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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인 환상, 피아노 위의 6개 레닌 유령, 1931
달리의 대표적 이미지들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앵두는 '시간의 신비로움'을 의미하며 개미는 덧없는 운명의 상징이다. 화가 자신의 이야기에 의하면, 피아노 위의 레닌의 흉상의 연속은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머리에 떠오른 황혼녘의 환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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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어필의 유령, 1934
어린 달리는 거의 주체할 수도 없는 목발을 한 늙은 노파의 신체를 바라보고 있다. 그 노파의 상체 부분은 거대한 소세지로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하여 모든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대립된 죽음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목발은 때로 달리의 회화 세계에서의 성불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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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보삭 브로치, 1941
달리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소재로, 시각과 미각이 눈과 입 모양을 한 두 개의 보석으로 요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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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기 직전 석류 주변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 꿀벌에 의해 야기된 꿈, 1944
아주 먹음직스러운 음식물-갈라-위로 덤벼들고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는 꿈 속에서 벌의 이미지이다. 착검을 한 장총은 분명히 곤충의 위협적인 찌름을 암시하고 있다. 에로티시즘이 폭력적인 연회장으로 달리의 작품에 다시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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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 1950
편집광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를 재창조하여 카다케스 해변의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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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수수께끼, 1937
그림의 침투할 수 없는 신비스러움은 딱딱한 요소인 전화나 우산, 부드러운 요소인 접시 위의 삶아진 강낭콩의 대립 안에서 융화된다. 전화는 달리의 회화 언어 안에서 조개와 꼭 닮게 그려져 있다. 조개는 딱딱한 껍질과 부드러운 살을 갖고 있듯이 전화기 역시 조개처럼 겉모양과 내용이 다르다.
보이지 않는 이미지
변형(anamorphosis), 또는 왜곡된 형상은 초현실주의 그림에 당연히 나타나는데 이러한 기법은 감각의 거짓성을 나타내는 예로서 바로크 시대부터 그림에 나타나는 수사학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달리의 그림에는 이같은 시각적 기법이 자주 나타난다. 이중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소재로 <보이지 않는 남자>를 비롯하여<갈라의 영광스런 세 수수께끼들>을 제작하였다. 그가 좋아하는 여러 주제들 중 하나로 이 주제는 그의 말년 작품까지 사용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조형 언어가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정신 착란 속에서 제시되는 불안정한 이미지를 통하여 체계화된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응용한 명백한 예들이다. 이런 효과는 마치 두 개의 그림이 신비스럽게 하나의 그림에 숨겨진 것 같으며, 중첩된 이상하고 혼란스런 부조와 같은 효과로 3차원성을 나타내는 작품들이다. 화가는 이런 방식으로 숨겨져 있는 형상들의 의미를 폭로하고 동시에 이미지들의 세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연관성을 명백히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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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수수께끼, 1938
이 때부터 달리는 프로이드의 다양한 초상을 제작하는데 그 이후에 그는 이와 같은 그림 안에서 프로이드의 죽음이 임박함을 무의식적으로 형상화하였다라고 말한다. 이중 이미지의 놀이는 이 작품에서는 마치 만화경 안에서처럼 증가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저 부분으로 주의를 집중시킴에 따라 그림은 마치 프로이드의 흉상, 정물, 비스듬히 누어있는 남자,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결정되지 않은 많은 이미지로 읽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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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남자, 1929~1933
달리는 형상을 다양한 오브제의 묘사로 대체하여 그림을 그린 16세기 매너리즘 화가 아르침몰도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이중 이미지 또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주제를 접목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1933년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하였으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인용하면서 꿈의 내용을 적용시킨 완전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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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편집광, 1936
달리의 설명에 의하면 "이 얼굴의 용모는 위대한 편집광자들인 암푸르단 사람들로 형성되었으며, 호세 마리아 세르트와 아르침몰도에 관하여 대화한 후에 그려졌다." 이들 그림의 이중 이미지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감상자의 편집광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다시 말해 꿈의 산물인 환상들을 체계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숙련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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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의 변모, 1937
나르시스의 신화는 특별히 달리에게 흥미로운 주제었으며 달리의 나르시시즘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더욱이 연못의 물 안에 반사되어진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 사이의 혼동은 그 배경에 깔린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이러한 이중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거의 불가사의한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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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숭배하는 정신속에서 갈라를 그리는 달리, 1965
사람들은 달리의 돈에 대한 넘치는 열정에 대해 비방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비방에 대해 달리가 약간은 과장되게 그린 그림이다. 이것으로 앙드레 브르통에 의해서 "달러에 굶주린" 화가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되는 동기가 되었고, 이 별명은 달리라는 본래 이름에 철자를 바꾸어 만들어졌다. 1939년 이후 달리는 초현실주의 그룹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 그림 왼편을 보면 마르셀 뒤샹이 루이 14세로 변장한 모습이 보이고, 베르미어풍의 커튼 뒤에는 비록 보이지 않으나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의 기념비적인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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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거울을 보면서 등을 돌리고 있는 갈라, 1960
이 작품에서 달리는 그의 젊은 시절에 제작한 여동생 안나 마리아의 초상에 보이는 초혼의 힘과 순수함을 회복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거울을 바라보는 갈라의 뒷 모습은 신비감을 나타내고 있다. 거울 속에서 갈라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이와 같은 동일한 소재로는 15년 전 <나체인 나의 아내가 계단과 하늘을 받치는 가둥의 세 척추와 건물로 변해가는 자기의 육신을 관조하고 있다>라는 작품에 나타났다.
기억의 서럽들
많은 대중이 연상하는 화가 달리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 뒤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여러 분야의 책을 탐낙한, 광범위한 문화적 인식을 가진 화가로서의 달리가 숨겨져 있다. 이런 지식의 습득은 마요카라 출신의 중세 말기의 지성인 라이문도 루리오나,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줄리오 카밀로의 <기억의 연극>에서 영감을 받아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억술과 연관된 기억의 바퀴와 기타 기계장치에 관심을 보인 예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은 달리의 연상 작용에 의해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며 달리는 그것들을 일생을 통해 많은 그림에서 특징적인 조형 요소인 가구나 인물로 번안하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런 영향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은 1974년 문을 연 피게라스에 있는 달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달리는 이 미술관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안내하는 문으로서, 그리고 지적인 모든 유산을 담아 내는 곳으로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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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붙은 기린, 1936~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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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인 운동 선수, 1968
서랍들은 무의식을 의미한다. 달리는 "인간의 신체는 그리스 시대에는 순수한 신플라톤적이었다. 오늘날의 신체는 비밀스러운 서랍들로 가즉 차 정신분석 학자들만이 열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건축물을 사용한 비유도 이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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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 의자로부터의 이유, 1934
리갈항구의 만은 마치 환영적인 성격의 기호처럼 거꾸로 나타난다. 가구에 나타난 병의 실루엣은 젖병을 연상케 하는데 이것은 여성의 가슴에 해당되는 텅 비어 있는 공간의 부분과 꼭 들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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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형상을 한 캐비넷, 1936
달리는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인 브라첼리의 <카프리치>의 작품에서 가구 형태를 한 인물상의 영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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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1936~1938
스페인 내란과 관계되는 다른 여러 죽품들 중 하나이다. 두 기사가 창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여성의 가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자의 머리는 폭력적인 전투 중에 있는 인물 표현으로 이중 이미지이다. 이 전쟁 장면은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유명한 <앙기리아의 전투>를 위한 소묘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에 인용하였다. 반쯤 열린 서랍에 걸려있는 붉은색 손수건은 전쟁의 비극적 상징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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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궁전 세부, 1972~1973
피게라스에 있는 달리 연극-미술관의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다섯 개의 그림 중 두 개의 부분도이다. 이 작품에 사용된 회화적 기법은 18세기 중반 이후에 환영적인 재현의 가능성으르 최대한으로 살려 표현한 바로크의 거대한 장식적 천장화와 같다. 거대한 두 형상, 갈라와 달리의 모습은 마치 하늘을 여는 신의 단축적 표현으로 환상적 예술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과학에 대한 꿈들
40년대와 50년대부터 달리는 당시의 과학, 특히 핵물리학과 분자생물학과 연관된 발견들에 대해 호기심을 표명하면서 많은 그림들에 이러한 사건의 암시를 표현하고 있고 더 나아가 어떤 작품들은 과학자의 도움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과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초현실주의와 연관된 일군의 시인이나 화가 - 피카비아나 뒤샹의 경우처럼 - 의 역설적이고 유머스러운 관심과는 다르게 달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매우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DNA의 나선형이나 핵의 구조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데이터의 한계를 넘어선 하부구조를 취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마치 꿈 속에서 나타나는 현실과 같이 잠복되어 있는 잠재된 현실을 드러내 준다. 따라서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달리는 30년대 수학자 마틸라 기카와 피타고라스적 수의 체계에 관한 연구에 역시 관심을 보였다. 그의 그림에서 이러한 관심은 과장되게 나타나며 이같은 관심의 증거와 자취를 남기고 있다. 이와 똑같이 달리의 관심은 프로이드나 정신분석 학자들에게도 보인다. 이같은 연구에 대한 주제로 달리가 그의 그림 속에 표현한 회화적 노고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그에게 존경을 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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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섬의 세 스핑크스, 1947
산호섬 비키니에서의 실험적인 핵 폭파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는 달리의 이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두 개의 인간의 머리와 나무는 이중 이미지와 핵 버섯 모양으로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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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의 레다, 1949
이 그림에서는 핵물질으 빛이 발산되는 가운데 백조로 변해 버린 주피터에게 사로잡힌 님프 레다의 고전적인 우화가 표현되어 있다. 원자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그림의 요소들은 서로 맞부딪치지도 않고, 단단한 형체를 구성하지도 않은 채 각각의 다른 요소들과 중력을 유지하고 있다. 공간에서의 사물의 배치는 틀림없이 과학자인 마틸라 기카의 충고를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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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로 그려진 갈라테아, 1952
한 해 전 달리는 <신비주의 선언서>를 저술하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구성 요소를 제의한다. 이 작품에서 갈라의 이중 이미지는 제 2차 세계대전 후 달리의 작품에서 복원된 강박관념들 중 두 관념인 정신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에 대한 자극을 통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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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깃털과 균형, 1947
앞 작품의 이미지와 같이 백조의 깃털이 편집광적인 이중 이미지를 나타내게 한다. 각각의 다른 대상들은 공간에 떠 있고 긴장 속에서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들 서로가 동적인 평형 감각을 보여준다.
꿈속의 황량한 풍경들
소년기와 청년기의 초기 작품들에서부터 달리는 임파스토 기법이나 진동하는 듯한 붓놀림 등 어려운 회화 기법상의 문제도 쉽게 풀어 버리는 풍부한 숙련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날카롭고 정밀한 소묘가 주된 역할을 하도록 물감을 단조롭고 적게 사용하고 다른 모든 기법을 포기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정밀함은 환상적인 주제와 대조를 이룬다. 이와 같은 역설적 표현은 20, 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가장 많은 존경을 받은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환영적이고 기념비적인 도시의 그림에서 배운 것이며, 또한 카다케스의 꾸불꾸불한 절벽을 관찰하면서 배우게 된 것이다. 수평선의 암시가 인물들을 위협하는 이러한 텅 빈 풍경은 젊은 시기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빛으로 가득 찬 화면에 나타나는 정례식의 변형과도 같은 종류의 그림 안에서 달리의 정신 착란을 표현하기 위해 즐겨 쓰여지던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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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의 나날들, 1929
수평선과 원근법으로 처리된 두 개의 거대한 선 또는 레일에 의해서 결정된 공간의 분리, 그리고 유리와 같은 깨끗함과 이미지들의 자의성과의 대비는 어린 시절 꿈의 결과이다. 절단된 배경과 풍경 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형상들의 대비는 불협화음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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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또는 쾌락의 탑, 1930
키리코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가장 대표적인 형이상학적 그림이다. 그림의 외부에서 투사된 검은색 그림자와 신비스러운 형상은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오며, 이것은 불안전한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는 공도 그러한 역할을 한다. 한 쌍의 부부, 사랑과 죽음의 상징, 그리고 사자의 머리는 <위대한 수음자>와 이 시기 다른 그림에서도 역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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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속의 신비적인 요소들, 1934
이젤 앞에 앉아 있는 화가는 베르미어로, 그의 망령은 책상으로 변하여 같은 해 다른 그림에서 나타난다. 왼쪽의 성탑은 달리가 예술에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유년의 한 여름을 보낸 피조트 소유의 몰리 데 라 토라를 연상하게 한다. 굴렁쇠를 가지고 있는 소년의 형상은 다른 그림에서도 역시 나타나는데 이는 달리 자신으로 그의 환영을 증언하는 어린 목격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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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의 격세유전의 흔적, 1934
공동을 가지고 있는 매끄럽고 꽉 짜여진 형태들은 크레우스 케이프를 기억하게 한다. 화면 전반부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성인 남자와 소년 위에는 유기적 형태가 목발에 지탱되고 있으며 신비스러운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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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죽음, 1935
성탑은 다시 한번 피조트의 소유지임을 알리고 있다. 30년대에 있어서 달리의 독특한 조형 언어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돌로 변한 삼나무와 폐허의 잔재물은 이 작품에서 기사와 말을 유령적 상태로 감염시키고 있는 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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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5m 길이의 손잡이를 가진 날아다니는 거대한 찻잔, 1944~1945
1932년 그림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하여 그린 그림으로서 이 그림에서는 찻잔에 붙어 있는 손잡이가 과도하게 늘어져 있다. 달리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이 그림처럼 찻잔의 손잡이로부터 비롯된 대수학적 나선형에서 발전되어 나타난다. 배경에 있는 바위섬은 크레우스 케이프 앞에 있는 라타 섬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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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밤의 그림자, 1931
이 작품은 또 다시 이탈리아의 형이상학파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소재로 그려진 것이다. 황폐한 풍경 위에 위협스럽게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는 크레우스 케이프를 기억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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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고요, 1936
흰색의 고요함이 화면 전체에 나타난다. 유령이 등장할 듯한 정체된 분위기이다. 리갈 항구의 바위가 묘사되어 있으며 공기부족으로 모든 사물들이 질식할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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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 항구의 풍경, 1950
천사의 존재와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의 웅대함은 화면 속에 불안정한 비결정적 색조와 함께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먹을 수 있는 것의 아름다움
1933년 달리는 아르누보 건축의 "소름끼치는 미와 먹울 수 있는 미"에 대하여 글을 발간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건축 디자이너인 가우디의 작품과 카탈란 지방의 현대 미술에 친숙했던 달리는 이같은 유기적인 표현과 장식의 풍부함에 매료되었는데 달리는 "고체화된 욕망으로서의 건축"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고무되어 먹을 수 있는 것과 카니발리즘과 관련된 식도락적인 비유와 관념이달리의 사상과 도상에 있어서 가장 함축적이고 중대한 주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썩기 쉽고,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부패하며 결국 죽음이 기다린다. 동시에 음식을 만드는 것이나 먹는 것은 모두 딱딱한 것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변화하고 변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는다는 것은 마치 인식을 먹는 편집광적인 비유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인간은 스스로 그들과 멀리 있는 것들과 융합하게 된다. 달리의 그림들은 이런 형식으로 자양분을 암시하는 장면과 그가 좋아하는 음식물들 - 강낭콩, 갈비, 빵, 달걀 프라이 - 로 채워지게 되는데 이것은 독특하고 환각적인 도상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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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 1933
"나는 갈비를 좋아하고 나의 부인을 좋아한다. 나는 이것들을 함께 그리지 말아야 될 어떤 이유도 발견하지 못했다." 라고 달리는 그림 제목에 놀란 어떤 신문기자에게 대답하였다. 8년 뒤 그는 구운 베이컨 조각과 함께 있는 그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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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카니발리즘, 1936~1937
탐욕스런 식욕과 죽음의 연관성이 나타나는 그림 중 하나이다. 달리는 모든 종류의 요리 기구를 세밀히 묘사하였고 빵과 과일과 고기 묘사와 함께 죽음의 연회를 창조하고 있다. 해질 무렵 가을의 금빛 색조는 폭력적인 화면을 부드럽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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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강낭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성 - 내란의 예감, 1936
더욱 공격적인 방법으로 탐욕스런 식욕과 죽음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잘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연회적인 성격을 다루지 않고 그 모든 반대의 것을 다루고 있다.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후의 수단은 교살당한 신체 안에 있는데 그 신체로부터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달리는 이렇게 하여 비극적 고뇌와 전쟁의 예감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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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담긴 바구니, 1945
달리는 달마우 화라아에서의 두 번째 전시를 목적으로 1926년에 이미 빵 바구니 그림을 그린 바 있다. 17세기 스페인의 소박한 정물화의 기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이 작품에서는 신비적이고 정신적인 충만함이 잘 나타난다. 달리는 분위기 묘사로 빵의 상징적 의미를 잘 요약하고 있다. 모든 벽면들이 암푸르단 지방에서 구워낸 빵 모양으로 장식된 스페인의 피게라스에 있는 달리의 미술관은 우연히 만들어진 장식이 아니다.
부드러운 오브제
일상 현실과 상반된 성격을 가진 이미지들은 달리의 잘 알려진 편집광적 소재 중 하나이다. 그의 그림에 표현된 결정적인 효과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부드럽게 녹아 내리는 듯한 오브제의 재현이다. <기억의 영속성>과 <정거장의 때이른 석화>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으로 그 유명한 흐물흐물한 시계가 등장함으로써 부드러운 오브제가 일반화되었다. 달리의 그림에서 부드러움은 어떠한 딱딱한 대상에게나 적용되며 일반적으로 꿈의 세계의 의식적 증거물인 유령적 또는 환영적 조건을 지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가 표현된 작품에서 시계는 아주 심오한 함축적 이미지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의 관계성을, 즉 '4차원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달리의 모든 작품에서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부드러운 것은 소화될 수 있는 것,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상호 침투될 수 없고 다른 상태로 변화될 수 없는 딱딱한 성질의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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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의 때이른 석화, 1930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작품을 완성하기 일 년 전 부드러운 시계가 표현된 첫 작품이다. 앙상한 인체는 기차역이 연상케 하는 동적인 특징과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형이상학적 풍경화로 변화하는 작품은 1930년대 초반에 많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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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키스트적인 도구, 1933~1934
대상의 부드러움은 꿈이 생산해 내는 변형이다. 실제적 대상의 환상으로 보편적 기능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임시한다. 이렇게 하여 이 작품에서는 상처받은 삼나무와 연관된 상처받은 바이올린 이미지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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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 콜라 나무로 만든 피아노 껍질을 바닷가에서 만나다, 1936
마치 산호나 해조류 같은 식물의 머리를 한 여자들은 막스 에른스트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앞 작품의 이미지처럼 피아노나 첼로는 불안정하고 꿈 속에 나타나는 환상적 존재의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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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베이컨 조각과 함께 있는 부드러운 자화상, 1941
받침대는 얼굴을 환각적인 흉상으로 변화시켰다. 얇게 썬 베이컨 조각은 미국의 음식문화가 그의 작품에 베푼 회화적 재료로, 이 시절 미국에서 달리의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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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있는 풍경 속의 부드러운 괴물, 1977
이 작품에서의 특징은 불구의 모습 같기도 하고 어쩌면 신발이나 바나나 껄질과도 같은 환영으로 보이는 부드러운 괴물과 그 괴물이 놓인 단단한 받침대 사이의 대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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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을 찾아서, 1979
아인슈타인의 공간과 시간은 이 작품에 있어서 볼록하고 오목한 굴 옆의 바퀴와 부드러운 시계에 의해 암시된다.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쌍의 인물들은 라파엘의 작품 <아테네 학당>에서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