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은평혁신파크 상상청에서 열렸던 은평시민 수채화동아리 '물색그리다' 전시회 기간 중 우리 비기너5반 수업은 주로 혁신파크에서 이루어졌다. 갑자기 추위가 몰아쳤던 시기 금요일 오전, 혁신파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리고 싶은 풍경을 물색하던 중, '물색그리다'의 전시장인 양천리갤러리와 제작동 사이 오솔길에 드리운 그림자에 눈길이 갔다.
양지와 음지의 경계에 길게 드리운 저 비스듬한 사선의 정체는 무엇인가?
오래된 갈색 벽돌조 건물 옥상에 파란페인트로 칠해진 난간이 있다. 그 난간의 수평철제봉이었다.
그 봉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아챈 이가 얼마나 될까? 옥상에 오른 이들도 있었을테고 어쩌다 그 봉에 손을 걸쳤던 이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감각은 그저 관성적인 것이고 어떤 특별한 주의를 끄는 경험이 되지는 못했을거라 짐작한다. 의례 당연히 그런 것이다.
10시 반경 차가워져 더 투명해진 대기에 떨어지는 오전 햇살이 쓸쩍 등을 떠밀어 오솔길로 내려 선 너의 그림자. 이 순간 오솔길의 주인공은 너다. 단 한번도 주목받지 못했을 존재가 가을날 오솔길 양지와 음지를 가르며 '나, 여기 있어!!!'라고 읊조리고 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옥상의 난간을 바라본다. '너, 거기 있었구나!'
빛이 아니라 어둠에 의해 도드라지는 존재들이 있다.
우리는 타자를 합리적으로 조직된 담론과 실천의 일부분, 즉 분업화된 과업의 일부로 만나지 않는다. 우리는 빛, 흙, 공기, 온기의 원소가 발하는 과도하고 무용한 에너지에 몰입하는 향락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타자는 그렇게 엄습해 오는 존재다. 알폰소 링기스의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공동체>에서 주장하는 만남의 방식.... 그것이 바로 나와 난간봉의 조우 방식이다.
그 향락의 경험을 그림에 담고 싶었다.
두어 달이 지나고 담아둔 사진에 의지해서 이틀 동안 그려 보았다.
저 한 줄을 그리기 위해서 음지와 양지와 그림자 표현을 위해 애를 먹었다.
음지와 양지의 벨류 차이를 드러내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난간봉의 그림자가 조금 더 은밀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렇게 너의 한줄을 드러내기 위해 수고한 나를 위해 이 순간,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