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최대의 부흥사! 디엘 무디! 서부개척과 함께 철도가 나고 기차역이 생기면서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모여들면서 이들을 향한 복음의 부흥운동의 중심에 디엘무디가 있었습니다. 무디는 1837년 2월 5일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7세되던 해 보스턴 아저씨가 경영하는 양화점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그의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되었고 성공을 향한 그의 야망은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카고로 옮겨 새터전을 마련하고 가장 먼저 기도처를 찾아 제일침례교회에 등록을 하고 거기서 그의 반려자 엠마를 만났습니다. 무디는10만달러의 돈을 벌 목적으로 시카고로 왔지만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해 전도하면서 '생업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면 성공'이라는 체험을 하면서 주일학교교사로 헌신하면서 1천여명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부흥사로서의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로 무디는 10만달러의 목표보다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회개시키는 일이 더 중요함을 알고 생애를 전부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링컨이 시카고를 들렸을 때 무디의 요청으로 링컨대통령이 주일학교에 초청되었으나 연설은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으나 무디는 강제로 링컨이 연설하도록 하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듣고 배우면 자신처럼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연설을 한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무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가 된 것은 영국 런던에서 4개월 동안 실시된 부흥회에서 였는데, 영국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은 250만명의 청중이 모였습니다. 부흥회 중에 위대한 설교가 무어와 세무서직원이었던 찬양가수 생키와의 만남으로 더욱 부흥의 역사는 불길을 뿜었고 미국에서도 대도시를 순회하면서 전국을 부흥의 불길로 흔들어 놓았습니다. 무디는 미국과 영국을 수시로 오가면서 하루에는 125회의 집회로 강행군을 하면서 그의 건강은 급격히 쇠약해갔습니다. 그때에도 그는 "육신의 나는 죽을 것이지만 영혼의 나는 영원히 살아깄을 것입니다."는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1899년 12월 22일 새벽 6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직전까지도 무디는 '세가지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주님의 초청에 즉시 응답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않도록 결심하십시오...." 그는 숨을 거두기 불과 몇시간 전이었습니다. 결국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집으로 향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숨을 거두기직전 무디는 '천국문이.... 내앞에.....열리는구나.... 참으로 아름답구나"라고 중얼거리며 모인 식구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였습니다. " 이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갑니다. 잠시동안 여러분과 헤어지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너무 염려하지 말고 주만 의지하고 살아가시오" 드와이트 엘 무디는 63세의 일기로 영원한 하나님 앞에 복음으로 승리한 영원한 평신도로서 천국에 입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