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석굴암 여행관람
글 장순희
창밖에 하핳게 쌓인 눈을 바라보며 지난 3년간의 우리들을 생각해봅니다.
즐거웠던 일 , 괴로웠던 일,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닥친 것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뿐입니다. 우리들을 야단치시던 은사님 그 땐 정말 지겹고 미웠지만 먼 훗날 우리들의 기억엔 자애로운 꾸지람으로 기억 될 것입니다. 지난 3년간의 재미있던 일 아름다웠던 일 혹은 슬 폈던 모든 일들을 이젠 추억의 책과 함께 영원히 우리들의 고은 영상으로 남겨질 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마음 것 나래를 펴왔던 우리들 ........
이제 정든 학교를 떠나지만 좀 더 나은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만족 할 수 있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 할 것이다. 벗들이여 비록 그것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착한 희망과 소망을 갖고 사는 성실한 인간이 될 것을 약속 합시다.
1983. 1, 4 대화고등학교 제 13회 간부편집의원일동 2017년을 기점으로 34년 전
윗글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며 간부편집 위원들이 편집해 내용이다 ,( 편집위원 강희철 권순범 장순희 최숙희 ) 1982년 나는 아버지 작고로 중, 고등 학교시절 경주의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통신대학교 영어영문을 입학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교를 다니기에는 나에게는 무리여서 직장 생활만 했었다. 그러다 결혼해 늘 경주불국사를 가보아야지 하면서 결혼 생활 24년 만에 경주 불국사를 가보게 되었다.
옛 신라의 고찰 경주도 꼼꼼히 자세히 관람을 하려면 몇 칠을 두고 관람을 해야 그런대로 경주를 좀 알 수 있을 것 같다. 수 박 겉 할 기식으로 하루 이틀 해서는 화랑의 기상이 수 세기를 내려온 옛 신라 경주를 다 알지 못한다.
진부 시댁에 들어가 추석을 지내고는 4일 날 원주로 돌아와 5시쯤에 원주에서 출발했다. 고속도로가 밀려 네비게이션 안내는 3번국도로 안내를 하였다. 3시간 거리의 경주가 5시간을 넘게 걸려 도착을 하였다. 가는 도중 중간 중간 우회도로로 안내 받아 45번 산업도로를 경유 하여 밤10가 넘어 경주에 도착을 했었다.
야간 운전의 여행은 길거리와 시전체가 야경 도시로 아름다운 불빛 조명으로 반짝 반짝하며 밤 풍경의 화려함을 엿보였다.
먼저 숙소를 정해야 하기에 우리는 경주시내에 들어가자마자 모델을 찾았다.
경찰의 도움을 받으려다 시내 곳곳에 모델의 내온사인 불빛들이 각자 자신들의 상호를 자랑하듯 반짝 거렸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려고 했는데 4인가족 12만원 달라하여 인터넷 예약을 하지 않고 직접 찾아 모 모델의 4인 가족 구만원에 숙소를 정했다. 경주는 여행객들이 많은지라 객실이 다른 도시보다 좀 큰 것이 특징 이였었다. 패션이나 콘도는 아닌데도 여려 명 잠을 잘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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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은 4인 가족이라 (소영 소희 아빠 소영소희 그리고 엄마 나 )를 포함해서 정한 숙소가 마음에 들었었다. 숙소를 정하고는 우리가족은 경주의 야시장을 관람할 계획 이였었는데 경주 야시장도 추석이라 4, 5일 휴무를 한다고 안내의 글을 야시장 입구에부터 있었다. 어쨌든 저녁은 먹어야 하기에 우리는 경주 시장근처의 음식집을 찾았다. 24시간 하는 국밥집이 장례식장 근처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소영아빠랑 소희는 곰탕을 먹고 소영은 돼지국밥을 나는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이 특히 한 것은 순대에 야채가 많이 들어있어 느끼하지 않아 맛있게 먹었다. 야식 겸 저녁을 먹고는 숙소로 들어와 서로 각자 사워를 하고 나랑 소영 아빠는 티브이를 보면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8시에 기상 밸 소리에 일어나 각자 세수와 사워를 하고 소영아빠 혼자 아침을 먹었다. 우리는 잠을 잔 숙소를 정리하여 놓고는 9시쯤에 숙소를 나와 불국사를 향하여 출발 하였다. 불국사 가는 도중 차가 너무 밀려 불국사 관람이고 머고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차가 밀렸다. 전국에서 나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이 몰려 왔는지 너무도 차가 밀렸다. 숙소에서 40분 거리를 2시간 넘께 걸렸다. 나는 성질이 급한 편이라 짜증을 내니까 소영이가 엄마는 참을 성 좀 키우라고 하며 뭐라 했다. 11시쯤에 불국사를 도착했는데 위쪽에 있는 석굴암 먼저 관람을 하지고 해서 그곳에서도 30시간정도 더 올라갔었다. 경주 국립공원 불국사 석굴암 길 가에 잡초나 풀은 다 베어 풀과 잡초는 없는데 관람객들이 먹다 버림 음료수통과 물통의 피티병들은 눈에 자주 띠였다.
석굴암 입구까지는 차로 올라가고 매표소에서 표를 예매하여 석굴암까지는 걸어올라 갔다. 석굴암 올라가는 길은 황토 흙 길로 되어 있었는데 쪽 고르게 다져 있어 흙길을 걸어도 신발에 흙이 묻지는 않았다. 경주는 신라의 옛 도시인만큼 주택의 지붕들을 모두 기와로 되어있었다. 아파트보다 몇 층으로 된 단독 주택이 더 많고 그 주택들 보두가 기와지붕인데 기와는 다른 도시와 달리 일자형의 기와로 되어 있었다.
석굴암까지 걸어서 약 20분 남짓 했는데 많은 관람객들 입구에서 대기해 가며 석굴암 안으로 들어갔다.
경주 토암산 석굴암
신라 석불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석굴암 본존불상(石窟庵 本尊佛像 국보 제24호 경주 토함산)
아름다운 균형감각,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가는 눈과 웃음 머금은 입술,
두툼한 얼굴과 풍만한 몸체는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움이 풍겨
동양 조각 최고의 걸작 품이고,
그 종교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세계 종교예술사상 탁월한 유산입니다.
만든이 : 김대성
만들어진 시대 : 신라 경덕왕 10년 (751년) ~ 혜공왕 10년 (774년)
종목 : 국보 제 24호
있는 곳 : 경북 경주시 토함산
석굴암 본존 불상 :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326cm, 세기는 8세기 통일신라 때
가치와 의의 : 가치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로 될 만큼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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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힘든 화강암으로 제작하였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이 것은 건축, 수리, 기술이 종합적으로 어울린다.
옛날 김대성이 조각하였는데, 실제로 이것은 불상이 아니라고 한다.
조각해 놓은 석굴암 본존 불상은 불상 즉 부처님이 아니고
항마촉지인이라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즉 깨달음을 얻었지만 부처가 되지 못하고 대마왕에게 유혹당해 마로 들어간 항마촉지인이다.
역사적 사실 : 석굴암을 지어 부처님께 나라를 수호해 달라는 바램이다.
석굴암의 구조와 특징 : 석굴암의 구조적 특색은 무엇보다
화강암의 자연석을 다듬어 인공적으로 축소한 석굴사찰이라는 점이다.
즉, 인도․중국 등의 경우와 같이 천연의 암벽을 뚫고 조성한 천연석굴이 아니다.
인터넷 인용문
나는 경부 토함산 석굴암 불국사를 누누이 뉴스로나 그림으로 많이 보고 듣고 했었다.
현재 과학으로도 석굴암 석불조각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며 과학적으로 조각된 석불 라는 것을 .... 그러나 솔직한 내 생각은 뉴스나 그림으로 본 것처럼 감탄사를 던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시대의 그런 석불 조각을 석굴에다가 지을 수 있는 과학적인 기술을 가진 선인의 영감에 놀라움 표현하고 싶었다.
석굴암 들어가면서 두손 모아 참배를 드리며 천원자리 지폐 한 장을 보시하고 나와 소영 소희랑 가족사진 몇 장을 찰영 하였다.
석굴암을 관람하고 불국사로 내려오는 길목에 박목월 문학관이 있었다. 문학여행으로 갔다면 당연히 박목월 문학관을 관람했을 덴데 가야 할 길이 멀어서 그냥 나는 박목월 시인의 문학관 경부 토암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만 왔었다.
나그네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현 시대 사람들에게는 잘 읽혀지지 않은 시지만 우리시대 중년들에게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그네라는 시다.
박목월 문학관을 관람 못하고 아쉬움을 남기고는 불국사로 향해 내려왔다. 불국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불국사 근처에서 정심을 먹었다. 한식 부패음식으로 정심을 먹었는데 가격도 저렴하면서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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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특징은 마음 것 양을 먹을 수 있는데 남기면 벌금으로 추가 금액을 내어야 한다. 부패음식은 여러 가지 음식으로 먹어 볼 수 있다.
정심을 먹고는 불국사 관람을 하려고 불국사 주차장으로 들어가 한참 걸어갔었다.
매표소에서 매표를 사서 들고는 불국사 앞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매표관리인에게 매표를 주고는 불국사 안으로 들어갔다. 불국사는 창건 이래 여러 차례 훼손과 복원을 거쳐 근세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근세 복원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와중에 유물의 완벽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 1973년 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 관음전 · 비로전 · 경루(經樓) ·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泛影樓) ·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나에게 놀라운 것은 불국사의 부처가 너무도 커서 놀라웠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큰 부처는 내가 태어나 처음 본 것 같다 우리가족은 석가탑과 다보탑 10원짜리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생각하며 가족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오랜 동안 불국사에 있어 그런지 어께에는 먼지가 뽀핳케 앉좌 있고 부처의 입근 처에는 히얀 한 수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부처상에 나는 얼마간 불전을 놓고는 우리가족 건강과 가게 영업을 잘 되게 해달고 소원을 빌었다. 한 시간 남짓 불국사를 관람하니까 불국사 경례를 한 바퀴 돌은 듯 했다. 많은 관람객 인파들은 서로 먼저 관람을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질서 있게 차례대로 잘 구경을 했다. 불국사는 사진으로 보는 것이나 직접 눈으로 보는 것 하구는 너무도 똑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불국사 관람을 마치고 경주시내 있는 경주 역사박물관과 첨성대를 마지막으로 관람을 하려고 경주시내를 두 바퀴 돌다가 주차 할 공간 없어 그냥 원주로 내려왔다. 추석의 긴 연휴라 관광객은 많은데 좁은 도로에 많은 차들이 정체 되어 있는 경주가 관광도시가 맞는가 생각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원주시는 너무도 도로가 잘 되어있다는 것 ... 신라의 옛 도시 경주 주변을 둘러싸고 왕 능들은 왜그리 많은지 가는 곳곳 마다 왕의 능들이 경주시를 메우고 있었다. 김유신장군능 대릉원 천마총 등해서 국사 시간에 배웠던 신라의 장군들의 왕능 들은 경주시 외각으로 줄 비하게 있었다. 김유신장군왕릉과 대릉원 천마총을 관람하려면 몇 칠은 그곳에 관광객으로 있어야 다 관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도 막힌 경주시내 길 정체 때문에 하루 종일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경주 불국사 석굴암 여행을 마치며 5시쯤에 원주로 출발에 내려왔다. 2017년 추석 연휴 불국사 석굴암을 가족 여행으로 마치긴 마졌는데 너무도 아쉬운 것 많다는 생각을 한다. 정부의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정책으로 고속도로비 무료로 추석도 잘 보내고 여행도 고속도로 요금 무료로 하긴 했지만 경주 시는 관광객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기와지붕공사도 중요하지만 관광지 곳곳의 도로 확장 공사 부터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며 불국사 ,석굴암 여행 글펜 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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