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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이선아
씬1. 방안 작은 원룸
켬퓨터 책상에 앉아 엎드려 자고 있는 상진. 밤새워 작업을 한 듯 책상 위 재떨이에 담배가 수북히 쌍여있고 방안은 엉망이다.
갑자기 어깨를 움찔하며 깨어나 탁상 기계를 확인하는 상진, 며칠째 씻지 못한 듯 초췌하다. 시간은 오후 5시.
(e) 삐- 하는 전화 자동 응답기 소리...
전화를 받지 않고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패트병째 마시며 피식 웃는다.
전화 (e) ; 김작가, 원고는 삶아 먹었나? 암만 작가들 쪼는 게 내 직업이라지만 나도 더 이상은 못해 먹겠어.
이달 말까지 그 원고란 놈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 같이 죽자고, 이거 협박이야. 협박. 알지?
형광등의 수명이 다 됐는지 깜박거린다.
잠시 뒤,,, 의자 위에 올라서서 형광들을 갈아 끼우는 상진. 흔들리는 의자가 왠지 불안하다.
또 다시 울리는 전화 자동 응답기 소리.
전화 (e) ; 나.. 호철이다 임마. 잘 지냈나? 얼굴 보기가 왜 그렇게 힘드냐?
형광등을 바꿔 끼우려 여전히 낑낑대고 있다.
전화 (e) ; 상진아, 너 혹시 기억해? 정은서라고, 왜 있잖아. 고등학교 때 전체 1등.
은서라는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응답기를 쳐다본다.
전화 (e) ; 걔, 서울에서 얼마 전에 고향에 내려왔거든? 근데, 사고로 죽었다. 얼굴이나 좀 보자. 이럴때라도 만나야지. 안 그래?
여하튼 내려와라. 끊을게.
형광등을 손에 들고 멍하니 서있는 상진. (f.o)
# 검은 화면에 rewind. 그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 디킨즈.
# 화면 반으로 갈라지고 (june 광고에서처럼 화면 반쪽은 글자. 반대쪽은 영상)
track 1. 사랑이야.
옆 화면 - 등교 길, 버스 창가에 않아 눈을 감고 바람을 맞는 은서. 몰래 바라보는 상진.
씬2. 1학년 교실
창밖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상진. 시선의 머무는 곳은 운동장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 여학생. 은서다.
호철 ; (뛰어들어와 음악 책을 챙기며 상진에게) 얌마. 음악실 안가?
상진 ; 응?
호철 ; (다가오며) 뭘 보고 있었어?
상진 ; 아냐. 가자.
(e) 피아노 반주소리.
뒤이어 피아노 반주에 엇 박자고 시작되는 상진노래. 심한 음치다.
씬3. 음악실
낄낄대는 학생들.
음악선생 ; (도저히 반주를 못하겠다는 듯 건반을 꽝 내리치며) 들어가 임마. 다음 42번.
상진 ; (긁적이며 들어와 호철의 옆자리에 앉는다)
호철 ; 도대체. 니가 잘하는 게 뭐냐? 공부도 못해. 노래도 못해. 말도 못해. 얼굴도 못나.
상진 ; (노래를 부르는 민석을 바라본다)
호철 ; 저 자식은 어떻게 된 게 노래까지 잘 하냐. 재수없게.
씬4. 운동장
100m 달리기... 민석에 비해 한참 뒤쳐져 들어오는 상진.
상진을 응원하던 호철. 원통한 듯 모래를 집어던진다.
허탈한 듯 헉헉거리며 운동장에 털썩 앉는 상진.
씬5. 수돗가
시원한 물줄기에 아예 머리때 가져다 대며 세수하는 호철.
그 옆에서 물 마시던 상진 누군가를 발견하고 켁켁거린다. 다른 여학생과 어울려 수돗가 앞을 지나가는 은서다.
처다보는 것만으로로 안타가운 듯 시선을 뗄 줄 모른다.
세수를 마친 호철. 그런 상진의 모습을 보고 물을 뿌린다.
호철 ; 꿈 깨라 임마.
상진 ; ...
호철 ; 은서. 쟤. 얼굴만 예쁜게 아냐. 전교 1등에 성격좋지 몸매 착하지. 저런앨 두고 바로 못 오를 나무라고 하는 거다.
상진 ; (은서가 들어간 쪽을 바라본다)
씬6. 방안 허름한 방 안
책상에 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는 상진. 폼은 제법 그럴싸하다. 완성된 듯 지우개 가루를 후후 분다.
정성들인 그림은 은서의 얼굴. 하지만 알아보기 힘들다. 맘에 들지 않는다.
옆방에서 투닥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진모의 “ 또 술 퍼 마시러 갈려고 그러지? 돈이 어딨어? 이 인간아” 식의 소란함.
벌렁 누워버리는 상진.
씬7. 교문
등교하는 은서를 뒤따라가는 상진. 은서 옆에 민석이 있다. 그저 동경의 눈초리.
호철 ; (어느새 다가와) 너도 전교 일등 한 번 먹어봐. 그럼 걔가 눈길 주지 않겠어?
상진 ; ...
호철 ; 하긴.. 니가 전교 467등이란 걸 깜빡 했다.
상진 ; 그만 해.
호철 ; 그러지 말고 너 그룹 사운드나 해 봐라.
상진 ; 그룹 사운드?
호철 ; 아참참. 너.. 음치였지.
상진 ; 그만 하라니까.
호철 ; 앗! 기막힌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상진 ; (먼저 간다) 안 가르쳐줘도 된다. 임마.
호철 ; 이번엔 진짜야 진짜. 너 기타 쳐라. 클래식 기타. 그건 노래 안 불러도 되는거야.
축제때 어떤 형이 음악제에서 연주하는데 여자 애들이 아주 뿅가더라. 어때?
상진 ; 너나 쳐.
호철 ; 나야 기타 안쳐도 나 좋아할 여자 많다. 근데 넌 사정이 다르잖아. 노력해야지.
상진 ; 기타 살돈이 어딨냐?
호철 ; 신문배달이라도 하면 되지. 임마. 인생에 꽁짜가 어딨어?
상진 ; (민석과 현관으로 들어가는 은서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
씬8. 골목
언덕을 오르내리며 신문을 집어던지는 상진.
신문 돌리다 말고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히 동이 터 오는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씬9. 교실
수업시간. 꾸벅꾸벅 조는 상진. 호철이 쿡쿡 찔러도 아무 소용 없다.
씬10. 방안. 새벽
정말 일어나기 싫은지 뭉그적거리는 상진. 이불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끝가지 버텨본다.
결국 이불 걷어차며 몸을 일으킨다.
씬11. 신문 보급소
할당받은 신문들을 자전거 뒤에 싣고 출발하는 다른 아이들.
그런 모습이 부러운 듯 쳐다보다가 한숨 한 번 쉬고 달리기 시작한다.
씬12. 운동장 (씬 11에서 이어지듯)
오래 달리기하고 있다. 상진 민석을 제치고 선두로 나선다. 뒤에서 그 보습 본 호철 환호하고,
하지만 민석, 100m 남은 지점에서 전력투구하고 결국은 간발의 차이로 민석에게 진다.
운동장에 털썩 주저앉아 헉헉거리는 상진.
호철 ; 얌마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나중을 위해서 힘을 비축해 둬야지. 그렇게 냅다 무식하게 달리기만 하면 어떡하냐.
상진 ; 그러는 넌 머리 써서 꼴찌한거냐?
호철 ; 새벽마다 뛴 보람이 있어야 할 거 아냐.
민석 ; (두 사람에겐 관심조차 없다)..
호철 ; 참 ..새록새록 재수 없다. 저 자식.. 아마 우리보다 싸움도 잘할거야. 씨.
상진 ; (피식 웃으며 일어나 흙을 턴다) 오늘 기타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호철 ; 뭐? 벌써 돈을 다 모았어? 같이 가주면 라면 살 거지?
상진 ; (자랑스러게) 짜-식 떡볶이도 사주마.
씬13. 악기점
상진 ; (기타의 가격표를 보고) 뭐가 이렇게 비싸?
호철 ; 수제품이라 비싼 거래. 넌 그냥 싼 거 사.
상진 ; (싼 기타를 봐도 여전히 표전이 어둡다) 안되겠다. 가자.
호철 ; 많이 모자라?
상진 ; 한 8000원 정도.
호철 ; 아 짜식- 그 정도는 이 행님이 있잖냐. (양말에서 만원을 꺼내며) 자 임마.
(망성이는 상진에게) 어차피 너 안 빌려주면 롤러장 떡볶이 아줌마가 좋아할 돈이다.
상진 ; (받으며) 그럼 만원 다 빌려줘.
호철 ; 그래라. 근데 왜?
상진 ; 내가 라면 사준다고 했잖아.
씬14. 방안
행복한 표정으로 기타를 품에 안고 은서의 그림을 바라본다. 기타를 한번 퉁겨본다. 폼은 이미 에릭그랩톤이다 (f.o)
track 2. 나의 기타 이야기
옆 화면
- 등뒤에 기타를 메고 은서를 몰래 뒤쫓아가는 상진.
- 기타학원. 연습하고 있는 상진을 흘끔보는 현주.
씬15. 기타학원
서너 명의 수강생들. 전인권 풍의 범상치 않은 포스의 강사, 돌아다니며 레슨하고 있다.
상진 옆에 앉아 있는 현주. 또래의 여고생이다. 기타를 제법 연주한다.
강사 ; (상진의 앞을 지나며) 그래, 굳. 계속 그렇게.
상진 ; (재미없어 죽는다. 다른 사람들 흉내를 내려고 하면)
강사 ; (딱 뒤돌아) 얌마. 겉 넘기는. 그냥 퉁겨.
현주 ; (상심하는 상진에게 씽긋) 내일은 하루종일 도레미파솔라시도만 할걸요.
상진 ; (한숨쉬는, 현주의 솜씨를 보며) 언제쯤 그렇게 칠 수 있어요?
현주 ; 글세요? 열심히 하다보면 기타가 대답해 주겠죠. (씩 웃는다)
잠시 뒤 밤 10가 넘은 시각. 학원 수강생들은 모두 돌아가고 상진 혼자서만 남아 연습하고 있다. 여전히 퉁기기만 하는.
씬16. 몽타주
- 방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 학원에서 홀로 남아 기타를 연습하고 있는 상진. 한쪽 간이 침대에서 쭈그려 자고 있던 강사 시끄러운 듯 괴로워하고.
씬17. 기타학원 (다른 날)
제법 그럴듯한 연주를(아주 쉬운 곡으로)하는 상진.
현주 ; (어느새 들어와) 대단하다. 난 소리내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는데.
상진 ;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현주 ; 난 이현주야. 너랑 같은 1학년이고, 학교는 동방여고 다녀.
성진 ; ?
현주 ; (옆자리에 앉으며) 말 놔도 되지?
상진 ; 그. 래. 뭐.
현주 ; (기타 줄을 맞추며) 기타 치는 게 좋아?
상진 ; 그냥 ... 딴 생각이 안 나서..
현주 ; (쳐다보지 않고) 알아? 니 이름 아직 말 안 해 줬다?
상진 ; 응? 응... 내 이름은.
현주 ; (씨-익 웃으며) 김상진 맞지? 창현고 1학년. 우리 잘 지내보자.
상진 ; (이상한 여학생이다 싶은) ...
씬18. 교실
상진 ; (책상에 대고 손가락을 찢는다)
호철 ; 뭐하는 거야?
상진 ; 이래야 기타를 잘 칠 수 있거든.
호철 ; 금방 포기할 줄 알았더니. 머리 나쁜 녀석들은 꼭 끈기로 세상을 살아요. 잘 치냐?
상진 ; 아직,,, 무대에 설 정도는 아냐.
호철 ; (깜짝 놀란다) 너 설마 정말 오디션에 나가려고 그러는 거야?
상진 ; ...
호철 ; 야. 너 설마 쪽팔리게 전교생 앞에서 학교종이 땡땡땡 연주하려는건 아니지.
야 관둬라. 너 학교 일년만 다니고말거 아니잖아.
민석 ; 야.. 거기.. 둘. 조용히 해.
호철 ; (낮은 소리로) 또 시작이다.
민석 ; 이제 곧 시험이야. 공부 안 할거면 자율학습 하지마.
호철 ; 뭐야 임마? 니가 뭔데 명령이야?
민석 ; 여기 니들처럼 시험 포기하고 사는 사람 없으니까 조용히 하란 말야.
호철 ; (벌떡 일어나며) 근데 이 자식을.
씬19. 교무실 복도
원산폭격하고 있는 상진과 호철.
호철 ; 재수 없는 새끼.
상진 ; 너 때문에 이게 뭐냐.
호철 ; 공부 못하는 게 무슨 죄나? 우리가 무슨 동네북이냐고.
상진 ; (교무실 쪽으로 오는 은서를 본사) 헉! (호철 쪽으로 급하게 고개를 돌린다)
호철 ; 왜 그래? 뭔데?
상진 ; 고개 숙여.
호철 ; (은서를 발견하고) 너도 참 재수 어지간히 없다.
상진 ; 조용히 해. (고개를 최대한 숨긴다)
선생 ; (하필 그때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너희 둘 이제 일어나.
호철 ; (벌떡 일어난다) 아싸!
선생 ; (연전히 엎드려 있는 상진에게) 넌. 넌 일어나라는 소리 안들려?
은서 ; (교무실에 출석부를 가져다 놓고 복도로 다시 나온다)
상진 ; (끝까지 엎드린 채 고개 숙이고 있다)
선생 ; 야 이 자식아. 너 지금 반항하는 거야?
호철 ; (발로 툭툭치며) 일어나. 갔어.
상진 ; (그제야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선생 ; (기 막힌) 너 임마 왜그래?
씬20. 기타학원
기타를 연주하는 상진, 몰라보게 달라졌다.
현주 ; (감탄) 내가 <라리아네의 축제> 칠 때 소리도 못 내더니... 방학내내 기타만 쳤구나?
상진 ; (쑥스러운)..
현주 ;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씬21. 음악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은서의 모습.. 상진 고개를 길고 빼고 본다.
그 위로 팅-가-팅거리는 수준의 기타 소리 들려오고 칠판에 <클래식 기타 독주 부문 오디션>이라고 적혀 있다.
선생 ; (더이상 들을 수 없다는 듯 한숨 푹 쉬며) 그만, 자 다음..
상진 ; (비장한 표정으로 일어나 나간다)
선생 ; (상진을 보며) 너 3반 음치 아냐. 너도 참가하려고?
상진 ; 네.
선생 ; 곡목은?
상진 ; 아스투리아스요.
선생 ; 뭐? (어이없는 웃음) 음도 못 맞추는 녀석이. 설마 장난치는 거 아니지?
상진 ; 아닙니다.
선생 ; (시작하라는 듯 고갯짓하고는 이내 딴 짓이다) 야. 철민아. 교무실 내 책상위에 가서 보면 검은 파일이 있거든..
(하는데 상진의 연주 솜씨에 멈칫한다)
씬22. 교무실
음악 선생님 자리에 멀쭘하고 서있는 성진.
선생 ; 야.. 너 다시봤다. (상진 손을 보며) 기타 제대로 배운 티가 나는구나.
상진 ; 감사합니다.
선생 ; 근데,, 너 이번에 꼭 독주를 해야되겠냐?
상진 ; 네?
선생 ; 실력이랴 니가 제일인데, 음악제는 주로 2학년 위주로 나가거든. 2학년 애들은 이번 축제 아니면 안되잖아.
상진 ; (청천벽력이다) 그럼 전.. 이번에 못 나간다는 말씀이세요?
선생 ; 아니.. 그런건 아니고,, 혹시 이중주는 어떠냐? 선배뒤에서 커버도 좀 해주고.
상진 ; (풀죽은) 네.
씬23. 복도
청소시간, 상진 복도를 쓸고, 밀걸레를 밀며 복도를 씽씽 달리는 호철, 거의 논다.
호철 ; 오디션 어떻게 됐어?
상진 ; (대답할 기분 아니다. 시무룩한)
호철 ; 거봐. 처음부터 무리라고 했잖아. 6개월 연습해서 무대에 선다는게 말이되?
그리고 너 같은 투명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한테 막 주목받고 그런다는게 역사가 용서할 일이 아니지.
상진 ; 투명인간?
호철 ; 잔인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현실을 인정하란 말이지.
너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나간 자리 든 자리가 티가 안 나는 녀석이 어딨냐?
상진, 괜히 심통이 나는지 달리는 호철의 발에 태클을 건다. 복도에 나뒹구는 호철.
씬24. 교실
종례시간.
민석 ; 차려. 경레.
담임 ; 김상진 일어나 봐.
상진 ; ?
담임 ; 너 기타 쳐?
상진 ; 네?
담임 ; 정말 니가 음악제에 나가는 거 맞냐고?
아이들 ; (상진을 돌아본다)
민석 ; (관심 없다는 듯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담임 ; 기왕 나가는 거.. 학급 망신시키지 말고 잘해. 알았어?
상진 ; 네.. (앉는다)
호철 ; 너 정말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자신 없으면 포기해 임마. 세상 오기로 사는 거 아니다.
상진 ; ...
씬25. 운동장
축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은서를 찾고 있는 상진. 문예반의 시화전이 열리고 있는 곳에서 은서가 설명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은서의 시를 들여다보는 상진.
호철 ; (건들건들 다가오며) 보면 알아?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아 골치 아퍼.
상진 ; 은서.. 글씨도 되게 잘 쓴다. 근데 문예반인가?
호철 ; (아무 생각없이) 몰랐어?
상진 ; (버럭) 정말? 그걸 왜 지금 말 하냐?
호철 ; 알았으면 문예반 들어가려고? 얌마 꿈깨. 아무나 받아주는줄 아냐? 전교 상위10% 이상이야.
넌 임마 서류전형에서탈락이다.
현주(e) ; 상진아.
상진 ; (깜짝 놀라 돌아보면 현주가 서 있다) 어쩐 일이아?
호철 ; (의외라는 듯 상진을 쿡 찌른다)..
현주 ; 어쩐 일이긴. 구경왔지.
상진 ; (은서가 신경 쓰여 보면 어디론가 가고 없다. 그제야 안심되는 듯 웃는다)
현주 ; (종이로 어깨를 치며) 팜플렛 보니까 네 이름 있던데 구경오란 말도 안해?
호철 ; (상진을 치며 넉살좋게) 녀석이 워낙 숫기가 없어서.. (느끼하게) 윤호철입니다.
현주 ; 그래 난 이현주. 반갑다.
호철 ; (혼자 궁시렁) 대뜸 반말이시네.
현주 ; 난.. 친구들이 기다려서 그만 갈게. 연주 .. 잘해!
상진 ; 고마워.
호철 ; (현주의 모습을 보며) 누구냐.. 저 당돌한 영혼은..
씬26. 체육관
무대앞 쪽 음악의 밤이라는 플랜카드 걸려 잇고 혼성 합창 순서가 끝을 맺고 내려간다.
뒤이서 기타을 들고 선배와 무대에 등장하는 상진.
객석에는 오버하며 환호성 하는 호철도 있고,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현주도 있다.
하지만 상진의 눈에는 은서와 민석만 선명하게 보일 뿐이다.
슈베르트의 밤과 꿈을 연주하려는 두 사람. 서로 눈짓이 오간다.
중간에 틀리는 선배. 당황하면 괜찮다는 듯 눈짓하며 커버해주는 상진. 하지만 두 사람이 연주를 하건 말건 객석은 소란스럽다.
실망하는 상진. 은서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연주를 끝내고 무대 뒤쪽에서 기타를 정리하는 상진과 선배.
선배 ; 미안하다. 내가 실수 많이 했지? 넌 정말 잘했는데.
상진 ; (시무룩) 뭘요. 아니예요.
씬27. 기타 학원
혼자서 연주를 해보는 상진. 그간의 노력이 허무하게 여겨지는지 한숨을 푹 내쉰다.
현주 (e) ; (박수치며 환호까지 해준다) 잘치네. 백점이야. 백점.
상진 ; 여긴 웬일이야?
현주 ; 너야말로 왜 여기 있어?
상진 ; 그냥.. 아까.. 엉망이었지?
현주 ; 넌 잘 쳤어. 선배가 좀 틀리긴 하더라.
상진 ; (기타를 만진다)
현주 ; (상진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나랑 이중주 한 번 해 볼래?
아까 <밤과 꿈>으로 함께 연주하는 현주와 상진. 호흡이 척척 맞는 것을 느끼는지 간간이 서로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f.o)
track 3 사랑
옆화면
- 도서관, 책장 사이로 은서의 책 읽는 모습을 바라보는 상진.
현주.. 낑낑대며 수십 권의 책을 들고와 상진 옆에 와르르 내려놓는다.
씬28. 복도 + 교실
헐레벌떡 달려 오는 호철. 교실로 뛰어 들어와 상진을 찾는다.
호철 ; 너 그게 정말이야?
상진 ; 뭐가.
호철 ; how, why, because, what, of my god !!
상진 ; 어디 아프냐?
호철 ; 니가 감히 너같이 하찭은 녀석이, 문예반에 합격했다는 게 거짓말이지?
상진 ; 그거 가지고 이 호들갑이야?
호철 ; 내가 흥분 안하게 생겼어? 너 국어 교과서에 나온 거 말고 읽은 소설있어?
상진 ; 같이 이중주했던 형이 문예반 회장이더라. 은서 때문에 그냥 한번 물어봤는데 테스트 없이 받아주기로 했대.
호철 ; 다시 한번 생각해봐. 거긴 책도 많이 읽어야 되고 독후감도..
민석 ; 거기.. 언제까지 떠들거야.
호철 ; (한풀 꺾여 조용해진다) 재수없는 자식.
(상진의 어깨를 치며) 그래 임마! 어떻게든 저 자식 기 좀 꺾어놔라. 이 형님이 도와줄게.
상진 ; (할말을 잃는다)
씬29. 서클룸
흑판에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독서토론이라고 적혀 있고 흑판 앞쪽 연단에는 대여섯명의 패널들이 앉아 있다.
상진을 포함한 나머지 학생들은 관전. 몽타쥬식으로 짧게 학생 발표 이어진다.
민석 ; 이 소설은 서구 철학의 이분법적 전통에 따른 이성과 감성의 대립, 선과 악의 대립, 신과 인간의 대립에 대한 성찰을 통해
죄와 벌의 심리적 과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학생 1 ; 소설의 무대가 상트페테프브프크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론은 그의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됐으니까요.
은서 ;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책을 통해 서구적인 합리주의와 그 혁명 사상에 일침을 가하고자 합니다.
상진 ; (그저 멍~)
씬30.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책을 펴놓고 자고 있는 상진.
호철 ; (쯧쯧 거리며 다가와) 그러기에 어울리는 짓을 해라.
상진 ; (기지개를 편다)
호철 ; 여자하나 때문에 김상진 몹쓸짓 참 많이 한다. (이방인을 보며) 이게 무슨 책이냐?
상진 ; 그냥 책이지 뭐.
호철 ; 제목도 어렵네. 이방인? 까뮈? 술이름 아냐.. 술 얘기 나와?
상진 ; 나도 몰라.
호철 ; 알 리가 없지.
상진 ; (혹시나 하는 맘) 엄마가 죽었는데 어제인지 오늘인지 모른다는게 무슨 뜻 같냐?
호철 ; 뭐?
상진 ; 그리고 또 햇빛이 눈이 부신데 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지?
호철 ; 뭐라는 거야.
상진 ; 관두자.
호철 ; 그나저나 너.. 현주하고는 요즘 잘 안 되냐?
상진 ; 걔하고는 아무 사이 아니라니깐.
호철 ; 내가 어제 공원에서 걔 봤거든.. 너 기타 학원 그만뒀다고 되게 섭섭해하던데? (쪽지를 건네며) 전화해 달란다.
그리고 너희집 번호도 내가 가르쳐줬어. 너 이참에 정반장 관두고 걔랑 잘해보지 그래? 호탕한 성겨 좋잖아.
상진 ;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저쪽으로 가 버린다)
호철 ; 하여간 머리 나쁜 녀석들이 꼭 한 여자한테 목을 매요. 얌마. 같이 가.
씬31.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상진과 현주.
현주 ; 호철이 한텐 전화번호 받았어?
상진 ; 응.
현주 ; 손 좀 보여줄래?
상진 ; ?
현주 ; (덥석 잡아서 이리저리 살피는) 말짱하네? 근데 왜 전화 안했어?
상진 ; (당황해서 손을 뺀다. 주위 눈치 살피는)
현주 ; 어떡하냐.. 김상진. 백주 대낮에 손목을 잡혔으니.. 이 누나가 책임질까?
상진 ; (너무 당황했다 싶어 피식 웃는다)
현주 ; 이젠 기타 안치나 봐. 손톱이 짧네.
상진 ; (그런가.. 새삼 손을 본다) 넌?
현주 ; 이젠 너보다 쪼금 더 잘할 걸?
상진 ; 정말?
현주 ; 못 믿는데.. 오늘 한 번 들어볼래?
상진 ; 오늘?
현주 ; 그래 저녁내기 어때?
상진 ; 다음에. 내일.. 중요한 일이 있거든.
현주 ; 그래? (아쉬운 듯 살짝 웃는)
씬32.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까뮈 해설집을 들고 그대로 외우는 상진. 제법 유창하다.
상진 ; (자신있는 표정으로) 알베르 까뮈는 주로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돌,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그리고 죽음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 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씬33. 써클룸 (위의 씬에서 이어지듯)
연단에서 발효하는 상진. 연습 때와는 달리 버벅거리고 있다.
상진 ; 그래서 ... 까뮈가.. 이.. 책에서.. 저기.. 그게..
민석이의 비웃는 듯한 얼굴이 보인다. 그 옆자리에 앉아 있는 조용한 은서의 얼굴.
좌절하는 상진.
씬34. 도서관
폐관을 알리는 벨이 울릴때까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상진. 독서카드에 점점 더 많은 도서목록들이 빼곡이 채워져 간다.
씬35. 마당
마당에 있는 샘에서 빨래를 하는 상진모. 방에서 나오는 상진에게.
상진모 ; 또 도서관 가는 거냐? (손을 훔치며 상진에게 다가간다)
상진 ; 응.
상진모 ; 방학내내 고생한다. (용돈을 주며) 이거 가지고 가서 맛있는거 사먹어.
상진 ; 나 공부하는 거 아냐. 책만 읽는단 말야.
상진모 ; 그게 그거지. 어차피 집에 돈 있어봤자 니 아버지 술값으로 다 날려. (주머니에 찔러넣어주며) 몸이 첫째야. 쉬엄쉬엄 해.
상진 ; (괜히 미안하진다) 공부하는 거 아니라니깐.
씬36. 도서관 앞거리
함께 길을 걷는 은서와 현주.
은서 ; 엄마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셔.
현주 ; 그래.
은서 ; 중학교때 늘 붙어 다녔잖아. 아직도 학교 따로 간 걸 서운해 하신다니까. 나도 너랑 다닐 때가 제일 좋았는데.
현주 ; (팔짱을 끼며 친근하게) 그치.. 이 언니만한 인재가 없지? 하하 근데, 정은서. 혹시 너네 학교에.. (그러다 누군가를 본다) ?
은서 ; (현주의 시선 머무는 곳,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상진 얼핏보이고)
씬37. 도선관
책 읽고 있는 상진 뒤로 다가가 깜짝 놀래키는 현주.
상진 ; (깜짝 놀란다. 주위를 살패며 창피한 듯 목소리 낮춰) 웬일이야?
현주 ; (상진이 읽고 있는 책표지를 보며) 요즘 책 속에 파묻혀 산다며?
상진 ; 어떻게 알았어.
현주 ; 다 아는 수가 있지. 전화는 왜 안한거야?
상진 ; 아니.. 뭐. 그게.
현주 ; 우물거리는 건 여전하구나.. 나가자.
씬38. 분식집
현주 ; 아까 읽고 있던 책이 성이었어?
상진 ; 응.
현주 ; 재밌어?
상진 ; 아니, 억지로 읽는데 재미도 없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현주; 그렇지? 재미없지?
상진 ; 그나저나 주인공이 왜 성에 못 들어가? 아무 이유가 없잖아.
현주 ; 응. 아무이유 없어.
상진 ; 뭐라고?
현주 ; 그게 정답이야.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게 말이야. 그 소설의 핵심은 아무 이유없이 한 사람이 그렇게 배척당하는 거래.
성은 체제를 상징하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체제로부터 개인이 억압당하는데 해결의 전망이 없다는 거야.
상진 ; (감탄의 눈길)
현주 ; 그렇게 볼 거 없어. 우리 언니가 국문과거든. 무슨 말인지는 나도 모른다고.
상진 ; 너도 책 많이 읽어?
씬39. 현주의 집
서재 벽을 가득 메운 책을 보며 놀라는 상진.
현주 ; (책 몇 권을 뽑아 상진에게 건네며) 읽어보면 도움이 될거야.
상진 ; 여기 있는 책 다 읽어봤어?
현주 ; 대충.. 읽고 싶은 거 있음 말해. 빌려줄게.
상진 ; 고맙다.
현주 ; 근데 왜 그러는 거야?
상진 ; ?
현주 ; 기타에서 이번엔 책까지. 죽기 살기로 하는 이유가 뭐냐고.
상진 ; 글쎄 그냥.. 어떤 사람보다 내가 한참 부족하게 느껴져서. 자꾸만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
현주 ; 그 어떤 사람이 남자야 여자야?
상진 ; (대답하지 않고 웃는다)
현주 ; (상진을 쳐다본다)..
씬40. 방안
책상 위엔 현주에게 빌려온 책을 가득히 쌓여있고, 그 엎엔 은서 그림 붙어있다.
상진, 누워서 멀뚱한 천장을 바라보다 책을 읽는다. (f.o)
track 4. 맨 처음 고백
옆 화면
- 운동장 벤치에 은서와 나란히 앉아 있는 상진.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현주.
씬41. 2학년 교실
쉬는 시간에도 여전히 책을 읽고 있는 상진. 심심한지 계속 시비를 거는 호철.
호철 ; 야, 책벌레.
상진 ; 왜 또.
호철 ; 나 요즘 심각하다.
상진 ; 왜?
호철 ; 사는 게 허무해.
상진 ; (피식 웃는다)
호철 ; 웃지마 임마. 나 지금 진지해.
상진 ; (웃음 참으며 책장을 넘긴다) 누가 뭐래?
호철 ; (책을 뺏으며) 너 임마. 1년 넘게 죽어라 책 읽으면 뭘해. 뭐가 달라지는 게 있어야 말이지. 아직 은서가 니 이름도 모르지?
상진 ; (새삼 가슴 아프다) 글쎄. 그럴 걸..
호철 ; 거 봐. 너도 허무하잖아. 그만 꿈에서 깨어나. 짜식아.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와라. 안 어울리게 무슨 책이냐.
그냥 놀자. 나.. 심심하단 말야.
씬42. 서클룸
<성>에 관한 독서 토론회. 민석과 상진, 함께 패널자격으로 연단에 앉아 있다.
민석 ; 카프카는 이 책을 통해 개인의 소외란 부분에 대한 그리고 인간성 회복에 대해 말하고자한 것입니다.
상진 ; (손을 든다)
사회자 ; (발표하라는 손짓)
상진 ; 방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카프카의 <성>을 바라보는 것은 <성>에 대한 오독의 전형이 아닐까 합니다.
민석 ; (니가 감히! 라는 시선으로 상진을 본다)
씬43. 학교 건물 뒤뜰
친구와 함께 있는 호철. 지나가는 여학생들에게 수작을 건다.
호철 ;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후배들. 인생이 허무하지 않나?
여학생 ; (모른척 지나간다)...
호철 ; 그래. 가라. 가. 어차피 혼자 사람 세상.
남학생 ; 너 왜 그래 임마.
호철 ; 너처럼 단순한 놈은 몰라도 돼. (교실 쪽으로 가며) 아~ 허무해.
서클룸 창문너머 앞에 나와 앉아 있는 상진의 모습이 보인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호철.
씬44. 써클룸
호철이 들어서면 여전히 상진이 발표중이다.
상진 ;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 개인의 실존 문제를 그 자체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카프카 시기에서 미래에 다가올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끔찍한 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논리 정연한 상진의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만 한 호철.
그뿐만이 아니다. 1학년 후배들은 대단하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고 은서는 상진의 말에 집중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씬45. 복도
호철 ; (상진을 뒤따라가며 찔러본다) 너 내가 아는 김상진 맞어?
상진 ; (피식 웃는다)
호철 ; 니 입에서 나온 말이 한국말 맞는 거냐고?
상진 ; (앞쪽에서 민석과 은서가 다가오자 얼어붙는다)...
은서 ; (살짝 웃으며 상진을 지나쳐 가며 말을 건넨다) 수고했어. 잘 하더라.
민석 ; (표정 굳어지고)..
상진 ; (용기를 내어) 정은서.
은서 ; (뒤돌아본다)
상진 ; 내 이름.. 김상진이야.
은서 ; (웃는다) 알고 있어.
상진 ;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이다)
호철 ; (믿을 수 없다)
씬46. 교무실 안팎
음악 선생님에게 불려와 멀쭘하게 서 있는 상진,
상진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정신없이 딴 짓 하는 척 하며 툭툭 말 건네는 선생님.
호철, 출석부를 가져다 놓으며 상진 쪽을 흘끔거린다.
선생님 ; (괜스레 책상정리) 너. 문예반이었어? 축제때 연합 독서토론회 나간다며? 바쁘겠네?
바빠도 음악제에 나가. 나가서 기타 쳐.
상진 : 네? 저기.. 선생님.
선생님 ; (말 가로막으며) 문예부 선생에겐 미리 얘기했어. 거긴 너 없어도 되잖아.
기타 안 친지 오래됐어? 그래도 네가 나가. 나가서 기타 쳐.
상진 ; 근데요 선생님.
선생님 ; 기타 안 친지 오래됐으면 기타 새로 안 샀겠네? (턱하니 기타까지 건네며) 자! 이거 가지고 가서 기타 쳐.
상진 ; 선생님.
선생님 ; 학생이 선생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씨익 웃으며) 됐다. 가. 가서 다시 오지말고 기타 쳐.
상진 ; (얼떨결에 기타를 받아들고 나가는) ...
선생님 ; (뒤에 대고) 작년엔 이중주라 실력 발휘 못했지? 이번에 기대하마.
잠시 뒤. 교무실 밖으로 나오는 상진. 옆에 따라붙어 호들갑스러운 호철.
호철 ; 야.. 학교가 미친거 아냐? 인재가 그렇게 없어? 어떻게.. 어떻게 김상진 니가 나보다 유명해질 수 있지?
상진 ; (웃는다)
씬47. 체육관
음악의 밤. 일년 전 축제 때와 같은 상황. 무대에 혼자 오르는 상진, 객석에서 은서를 찾는다.
은서 옆에 현주의 모습 보인다. 잠시 멈칫. 상진의 자리에만 조명이 드리워져 있다.
연주 시작 전, 시끄러운 객석을 바라보며 심호흡 잠시. <아스투리아스>를 연주한다. 갑자기 조용하지는 객석.
씬48. 분식집 (위의 씬과 연결)
상진이 마지막 음을 퉁기자 터지는 박수소리. 문예반 애프터에 와서 앵콜로 연주를 한 것이다.
스타에 환호하듯 소릴 지르는 문예반 여학생들. 은서도 열심히 박수친다. 민석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일어나 간다.
후배 ; 선배님 너무 멋있어요.
상진 ; (수줍게 은서를 쳐다본다)
은서 ; (활짝 웃어준다) 정말 잘 한다. (문쪽의 누군가를 보고 손을 흔든다) 여기야.
상진 ; (보면 현주가 다가오고 있다)
현주 ; 김상진. (꽃다발을 내민다) 축하해.
상진 ; (놀란다) 니가 어떻게.
은서 ; 내 친구거든. 중학교 동창이야. 너희 둘 친하다며? 그래서 내가 불렀어.
상진 ; (어안이 벙벙) 응?
후배 ; 혹시 사귀는 사이에요?
상진 ; (강하게 부정) 아냐 그런 거.
현주 ; (약간 섭섭. 그러나 웃으며) 그래. 아냐. 내가 눈이 얼마나 높은데.
은서 ; (그런 현주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본다)
씬49. 분식집 앞
은서와 현주가 함께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상진.
현주.. 가다가 고개를 돌려 상진을 보며 환하게 웃는. 손을 흔든다.
씬50. 운동장 (다른 날 오후)
벤치에 앉아 은서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상진. 잠시 뒤 맞은편 운동장에서 다가오는 은서의 모습.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상진 옆에 조용히 앉는 은서.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
상진 ; (머뭇거리다가) 나와줘서 고마워.
은서 ; 그래.
상진 ; (또 침묵하다가 눈 질끈 감고 불쑥) 정은서, 나는 네가 참 좋다. (고개를 푹 숙이고 운동화 끈을 맨다)
은서 ; (사이를 두고) 이제 고3인데... 그런 건 대입 끝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거야.
고개를 숙이고 운동화 끈을 잡은 채 그대로 있는 상진. (f.o)
track 5 한 걸음만
옆화면 - 도서관.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은서를 멍하니 지켜보는 상진. 힘없이 자리에 돌아와 보니 책상위에 음료수.
“김상진. 힘내~”라는 메모와 함께. 주위를 둘러본다. 아는 사람은 은서뿐. 힘이 솟는다. 다시 책을 들여다 본다.
씬51. 시립도서관 지하 매점
우동을 먹으면서도 영어 단어 외우고 있는 상진.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던 현주. 상진을 발견한다. 하지만 못 본척 돌아서려는.
상진(e) ; 이현주.
현주 ; (어쩔수 없이 돌아서며 어색하게 웃는) 안... 녕.
상진 ; 왜 사람을 모르는 척 하고 그러냐?
현주 ; (상진 앞에 앉으며 새삼 밝게) 누가? 내가? 너를? 언제? 지금? 설마..
상진 ; (여전하구나 싶어 웃는)
씬52. 휴게실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두 사람.
현주 ; 공부는 할만해?
상진 ; 카프카보다 더 어려워.
현주 ; 바보~ 그게 말이 되냐.
상진 ; 호철이가 그러더라. 난 기초공사가 엉망이라 암만 노력해봤자 모래탑일 거래.. 흐흐.
현주 ; (쓸쓸하게 웃는 상진을 본다)
잠시 뒤, 열람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현주, 망설이다가 상진을 부른다.
현주 ; 저기.. 그럼.. 내가 가르쳐줄까?
상진 ; 네가?
현주 ; 나..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공부도 되게 잘해. (씩 웃는)
씬53. 지하 매점
상진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는 현주.
현주 ; 너 설마 이것도 해석 못하는 건 아니겠지?
상진 ; 응?
현주 ; (눈을 가늘게 뜨며) 이거 한 번 읽어 봐.
상진 ; 뭐? (암담하다)
현주 ; 공부 제대로 하려면 자존심은 버려야 되는 거 아니겠어? 어서 말들어.
상진 ; (더듬더듬 읽는다)
씬54. 몽타쥬
현주 (e) ; 무조건 외워. 영어는 그 수밖에 없어. 너는 끈기 빼면 시체잖아.
중얼중얼 외우며 길을 걷는 상진, 방벽에 온통 영어 단어들로 도배가 되어있고, 새벽까지 중얼대며 누워있다.
거의 맞은게 없는 수학 시험지를 기막혀 하며 상진의 이마에 딱 붙이는 현주.
현주 (e) ; 수학은 개념을 이해했으면 유형별로 하루에 100개씩만 풀어. 틀린 문제는 무조건 외우고.
상진이 문제 푸는 걸 빤히 노려보다 답답한지 장난처럼 목을 조르는 현주.
점점 틀린 개수가 적어지는 수학 시험지. 밥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중얼대는 상진.
호철 (e) ; 보아라 나의 이 찬란한 성적표를.
씬55. 교실
공부하고 있는 상진 옆에서 호들갑스럽게 자신의 성적표를 자랑하는 호철.
상진 ; 뭐가 찬란해? 37등이라며.
호철 ; 어허 니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41등.
상진 ; (대꾸없이 책만 들여다본다)
호철 ; (상진의 책을 확 덮으며) 이 공부는 말야. 너처럼 책상에 엉덩이 오래대고 있다고 장땡이 아니다. 다 요령인 게지.. 음하하.
상진 ; ...
씬56. 도서관 앞. 밤
학생들 거의 빠져 나가고 도서관 불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한다.
가방을 메고 벤치로 와서 앉는 상진과 현주.
현주 ; 그래도 영수가 많이 올랐잖아?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거야. 이제 하산해.
상진 ; 정말?
현주 ; 기초가 된 다음엔 무조건 혼자서 하는 싸움이댜. 딱 죽을만큼만 노력해봐.
(노트를 내민다) 그리고 이거. 암기과목 정리한 거.
상진 ;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현주 ; 고마워! ... 너 지금 이말 하려고 그랬지?
상진 ; (웃는다)
현주 ; 그렇게 웃지마.
상진 ; (그래도 웃는다) 이현주.
현주 ; ...
상진 ; (빤히 보며) 정말 고맙다.
씬57. 복도
3학년 시험을 보는, 숨막힐듯 조용하다. 종이 울리자 학생들 쏟아져나오고.
씬58. 교실
친구 ; (상진의 책을 들고) 와. 완전히 걸레네. 대체 몇 번을 본거야?
상진 ; (대꾸도 없이 국사 책을 보고 암기한다)
민석 ;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옆 짝꿍에게) 조용히 못해?
짝꿍 ; 뭐 임마?
민석 ; 샤프펜 소리 내지 말란 말야. 계속 찍찍거리잖아. (밖으로 나간다)
짝꿍 ; 저 자식 미친거 아냐?
상진 ; (민석의 자리를 보면 책상 위 책들이 찢어져 있다)
씬59. 운동장
성적표를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상진, 표정이 어둡다.
호철 ; 어이! 옆반 친구 여기서 뭐하나? (성적표 보고) 오.. 성적표. 왜 새삼 괴로운척하고 그러나. 쭉 못하던거.
상진 ; (한숨을 푹 쉰다)
호철 ; 그러기에 공부는 아무나.. (성적표 보고) 뭐야? 35등?
상진 ; (머리를 쥐어짜며) 뭐가 문젤까? 왜 성적이 안 오르지?
호철 ; 이 자식.. 지금.. 그게.. 38등한 나한테 할 소리야?
상진 ; (기가 막힌 듯 웃는)
호철 ; 웃어? 너 지금 유세하는 거야? 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하루에 4시간 밖에 안 잔다며?
상진 ; (벌떡 일어나며) 3시간.
호철 ; 뭐?
상진 ; (놀리듯) 3시간밖에 안 잔다. 임마.
씬60. 몽타주
-교실, 시험 보는 상진.. 차근히 문제를 풀고 있고 민석은 다리를 심하게 떨고있다.
-상진, 상진모에게 쑥스럽게 성적표를 내민다. 기뻐하는 상진모. 28등이다.
-운동장, 걸으면서도 중얼중얼 끊임없이 뭔가를 외우고 있고,
옆에서 호철.. 상진의 성적표를 보고 부들부들 떨며 '이 배신자-말도 안돼'-21등이다.
-책위로 코피 몇방울 떨어지고,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돌아오는 상진.
은서네 반 창가쪽, 공부하고 있는 은서 모습 바라다본다.
-교실, 담임..상진에게 성적표를 주며 ‘김상진. 정말 놀랐는데? 이 페이스면 앞으로도 많이 오르겠다.
어느 대학에 갈 건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자“ 식의 조언 - 14등이다.
자신의 성적을 보며 좌절하던 민석은 표정이 일그러져 상진을 노려본다.
씬61. 복도
벽보 앞에 모여 웅성거리는 아이들. 호철과 상진 그 앞을 지나가다 의아한.
호철 ; 뭐야? 정말 석차 공개하는 거야? 아.. 씨 쪽팔리게.
아이들을 밀치고 벽보 앞으로 다가서는 두 사람. 아래쪽부터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름을 찾아 나서는 호철.
호철 ; 아싸. 3등 올라갔다. (393등쯤) 봐라. 임마. 넌 어떤가 보자. (상진은 7등이다) !!
상진 ; (은서는 1등 민석은 11등 확인한다)
호철 ; (경악 또 경악) 김민석 위에 있는 게 설마 니 이름은 아니겠지?
돌아서던 상진. 복도에서 은서와 눈이 마주친다. 은서 살짝 웃어주고 상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노려보는 민석.
씬62. 집 앞
어둑해진 골목.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담벼락에 기대어 널브러져 있다. 상진 다가가 확인하면 민석이다.
상진 ; 김민석?
민석 ; (잠에서 깨어 상진을 보며) 그래. 새끼야. 나 김민석이다. 김민석이라고.
상진 ; 너 술 마셨냐? (부축해서 일으키려고 한다)
민석 ; 이거 놔. (다짜고짜 주먹으로 얼굴을 친다) 재수 없는 새끼.
상진 ; (쓰러진다)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민석 ; (싸울 태세로) 한판 붙자. 왜? 겁나냐 새끼야? 한판 붙자고.
상진 ; (달려든다)
씬63. 공터
민석에게 맞고 쓰러지는 상진.
민석 ; 싸움도 좇나 못하는 새끼가.
상진 ; (그냥 널브러져 있다)
민석 ; 니가 그렇게 잘났냐? 어? 말해봐 새끼야. 잘났냐구?
상진 ; 너 지금 내가 시험 한 번 이겼다고 이러는 거냐?
민석 ; 웃기지마. 너까짓게 감히 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상진 ; ...
민석 ; 널 보면 그냥 재수 없어. 알아?
상진 ; (피식 웃는다)
민석 ; 왜 웃어 새끼야?
상진 ; (소리내어 크게 웃는다. 드디어 민석에게서 해방된 기분인 듯)
잠시 뒤,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
민석 ; (땅바닥의 풀을 뜯으며 퉁명스럽게) 넌 공부 왜 하냐?
상진 ; 뭐?
민석 ; 공부 왜 하냐고.
상진 ; (은서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는 넌 왜 하냐?
민석 ; 모르겠다. 내가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왜 1등을 놓치면 안 되는 건지.
상진 ; ...
민석 ; 니가 왜 재수 없는 줄 알아? 넌 뭐든 재밌어서 하는 놈 같아 보이거든. 그게 나한테 얼마나 거슬리는 줄 알기나 해?
(일어난다)
상진 ; (비틀거리는 민석을 보며) 괜찮겠어?
민석 ; 잘난 척 하지마 새끼야. 난 김민석이야..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상진 ; (혼잣말로) 그래 넌 김민석이다. 난 김상진이고.
씬64. 교실 (아침)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등교해 교실로 들어서는 민석.
책상위에 송창식 판이 놓여져 있다. ‘답답할 때 들으면 괜찮다’라는 메모와 함께.
얼굴에 대일 밴드를 붙이고 모르는 척 공부에만 열중하는 상진..(f.o)
track 6. 그대 있음에
옆 화면 - 80년대 학력고사 풍경.
대학교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는 상진. 옆에서 열광하는 호철.
씬65. 방안
수화기 들기를 망설이는 상진. 긴장한 듯 방안을 서성거린다.
상진 ; (기어이 결심한 듯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은서네 집이죠? 은서 있어요?
씬66. 집 앞
골목길을 달려가는 상진. 드디어 고백할 시간이 온 것이다. 기대감. 불안감.
이런 복잡한 심경을 떨쳐버리려는 듯 골목길을 달려 내려간다. 그런 상진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
현주 ; 김상진.
상진 ; 어. 현주야. 어쩐 일이야?
현주 ; 축하해주려고, 연대 들어갔다며?
상진 ; 고마워. 네 덕분이다.
현주 ; (사이를 두고 어색하게) 난.. 니가 고대 쓸 줄 알았는데.
상진 ; 둘 다 비슷하더라. 잘 몰라서 그냥 지원했어.
현주 ; 난.. 어디 합격했는지 안 물어봐?
상진 ; (그제야) 맞다. 넌?
현주 ; 난 고대.
상진 ; (의외라는 듯) 그래? 아쉽다. 그럼 나도 고대 쓸 걸.
현주 ; (피식) 정말?
상진 ; 같이 기타 서클 같은데 들었으면 좋았을 거 아냐.. (시계보며) 근데, 현주야. 나 약속이 있거든? 다음에 만나서 얘기할까?
현주 ; 응? 그래 뭐.
상진 ; (뛰어가면 손을 흔든다) 전화하게.
현주 ; (같이 손 흔들다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씬67. 운동장
멀리 운동장으로 은서가 오는 모습이 보인다. 떨리는 듯 심호흡을 하는 상진.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상진 ; (침묵을 깨는) 합격 축하해.
은서 ; 응 너도.
상진 ; (은서 니 덕분에) ..삼 년이 참 금방도 지나갔다.
은서 ; 그래.
-어색한 침묵-
상진 ; (용기를 내어) 저기.. 앞으로 계속 전화해도 돼?
은서 ; (땅바닥만 바라본다)
상진 ; (대답을 기다리기가 힘들다)
은서 ; 상진아 미안해.
상진 ; (운동화 끈을 천천히 다 맨 후 몸을 일으켜 웃는다. 아주 환하게) 응. 그래.
은서 ; (일어나 간다)
상진 ; 정은서.
은서 ; (돌아보며)
상진 ; 어쨌든 고맙다.
은서 ; (희미하게 웃는다)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현주.
씬68. 카페
현주와 함께 앉아 있는 초췌한 모습의 상진.
상진 ; (담배를 입에 문다)
현주 ; 입학도 하기 전에 담배부터 배웠어? (담배를 뺏으며) 그래도 누나 앞에선 참아라.
상진 ; (피식)
현주 ; 왜 웃어.
상진 ; 넌 항상 그대로구나.
현주 ; 항상 그대로라.. 좋은 뜻이지? 무게 좀 그만 잡아. 왜 그래.
상진 ; 그냥 좀 허탈하네.
현주 ; 예전에 니가 그랬어. 어떤 사람 때문에 끊임없이 뭔가 채워야만 한다고. 이제는 그럴 수 없어서 허탈한 거야?
상진 ; 똑똑한 건 여전하구나.
현주 ; (잠시 머뭇거리다가) 난 어때?
상진 ; 뭐?
현주 ; 나 상당히 괜찮은 여자야. 네가 잘 알고 있다시피 성격 좋지. 기타 잘 치지. 공부 잘하지. 게다가 얼굴까지 예쁘잖니.
난 어때?
상진 ; (피식 웃는다) 농담하지마.
현주 ; 농담 아냐.
상진 ; (장난인지 진심인지 여전히 구분되지 않는다. 또 웃는다)
현주 ; 어이, 거기 얼뜨기 같은 학생.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대답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상진 ; (웃지 않고 똑바로 쳐다본다)
현주 ; (꽤 진지한 표정이다)
잠시 뒤. 그들 앞에 김치볶음밥이 놓여져 있고 현주는 거의 먹지 못하고 있다.
상진 ; 미안해. 니가 너무 아까워서 안되겠다.
현주 ; (갑자기 의자 뒤로 몸을 파 묻으며 하하 웃는다) 비겼네.. 이제 일대일이다.
상진 ; 뭐가?
현주 ; 너도 채이고 나도 채였잖아. (갑자기 식 웃으며 밥을 먹기 시작한다)
상진 ; (어리둥절)
현주 ; 호철이 말이 맞긴 맞나보다.
상진 ; ?
현주 ; 넌 타고난 바보래. 어쩜 짝사랑을 해도 그렇게 미련하게 하니? (씩씩하게 먹으며) 이 누나는 채여도 이렇게 씩씩하게
밥을 먹잖아. 어이 바보! 앞으론 누굴 좋아하더라도 밥은 먹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해라. 응?
상진 ; (웃는다)
현주 ; 내가 읽은 어떤 책에 ‘정열이 고갈된 곳에서 지혜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더라.
상진 ; 그게 무슨 말이야?
현주 ; 나도 몰라. 그냥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
상진 ; 고맙다.
씬69. 버스 정류장 (밤)
버스를 기다리는 두 사람.
상진 ; 내가 데려다 줄까?
현주 ; 실연 한번 당하더니 어른 됐네? 그래서 사람들은 실연도 당해보고 그래야 된다니까.
상진 ; (피식 웃는다)
현주 ; 근데 어쩌지? 난 버스에서 약속 있어.
상진 ; 버스에서?
현주 ;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만약에 근사한 남자면 사귀자고 말해 볼거거든.
상진 ; 뭐?
현주 ; (웃으며)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다. 몰랐어? 갈게.
달려가 급하게 버스에 올라타는 현주. 하나 남은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옆에 앉은 사람은 남학생이다.
창 밖 상진에게 씽긋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현주. 마주보며 웃는 두 사람..
버스가 출발하자 상진, 지켜본다.
씬70. 버스 안 (밤)
남학생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앞만 보고 가던 현주. 참았던 눈물 한 방울 뚝 흘린다.
현주 (na) ;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씬71. 몽타주 (이어지듯)
- 새벽, 골목길에서 신문을 옆에 기고 동이 트는 모습을 바라보는 상진을 지켜보는 현주.
현주 (na) ; 그날 따라 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 언덕위를 오르내리며 신문 배달하는 상진, 현주의 집 대문 아래로 신문을 넣는다.
- 마당을 쓸던 현주, 급히 우유를 들고 뛰어나가보지만 이미 상진은 멀리 달려가고.
현주 (na) ; 처음엔 늘 우울하고 비장한 표정을 짓는 그 애가 그저 조금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실수 없이 어려운 곡을 끝내자 환하게 웃는 상진.. 현주 창 밖에서 몰래 보고있다.
-도서 열람실 현주.. 상진과 책을 읽으며 토론하고 있고
-일반 열람실 현주,, 상진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다.
현주 (na) ; 그러다 점점,,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날아가는 그 애 곁에서 언제부턴가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꾸만 미련한 그 녀석이 보고 싶어졌죠.
-56씬,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상진 모르게 쓸쓸한 미소를 짓는 현주..
- 도서관, 메모와 함께 몰래 음료수를 올려놓는 현주. 하지만 상진.. 은서라고 착각하고 있다.
- 기타학원, 연습을 하다가 문득 벽에 낙서를 하는 현주.
현주 (na) ; 하지만 그애는 바보처럼 나에게 고맙다고만 합니다. 고맙다는 말, 참 아프더군요.
-은서에게 거절 당한 뒤 학교 운동장, 달리고 있는 상진을 멀리서 바라보는 현주.
현주 (na) ; 난 그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끝내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편지...네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행복했어. 그러니까.. 나도 니가 <고마워>.. 편지를 구기는 현주
-편지를 들고 우체통 앞에서 망설이다 돌아온다.
현주 (na) ; 그치만 다행입니다. 이상한 오기 때문에 편지들은 보내지 못했습니다. 참 잘한 일인것 같습니다.
씬72. 버스안
현주 혼자 타고 잇다. 눈물을 닦는다.
현주 (na) ;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처럼, 나도 바보이기 때문일까요.
씬73. 밤거리
-상진, 정처없이 밤거리를 뛰고 있다.
씬74. 몽타주
-은서 사진을 태우는 상진
-편지들을 태우다가 불을 끄는 현주
-어지러진 술병과 담배.. 골방에서 술을 먹는 상진.
-바닷가 무언가 소리 지르는 현주. 입가엔 미소가.
stop / power off
옆 화면 - 현재의 상진. 시골 운동장 벤치에 앉아있다.
기타학원.. 창문의 썬팅지는 낡고 반쯤 떨어져 있지만 그대로 남아있다.
씬75. 장례식장
멀리서 은서의 사진을 바라보다 돌아서 나오는 상진. 식당쪽 얼핏 친구들과 호철의 모습 보이고.
씬76. 시골 고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겨울방학이라 텅 비어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추억에 잠기는 상진.
수돗가. 기타를 연주했던 소강당. 써클룸 등..
복도에 은서의 시가 그대로 걸려 있다. 정은서라는 이름 석자에 시선이 머문다.
씬77. 기타학원 내 / 계단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무도 없다. 기타 몇 개 놓여져 있고 책장에 악보, 연도별로 가요집들 어수선하게 놓여져 있다.
그리고 사방의 벽엔 어지럽게 낙서가 되어 있다. 수많은 삐삐번호, 핸드폰번호 그리고 갖가지 서툰 사랑 고백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낙서. (갖가지 댓글들이 무수하게 달려 있다)
기타 치는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바보, 너의 뒤에서..1992. 11>라고 적혀있다 cut to
누군가(현주) 기타 학원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cut to
생각에 잠겨있는 상진. cut to
학원문을 여는 현주. 비어있는 학원 cut to
학원을 나서는 상진. 입가엔 미소 cut to
벽의 그림이 약간 달라져 있다. 남자 옆에 기타 치는 여자의 모습이 덧붙여 있다. <둘이서..2006. 2>라는 낙서와 함께.
그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현주..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