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고맙습니다
하늘과 땅이 열리는 우주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녹두꽃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꽃
동학농민들의 피비린내 나는
공주 우금치 전투에 패하여 서울로 압송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근세기 최고의 혁명가 녹두장군 전봉준을 기리는 슬픈 역사가 지금도 황토땅 고부에 가면 민중의 한이 서려있다
뜨거운 여름철이면 이웃집 녹두밭 매는 어머니의 구슬픈 노랫가락인지 어머니에게 어릴 적부터 청승스럽게 듣고 살았다
처음 시작하면 그 노래가 어느새 신세타령이 되어 일이 끝날 때까지 호미로 땅을 다지면서 어머니는 삶을 노래하셨다
나는 그때부터 녹두꽃이 떨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해가 뉘에 뉘에 지는 석양에 녹두꽃이 떨어질까 봐
난 어릴 적부터 녹두꽃처럼
우리 큰아버지도 지지 않길을 바랐다
식구들 먹기 살기도 힘든 시절 우리 큰아버지는 장남이라고 어릴 적부터 나를 데려다가 공부시키고 키워 주셨다
아버지는 일만 죽어라 열심히 했지 식구들 하나 건사하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한다고 큰집에 가시면
큰아버지에게 매번 혼났다 바보짓 그만 좀 하라고
아버지는 천성이 그랬다
아버지는 가족 부양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참 욕심도 없었다 나를 큰집에 보냈으니 가난한 우리 집은 입하나 덜었다
큰아버지는 나를 먹여 살렸고 아예 큰집에 얹혀 살아서 큰집이 나에게는 우리 집이 되었다
큰집에서 구박도 모르고 부모님보다 더 잘해 주셨고 큰어머니는 어머니가 못 채워준 지극 정성으로 그때 참 많이도 고마웠다
우리 큰어머니가 남긴 유언
하나 방앗간 뒤에 텃밭은 나를 주라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참 어이가 없었고 인생이 잔인했다
큰집 식구들에게 부끄럽고 목이 메었다
부족한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해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우리 큰어머니는 나를 놓지 못했다
큰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년 후에
큰집 막내딸 결혼은 내 돈으로
다 준비해서 시집보냈다
난 소방서 30년간 옷하나 신발하나 사본적이 없었다
나에게 돌아오는 지급품으로
생활하고 서울시내는 거의 자전거 아니면 걸어 다녔다
큰어머니께 배운 대로 그 돈을
아껴 돌아오는 26년 7월 4일날 결혼하는 둘째 동생 아들 결혼자금으로 1억 원을 주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제일 먼저 큰아버지 큰어머니 산소부터 가서 소주 한잔 부어놓고
해가 질 때까지 하늘만 쳐다보고 온다
그 시절 어느 집이나 삶이 다들 팍팍했다
자기 자식도 헐벗고 먹고살기 힘든 시절 조카 데려다가 학교 보내기란 쉽지는 않은 일인데 조카 자식 데리다 공부시킨다는 게 세상천지 어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늘 엄하신 우리 큰아버지는 전형적인 선비 같은 꼿꼿한 분이라서 아버지에게 배우지 못한 예의범절을 어릴 적부터 배우고 익혔다
큰집 사정도 여의치는 않았다
형님들 가르치기에도 벅차고 힘들었지만 나 때문에 사촌 동생 하나는 공부도 못 시키고 식구들이 많아서 늘 허덕였지만 자기 자식보다 살뜰하게 챙기고 입히고 학교 보내주시고 먹여 살렸다
지금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촌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참 지극 정성으로 키우셨다
그때 시골 명절에 갈 때마다 나를 키워주신 큰집부터 갔었다 큰집에 먼저 가는 게 편하고 큰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드렸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분들에게 보답은커녕 근심과 걱정만 끼쳐 드렸다
그분들을 평안하게 한번 모시는 게 소원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녹두꽃은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녹두꽃은 지고 세월은 갔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도 언제까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큰아버지 돌아가신 날 숨도 없는 큰아버지의 싸늘하게 식은 손을 잡고 밤새 새벽녘까지 나는 용서를 빌었다 세상이 허망했다
큰아버지는 조카자식에게 유별났다
대학 시험장까지 따라
오셔서 김밥을 사주고 나를 응원하셨다
고결한 인품은 청옥 두타 보다 더 큰 울림으로 깊었다
흩트리지 않은 삶은 태백의 주목보다 더 반듯하고 강했다
내가 살아 가는데 큰길을 열어 주셨지만 난 그분들에게 염치도 없는 못난 사람이었다
녹두꽃은 그렇게 땅에 떨어졌다
황토밭 녹두꽃은 봄날 물에 떠서 흘러갔다
어머니의 노래 가락이 뒷산 밭에서 구슬프게 들려왔다
황토벌 무명옷으로 목놓아 부른 그 노래가
녹두꽃이 피어오르면 한 맺힌 서러움도 올라온다
시간은
물에 풀어놓은
물감처럼 물에 떠서 흘러갑니다
오늘도 하늘에 기대어 작은
희망하나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