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냇물아/ 최성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償)이 있다. 그런데 이 상을 받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동강의 비오리, 보길도의 돌멩이, 민둥산의 억새, 골목길, 새만금 갯벌의 조개, 지렁이, 자전거가 지금까지 이 상을 받았다. '풀꽃세상'에서 만든 '풀꽃상'이다. 반(反)생명의 시대에 '풀씨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는 것이 상을 만든 취지라고 한다.
풀씨의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그 어떤 운동이나 이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하염없이 낮아진 마음이고 그리하여 만물과 사람이 다함께 공생하려는 자비하고 적극적인 정신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전히 경제성장을 외치며 더 풍요롭게 살아야 한다고 부추기는 저 '강한 힘'과 맞설 수 있는 힘은 틀림없이 이토록 하염없이 낮고 겸손한 정신이어야 하리라. '풀꽃 세상'을 열고 '풀꽃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 저자는 환경운동가 이전에 소설을 쓰는 작가다. 작가란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이들이다. 그래선지 이 책은 고스란히 생명의 언어로 씌어져 있다.
어미돼지가 제 젖꼭지 수보다 더 많은 새끼를 낳자 아버지는 그중 가장 약한 새끼돼지 한 마리를 냇물에 던져버린다. 소년은 아버지 몰래 새끼돼지를 구하기 위해 깜깜한 밤에 십리나 되는 방둑길을 달려간다. 해 떨어지면 무서워 뒷간은커녕 밤똥 누러 마당 구석에도 혼자 못나가던 소년이다. 녹슨 철조망이 엉켜 있는 냇가를 헤매며 애타게 새끼돼지를 찾던 소년. 그 소년이 자라서 작가가 되고 환경운동가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할 터였다.
생명은 자생(自生)이 아니라 '상생(相生)이며 공생(共生)'이다. 생명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능력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력일 것이다. 생명은 지식도 논리도 과학도 아니라서 영혼만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깊고 섬세한 영혼들이 불어내는 기운들이, 그들의 따스한 언어들이 더 멀리 더 빠르게 세상에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저 광풍으로 밀어닥치는 '강한 힘'에 더이상 설 곳 없는 연약한 것들, 버려진 것들, 아픈 것들, 흔해서 무시당하는 것들이 조금이나마 생기를 찾고 온기를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경제도 생명을 키우는 경제, 정치도 생명을 존중하는 정치가 되면 더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경제성장 없이도 우리가 잘 살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는 문화적 터전부터 확보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저자도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환경 이야기 따위를 허튼 소리로 간주했지만, 경제성장의 총량이 이미 엄습한 환경 재앙으로 인한 피해보다 결코 클 수 없다는 비극적 현실 앞에 겸손해야만 한다"고.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살림에 유래 없는 한파가 닥칠 모양이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세계 곡물 값도 가파르게 올라 밀가루와 라면 가격이 또 폭등했다. 농민들의 의지와 농업기반을 한꺼번에 와해시켜버린 이 나라는 앞으로 석유전쟁보다 더 가혹하고 비참한 식량 파동이 닥쳐오면 어떻게 할는지. 결국 사람을 먹이고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휴대폰도 부동산도 아니고 주식도 펀드도 아니라는 것을, 쌀 한 톨, 흙 한 줌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될 날이 그리 멀잖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