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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 九 2024-2043 | 二 1884-1903 |
三 1904-1923 | 五 | 七 1984-2003 |
八 2004-2024 | 一 1864-1883 | 六 1964-1983 |
北
모든 기운은 우주의 인력,장력의 영향 아래에 있다.
목성과 토성은 180년을 주기로 제자리로 돌아온다.
2024년까지는 동북방에 산이보이고, 서남방에 물이 있어야 좋다.
예)마포,망원동,일산,보라매,신도림,시흥,안산,화성시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 45%
<세상은 자본,자원,식량을 가진자가 지배한다.>
2019년 북한 망한다.
육운-건해방-박정희대통령, 세종대왕,정조대왕
팔운-간인방-성종,효종,태평성대
오운-6.25,임진왜란,밀란
칠운-경제파탄-IMF
구운-정신,문화,종교,연산군,굶어죽는 시절
일운-남자들의 시대
<절대농지>
풍수학자가 보는 "위기의 대한민국" (조태운교수)
경제위기, 버블붕괴, 풍수학자의 대안은 수도이전(조태운교수)
계룡산은 잘 알려진 대로 조선의 진산이 될 뻔했던 산이다.
계룡대에 조선 초기 신도안 도성 추측도
계룡산을 진산으로 한 신도안을 조선의 도읍지로 정하려고
1년여 조성작업을 하다가 산신의 반대로 공사를 중단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신도안과 이성계’라는 제목으로 전하는 내용이다.
‘태조가 무학대사와 함께 신도안에 도읍을 옮기려고 사흘 동안 역사를 하면서 주춧돌을 마련했다.
이때 무학의 꿈에 계룡산신이 현몽해서
“여기는 오백년 후에 정씨의 팔백년 도읍지가 될 터이니 한양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한양으로 가서 처음 왕십리에 자리를 잡았다가
다시 산신의 계시를 받아 십리를 더 가서 (지금의) 자리를 잡았다.’
태백산맥의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지리산을 이루었고
다시 북쪽으로 머리를 돌려 3백리를 역룡하여 반달 모양으로 우회하며 계룡산을 만들었다.
계룡산의 위치와 상징
지구의 마지막 봉우리
히말라야→힌두쿠시→파미르공원→천산산맥→알타이→몽고고원→흥안령→
백두대간(백두산→금강산→치악산→덕유산→지리산)→
금남 정맥(육십령→영취산→마이산→운장산→대둔산→천호산→계룡산)
계룡산 산태극수태극(鷄龍山 山太極水太極)
한국의 많은 산들 중 동물의 이름이 산 이름으로 된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데,
계룡산은‘계’와‘용’이라는 동물의 조합(組合)이라는 특징이 있다.
계룡의 이름은 산봉우리와 줄기의 생김새에서 붙여진 것이라 전해진다.
신도안에서 볼 때 계룡산 상봉인 천황봉(天皇峰)과 거의 맞닿은 좌측에 머리봉이 있다.
그리고 우측으로 쌀개봉·관음봉을 이은 능선의 모습이 닭의 볏처럼 생겼고,
삼불봉·신선봉·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가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몸통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 취락은 충청남도 계룡산의 신도안(新都內)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의 정감록촌(鄭鑑錄村), 경기도 부천시의 박장로 신앙촌(朴長老信仰村),
전라북도 김제시의 증산교촌(甑山敎村),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도인촌(靑鶴洞道人村),
부산광역시 감천동의 태극도(太極道) 도인촌 등이 있다.
1975년 8월강경경찰서 신도안 유사종교 집단지역 정화작업이 있기 전까지
이 곳 계룡산일대에 자리잡은 종교단체의 수는 100여 개나 되었다.
제법 큰 규모의 조직과 체제를 갖춘 종교단체에서부터
1종교 1교주 1신도를 겸한 단체도 있었다.
그러나 1975년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종교정화운동은 계룡산 일대에 엄청난 영향을 몰고 왔다.
미신타파의 미명 아래 계룡산 곳곳에 설치된 제단과 각종 암자,
치성터 등이 허물어지고 철거당했다.
또한 100여 개에 이르던 종교단체 대표들이 산림법 위반,
사기,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검거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