조금의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쓴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충분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을 작사모시作事謀始라 한다. 무슨 사업이건 무모하게 덤벼들지 말고 미리서 계획을 잘 세워서 일이 진행된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검토와 대비를 철저히 마련해 놓는다는 뜻이다.
논어를 보면 송사에 대한 공자의 말씀이 나온다. “내가 송사를 처리하는 방법이야 남들과 같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송사가 일어나면 법으로 심판을 한다. 그런데 법으로 심판을 하면 반드시 원한이 남게 된다. 그래서 심판에 이르기 전에 화해하는 것이 좋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미리 불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다. 그래서 군자는 일을 시작할 때 다툼이 일어날 여지가 없도록 깊이 생각하여 지혜롭게 준비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나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과 기다리면서 미리미리 지혜롭게 준비하라는 것이 수천수와 천수송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 수천수괘에서 수需는 기다린다, 요구한다는 뜻이다. 천수송의 송訟은 송사한다, 다툰다는 송이다. 기다리며 요구한다는 수需와 서로 다툰다는 송訟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요구하다 보면 다투게 되는 것이다. 서로 요구하고 다투는 대상은 무엇인가. 권력과 돈과 명예를 바라고 다툰다. 이런 것을 탐진치 삼독三毒이라 한다. 우리는 탐진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공공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와 일치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수천수는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철이 나길 기다리는 것이고 천수송은 아들이 아버지를 업고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아들이 아들답게 되기를 기다림이 수천수요 아버지가 아버지다운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리킴이 천수송이다. 그래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욕심 때문에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야단치거나 앞서면 아들과의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또 지나친 애정으로 친압을 해도 성장을 방해한다.
그래서 유부有孚, 진실한 믿음을 가지라 한다. 진실 부孚는 어미닭이 계란을 쪼는 모습이다. 계란이 어미 닭 품 안에서 병아리로 부화할 때의 형상을 진실 부孚라고 한다. 부자유친이 되려면 이런 진실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아들이 성숙할 때를 기다려서 알맞게 일깨워야 한다. 이렇듯 부자유친의 비결은 진실한 믿음과 때에 맞추는 지혜다. 유부有孚이면 광형光亨이다. 부모가 진실한 믿음과 사랑으로 기다리면 마침내 자녀들이 빛나게 되고 형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