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2년전...
1976년 8월 1일 오전 9시 45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결승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건국 후 첫 금메달을 쟁취,
한국 스포츠의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양정모의 쾌거는 한국인으로서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씨가
치욕의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이래
40년만에 수확한 두 번째 금메달이며,
건국 후 첫 번째 쌓아올린 금자탑이었다.
양정모는 부산시 서구 하단동에서
양승묵과 박월선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1952년 2월 28일에 태어났다.
씨름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굵은 뼈대와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
그가 스포츠 특히 격투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하교 4학년 때
태권도와 권투 만화를 즐겨보면서부터였다.
5학년 때
동네의 태권도 도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덕원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유도, 육상, 씨름을 하다가
2학년 때 레슬링부에 스카웃되어
레슬링을 시작했다.
건국상고 2학년 때 전국체전에 출전하여
레슬링 고등부 밴텀급의 자유형과 그레코로망형을
석권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부산 동아대학교에 입학한 뒤
국가대표선수를 지낸 오정룡 코치를 만나
실력을 닦아나갔다.
1971년 동경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
자유형에서 은메달,
그레코로망형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 후 한가지 종목에만 전념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위의 권고를 받아
자유형에만 전념하였다.
19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양정모는 소수정예 파견 원칙에
가로막혀 출전할 수 없어
1년동안 레슬링을 포기하다시피 했으나
정동구와 오정룡 코치의 따뜻한 격려로
다시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73년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린
아리아마배 대회에 출전,
페더급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용기와 투지를 얻었다.
1974년 제6회 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양정모는 당시 세계챔피언인
몽고의 오이도프와 맞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따내
세계 정상급 선수로 떠올랐다.
1975년 9월 10일 소련 민스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아마추어 레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는 숙적 오이도프에게 패하여
아깝게 동메달에 그쳤으나
사상 처음으로 소련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게 하는 감격이 있었다.
양정모는 1975년 11월부터 다시 시작된
올림픽 대비 강화훈련에서 체력과 기술에 정진..
마침내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오이도프, 미국의 데이비스와
물고 물리는 접전 끝에 벌점에서 앞서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 게 되었다.
그후 1978년 9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
동년 12월 방콕아시아대회에서 다시 우승..
국가대표로는 국제무대에서 금메달 3,
은메달1, 동메달1를 획득했으며,
청소년대표로는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차지하는 전적을 남겼다.
현역 은퇴 후 조폐공사 레슬링부 감독,
대한레슬링협회이사,
제주도레슬링협회 부회장,
레슬링상비군 코치 등을 역임했고,
(사)한국올림픽참피온클럽 이사장과
'희망나무 커뮤니티' 이사장을 수행중에 있다!
그는 체육훈장 청룡장(1976),
체육회 최우수선수상(1976),
77년 대한민국 체육상(1977)'과
2016년 "스포츠 영웅 명예의 전당"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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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멋집니다..
항상 화이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