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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교론
-노력하는 길의 안내자로서 그리는 ‘새 지도’
김우연
1. 들어가며
와남(蛙南) 박영교(朴永敎)) 시인은 “시는 그 시인의 인격인 동시에 그 사람의 자존심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1972년 자유시 3회 추천 완료(김요섭) 하였으며, 1973∼1975년『현대시학』에 이영도 시인을 스승으로 하여 3회 추천을 완료하였다. 원고를 가지고 이영도 선생을 찾아가면 꿇어앉아서 작품마다 엄하게 선생님의 질책과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한 작품마다 정성을 다하여 작품을 쓰는 태도는 후일 후배 시인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이영도 선생은 원고지를 함부러 버리지 않고 가위로 오려서 퇴고하는 글자 위에 한 칸 한 칸 오려 붙이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아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집『창』(2002) 뿐만 아니라 이번에 발간한 시집『아직도 못 다한 말』(도서출판 천우, 2016)의 머리말 끝에서 “죽는 날까지 열심히 쓸 것이다.”라고 다짐하고 있다.
오랫동안 왕성한 창작과 함께 평론을 병행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존경과 함께 감탄하는 바이다. 특히 이번 시집은 자설(自說)을 싣고 있어 박영교 시인의 근황과 생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의 왕성한 글쓰기의 원천은 이번 시집의 자설(自說)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우리 세대들은 후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그 사람은 모든 부를 가진 이보다 그리고 큰 힘을 가지진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후인들에게 노력하는 길을 가는 안내자가 되면 충분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하면서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듯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설(自說)에서 직접 언급한 말로는 “마음 놓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 땅 위에서 마음에 느껴지는 진실한 노래를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최대의 행복이며 즐거움이 넘쳐 시심이 솟구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며 우리나라 우리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시심의 원동력이 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시편을 읽으며」등의 작품과, 자설(自說)에서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음을 되새긴다.”는 말처럼 어떤 고난도 극복하면서 살겠다는 신앙심이 바탕이 되고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진실을 노래하겠다는 것이다.
2.
소백산 아래 살아왔고 살아가는 와남(蛙南)은 사계절 산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리하여 그의 삶에는 등산(登山)이 인격 수양의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즉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자연을 닮고자 하였으며, 현실의 혼탁한 삶일지라도 자연을 본받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사람들이 화합하며 살아갈 것이란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삶도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끝날 것이란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면서도 자연에 도피하지는 않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묻혀서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하면, 자연을 보고 자아성찰을 하여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아름다운 사회를 꿈꾼다.
한편 분단된 국토의 아픔, 양극화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여행지에서는 화려한 역사 유물 뒤에는 많은 눈물과 목숨이 들어 있는 것을 직시하는 건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어 현대시조가 걸어가야 할 모범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 분리해서 그의 삶을 생각할 수 없듯이 소백산의 가을 단풍과 일대의 사과를 비롯한 과일 등이 열매를 맺고 있지만 가을이라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도 어언 가을의 고개에서 한 알이라도 더 알찬 열매를 맺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이번 시집을 발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번 시집 발간에 박수를 보내며 이번에 발간한 시집『아직도 못 다한 말』(도서출판 천우, 2016) 작품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3.
이번 시집에는 자연의 순리를 본받고자 하는 시들이 여러 편 보인다. “박영교 시인은 전통적인 시의 작법 곧 시적 대상과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서정 양식의 모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과격한 형식 실험보다는 안정된 시형 속에 자신의 생 체험과 진솔한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한 말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그의 일관된 경향임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다투지 않고 겨울을 살아간다.
그리운 곳 가지 뻗어
낮은 곳으로 뿌릴 내려
한 마음
꽁꽁 묶어서
땅을 얼지 않게 한다
때로는 바람 불어
그리움 헝클어놓고
서로 부딪치게 하여 아픔을 불러오지만
스스로
아픔을 풀어
안개 자욱이 덮는다
-「나목(裸木)의 숲들」전문
첫째 수 초장에서 “나무는 다투지 않고 겨울을 살아간다”며 주제를 먼저 제시하고 있다. 나무들이 다투지 않듯이 우리 인간들도 다투지 말고 화합하면서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중장에서 “낮은 곳으로 뿌릴 내려”야 한다고 한다. 동서양 성현들이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 겸손이 아닌가.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삶의 현장도 겨울이라는 계절처럼 멀지 않아 죽는 존재인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종장에서는 나무들은 겨울이 오면 함께 잎을 떨구어서 숲속의 나무들이 겨울을 함께 견딘다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 수에서는 때로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을 헝클어놓는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면 잎이 더 많이 몰리는 곳이 있어 불평이 나올 수도 있다. 인간 세상에도 다 함께 잘하자고 굳게 맹세하지만 공동체가 큰일을 치르고 나면 누군가는 불평이 나올 수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예부터 논공행상에 불평으로 새로운 내부 분쟁의 역사가 얼마나 많이 되풀이 되어왔는가. 그러나 겨울 나목(裸木)들은 둘째 수 종장처럼 “스스로/ 아픔을 풀어/ 안개 자욱이 덮는다”며 그 아픔을 겨울의 숲은 그 아픔을 스스로 감싸 않으며 겨울을 견뎌간다고 한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는 평생 몸담았던 공동체에서 조금만 서운하면 ‘못 먹는 밥에 재를 뿌리자’는 심정으로 행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공동체에서 한 명이라도 지나치게 불평한다면 공동체의 화합이 깨어지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시인의 가을을 건너 겨울을 바라보는 숲들을 보면서 자연에서 인간 세상의 불화와 고통을 이겨내는 지혜를 깨닫고 있다. 세상 사람들도 때론 아픔이 있지만 그래도 함께 시련을 이겨가는 지혜가 있었으면 기원하고 있다.
이 작품 외에도 “설산의 한 구석 말없이 서 있는 넌/ 그대로 한평생 이승을 마감하고/ 떠날 땐/ 침묵을 배워 그 백언(白言)을 참는다”(「설해 목(雪害 木)」세 수 중 둘째 수)라며 언젠가는 설해 목처럼 우리의 육신은 영원한 것이 아님을 노래하고 있다. 또 “푸른 잎/ 지는 낙엽 속/ 허기진 바람이 인다”(「입동(立冬)을 앞에 놓고」두 수 중 첫째 수 종장)라며 푸른 잎들이 겨울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푸르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듯이 시인은 마지막까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입동(立冬)·2」,「가을 엽서 한 장」,「노을」,「겨울 산을 믿다」,「청량사 오르는 길」,「명호 북곡리 내려가며」,「눈꽃」 등의 많은 작품에서 이런 경향의 시들이 다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자연의 순수함처럼 시인이 그렇게 살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자연처럼 살아가는 삶 속에서 몸에 배였으며 그렇게 살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결국 그의 시는 손끝에서 만든 시가 아니가 온몸으로 쓴 시들이기에 자연에 동화되고자 하는 시들이 탄생된 것이다.
4.
순백에는 작은 것에도 물 들 듯이 순수한 사람일수록 사람들 사이에 상처가 큰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말로 인한 상처는 큰 법이다. 불가에서는 죄를 짓는 큰 길을 신·구·의(身口意) 삼업이라 하여 입으로 짓는 죄가 크다고 한다. 그래서 와남(蛙南)은「창(槍)」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그 말이 또한 더 날 선 창이 되어 상대를 꽂는다고 노래한 바 있다. 스위스 속담에 “말은 꿀벌과 같아서 꿀과 침(針)을 가졌다.”고 한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야 한다는 게 시인의 생각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상대방에서 상처를 주는 말에 대한 경계가 나타난 시가 보인다.
마음에 못을 치면 울림만도 아픈 거다//
못 자국에 녹이 슬어 벌겋게 물이 들면//
피눈물
흰 가슴 한 폭
다 적시고도 남는다
얼마나 살다 간다고 그리 참지 못하는가//
순리로 물 흐르듯 남은 이야기 흘러 보내고//
정겨운
이웃들 만들어
함께 젖어 보내고 싶다
-「못 자국」전문
와남 박영교 시인은 첫째 수 초장에서 “마음에 못을 치면 울림만도 아픈 거다”라고 하였다. 못 박히는 부분만이 아니라 못을 박는 그 ‘울림’만으로도 아프다고 하였다. 살다보면 말 하는 사람은 재미로 하지만 맞는 사람은 졸도 아니면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 세상에 사이버 언어폭력이 자살을 불러오기도 한다. 타살하는 셈이다. 연못에 노는 개구리가 재미로 던지는 돌에 아무런 영문 모르고 맞아 죽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물며 상대방에게 깊이 상처를 주는 모진 말의 못은 결국 상처를 만들고 벌겋게 녹이 슨다. 종장에서 ‘피눈물의 붉은 빛’과 ‘흰 가슴 한 폭’을 대비시켜 그 상처를 선명한 색채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시인의 직서적인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입동 무렵에 산들을 바라보듯이 인생의 가을을 넘어 입동으로 가는 계절 앞에서 유한한 존재, 백세까지 산다고 해도 짧은 인생에 왜 그리 못 참는가라고 질책하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순리로 물 흐르듯 남은 이야기 흘러 보내”라고 권한다. 결국은 “정겨운/ 이웃들 만들어/ 함께 젖어 보내고 싶다”는 시인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사회를 꿈꾼다.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에게 모진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와남(蛙南) 박영교 시인은 정이 많은 분이다. 그래서 이 시처럼 정겨운 세상을 염원하는 노래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5.
자연에서 순리를 본받고, 또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자고 권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자아성찰을 하는 작품들이 여러 편 눈에 들어온다.
참되게 산다는 일 기약 없이 어려운 것//
이대로 어디까지 살아가게 되는 걸까//
한소절
육자배기로
사투리를 식힐까
눈물을 보일 것이라면 속울음도 토해놓고//
통째 삼키지 못해도 온몸을 용트림하여//
아직도
설익은 몸짓
내 지도를 그리고 있다
-「새 지도」전문
첫째 수 초장에서 “참되게 산다는 일 기약 없이 어려운 것”이라고 하여 삶의 지향점을 바로 밝히고 있다. “참되게” 살고자 하는 와남(蛙南)의 말은 어느 순간 완성될 일이 아니고 죽는 순간까지도 실천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설익은 몸짓/ 내 지도를 그리고 있다”고 한 것이다. 자아성찰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모든 면에서 최선의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다고 자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겸손하기에 끊임없이 더 큰 호수로 물을 담아가고 있는 것이라 본다.
거울을 보던 나는
그 속에서 나무였으며//
골짜기 흘러내리는 바람소리 물소리였다//
휘감겨
함께 내리는
잔잔한 안개였다
지금도 나는 섬으로
외롭게 떠 있으며//
그림자 깊게 뿌리내려 움직이지 못하는 길목//
산울림/ 메아리로 솟다가/
허옇게 무너지는
파도
파도
-「윤회로 태어나면」전문
이 시는 가정으로 이루어졌는데 첫째 수에서는 ‘나무’, ‘바람소리’, ‘물소리’처럼 순리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과 함께 내리는 ‘안개’와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것이다. 자연과 나, 남과 나가 하나가 되는 세상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는 평화롭고 정겨움이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지금도 나는 섬으로/ 외롭게 떠 있으며”라고 나와 세상이 분리된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종장에서 “산울림/ 메아리로 솟다가/허옇게 무너지는/ 파도/ 파도”라고 노래한 것이다. ‘무너지는 파도’에 시달리는 섬이지만 그래도 다시 태어나면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지금은 ‘섬’이지만 서로가 소통한다면 그러한 세상이 올 것이라 본다.
자아성찰의 시로 「시편을 읽으며」,「에밀레종」,「사색의 길목」,「푸른 꿈 산하」,「때론 섬으로 앉고 싶어」,「사람 향기」등 여러 편이 있다.
6.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 그립고 부모님이 그리운 법이다.
낡은 의자에 앉아서도 푹신하다고 한 어머니//
구멍 난 양말 신고도 시원하다던 겨울 나들이//
이제는
따뜻한 방 안에서도
너무 춥다
떨고 있다
한밤 내 덮고 자던 버석거리는 오리털 이불//
바람구멍도 없는 따뜻함 구멍 숭숭 난 한겨울 밤//
떨리는
그리움이 앉아
밤을 보내는
어머님 생각
-「걱정스럽다·2」전문
애절한 사모곡(思母曲)이다. 어머니는 가장 성스러운 말이다. 영원히 자식의 울타리가 되어줄 것 같던 어머니도 늙고 병들게 마련이다. 첫째 수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정말 눈에 선하도록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따뜻한 방 안에서도/ 너무 춥다/ 떨고 있다”는 장면을 바라보는 아들의 심정은 오죽 아플 것인가. 그래서 둘째 수에서는 지금도 물질이 풍부하여 이불이며 옷이며 양말이며 한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시인은 어머님 생각을 하면 이러한 따뜻함 속에서도 어머님이 추위에 떨던 모습을 연상하면 한겨울 밤 추위가 몰려오는 듯 추위에 떨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표출되었으며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간절함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읽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가을빛 하루·2」에서는 “오늘밤/ 보름달 뜨면/ 어머니 기도 모습/ 환하다”며 항상 기도하시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오늘날 행복하게 사는 것도 다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이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물러나 앉으면서」에서도 “어머니/ 온전한 내 몸 앞/ 부르고 싶은 대명사”라며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고 있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노래가 어찌 없을 것인가.
아버지 편찮으실 때 자주 가지 못한 걸음//
아이들 가르치는 일 바쁘다는 핑계로//
아프신
자리끼도 한 번
떠 올려드리지 못한 죄
밤늦도록 엎드려 울다 돌아와 보는 자리엔//
새벽의 훤한 여명이 나 다시 깨워놓고//
고향 집
아버님 생각
소낙비 내리는 소리
-「소낙비 깨우다」전문
사부곡(思父曲)이다. 멸사봉공(滅私奉公)으로 인하여 편찮으신 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안타까움과 불효를 노래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다시 깨어나 아버지 생각에 잠긴다는 것이다. 둘째 수 종장에 “소낙비 내리는 소리”는 소낙비에 잠이 깨어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도 볼 수 있고, 아버지 생각을 소낙비처럼 사무치게 한다고 해석할 수 있어 중의적으로 볼 수도 있다.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축 처진 어깨// 쓰러 올린 옛집에서// 한 시대 반가의 몰락된 족보를 들고// 모습만// 갖추고 앉아// 호통치는 // 저 모습”(「다 쓰러져가는 고가(古家)」전문)은 고가(古家)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는 작품이다.
시의 화자는 어머니나 아버지나 늙고 병든 모습을 떠올리면서 좀 더 잘 해드리지 못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웠음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의 검은 머리도 흰 머리가 보입니다//
늙지 않는 바위로 앉아 한생을 보낼 것 같은//
젊음도
연륜 앞에서는
통곡하는 빛바램
자고 싶어도 잠 못 드는 독서의 하늘 속으로//
외로운 그늘들을 접어올린 내력 앞에//
온몸이
꽃잎 지듯이
무거운 짐 벗습니다
-「아내의 잠」전문
잠이 든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니 검은 머리가 흰 머리카락이 보인다. 영원한 젊음이란 없다는 것을 “젊음도/ 연륜 앞에서는/ 통곡하는 빛바램”이라고 하며 늙어가는 아내의 모습에 아픈 마음을 노래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자고 싶어도 잠 못 드는 독서의 하늘 속으로”라고 하여 잠 못 이루면서 독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장에서 “온몸이/ 꽃잎 지듯이/ 무거운 짐 벗습니다”라는 것을 보면 독서를 마치고 피곤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고 안도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자설(自說)에서도 아내는 피곤해도 하루 독서 목표량을 다 읽어야 잠을 자는 성격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자설(自說)에서 “나의 내자(內子)는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사람이다. 팔불출에 속한다고 나무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 내 성향(性向)이다. 몸을 사리지 않고, 자신의 심신을 남을 위해 아끼지 않고 산 사람이 나의 아내이다.//특히 부모님께, 그리고 남편에게, 우리 아이들에게는 목숨도 내어 주고 싶은 사람이다. 손가락의 지문이 다 닳아 없어져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당신의 검은 머리가 귀밑머리에 먼저 하얀 서리가 않고 시력도 좋지 않은 것을 느끼면서 내 눈시울도 젖어 내린다”며 아내를 소개하고 있다.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문열의 소설『선택』은 여성의 가장 큰 행복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페니미즘 문학에서는 자식에 대한 사랑마저도 남성이 만든 이념의 노예적 사랑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한다. 아내에 대한 사랑의 노래이지만 자설(自說)에서 말한 “특히 부모님께, 그리고 남편에게, 우리 아이들에게는 목숨도 내어 주고 싶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보면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서 훌륭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가정에 어찌 복됨이 없을 것인가. 온 가정에 행복이 넘쳐흐를 것이라 본다.
7.
한 가정으로 행복으로만 끝난다고 해도 누가 나무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인은 사회 현실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다.
어둠이 저녁에게 준//
전쟁보다 더 무거운 침묵//
그림자 깔아놓고//
깊은 수렁으로 도망가다//
뼈 아픈//
역사의 그늘//
헤아리며 떠난다
-「민통선」전문
분단된 우리민족의 현장을 살펴보고 쓴 시이다. 민통선에 어둠이 내리면 “전쟁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휴전선 철책 근무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 같은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으며 어두운 밤이면 더욱 긴장감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종장에서는 “뼈 아픈// 역사의 그늘// 헤아리며 떠난다”라며 분단된 현실의 고통을 노래하였다. 지금은 북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탈북자가 이어지고 있다. 고위층과 노동자를 막론하고 이어지기 시작하는 탈출을 보면서 대비책이 절실함을 느낀다. 독일이 통일한 데도 동독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을 다 수용한 것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도 준비를 서두를 때라고 본다.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우리는 생생하게 보지 않았던가. 이 기막힌 분단의 현장을 살펴보면서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생각한 것이다.
갈 곳을 잃고서
떠나지 못하는 맘//
고향 철길만 봐도 두 줄기 눈물뿐인데//
탄광촌
검은 레일 위로
빗물 사정없이 쏟네
삶이 그대 눈물일지라도
울고 싶을 때 울게 하리//
고단한 발자취는 소주잔에 부어 삼키고//
떠나는
맘 붙잡아 앉힌
얼룩진 잠자리 눈물
-「노숙자의 마음으로」전문
시인은 우리 사회의 분단이라는 거시적인 문제와 함께 노숙자라는 개인에게도 관심을 보인다. 노숙자 개인을 노래하지만 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겨운 세상’을 추구하는 시인의 마음이 여기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건강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시조가 현대사회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시에서 노숙자는 한때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연탄을 제공하는 막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연탄 대신 기름을 난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결국 직장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한 사람이다. 이런 노숙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고향 철길만 봐도 두 줄기 눈물뿐인데”는 아주 실감나는 독창적인 표현이다. 경북 북부지방 및 강원도가 탄광지대였다. 그곳으로 가는 수단은 모두 철로였다. 이런 철길을 두 줄기 눈물이라고 한 것은 고향은 있지만 돌아가지 못하고 아득히 멀리 있음을 ‘두 줄기 눈물’이라고 한 것이다. 거기다가 “빗물 사정 없이 쏟네” 라며 처참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둘째 수에서는 “삶이 그대 눈물일지라도/ 울고 싶을 때 울게 하리”라며 따뜻한 마음을 보이고 있다. 양극화 현상으로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만리장성」에서는 “인파속/ 젖은 울음소리// 들려오는 만리장성”(「만리장성」종장)이라며 웅장한 만리장성을 찾는 여행객들의 인파 속에서 축성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떠올리고 있다. 비단 만리장성일 뿐이겠는가. 화려한 역사의 뒤안길에 힘없는 이들의 목숨과 피와 눈물이 있었음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기행시에서 감흥에 겨워 찬탄으로 끝나는 시는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설명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같이 보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기에 감동을 주는 것이다. 사회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는 안목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상소문·1」외 사설시조 4편에서는 현실비판 의식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병인 ‘치매’ 환자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사회 문제를 다양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 나오며
와남(蛙南) 박영교 시인의 이번 시집『아직도 못다한 말』(2016.8)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소백산 아래 영주에 살면서 자연의 영향을 많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의 대상인 자연처럼 순리에 따라 살고자 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순수성을 간직하고자 하였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또한 시인으로서 분단된 현실을 비롯하여 양극화 등 현실 문제를 직시하여 건강한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열심히 노력하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참되게 살기 위한 ‘새 지도’를 끊임없이 그리고 있다. 모든 이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다. 그의 시들은 진실에서 온몸으로 쓴 시기에 시마다 감동의 폭이 크게 울리고 있다.
자서(自序)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내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다듬어 가겠다”고 하면서 “눈물 묻은 언어로 시를 쓴다”고 하였다. 이 시집을 읽으면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눈물로 썼기에 감동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리라.
“죽는 날까지 열심히 쓸 것이다”라는 이 한마디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지만 후배들에게도 무디어지는 가슴에 날카로운 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와남(蛙南) 박영교 시인은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네 마음 달궈내는/ 그건 너에겐 풀무 불이야”(「도서관에 앉아」에서)라고 하듯이 그는 오늘도 책을 통하여 자신을 달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집 발간을 축하드리면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좋은 시들을 쓰시어 문운이 빛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