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지극히 어려웠고 국민소득이 동남아국가에도 못 미치던 60년대에는 현재의 봉천본동으로부터 11동까지 12개동은 영등포구 관할이었으며 봉천동이라는 동명은 1개뿐이었다. 당시 초대 봉천동 동장은 장승백이에 살던 하재구씨였으며 을지지역 경찰서장을 지낸 사람이다. 2대 동장은 성상영씨였는데 영등포 갑지구당 보사분과위원장으로 있던 사람이었고 3대동장은 중앙시장에서 고무신가게를 하면서 상가번영회장을 하던 신상운씨였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봉천동이 4개동으로 나눠지면서 제1동장은 전재봉씨가 임명되고 봉천제2동장은 신상운씨, 3동장은 황병식씨, 4동장에는 김종열씨였다. 예비군 중대장은 봉천동 당시 문용석씨였으며 4개동으로 나눠진 다음 1중대장에 문용석씨, 2중대장 이성노씨, 3중대장 김명섭씨, 4중대장은 파월장병 출신인 이병기씨였다. 예비군 편제가 바뀌고 다시 9개 중대로 나눠지면서 5중대장에 김두영씨, 6중대장은 이영춘씨였고 지역일을 하면서 방위협의회 의원을 지낸 고달모씨가 당시 9중대장이었다. 이 무렵까지 원주민들은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전형적인 토박이 한국인들이었는데 구대인들의 가문을 보면 김씨집안의 대부는 봉천지역에 땅도 많고 유지였던 김봉학씨였으며 현재 84세의 백발노인이다. 이 집안은 현 김효겸 관악구의회 의장의 선친인 김종수씨가 1973년 관악구청 청사를 건축할 때 부지 1,500평을 기증했었다. 현 낙성대새마을금고의 전신인 봉천7동새마을금고 이사장과 봉천7동장을 역임했던 김종열씨와 김종윤씨의 가문이기도 하다. 또한 관악구의회 의원에 당선됐고 현재 봉천5동새마을금고 이사장인 김기선씨의 선친인 김장근씨도 현 봉천5동 일대에 많은 땅을 갖고 있는 지역의 유지였다. 관악구의회 의원에 당선됐고 현재 은천새마을금고 이사장인 이정천씨의 부친되는 전주이씨 이공원씨도 은천로변에 많은 땅을 소유한 지역유지였으며 무엇보다 은천로 개설과 은천초등학교를 설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최씨집안은 현재 작고한 최재안씨가 대부였으며 현 은천로변의 국민은행관악지점 뒤쪽에 작은 주택들을 즐비하게 지어 분양하기도 했다. 당시 최남진씨를 최씨가문의 대표로 키우려 애썼으나 여러가지 감언으로 접촉하던 사기꾼에 돈만 뜯겼고 나중에 봉천파출소 방범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나 워낙 방랑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후 동생인 최윤진씨는 공화당관리장을 맡고 있었는데 김종열씨가 동장으로 임명되자 후임으로 마을금고 이사장을 역임했는데 김종열씨가 동장에서 퇴임하면서 다시 마을금고 이사장 자리를 넘겨주기도 했다. 최윤진씨의 장조카 최용권씨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 되기도 했고 봉천1동에 연립주택을 지어 분양하기도 했다. 이씨집안에서는 동장을 역임하고 당곡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지내다 작고한 이한규씨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1대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이정환씨가 대표적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