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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1세기스피치웅변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유달산(이영근)
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091112목] 세정신뢰 첫 사례 만든 납세자 보호관
국세청이 세정개혁 방안의 하나로 지난달 말부터 시행한 '납세자 권리보호 요청제'에 따라 납세자의 권리침해가 구제된 첫 사례가 나왔다고 한다. 외부에서 영입된 납세자 보호관(국장급)이 세무조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얘기를 듣고 독립적으로 세무조사 중지명령을 내린 것이다. 세무서의 권한 남용이나 조사반의 금품 수수 등 전통적 세정비리에 관련된 사례는 아니라고 해도, 세정의 투명성과 신뢰를 내세운 백용호 청장의 의지를 보여준 첫 작품으로 꼽기에 부족하지 않다.
사안은 간단하다. 개인사업자 A씨는 지난해 관할 세무서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아 부가세 종합소득세 등 수백만원의 세금을 추징 당했는데 올해 또다시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해당 세무서의 납세자 보호담당관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올 7월 개방직으로 채용된 변호사 출신의 이지수 납세자 보호관은 사안을 검토한 끝에 "비정기 세무조사 대상자로 선정될 정도로 명백한 탈루혐의 자료가 없다"며 세무조사 중지를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이 보호관은 국세청 조사국장은 물론 백용호 청장과도 사전에 협의나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무조사 중지권은 단독으로 발동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지만, 첫 권한행사인 만큼 판단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립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에겐 시정요구 명령권, 징계 요구권도 있으나 이번 경우는 세무서나 담당자의 책임을 물을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제한적 결정의 배경도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성격이나 경중을 볼 때 작은 시작일 뿐이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납세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세정 공무원들의 인식이 뿌리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폐쇄적 조직문화와 고압적인 행태를 일삼아온 국세청의 체질에 비춰 섣불리 납세자 권리보호를 요청했다가 나중에 유형ㆍ무형으로 보복 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세청이 진정 납세자 편의를 우선하는 공복으로 자리잡으려면 납세자 보호관의 역할을 홍보하기에 앞서 세정의 주인은 납세자라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백용호 실험의 성패는 그것에 달렸다.
[한겨레신문 사설-20091112목] 꼼수투성이 4대강 예산, 국회는 철저히 가려내야
국회가 오늘부터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시작한다. 주목되는 건 4대강 사업비다. 규모가 막대한 만큼 철저한 심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내년도 4대강 예산은 정부 3조6000억원, 수자원공사 3조2000억원 등 모두 6조8000억원이다. 이것만 해도 큰 규모지만, 환경부 1조3000억원과 농림수산식품부 4500억원 등 다른 부처에 분산된 예산까지 합할 경우 정부의 4대강 예산만 5조3000억원을 넘는다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밝혔다. 수공의 사업비까지 계산하면 8조5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급조된 사업 계획에 따라 시행되는 4대강 사업이 돈만 강바닥에 뿌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그렇듯이 사업비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4대강 사업비는 모두 22조2000억원이 잡혀 있다. 여기에는 수공의 회사채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 1조5000억원을 비롯해 소수력발전 사업비, 취수시설 보완 비용 등 2조원의 자금이 빠져 있다. 그뿐 아니다. 토지 보상가가 오르면 관련 예산은 금방 두 배, 세 배로 부풀어오른다. 또 난공사 구간이란 이유로 설계 변경이 이뤄지면 예산이 크게 팽창하게 된다. 22조원이 아니라 30조원, 40조원의 돈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 예산안 심의는 처음부터 부실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항목별 총액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내역은 전혀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낙동강 시설비 1조6800억원’이라는 식이다. 이런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예산안 심의를 할 수 있겠는가. 이는 국회는 물론 국민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정부야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4대강 사업은 엄청난 국민 세금이 들어감에도 재해예방사업으로 분류하는 편법을 동원해 예비타당성 검토를 거치지 않고 추진돼 왔다. 사업 목적의 타당성은 물론 적정 사업비와 환경 파괴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논란이 심한 사안일수록 꼼꼼한 심의를 통해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다.
감세정책과 재정지출 확대로 정부 재정이 급속히 악화하는 상황이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하지만 실업자는 계속 늘고 있다. 재정 수요가 크기 때문에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때다. 소중한 국민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책임 있는 심의를 촉구한다.
[동아일보 사설-20091112목] 日오자와의 ‘의원 행동지침’과 한국의 금배지들
‘상임위원회 결석은 안 된다. 당내 소그룹 활동은 자제하라.’ 일본 민주당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올해 8월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초선 의원 143명을 상대로 실시하고 있는 ‘소양교육’ 내용이다. 여기에는 ‘회의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 ‘인사와 소개는 큰 목소리로 하라’ 같은 기초적인 행동 지침까지 들어 있다.
아무리 초선이라지만 초등학교 신입생에게나 어울릴 듯한 지침을 주며 기강을 잡는 것은 심하지 않냐는 불만이 나올 법하다. 초선 의원들이 행동거지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14선(選) 대선배의 가르침은 가볍게 여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이었던 2005년 총선 때 처음 배지를 단 83명의 ‘고이즈미 칠드런’이 이번 총선에서 대거 몰락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18대 국회에는 298명 전체 의원 가운데 135명(45.5%)의 초선 의원이 있다. 그러나 어제 마무리된 5일간의 대정부 질문만 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초선 의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무총리나 장관에게 면박을 주고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쏟아내 놓고는, 정작 장관이 답변하려 하면 “됐다, 시간 없다”며 가로막는 의원들은 초선 재선이 따로 없었다. 이달 2일에는 일부 야당 의원들이 단상에 뛰어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대독하려는 정운찬 총리의 팔을 잡거나 면전에 고함을 퍼붓고, 연설이 시작되자 한꺼번에 퇴장했다.
17대 국회 때는 탄핵바람에 대거 입성한 108명의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이 좌충우돌하며 ‘탄돌이’ ‘백팔번뇌’ 같은 말을 유행하게 만들었다. 한 재선 의원이 “초선들 군기를 잡겠다”고 하자 “군기 잡겠다는 사람의 귀를 물어뜯어버리겠다”고 말한 초선 의원도 있었다. 동아일보가 최근 각계 여론 주도층 30명에게 국회가 선진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압도적 다수가 ‘폭력 저질 언동으로 나라 망신시키는 의원의 퇴출’을 꼽았다.
세계 언론은 ‘망치국회’ ‘폭력국회’를 대서특필했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구습을 따라가는 ‘국민 대표’들이 많다. 우리 정치권엔 ‘오자와 초등학교’ 같은 정치학교를 만들어 “국회의원 대접 받으려면 먼저 기본 자질부터 갖추라”고 지도해줄 선배들이 왜 없는지 답답하다.
[조선일보 사설-20091112목] 용산 철도차량기지 터가 중금속과 폐기물로 범벅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대상지인 용산 철도차량기지 터 36만㎡(약 11만평) 부지 가운데 절반가량이 구리·납·아연·니켈 등 유해 중금속과 기름으로 오염됐다고 한다.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의 의뢰를 받은 한국농어촌공사가 토양조사를 해 확인한 사실이다. 땅속엔 폐침목, 폐콘크리트, 소각재, 폐파이프 등의 쓰레기가 묻혀 있다고 한다. 추정 쓰레기 양이 무려 37만㎥나 된다. 기름이 흘러들어 오염된 토양이 13만7000㎥, 중금속 성분으로 오염된 토양도 30만8000㎥로 추정됐다. 이 개발 대상지는 현재 코레일의 수도권 철도차량기지가 있는 곳이다.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다. 철도차량기지에서 트럭 몇만 대를 동원해야 실어낼 수 있는 정도의 쓰레기가 나왔다면 그 땅은 그동안 '지하 폐기물 적치장'으로 사용돼온 것이나 다름없다. 쓰레기 더미와 기름 찌꺼기가 땅속에 가득했다면 주변 지하수도 오염시켰을 것이다. 지하수는 자정(自淨) 기능이 거의 없어 한 번 오염되면 원상태로 복구되는 데 수십, 수백 년이 걸린다.
철도차량기지는 열차를 정비하고 기름을 공급하던 곳이다. 공기업 직원들이 시설을 운영하면서 나온 쓰레기,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나온 철거 폐기물들을 쓰레기장으로 보내지 않고 자기들 땅에 묻어버린 것이다. 기름탱크와 주유시설, 송유관 관리도 엉터리로 했기에 기름이 줄줄 새나왔을 것이다. 묻힌 쓰레기 양으로 볼 때 이런 일이 수십 년 동안 공공연히 벌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토양은 한 번 오염되면 정화처리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기름으로 오염된 토양은 고온을 가해 태우거나 세제 섞은 물로 세척해야 하고, 특수 미생물을 넣어 오염물질을 분해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농어촌공사의 추산으로는 토양과 지하수 오염을 정화하는 데만 1000억원, 땅속 쓰레기를 걷어내는 데도 수백억원이 든다는 것이다.
철도차량기지 터는 코레일과 민간기업들이 출자한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에서 28조원을 투입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과 아파트, 호텔, 쇼핑몰 등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이 사업엔 '드림 허브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드림 허브'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땅속 쓰레기부터 말끔히 걷어낸 후 개발을 해야 할 것이다.
민간 사업장들에서도 생산공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나 건축폐기물들을 자기 땅에 묻어버리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수도권 일대 땅속은 쓰레기 천지라는 것이다. 폐기물관리법은 쓰레기를 몰래 버리거나 묻는 사업자를 7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을 단호하게 적용,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교훈을 남겨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091112목] ‘성남궁’ 지은 이대엽 시장 주민소환감이다
18일 문을 여는 성남시 새 청사의 호사로움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연건평 7만 2746㎡의 9층짜리 청사 본관과 6층짜리 시의회 건물은 수입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치장하고 무반사 지붕패널에다 컬러 복층유리로 장식했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와 체력단련실을 갖췄고 각 층마다 실내 정원까지 꾸몄다. 공무원 1인당 면적이 웬만한 중형아파트 크기인 99㎡이고, 펜트하우스인 양 9층 꼭대기에 있는 이대엽 시장실은 220㎡에 이른다. 이쯤 되면 ‘성남궁전’, ‘한국의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릴 법도 하다.
성남시는 이 청사를 짓는 데 3222억원을 들였다. 최고의 호화청사로 꼽혀온 용인시청사보다 1300억원, 한창 건설 중인 서울시청사보다 940억원이나 많은 액수다. 성남시민 94만명이 34만원씩 청사 건립에 쏟아부은 셈이다. 지난해 성남시가 취약계층을 돕는데 쓴 예산 294억원의 10배가 넘는다. 성남시 측은 호화청사 건립의 명분으로 시민편의 증진 운운하는 모양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녕 주민의 이익을 북돋는 시장이라면 시민 혈세를 이처럼 물 쓰듯 아방궁을 짓는 데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호화청사 문제는 사실 성남시만의 일도 아니다. 민선자치가 시작된 1995년 이후 59개 지자체가 청사를 새로 지었다. 여기에 든 혈세만도 2조 4883억원이다. 지금도 19개 지자체가 청사를 짓고 있다. 지방자치의 위기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주민 세금을 쌈짓돈인 양 펑펑 써대는 지자체장과 공무원, 그리고 이들을 견제하기는커녕 함께 기득권을 챙기는 지방의원들에 의해 비롯된다. 행정안전부가 타당성 조사 의무화 등 제재에 나섰으나 뒷북대응일 뿐더러 효과도 미지수다. 주민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주민소환제를 적극 활용, 혈세를 낭비하는 지자체장에게 경종을 울리고 지방자치를 지켜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91112목] 행안부의 `유동정원제` 첫 시행 기대 크다
'작은 정부'는 어떻게 실행해갈 것이며,불필요한 행정 낭비와 정부 규제는 어떤 식으로 일소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선진사회,일류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공공개혁 방안이 끊임없이 연구되지만 발전의 속도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 게 우리 현실이다.
행정안전부가 어제 시행에 들어간 '유동정원제'는 이 같은 변화를 위한 공공부문 스스로의 작은 노력이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이 제도는 부내 부서별로 직원 5%(86명)를 감축해 희망근로사업,G20회의,신종플루 담당 등 업무량이 증가하는 곳에 재배치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각 부서의 여유인력을 추려 인력수요가 새로 생기는 업무에 배치하되,이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으며 기존 조직의 안정성도 유지하겠다는 의도다.
단순히 보면 유휴인력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융통성을 보인 인력운용 방식도 공공분야에서는 처음 시행되는 것이라는 게 행안부 스스로의 진단이니 정부내 인력활용이 그간 어떻게 운용돼 왔는지 다시한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조직과 정원이 한번 정해지면 좀체 줄어들줄 모를 정도로 경직돼 있는데다 가만히 두면 마냥 비대해지는 것이 바로 공직의 보편적 행태가 아니었던가. 이런저런 업무라도 새로 주어지면 즉각 조직부터 만들고 보고,해당 업무가 종료돼도 늘어난 증원을 줄이지 못해 국내외의 온갖 기구에 '위성'으로까지 보내 인력낭비를 해온 것은 힘이 세다는 부처일수록 일반화된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인력에 여유가 생길수록 공무원들은 새로운 일을 만들 수밖에 없는데 그 일이라는 게 대개 규제강화로 이어지곤 한다는 점이다.
이제 이런 낡은 관행을 끊고 공직도 좀더 유연하게 변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생산성을 계산해야 하며 그러자면 인력이든 예산이든 주어진 재원내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행안부는 이번에 재배치할 유휴인력을 5%라고 진단했는데 부서별로 기존업무를 전면 재검토하면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규제의 개선,행정절차의 간소화,불요불급한 업무폐기 등이 우선적인 검토 방향이다. 유동정원제가 제대로 착근돼 타부처는 물론,지자체로도 조기에 확대되길 바란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유광종(논설위원)-20091112목] 정승 집 강아지
키가 아주 작았던 안자(晏子)에게는 훤칠한 체격의 차몰이꾼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운전기사다. 지혜의 대명사로 존경을 받고 있는 제(齊)나라 재상 안자의 수레를 몬다는 이유로 이 남자는 꽤 폼을 잡았는가 보다. 늘 신이 나 있었고, 자랑스레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하루는 그 아내가 남편의 모습을 문틈 새로 바라봤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헤어지자”고 요구했다.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재상은 차분히 앉아 있는데 높은 데 걸터앉아 의기양양하게 수레를 모는 당신 모습을 보고 천박하다는 인상을 감출 수 없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일화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제 모습이 호랑이가 없는 틈을 타서 우쭐댔던 여우, 즉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경우에 닿아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어 그는 자신의 잘못을 다스린다. 자세가 달라진 차부(車夫)를 보고서 그 이유를 알게 된 안자가 그 점을 높이 평가해 벼슬 자리를 줬다는 게 후문이다.
정승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죽으면 그날의 그 집은 문전성시다. 정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라의 온 벼슬아치들이 조문을 오기 때문이다. 정승이 죽으면 상황은 그 반대다. 권력자인 정승이 죽고 없으니 찾아오는 이는 거꾸로 드문 법이다. ‘정승 집 개’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그래서 많다. 안자의 차부가 독립적인 인격을 이루지 못하고 늘 재상의 권력에 기대 잘난 척을 일삼았던 경우나, ‘정승 집 개’의 권력논리를 체득한 사람들이 당대의 권력자에게 빌붙어 몸종 노릇을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은 텅 빈 강정이다.
친박근혜 계열의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화제다. ‘보스’의 뜻과는 반대로 세종시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다. 호가호위의 단물에 빠져 독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차부와 실력자의 애완동물 처지를 벗어던졌다. 어딘가에 치우쳐 무리를 짓는 편당(偏黨)의 모습은 한국 정치의 일상적 풍경이다. 그럼에도 수도 기능을 이전한다는 중차대한 세종시 문제를 두고 파벌 수장의 견해에 파묻혀 열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친박계 의원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딱하다. 그들의 가슴에 달린 금배지가 아깝다. 요즘 금값도 치솟는다는데.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성수(논설위원)-20091112목] 만학(晩學)
‘수불석권(手不釋卷)’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늘 공부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오나라 왕 손권이 배우지 못한 대장 여몽에게 전쟁터에서도 독서를 권했다는 삼국지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공부에 게을리하지 말라’는 충고는 너무 많이 들어서 말의 윤기마저 사라진 듯하다. 그럼에도 권학(勸學)은 성현의 가르침으로 흔들림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학업에 정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특히 기억력이 떨어지고, 삶의 의지마저 약해지는 노인들에게는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학도 이야기가 종종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만학의 상징’을 꼽으라면 조선말 문장가 박문규를 빼놓을 수 없다. 1887년 83세 나이로 개성별시문과(開城別試文科)에 합격해 ‘최고령 과거 급제’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40대에 공부를 시작했고, 40여년간 수만편의 시를 외워 근체시(近體詩) 권위자로 인정을 받았다. 아홉번 장원급제 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린 이율곡이나, 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등 천재형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박문규의 만학은 또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고종도 향학열에 감동해 종2품 문무관 자리를 2년여 만에 제수했다고 한다.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도 팔순때 만학의 시를 썼다고 한다. “육십여년 긴긴 세월, 따져보면 짧은 세월/완고하신 부모만나, 배울 기회 놓쳤지만/어쩌다 그 긴 세월, 허송으로 보내왔나/이제라도 늦지 않다, 마음먹기 달렸거늘/…(중략)/이제라도 배우는 게, 남은 여생 보람일세”
만학의 꿈을 키워 온 조재구 할머니가 77세의 나이로 오늘 수능시험을 치른다는 소식이다. 서울지역 최고령 응시자라고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유교적 가풍 탓에 진학을 못했고, 남편이 세상을 뜬 후 우울증까지 왔다고 한다. “내 인생을 찾고 싶다”며 공부를 결심했을 때 이미 70대였다는 것이다. 현대판 만학의 상징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노인일수록 뇌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한다. 시인 서정주는 치매에 걸릴까 두려워 하루에 한 개씩 산 이름을 외웠다고 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 말씀이 만학의 깊은 뜻을 웅변한다.
[매일경제신문 칼럼-기자24시/박진주(사회부 기자)-20091112목] 호남권만 빠진 행정구역 통합
10일 정부가 선정한 행정구역 자율통합 대상지에 호남권은 한 군데도 없었다. 선정된 6곳은 수도권 3곳, 충청권 1곳, 영남권 2곳 등이다. 강원도는 신청한 곳이 없으니 사실상 호남권만 빠진 셈이다. 호남권에서는 3곳이 자율통합을 신청했다. 광양만권(여수ㆍ순천ㆍ광양ㆍ구례), 무안반도(목포ㆍ무안ㆍ신안), 전주ㆍ완주 등이다. 이들 지역은 통합을 추진할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광양만권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와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등 메가톤급 이벤트가 마련돼 있다. 무안반도는 1000개가 넘는 수려한 섬을 보유한 관광의 보고로 서남해안레저관광도시와 기업도시도 추진 중이다. 전남도는 이곳을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전주ㆍ완주도 전북의 핵심지역이다. 그러나 이들 세 곳은 자율통합 선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소지역주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목포와 무안은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통합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때마다 무안군은 "목포시가 흡수하려고만 한다"며 반발했다. 통합되면 예산이 목포로 빠져나가고 대신 혐오시설만 몰려올 것이라는 걱정이 작용했다. 전주ㆍ완주도 마찬가지다. 반대하는 완주군민들은 인구가 많은 전주에 예산이 집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지역의 지도를 보면 목포와 전주는 더 이상 뻗어나갈 공간이 없다. 목포시 고위 관계자는 공장을 유치하려 해도 땅이 없어서 못한다고 푸념한다. 기업유치나 관광레저단지를 개발해도 무안이나 완주로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3곳이 통합되면 1조원이 넘는 국비가 호남권에 투자된다.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인 호남권으로서는 `가뭄에 단비`가 될 투자다. 더 큰 지역발전을 위해 소지역주의 장벽을 허무는 데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동십자각/최형욱(금융부 차장)-20091112목] 녹색성장이 생명을 얻으려면
얼마 전 인도에서 한 보행자와 자전거 운전자가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앞서 걷던 보행자에게 자전거 운전자가 비키라고 벨 소리를 울린 게 시비의 발단이었다. 보행자는 "자전거가 왜 차도가 아닌 인도를 이용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반면 자전거 운전자는 "차도는 위험해 이용할 수 없고 도로교통법대로 자전거를 끌고 인도를 걸어갈 거면 뭐 하러 자전거를 이용하느냐"고 반박했다.
자전거가 환경친화적이면서도 저렴한 교통수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관련 인프라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전에 정부가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면서 여러 파열음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도시라 해봐야 인구가 100만~200만명에 불과한 유럽식 모델을 정부가 고집하고 있다"며 "더구나 자전거 출퇴근을 문화 형성이 아니라 자전거 도로 건설, 명품 자전거 생산 등 양적 팽창 측면에서만 접근하면서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 자전거 사례는 최근 '녹색 성장'을 둘러싼 불협화음 측면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질타를 받은 녹색금융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 과정에서 녹색금융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조차 "솔직히 녹색금융의 정의를 모르겠지만 정부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웬만하면 '녹색'으로 포장해 실적을 맞추고 있다"고 고백할 정도다.
사실 이 같은 일선 현장의 혼란은 이명박 정부가 '녹색 성장'을 어젠다로 제시할 때부터 우려돼왔다. '녹색'이라는 화두는 '성장'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는데 이 두 가지를 조화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었다. 물론 전세계적인 기후ㆍ환경기술 장벽을 역이용하고 환경 및 생태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외견상 상충되는 목표인 만큼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무조건적인 투자에 앞서 녹색사업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연구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숱한 논란 속에서도 4대강 사업이 지난 10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 시작한 사업이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4대강 사업이 지역경제 살리기나 수질 개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 공언대로 문화와 생태가 살아 있는 공간이 돼야 녹색 사업이 한때의 유행이나 거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 해우(海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