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용화 찬반 논쟁
1. 공용화는 共用化인가, 公用化인가.
영어 공용화에 동조하는 사람들, 특히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공용(共用)'과 '공용(公用)'의 개념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혼동하여 쓰고 있다. 영어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좀 더 넓게 쓰자는 측면에서의 영어는 공용어(共用語)이지 공용어(公用語)는 아니다.
공용어(公用語)는 ‘한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말’로서, 국가가 공적으로 의사를 표현(말, 글)할 때 공식적·강제적으로 통용이 요구되는 언어를 말한다. 주목할 것은 단지 행정기관의 공문서 외에 입법(지방의회) 및 사법기관의 법령 등 공식기록은 물론 통신·교육·방송 등의 언어로서 영어가 공식화된다는 것이다. 즉 영어 공용화(公用化)는 영어를 대한민국의 공식(official) 언어로 채택하자는 생각이다.
둘 중 어떤 개념의 공용어를 염두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접근 방법이 크게 달라진다. 영어를 공용어(共用語)로 보는 입장에서는, 국가는 특별한 부담 없이 영어교육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효과적으로 영어실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학습방법만 지원하면 된다. 그러나 영어를 공용어(公用語)로 채택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다 그만두고라도 일단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일반인들이 영어 공용어론에 동조하는 것은 공용어(公用語)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도 일리가 있다.
2. 만약 공용화가 되면 현실에서 어떤 일이 생기나
영어공용화는 모든 공식, 비공식 언어와 문서, 의사교환, 소통에 한국어와 똑 같은 비중으로 영어가 사용된다는 의미이다. 학교의 문서, 시험문제도 한국어와 영어로 나올 것이고 TV 뉴스도 한국어와 영어로 나온다. 행정기관만 하더라도 한글과 영어로 된 공문서의 작성은 물론 영어로 서비스를 원하는 민원인에게는 영어로 처리해야 한다. 과거 영어공용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문화관광부의 지적에 따르면, 교육 분야에서도 영어로 공부하기를 원하는 학생에게는 영어로 가르칠 의무가 발생하는 등 영어공용화는 그 자체로 영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지니게 된다.
3. 영어 공용화 논쟁 略史
1998년 IMF 관리 하에서 나라가 침체되어 있을 무렵, 소설가 복거일 씨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 지성사)”라는 책을 펴냈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와 무한경쟁시대에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딴은 절박한 우국충정이 담긴 내용이었다.
이 책의 내용이 1998년 7월 2일자 조선일보의 기사를 통해 소개되어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이면서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찬반 논란이 신문 지상을 통해 활발하게 벌어졌다. 이후의 전개과정을 보면 복거일이 제기한 영어 공용화 주장에 국어학자인 남영신이 반박(조선일보 98년7월6일)하고 바로 다음 날 다시 복거일이 재반박한다. 이튿날 한영우 서울대 교수가 복거일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조선일보 98년7월9일)하자 또 다시 그 다음날 복거일이 이에 반론을 싣고, 이어서 번역가 이윤기가 공용화 반대, 정과리 충남대 교수가 찬성의 글을 기고하는 등 영어 공용화 논란이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한국일보의 고종석이 수면 밑으로 잠복하려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는 1998년 10월, '인물과 사상' 8호(개마고원)에 기고한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라는 글을 통해 복거일을 옹호하면서 그를 우리 민족의 선지자(先知者)쯤으로 추켜세울 정도였다. 진중권은 이런 농담 같은 몽상의 소리가 진지한 담론으로 행세하는 우리 지성계의 수준에 통탄했으며, 홍세화는 논쟁은 자유지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에 가치를 실어주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고, 상업언론들은 그저 읽을거리 제공으로 복거일의 주장에 가치를 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종석은 후에 “감염된 언어”라는 책을 펴내어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기도 한 바 있다, 학계나 정부 기관에서 처음 영어 공용화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닌 만큼, 이런 논쟁들은 민간 차원의 작은 촌극 정도로 볼 수도 있으나, 영어 공용어화라는 주제만큼은 다른 어느 어문 정책 관련 주장보다도 민감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영어 공용화 논쟁은 인터넷으로까지 확산되면서 국어 관련 단체나 학자들이 영어 공용어화 주장을 비판하는 글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인터넷 조선일보의 영어 공용어화 찬반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비율이 45.1%로 나타났다.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세대가 20∼30대임을 고려할 때 젊은 층에게는 이 주장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은 1999년까지 계속 이어졌지만 그 열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1999년 11월 초 교육방송이 영어 공용어화를 주제로 한 난상 토론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62.4%가 영어 공용어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어 공용어화에 대해 긍적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 1월 18일 일본에서도 오부치 케이조 수상의 총리 자문 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의 간담회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고 제안하여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 공용어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복거일 씨가 이전의 주장을 부연한 영어 공용어화론 제2탄을 ‘신동아’ 2000년 3월호에 실었고 이에 대한 반박문을 경북대 정시호 교수가 ‘신동아’ 4월호에 싣기도 하고, 잇따라 한남대 김영명 교수가 ‘나는 고발한다’를, 경희대 영문과의 한학성 교수가 ‘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로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반대 주장을 내놓았다.
이듬해 2001년 5월 14일 정부와 민주당이 ‘제주도 국제 자유 도시’ 개발을 위해 제주도 내에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으로써 비교적 잠잠했던 영어 공용어화 논란에 다시 불씨를 붙였다. 어문 정책 주무 부서인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연구원이 제주도 내 영어 제2 공용어로 지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몇몇 국어 관련 단체의 격렬한 반대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영어 공용어화는 시기상조라는 점을 들어 이를 잠정적으로 보류하기로 하였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가 2004년 4월 느닷없이 영어 공용화(公用化)’의 전단계인 ‘영어 상용화(常用化) 정책’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나와 “이명박 시장의 위험한 개발 논리가 언어·문화 말살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한글 관련 단체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다음 달 서울시가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민과 공무원의 영어능력 향상사업과 외국인투자가들의 편의증진 사업‘이 와전된 것이라고 이를 부인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영어공용화는 수면 밑에 잠복해 있다가도 언제든지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영어 능력이 생존수단화 되면서 현재도 대학입시나 직장 내 승진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전국의 지자체마다 소위 ‘영어 마을’을 짓느라 난리가 아니다. 또 제주도를 필두로 ‘국제자유기업도시’가 추진되면서 앞으로도 비슷한 논쟁들이 되풀이 될 것이다.
4. 영어 공용화, 그 찬성과 반대의 논리들
찬성 |
쟁점 |
반대 |
한 나라의 말이라는 것은 그 국민의 의사소통 도구로서 기본적 기능이 있는 것이며, 모국어 숭배도 지나치면 국수주의로 연결되고 다른 언어들을 배척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 국민의 경제적 생존과 번영은 그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 및 정체성 문제와는 일단 분리하여 별개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홍콩이나 싱기포르 사람들은 영어를 제 2 공용어 중의 하나로 배우고 빈번히 사용하지만 그들의 토착 문화와 전통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영어를 제2공용어화 한다는 것 자체가 민족어의 말살이든지,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 결과를 야기시킬 수는 없다.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민족주의는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한국적인 것을 보호하려고 창안된 ‘소극적’ 개념인 반면, 새로운 민족주의는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이념이어야 한다. 또한, 「세계화」란 우리 것이 더 좋으면 우리 것을 취하고, 외국의 것이 더 좋으면 그걸 택하는 것이다.
민족적 자긍심 못지않게 국가 경영의 능률이 중요한 것이며, 만약 한국인들이 세계적인 조류를 거역할 수 없다면 그것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다른 세계로부터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개방성을 보장해주는 게 숙달된 영어다. 이중 언어를 쓴다고 반드시 주체성이 결여되는 것은 아니다. |
민족
민족주의
문화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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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과 각종 사업에나 필요한 도구만이 아니라, 한 민족 내지 한 국가의 정신적 정체성의 精髓며 민족과 국민의 사고방식 틀이다. 각 겨레마다 가지고 있는 공통되는 세상 보는 분을 세계관이라 부른다. 이 세계관은 언어에 반영되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상 보는 눈을 고정시키게 된다..
2002년 2월 21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전세계 6천여가지 언어 가운데 절반이 멸종될 위기에 놓였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제3회 `세계 모국어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세계 멸종위기 언어지도' 보고서에서 ‘각국의 강압적 언어정책과 유력언어 사용의 확산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언어가 적어도 3천개에 이른다’며 ‘언어가 사라지면 그것을 통해 표현 가능한 인간의 사고와 지식을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왜 돈도 안 되는 인간문화재를 지정하는가? 왜 멸종동물을 보호하려고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이는가? 다양성은 그 이유만으로 인류를 풍요롭게 하는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소멸되어 가는 언어에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나 문화 중 어떤 것이 우위라는 것보다도, 둘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민족들은 일제 강점기 시대엔 일본어를 쓰고, 지금은 미국의 힘이 세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자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힘이 강력해 지면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자는 말이 나올 수도 있고 일본의 힘이 강력해 지면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우리 민족들은 일제 강점기도 이겨낸 민족이다. 그때의 힘으로 지금 이러한 혼란을 이겨내자.
다국적의 문화란 미국의 문화로 표방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문화논리이다. 홍콩과 싱가폴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번영과 행복이 세련되고 화려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있는 것은 자본주의 물신화와 경제적 맹목에 가려진 온갖 사회적 모순이다. 그 모순의 이름은 바로 '식민화'이다. 과거처럼 제국주의의 물리적 폭력(군사력과 경찰력)을 동원하는 식민화는 아닐지라도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의 문화가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됨으로써 문화의 식민화, 일상성의 식민화가 더욱 견고히 고착되고 있는 사실을 가볍게 넘겨보아서는 안 된다
영어공용화를 찬성하는 의견으로부터 발견되는 사실은 특정의 언어가 소유한 권력과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어가 마치 국제표준어로서 어떠한 권력과 이데올로기로부터 무관한 '중립적 언어'로 인식하려는 경향은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다. 어떠한 언어든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만 기능하는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야말로 역사의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아니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언어가 장악한 헤게모니는 바로 그 언어의 역사주체가 소유한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구체적 실현과 다를 바 없다. 전국을 짓누르고 있는 영어콤플렉스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영어 배우기에 혈안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느덧 영어는 모국어와 현실의 장 속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점차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염려되는 바는 모국어가 지닌 풍부한 감성과 인식이 영어식으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젊은 세대를 지배하는 문화는 무국적(혹은 다국적)의 그것으로 옮아가고 있다
영어 공용론자들은 우리가 외국에 가서 우리말을 하면 안 되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제 나라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말글 사대주의요 불평등주의이고 패배주의다. .남의 것만 우러러 받들고 우리 것은 모두 좋지 않은 것으로 아는 얼빠진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니 구제 금융받는 빚쟁이 나라가 되었고 지금도 외국 자본가들에게 짓밟히고 놀림당하고 있다.
공용화가 되면 '언어의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의 위계질서'가 특정의 문화의 우월한 독점적 지위를 강하게 하고, 이것은 곧 영어에 모국어의 위상을 넘겨줌으로써 모국어에 기반한 언어동질감이 해체되어 마침내 그 지역의 정체성을 생성시켰던 공동체의식 자체가 절멸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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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 말한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자기 모국어를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국인이 있다는 말을 결코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대부분 의 경우 사정은 그 정반대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한글도 잘한다. 수능에서도 영어 1등급 받은 학생들이 언어영역도 1등급을 더 많이 받는디. 우리는 언어 훈련을 어떤 식으로 받느냐에 따라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언어를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만약 영어가 한국에서 제 2 공용어가 된다 해도 한국어는 여전히 일상 생활에서 제 1 언어로 사용될 것이며, 따라서 학교에서도 한국어 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하고, 영어 공용화론자들도 국어교육을 잘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영어 공용화는 국어를 제대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루어지는 것이지 영어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
한국어
쇠퇴 |
언어는 정체된 문화 현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더 강한 언어가 약한 언어를 점점 잠식해 갈 것이고 영어 공용화가 우리말을 잡아먹게 되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토박이말이 영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영국의 섹스피어가 지금 우리의 한문과 같은 라틴어가 아닌 지금 우리 말글과 같은 자기 모국어인 영어로 좋은 소설을 써서 영어를 빛내고 영국인들의 긍지를 드높히고 영국을 강국으로 만들 기초를 닦았다는 것을 모르는가, 좋은 문학작품은 자기 모국어로 나온다, 또 단테의 신곡도 괴테의 아름다운 시도 모국어로 썼다고 한다, 영어공용화를 주장하는 일부 소설가들은 그들처럼 모국어로 셰계 명작을 써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모국어를 버리고 남의 말글로 글을 써야 잘 팔리고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리의 한글은 한가지의 뜻도 여러 가지의 말로 표현 할 수 있다. 파란색을 예로 들어본다면 영어로는 Blue가 끝이다. 허나 한글로는 파란색, 푸른색, 하늘색, 푸르딩딩한 색, 바다색등 등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한글로는 감성적인 어휘들을 보다 다양한 말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문학성이 뛰어나다. 영어공용화를 하게 된다면, 이 뛰어난 문학성을 다 버리자는 얘기다. 주체적으로 수용하자고는 하겠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갈 것인가가 의문이다.
영어를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토를 맑혀야 한다. 그러자면 그런 것을 힘들여 하지 않아도 살아갈 길을 준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와 국가에서 할 일이며, 많이 배워 많이 아는 이들이 할 일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존경을 받을 이들은 바로 제도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들의 말을 왜 듣고 싶지 않아 하는가.
우리가 더욱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겨레의 참된 모습이다. 자연을 알고 이와 더불어 살아가며, 부지런하고 끈기가 넘치며,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자신을 가다듬어 남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그 정신이다. 그것이 녹아 있는 곳이 말글이며 그것을 녹여낼 그릇이 말글이다. 그것을 지키고 다듬어나가는 일을 넘어설 만한 값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공용화를 할 것인가?
국어를 잘 발전시키 다음에..라는 전제는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대립하는 두가지가 오래 양립할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동물의 암수나 빛과 그늘처럼 자연의 이치인 것하고 주도권을 다투는 말글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영어공용 국가에서 모국어는 생활어로는 사용되지만 지성과 학술 언어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했다. 국가와 기업이 요구하는 필수능력이 유창한 영어 실력이기 때문에 모국어 교육은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
당장은 돈이 많이 들어가도 그 비용으로 발생할 경제적 주가가치도 있다. 일정정도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공용화에 들어가는 모든 돈은 장기적으로 볼 때 투자 대비 이익을 낼 수 있는 때가 온다.
영어 공용은 비용과 혜택이 여러 세대에 걸쳐 나오는 초장기적인 투자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아서 나올 혜택은 단기적으로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모국어를 바꾸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릴 적에 자신이 중대한 결정을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한 언어를 모국어로 삼았고, 그 결정은 평생 취소할 수 없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아서 나올 혜택은 거의 모두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후손의 몫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후손들 처지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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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와
비효율 |
영어 말고 우리말을 물려주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그토록 후손을 생각한다면 미국 가서 살면 된다. 한국에서 살고 싶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에게 영어를 강제로 익히라고 강요하지 말라.
사회학자들은 적어도 우리나라 인구 10%가 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으려면 아마 50년 뒤쯤이나 가능할까 싶다고들 한다. 그동안의 시간과 돈이면 아마 나라를 하나 더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사교육비가 한해 30조원이라는데, 그 절반은 영어공부에 들 것이다. 제도교육에서도 앞으로 모든 교과서는 한글과 영어로 된 두 가지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수학도 과학도 사회도 음악도 미술도 모두 두 가지 언어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모든 교사들은 영어에 능통해야 할 것이고, 방송도 신문도 모든 공문서도 두 가지로 만들고 내보내야 할 것이다. 출판물이 그러하고, 노래와 문학도 그래야 할 터이다.
교역을 위해서는 가까운 이웃인 일본, 중국, 러시아어도 해야 할 터인데, 그러면 프랑스, 독일, 에스파냐말은 누가 할 것인가? 사람을 나누어 억지로 시킨다 해도 될 턱이 없는 일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니 학생들은 외국어를 배우다 지쳐 정작 다른 학문에 들어갈 여가가 없을것이다.
모든 공무원들이 영어공부에 매달리게 되어 발생하는 낭비와 비효율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자신이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영어로 방송하는 아리랑 티브를 보던지 해라. 왜 전 국민이 모두 영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우리 앞집 슈퍼 아저씨까지 영어를 잘 해야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파시즘의 전형임을 모르는가? 슈퍼 아저씨를 영어 원어민처럼 만들겠다는 발상은 비상식적이고 몽상적인 얘기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방송, 교과서, 책, 공문서 등등, 모든 것을 영어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필요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발생한다. 이 비용으로 영어 교육만 확실히 시키면 학생들의 영어 수준은 향상될 것이다.
한 세대는 족히 걸리는 과정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의 지상 명령인 매사에 있어서의 ‘속도’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
오늘날 우리가 영어로 대부분 유통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언론인들을 포함한 사회 엘리트층만이 영어에 능통하다면 그들은 정보의 선별권을 ‘독점’할지도 모른다. 즉, 평범한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정보란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취향과 견해에 따라 선정하고 공급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한국어로 번역할 수는 없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평범한 대중이 영어로부터 소외되면 될수록 제한된 소수 엘리트들의 힘은 더 강해진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회격차를 더 크게 한다.
영어 공용화는 ‘기회의 평등’에 이바지한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으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는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정부도 영어 교육에 투자를 더 많이 하게 되어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그만큼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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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능력
차로
인한
사회
격차 |
영어는 대한민국에서, 자신과 부모의 소속 계급을 알려주는 척도다. 영어가 인문과목처럼 보여도 사실은 실기과목이다. 언어학습의 가장 큰 특질은 현장성 및 실제성이다. 살면서 외국인 별로 못 만나는 외국어학습 환경에서 이 사회가 요구하는 영어실력을 쌓으려면, 돈이 든다. 학원도 가고, 외국인 개인교사도 붙이고, 해외연수도 가야한다. 영어는 그래서 돈 많이 들일수록 학업성취도가 높아진다, 대부분. 성악, 피아노 연주, 회화 같은 여타 실기과목이 그렇듯 영어도 개인의 재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영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듯이, 영어라고 같은 수준의 영어가 아니다. 영어가 공용어 되면, 국가단위의 공교육이 이루어져 사교육비 줄고 국민 영어능력 함양된다는 주장은 그래서 허구다. 있는 놈과 없는 놈은 이제 사용하는 말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미술을 못한다고 혹은 성악을 못한다고 계급적 차별을 당하지는 않지만, 영어공용어화가 이루어지면 영어 말하는 수준으로 계급이 드러난다..
알아두면 좋은 외국어가 학문성취 표식이자 계급을 나타내는 지시약이 되는 것, 코미디도 원,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
‘영어가능자=시민’ ‘영어불가능자=원어민(원주민)’이라는 정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될지도 모른다. 이는 이미 홍콩에서 벌어지는 실제상황이기도 하다. 마치 영어공용화가 되면, 국제경쟁력이 자연스럽게 보장될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만약, 주장대로 영어 공용화가 진행되면 귀족계급, 천민계급이 생긴다. 같은 반에서 똑같이 영어 공부를 해도 100점 맞는 애도 있고, 0점 맞는 애도 있다. 현재 상태에서 모든 국민에게 영어 공용화 교육을 시키면 우리 사회에서 완전 낙오자가 발생한다. 그들의 자손은 천민계급에서 탈출하기가 현재보다 더욱 어려워진다 |
그동안 우리는 5~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해 왔다. 결론은 동북아 금융허브, 물류허브,R&D허브 등 뭔가 국제적 거점으로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럴 만한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에 해당되는 언어소통 문제다. 이미 국내에 들어온 외국기업들은 영어가 통하지 않아 겪는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점을 심각하게 토로하고 있다. 시급히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다. 우리나라가 외국기업들을 더욱 많이 유치하고 또 개방된 선진통상국가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공용화를 추진해야만 한다.
특히, 한국 경제는 대외 무역에 구조적으로 절대 의존한다. 따라서 영어 구사력의 취약성은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다. 상황이 이런지라 영어를 한국의 정식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대담한 주장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면 일상생활에서 영어 사용이 적극 권장되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영어에 숙달하며,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여건과 분위기가 지속되면 한국인들은 궁극적으로 2개 국어 사용자가 된다. 소수 영어 사용자들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수입만으로는 국제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으며, ‘경제활동 인구의 절대 다수가 효과적으로 대량의 지식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직수입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한국을 세계 1류급 국가로 성장시키려면 능숙한 영어 구사력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우리 말글을 쓰는 4천만을 상대로 소설을 써선 돈벌이가 잘 되지 않으니 16억 영어 인구를 상대로 책을 써야 많이 팔 수 있다.
영어를 알아야 장사도, 학문도, 외교도 할 수 있다. 일반인들도 외국 구경을 하려면 영어를 꽤 알아야 하고, 더구나 외국관광객이 이쪽을 찾을 때도 그들의 편의를 위하여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 정보의 80% 가까이가 영어로 되어있다. 인터넷을 잘 부려쓰기 위하여 영어를 해야 한다. 앞으로 이 세상엔 영어 등 몇 개 말글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가 세계 경쟁력이다. 그것을 모르면 개인이고 나라고 죽는다. 영어는 우리말을 보완해주는 국제어요, 글로벌시대의 생존기술이다..
세계화와 국제화의 표상이 영어가 된 것도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판을 치는 까닭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미국은 우리를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에서 구해준 나라다, 미국이 남이가? 아니다 혈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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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
제고 |
영어를 잘 못하면 '엄청난 손해'라거나 '불행한 소식'이라거나 '큰 핸디캡을 안'게 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손해나 이익, 행복과 불행에 대한 판단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어가 절대 우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손해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다.
영어논쟁에서 거품을 빼야 한다. 이것만이 살길이니, 영어가 경쟁력이니, 생존번영의 조건이니 하며 과도하게 조장하고 있다. 영어는 한낱 연장, 하나의 도구로서 `이용한다'는 생각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영어의 모국어화 주장은 경제 민족주의에서 출발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것이 한국인을 위해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의 모국어화'는 결코 한국인에게 이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영어를 통한 세계화와 국가 경쟁력 상승도 좋지만, 우리는 먼저 우리의 말부터 잘 다듬고 아끼어 우리말 역시 세계적인 언어로 인정받게 될 때, 그 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국가 경쟁력의 상승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공용화가 국제경쟁력을 보장한다는 사례는 증명된 바가 없다. 오히려 영어공용화는 정착되기도 전에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노동력을 대거유입하게 만들어, 우리의 노동시장을 잠식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불란서에 물건 팔려면 불란서 말을 배워야 하고,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물건 팔려면 그 나라 말을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 영어를 강요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한국말을 쓰지 않으면 불편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한국에 영어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중국어 잘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일본어 잘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영어 공용화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 영어로의 획일화를 강요하는 파시즘이다.
올바른 가치관이 바로 서지 않은 나라에서 주장하는 것이 영어 공용화다.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 할 때 주장하는 것이다. 일본도 ‘영어 공용화’ 주장이 있었다. 역시 제국주의 전쟁의 주범인 일본답게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것이며, 힘 중에서도 ‘황금’의 힘을 중시하는 경제동물 일본다운 모습이다. 영어 공용화를 하지 않으면 황금을 얻을 수 없다는 주장도 허황하지만 더구나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황금’밖에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느 특정 지역이나 나라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것은 언어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근면성을 존중하는 전통적 가치관, 높은 도덕률, 건전한 경제 정책 등에 기인하는 것이다.
공용화를 주장하는 일부 문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당신들의 작품이 소설이 잘 팔리지 않은 것은 작품성과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안팔리는 작품을 쓰는 인간들이 영어로 쓴다고 팔리겠는가. 우리 말글로도 수준 높은 좋은 작품을 쓰면 잘 팔게 되어 있다.그렇게 돈만 밝히니 좋은 작품이 안나오는 것이다. |
전 세계 영어공용 국가가 47개국이나 되고 인구수로는 세계 최다이다. 그리고 그 수는 앞으로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는가? 영어공용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절박한 생존 전략의 문제이다.
필리핀 ,인도, 파키스탄이 낙후된 것은 낮은 교육 수준과 정치가들의 리더십 부재 대문이다. 거구로 영어 공용화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뒤진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또 그런 나라들이 앞으로 우리나라보다 못살라는 법이 없다. 풍부한 영어 능력이 뒷받침하고 있으므로 적절한 리더십만 활용되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
외국
사례 |
필리핀·인도·파키스탄 같은 나라 등이 이미 영어를 공용화하고 있지만, 그 나라들이 영어를 훨씬 못하는 일본이나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우수하거나 생활이 국제적이지도, 국민생활이 행복하지도 않다. 오히려 프랑스는 ‘영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프랑스적 가치관을 고수하며 여기에 문화와 관광산업을 접목, 육성한 결과 오늘날 세계 최고의 관광국가가 됐다.
영어공용 국가는 모두 다민족 .다언어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단일민족., 단일모국어 국가와는 처한 환경이 다르다. 다민족.다언어 국가에서 영어공용화는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지만, 계층간 갈등을 격화시키는 공용화는 한국에서 새로운 민족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영어 공용화 정책은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국가의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 국가통합의 필요성에 의해 채택된 정책일 뿐이다..
영어를 공용화한 나라들도 영어 사용자의 비율이 50%를 넘는 국가는 16개국에 불과하고, 영어공용화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싱가포르도 제1언어와 제2언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50%를 넘지 않는다. 그런 사례들을 보면서 굳이 공용화를 추진하는 것은 다른 저의가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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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영어 구사력이다. 굳이 모국어를 고집하여 영어를 습득하기 위한 엄청난 시간과 경제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영어 공부에 온 정력을 낭비하다시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영어는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 그 여력을 다른 공부에 할애하게 되므로 교육적 효과가 있다..
지금처럼 초등학생부터 영어학습에 매진할 경우 전체 교육 목표가 실종될 수 있다. 엄청난 사교육 시장도 줄일 수 있고 영어에 쏟는 엄청난 비효율적 교육에서 탈피하는 수단이 된다.
영어공용화는 낙후된 교육환경을 개선,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고등학교까지 영어교육 10년을 받아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안되는 것이 우리 현실 아닌가. 그 때문에 너도 나도 해외로 나가고 있고 이는 서비스 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영어교육에 대한 수요가 해외로만 향하지 않게 하려면 국내 교육환경을 공용화 쪽으로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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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효과 |
영어교육과 영어공용화는 다른 문제다. 국제자유도시를 대비해 영어교육을 장려하고, 좋은 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이를 공용화라는 수단으로 강제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고 그 진리를 감싸고 있는 언어가 있다. 우리가 그 진리를 한국어로 잘 다듬어 놓는다면 우리 다음 세대들은 한국어만 가지고도 진리를 잘 획득할 수 있다. 세계의 중심이 어디로 변하든지 한국어만 지키고 있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외국어 교육은 세계의 중심이 변했을 때, 그 중심에 맞춰서 다시 교육하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영어교육이지 영어공용화가 아니다. 둘을 잘 구분해야 한다.
공용화가 된다고 고급영어를 잘 구사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억측이다. 공용화가 정착될 때까지의 엄청난 사교육비용은 누가 감당하겠는가.
영어 교육의 목표는 그 사용자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있다. 그것은 영어의 구사능력을 높이고, 공교육에서 이를 실현시키면 된다. 국가는 이를 잘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지 강제로 의무화할 일이 아니다 |
우리는 단일민족, 단일문화라 해왔다. 그런데 해외동포가 500만 명을 넘고, 전체 인구의 5%가 외국에 나가 있다. 일본과 미국에 있는 2세, 3세도 우리 민족이라 한다. 그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다. 당장 통일이 된다고 할 경우에도 언어 공동체 문제는 벌어진다. 인터넷은 80% 이상이 영어로 서브를 하고, 우리나라의 주식은 38%가 외국 자본이며, 우리의 생산품 80% 이상이 수출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영어는 필요하다. |
민주
정신
위배 |
정부가 사회 전체에다 대고 ‘영어는 의무’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에도 역행한다.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 영어공용화보다는 영어교육방법의 개선과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 대책에 주력하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법으로써 영어를 제 2 공용어로 지정할 필요성에 회의하고 있다.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편의를 위해서이지 정부나 문화적 엘리트 층의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니다. 왜 정부가 우리에게 더 열심히 영어 공부하라고 굳이 법으로 강요하는가. 또한, 공용화론자들은 자유무역을 엄청 좋아하고 세계화니 개방 경제니 하고 떠들면서 왜 모든 것을 영어만은 시장 원리의 작용대로 그냥 놔두면 안 된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꼭 영어에 능통해야 할 필수 인원은 얼마나 될까? 크게 잡아 열에 하나 정도다. 우리는 그 열에 하나가 되기 위하여 영어에 인생을 걸고 있다. 그리고 그 열에 하나가 된 사람도 외국인과의 만남이나 첨단의 외국 정보를 챙기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극히 적다.. 이런 낭비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제도화하지 않아도 이 정도인데, 그런 제도를 두면, 필요한 만큼 선택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공용론은 개인의 재능과 필요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제도로 가자는 말이다.
언어의 경쟁력이라는 것은 언어 자체에 있지 않다. 영어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이유를 영어 자체가 우수한 언어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이유를 위한 이유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운 이유는 단지, 학생 때부터 배울 수밖에 없는 필수과목이었고, 사회에서 직업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사람만 배우면 된다. |
유럽의 지식인들이 라틴어가 아닌 자기 지역의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아도 500년이다. 우리의 사정은 보다 심각해서 조선시대 내내 문서에서 공용어는 한자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고전에 달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사용한 한자는 우리말의 한자번역이라기 보다는 우리말과는 언어체계가 다른 ‘한문’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금속활자로 한글(언문)책을 찍어낸 것은 본격적으로 보면 20세기 들어서였다. 금속활자로는 양반 지식층이 볼 수 있는 한문책만 찍어냈다. 세종도 한글을 금속활자로 찍어 보급할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조선후기부터 활발해진 언문의 인쇄는 목판인쇄가 담당했다. 그만큼 수요가 제한적이었다는 뜻이다.(금속활자, 한글은 왜 없나/강명관/중앙일보 2005.10.11)
영어를 제2공용어로 하자는 말이 생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과거 한글 창제이후에도 한문을 계속 써온 적이 있으며 유럽 각국에서도 영어 사용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만큼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역사적
경험 |
공용어화에 대한 논리는 이미 우리 역사에 있었다. 주요한은 "대동아 공영권의 공용어로서 일본어가 등장할 것"이라며 우리가 빨리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부르짖으면서 우리 민족이 모두 일본인처럼 일본어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해방 후, 최남선은 친일은 단지 방향전환이라며 "나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학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일반인의 기대를 저버렸다."했고, 서정주는 "일본이 그렇게 망할 줄 몰랐다. 못 가도 100년은 가리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광수는 '일본은 영원해 보였고, 그들과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실제 행적은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며 애국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친일의 논리는 힘의 논리이며 힘의 논리는 친일의 논리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는 그들의 논리를 다시 듣고 있다. 지금 영어 공용어화를 주장하는 많은 이들도 자기 딴에는 애국하는 심정으로 주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구조는 과거의 친일 매국노와 같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 친일의 논리가 힘의 논리였으며, 그 논리의 선택으로 뼈아픔을 느끼게 된 것은 ‘힘은 변한다’라는 기본적 한계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망할 것 같지 않고 세계의 중심이 될 것 같았던 일본이 갑자기 약해졌기 때문에 친일의 논리가 망한 것이다. 로마도 망하고 몽고도 다 망했다. 한 나라가 500년 간다고 볼 때 미국은 반환점을 돌았다.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면 중국어 공용화를 하자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이 한문을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쓰기 쉽게 만든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언어다. 이러한 언어가 없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또 장차 있을 남북통일과 민족화합을 위해서도 영어 공용어 주장을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 국토분단에 이어 ‘언어에 의한 국민의 재분단’을 초래할 수 있다.
한 언어의 미래에 관해 예측하는 것은 여러 가지 사실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중세 라틴어의 교육어로서의 위치, 20세기 초반 프랑스어의 외교어로서의 위치가 그렇게 와해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만일 막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조선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자식에게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한 쪽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 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이 있다. 다른 쪽엔 조상들이 써온 조선어를 계속 쓰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힘들고 괴로워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피하고 평생 갖가지 불이익을 보고 영어로 구체화된 문화적 유산들을 거의 향수하지 못하고 분초를 다투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얻지 못하고 뒤늦게 오역이 많은 번역으로 얻어서, 그것도 이용가능한 정보들의 몇십만분의 일이나 몇백만분의 일만 얻어서,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삶이 있다.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앗겠는가? 당신의 자식은 아직 조선어를 배우고 쓰지 않아서 조선어에 대한 심리적 투자가 없고, 자연히, 조선어에 큰 애착을 지니지 않은 터에?" (....)
한국이 미국 마지막 주로 편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자. 당신은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당신 자손이 대대손손이 강대한 나라의 강대한 국력 밑에서 자라고, 그 강대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반대쪽에 좁은 나라의 대통령이나 겨우 되어볼 수 있고, 지역감정에 국민들이 싸우고, 분단된 조국으로 군대도 다녀와야 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한미 합방으로 강력한 조국을 가지는 자식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겉모습은 미국이라는 국가정부로 통합되는 모습이지만 결국에 모든 나라가 하나가되는 세계화의 일부라고 할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
사고
실험
(가정)
대세
힘의
논리 |
영어는 굉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이 반대하는 힘만으로는 대세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공용화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이 사고 실험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쓰는 것만으로 모든 정보를 쓸 수 있다는 가정부터 잘못됐다. 정보는 정리되어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단순히 영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엄청난 이익이 있다면, 왜 미국에는 우리보다도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은가? 개인의 노력이 중요한 데, 그런 것 없이 영어만으로 굉장한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은 환상이다.
국가와 언어는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 같은 선상에 놓은 것은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하다. 언어가 그저 습관이라면, 국가는 그저 태어난 위치적 구분일 뿐이다. 영어 공용화의 기본 기저는 미국의 힘 때문이고, 그래서 영어의 힘이 그렇게 센 것인데 이왕 받아들일 거, 영어의 힘만 받아들이지 말고 그 본질인 미국의 힘, 강대국의 힘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될 일이다.
영어의 세계어로서의 위상이 확고해지는 이면에는 다른 흐름도 있다. 세계 주도그룹으로서 영어권 나라의 위치는 유럽연합(EU)과 중국과 아시아 비영어권 국가에 의해 위협 받고 있다.
인구 통계적 측면에서 비영어권 국가들의 젊은층의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비록 의사소통 도구로 영어를 배우려는 인구는 늘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영어의 위상은 크게 도전 받게 될 것이다. | |
첫댓글 영어공용어화에 관한 것은 워낙 중요한 사항인지라 의견이 나뉠 수 있겠지만 너무 한곳에 치우친것은 좋지 않다 고 생각한다. 좀더 수용할것은 수용하고 버릴것은 버리는 것이 필요하지 한의견에 너무 치우치진 말아야겠다,,,
이글 너무많아서 ㅠㅠ못쓰겠어요 영어공용화만 몇개야~!~~~~~
많이 힘들지 그래도 다양한 견해를, 그리고 다양한 근거를 파악하기위해서는 이러한 집중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영어도 중요하지만 더중요한것은 우리말의 주체적 수용이다.
영어는 지금 살아가는데 꼭 필수된 언어이지만, 모국어를 조금만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면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