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어느 날 일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이 나에게 도착했다. 봉투를 뜯어보았더니 일본의 단가(短歌) 시인인 세오후미코(瀨尾文子) 여사가 일본에서 펴낸 『사랑의 시조(愛の 詩調)』였다. 너무나 반가왔다. 책이 나온 날짜를 보니 2011년 3월 27일로 되어 있었다. 첫 장을 넘기니 '謹呈 著者 - 時調界에서 도와주셔서 感射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文子'라고 되어 있었다. 한국의 전통 정형시인 시조의 번역과 연구에 많은 열정을 쏟아온 세오후미코씨는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아 169편을 수록한 '사랑의 시조'를 각천학예(角川學芸)출판사에서 펴냈다.
208쪽 두께의 이 번역시집에는 169편의 사랑시가 실려 있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처음에는 일본현대시가문학관장인 조홍의 축사가 나오고, 다음으로 저자의 서문으로 이 책을 출판하게 된 동기와 책의 구성에 대한 소개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시조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사랑의 시조』는 5부로 나누어지는데 제1부 현대시조 70편, 제2부 고대시조 70편, 제3부 이조가사 1편, 제4부 고려, 신라, 백제, 고구려, 고조선의 가요 8편, 제5부 한시 20편 총 169편이 실려 있다. 한국의 사랑에 관한 시가 총망라 정리된 시집이라고 작가는 책의 표지에 쓰고 있다.
구성을 보면 작품 번호와 함께 일본어로 제목과 더불어 작품을 소개하고 그 밑에는 작품에 대한 감상을 썼고, 그 시조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의 자작시를 일본의 반가로 써서 1편씩 넣고 있고 자신의 자작시 반가에 관련된 내용을 한 줄씩 언급하고 있다. 또 제일 밑부분에는 작품 원본을 표시하고 있어 구성이 일반 번역시집과는 약간 다르다.
작품 예) 김민정의 「사랑, 영원한 길」
[감상]부분과 [반가]부분과 아래 부분을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감상] 사랑이 결실을 맺음과 동시에 걸어가는 영원한 길의 시. 작자는 부부가 함께 교직에 있다. 남편의 따스함이 버팀목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작자는, 축복받은 좋은 남편을 얻었다.
초장「우리……」는, 평탄한 길만을 함께 걸어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함께 가는 길은, 산길, 들길, 모래밭길>. 중장「때로는……」은, 때로는 비나 바람을 만나도. <때로는 바람 불고, 때로는 비 내리고>. 종장「내……」는, 항상 남편의 따스함이 버팀목이 되고 있는 작자다. <나의 가슴에 머무는 그대가, 불꽃처럼 따스하다>.
[반가] 文子(후미코)
나를 데리고 당신이 그리게 된 파도가 갈라지는 바닷가
「아침 해」의 그림은 오로지 빛난다
* 暹(샴)은「당신이 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2. 제1부 현대시조 70편 작품 소개
김 준: 나의 그리움은, 아내의 얼굴(1,2,3), 사랑을 위하여, 어느 날의 생각, 사랑의 노래 (5편) (아내의
얼굴은 3수로 된 연시조 1편인데, 아내의 얼굴1, 아내의 얼굴2, 아내의 얼굴3으로 구분하여 단시
조처럼 번역해 놓았다. 그래서 7편처 럼 보인다. 일본인들에게는 단시조를 시조로 생각한다.)
조희식: 소중한 사랑 (1편, 소중한 사랑 1, 소중한 사랑 2, 소중한 사랑 3로 나누어 3편처럼 보임)
고두석: 아내는 나의 친구 (1편)
이승은: 그리움의 시 (1편)
김광수: 애가 (1편)
김수자: 첫사랑 (1편)
유상덕: 바라보는 사람을 위하여 (1편)
안정애: 그리움 (1편)
김문억: 해돋이 (1편)
김임선: 움트는 나무 (1편)
나순옥: 겨울 나무 (1편)
김선호: 세레나데 (1편)
김사균: 봄비 (1편)
이은방: 채밀기 (1편)
박옥금: 비가 (1편)
리태극: 그 모습 (1편, 그 모습 1, 그 모습 2로 나누어 2편처럼 보임)
이호우: 해바라기처럼 (1편)
이영도: 아지랑이 (1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현대시조는 현대시조시인 43명의 작품 단시조가 55편, 연시조가 6편, 총 61편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의 눈으로 구분하여 연시조를 나누어 단시조로 표현해 놓아서 일본인에게는 70편으로 소개되고 있다.
외국인들은 초장, 중장, 종장 3장의 시조가 겹쳐진 연시조는 당연히 분리해서 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인들은 연시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단시조가 시조의 본령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외국인들에게 시조를 소개할 때는 단시조를 하는 것이 정석이 될 것이다. 세오후미꼬는 위의 <현대시조>들은 주로 다음의 저서에서 발췌했다고 소개하고 있다.『시조문학』『우물속의 사랑』『근대시조집의 양상』 『차마, 그 붉은 입술로도』『개화』『내가 좋아하는 현대시조 100선』『청동의 배를 타고』『비단 헝겊』『사막의 모래 무늬』『사랑하고 싶던 날』『눈맞추기 놀이』『나무거울 2』『초록 따라 바람 따라』『시조 짓는 마을』『아직도 못다한 말』『시조와 화가(和歌)』『여강의 물결』『석우 김준시조전집 』등이다.
3. 제2부 고시조 70편 소개
서경덕: 마음이 어린 後니 (1편)
황진이: 내 언제 無信하여, 어져 내 일이야,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靑山은 내 뜻이 요, 山은 옛 山이로
되, 靑山里 碧溪水야 (6편)
임 제: 靑草 우거진 골에, 북천의 오늘은 얼어잘가 하노라 (2편)
한 우: 어이 얼어자리 (1편)
계 랑: 梨花雨 흩뿌릴 제 (1편)
이명한: 꿈에 다니는 길이 (1편)
정 철: 머기잎 지거야, 거문고 大絃을 치니, 나올 적 언제러니, 내 마음 베어 내어, 松林에 눈이 오니,
고시조 70편 중에는 작가를 알 수 있는 18명의 시조가 45편이며, 작자미상의 작품이 25편이다. 그리고 70편 모두 단시조다.
4. 제3부 이조가사 1편 소개
정 철: 사미인곡 (1편)
사랑을 노래한 이조가사로 정철의 사미인곡 1편을 소개하고 있다. 정철의 사미인곡은 임금을 사모하는 노래로 우리나라에서는 알려지고 있으나 세오후미꼬는 사랑을 노래한 가사로 소개하고 있다. 내용만으로는 충분히 사랑시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인 것이다.
5. 제4부 고려, 신라, 백제, 고구려, 고조선의 가사 (3편) 소개
작자미상: 만전춘 (고려가요)
월 명 사: 제망매가(신라)
처 용: 처용가 (신라)
앞 머리말 부분에서는 제4부 고려, 신라, 백제, 고구려, 고조선의 가사를 8편이라고 했는데 차례부분과 내용부분에서는 3편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뒤에 정정 내용을 붙여서 책을 보내왔는데, 제5부의 헌화가, 서동요, 정읍사, 황조가, 공무도하가가 제4부에 속한다는 것이다.
6. 제5부 사랑의 한시 (25편) 소개
소를 잡은 노인 : 헌화가
서 동: 서동요
행상인의 처: 정읍사
유리왕: 황조가
백발광부의 처: 공무도하가
허난설헌: 채련곡, 춘원, 강남곡, 규원
정몽주: 주중미인, 강남곡, 정부원
황진이: 반월, 소세양을 보내며
유희경: 산중추우
계 생: 취객, 춘원
이제현: 노희
김수온: 악부
임 제: 규원, 패강가
오달제: 심양
이 원: 규정
억 춘: 추회
김안국: 칠석
한시 부분에서는 앞의 다섯 수가 제4부에 속하는 것이고, 5부에서는 허난설헌을 비롯한 12명의 한시
20편이 소개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의 사랑시조가 이렇게 많이 소개되기는 세오후미꼬의 말처럼 처음인 것 같다. 한국의
시조를 세오후미꼬 전에 누가 어떤 작품을 소개했는지 한국에 잘 소개되지도 않았고, 필자의 짧은 지식
으로는 잘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고대가요에서의 사랑시와 한시에서의 사랑시, 고시조에서의 사랑시조와 현대시조에서
의 사랑시조를 수집하여 이렇게 한 권의 시집으로 묶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시와
시조만 수집하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텐데, 거기다가 감상까지 적고, 자신의 창작시까지 곁들인 시
집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84세의 연세에 이런 책을 출간했다는 것이 대단하
게 여겨지고 존경스럽다. 작가가 한국의 시조와 사랑시에 대해 비교적 이해가 깊은 이유는 한국에서 생
활을 오래했기 때문이다.
한국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에 관해 관심을 갖고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해 준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현재 독일에서도 우리의 시조 번역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시조가 여러 나라에
서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계속 번역되어 외국에 널리 소개되기를 기대하며 짧은 소개를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