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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의 사계, 그리고 우울
음반의 뒷면에, 이마를 감싸 쥐고 잔뜩 고뇌하는 표정의 이정선의 사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정선 4집(봄/밖엔 비가 오네요)](1979)(이하 [이정선 4집])은 피상적으로 볼 때, 힘찬 활 놀림으로 시작하는 초기 이정선의 대표 곡 중의 하나인 "봄"과 이미 해변 가요제에서 징검다리의 목소리를 통해 알려졌던 "여름",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정선의 공연무대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산사람", 이후 한영애의 버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는 "건널 수 없는 강" 등 그의 대표적인 곡들이 수록된 음반이다.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이정선의 음악적 행보에 있어서 [이정선 4집]은 그 이전에 해 온 음악과 향후 추구해 갈 음악 사이에 있는 자신의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이전의 그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가사들과 해바라기 풍의 코러스, 포크 지향적인 멜로디 라인들이 두드러진 앞면의 수록곡들과, 다소 무겁고 어두운 가사에 텐션 코드가 전면에 부각되는 블루지한 곡 진행들이 위주가 된 뒷면 수록곡들이 마치 전혀 다른 음반의 두 면이 붙어 있는 것처럼 대비된다는 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음반의 앞면 수록곡들은 사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브릿지 부분의 "산사람"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태의 컨셉트 음반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리고, "산사람"으로 이루어진 브릿지 부분들은 "봄" 이후에는 '어려서도', "여름" 이후에는 '젊어서도', "가을" 이후에는 '늙어서도'로 가사가 바뀌고, 이에 상응하는 변주로 이루어져 있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기도 하다. 그리곤 결론에 해당하는 "산사람"에서 그는 '보면 볼수록 정 깊은 산이 좋아서'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라고 노래하고 있다. 과연 그에게 있어서 산이란 무엇일까?
뒷면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은 전술하였듯이 얘기치 못한 반음진행이라든가 블루스 스케일에 입각한 기타의 애드립 라인 등, 이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이정선의 또 다른 음악의 시작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혼성 코러스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전 해바라기 시절의 그것과는 별개의 느낌이고, 가사의 전달 보다는 멜로디와 곡의 흐름을 전달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물론 이후의 음반들에선 코러스보다 증폭된 일랙트릭 기타연주가 그 도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지만).
[이정선 4집]은 향후 이정선의 음악적인 행보에 있어서 갈림길이 되었던 음반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음반 이후에도 이정선의 음악적 행보는 포크나 블루스의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다. 물론 [이정선 6집(사랑의 흔적/재회)](1981)이나, [이정선 6 1/2집(그대 마음은/답답한 날에는 여행을)](1981), 그리고 그가 표현한 블루스 사운드의 최고 정점에 우뚝 서 있는 [이정선 7집(30대)](1985)에서 이정선의 음악은 블루스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만의 독특한 음악적인 색깔을 만드는 작업이었다는 생각이다.
위에서 제기했던 의문이었던 '산'이란 '이정선'이 생각하는 '음악'이고, 바로 그 '음악'이 '이정선'만의 독특한 음악'이라고 할 때, 이 음반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더 없이 소중한 음반이 아닐까? 이제는 바로 '산'이 되어버린 그이기에.... |
첫댓글 이 음반 구하려고 애 많이 쓰던 기억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