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문 -"씨 알"
씨 알 - 『씨알의 소리』 1970년 4월호 -
함 석 헌 교육가·사상가·민권운동가
*이번 호부터 <다시 읽는 名文>을 연재한다. 글은 대개 처음 쓰여졌던 시대상황 하에서 의미를 가지지만, 어떤 글들은 세월의 퇴색 작용과 증발 작용에도 살아 남아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을 낸다. 그래서 지금 읽어도 소중한 의미를 발산하는 것이다. 그런 글들을 가려내어 다시 현재의 빛을 쏘임으로써 흰 옥양목 같이 깨끗하고 찬란한 정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씨알'이란 말은 '씨'라는 말과 '알'이란 말을 한데 붙인 것입니다. 보통으로 하면 종자라는 뜻입니다. 종자는 물론 한문자의 종(種子)에서 온 것입니다. 순전한 우리말로 '씨앗' 혹은 '씨갓'입니다. 아마 원래는 '씨알'인 것이 ㄹ이 ㅅ으로 변해서, '씨앗'이 되고 또 '아'줄과 '가'줄이 서로 통하는 수도 있기 때문에 '씨갓'으로도 됐는지 모릅니다.
어쨌건 종자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것을 빌어서 民의 뜻으로 쓴 것입니다. 보통은 없는 것을 새로 지어낸 말입니다. 지금 민의 시대여서 우리는 늘 民이란 말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 인민, 민족, 평민, 민권, 민생......입니다. 그런데 거기 맞는 우리말이 없습니다. 國은 나라라 하면 되고 人은 사람이라 하면 되지만 民은 뭐라 할까? 백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百姓의 음뿐이지 순전한 우리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民이란 말을 우리말로 씨 이라 하면 어떠냐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실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류영모 선생님이 먼저 하신 것입니다. 언젠가 대학강의를 하시다가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을 풀이하시는데 "한배움 길은 밝은 속알 밝힘에 있으며 씨알 어뵘에 있으면 된 데 머묾에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오래 되어 말이 좀 틀린 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民을 씨알이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것이 참 좋아서 기회있는 대로 써와서 이제 10년이 넘습니다.
우리말에 본래 民에 대한 말이 있었던지 없었던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있었겠지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중국문화가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온 것은 우리가 이미 상당한 문화발전을 한 다음이니 그전에 벌써 정돈된 정치생활을 한 민족인데 말이 없었을 리 없습니다. 아무래도 있던 것이 후에 중국문화에 눌려서 한문자를 전적으로 쓰게 되면서부터 잊어버리게 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편이었든간에 깊이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본래 없었다면 우리는 옛날에 있어서 중국과는 아주 딴판인 사회구조를 가졌던 것이고, 또 본래 그 비슷한 말이 있다가 한문자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마 종래의 그 말 가지고는 民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출 수 없어서 된 것일 것이니 역시 중국 옛날 사회와는 상당히 다른 구조를 가지지 않았던가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民은 무엇인가. 한문자의 어원을 설명하는 사람들 말에 의하면 民자는 母에다 한 휙을 더해서 만든 것이라 합니다. 즉 어머니에게서 난 것이란 뜻입니다. 그럼 누구는 어머니에게서 나지 않은 것이 있나? 그런 것 아닙니다. 그것은 보통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한문자에 사람을 표시하는 글자가 여럿 있습니다. 우선 人입니다. 그것은 본래는 , 이런 모양으로 썼는데, 사람이 일어선 것을 왼편에서 보고 그린 것입니다. 바른편에서 본 것은 , 이렇게 썼습니다. 비교라 할 때의 比자가 그것인데 사람이 나란히 선 것입니다. 그 담 大는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땅 위에 어엿이 선 것인데 그것으로 크다는 뜻을 표시했습니다. 人은 아무 차별이 없는 사람이지만 民은 이른바 평민, 아무 지위없는 사람입니다. 거기 대립되는 것은 王, 君, 臣 하는 글자입니다. 왕은 임금, 天·地·人의 세 가지 덕을 다 가졌다 해서 3(三)을 1(一)로 꿰어서 그것을 표시했고, 君은 尹과 口를 합한 것인데 尹자와 父자는 본래 다 같이 과 을 합해서 이렇게 썼던 것입니다. 은 손이고 은 작대기, 손에 작대기를 쥔 것을 그려서 지배하는 힘을 나타낸 것입니다. 臣자는 사람이 꾸부려 복종하는 모양을 그린 것으로서 임금 앞에서 섬기는 자임을 표시한 것입니다. 거기 대해서 民은 아무것도 그런 지위도 직책도 없고 다만 맨사람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母자는 女자에 젖통을 표시하는 두 점을 찍어서, 젖을 먹이는 여자, 곧 어머니란 뜻을 표시한 것이 母자고, 거기 한 점을 찍어서 거기서 나왔다는 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면 民이라는 글자에 벌써 역사, 사회가 나타나 있습니다. 벌써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있습니다. 民은 곧 四民입니다. 사·농·공·상입니다. 벼슬할 수 있는 자격 있는 것이 士 곧 선비(德能居位曰士), 땅을 갈아서 먹을 것을 길러내는 것이 여름질꾼(酸士殖穀曰農), 마음을 쓰고 손을 써서 잡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치(巧心勞手以成器物曰工), 물건 돈을 돌리는 것이 장사치(通財貨曰商). 그럼 이 글자 속에 이미 봉건제도가 있습니다.
民은 단순한 사람 곧 人이 아닙니다. 정치인이요 사회인입니다. 서양말로 하면 'people'인데 'people'도 역시 'man'만이 아닙니다. 일정한 목적 밑에 뭉친 한덩어리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씨알이란 말을 써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민이 벌써 우리말이 다 됐는데 그럴 필요 없지 않느냐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어학계의 경향은 대체로 그런 주장이 강해서 일반이 쓰는 대로 따라가지 구태여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할 필요가 없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느 면 옳은 말입니다. 순전히 학문적으로 말하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단순한 人은 없습니다. 그것은 추상 혹은 이론뿐이지 실지로는 사람은 어느 특정한 사회 특정한 제도 밑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단순한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이 매양 지배적입니다.
왜 民대로 두는 것보다 아직 좀 어색한 듯하지만 '씨알'이라 하자느냐? 쉽게 가장 중요한 점을 따져 말해서, 주체성 때문입니다.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주장하는 것 아닙니다. 民, 'poeple'하고만 있는 동안은 '민'의 참뜻 'people'의 참뜻은 모르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말로 옮겨 보려 할 때 즉 요새 토착화란 말이 많습니다마는 토착화를 시켜보려 할 때에야 비로소 그 뜻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말이 말만이 아닙니다. 낱말 하나 밑에 문화 전체계가 달려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낱말이 문제 아니라 우리말로 해 보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말이나 한글만이 살아나는 것 아니라 한국이 살아납니다. 토착화라지만 토착이 무엇입니까? 뿌리를 박는단 말입니다. 허공에 뜬 나무도 없고 허공에 뜬 문화도 없습니다. 모든 식물이 땅의 피어난 것이듯이 모든 문화도 정신적인 흙의 피어난 것입니다. 새 품종이 아무리 좋아도 뿌리 아니 박고는 화병에 꽂은 꽃이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살고 난 결과가 흙입니다. 역사의 앙금이 다음 새 문화가 자라는 흙, 바탕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 꼴인 것은 결코 지능, 소질이 부족해서 아닙니다. 아프리카 검둥이도 지능이 부족하지 않은 것은 이미 증명이 됐습니다. 문제는 역사적 풍토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나 하는 데 있습니다. 태아가 어머니를 빨아 먹고 크듯이 새 역사는 옛 역사를 삭여 먹고야만 됩니다. 우리 잘못은 지능, 소질은 뛰어나게 가지면서도, 즉 종자는 좋으면서도 뿌리를 박지 못한 데, 다시 말하면 제가 저를 모른 데 있습니다. 제 나라 지층 밑에 있는 석유를 몰라서 남에게 팔아먹었지만 무시한 것은 기름밭만이 아닙니다. 마음밭이요 글월밭입니다. 民이냐 씨알이냐가 문제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 죽은 말을 캐어 살려보려 애써야, 그러는 동안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죽은 어머니의 귀청을 두드리며 "어머니, 어머니"하는 것은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듣자는 것이지. 그래 죽은 어머니를 깨우려 할 때 내가 영어로 한다고 "mother, mother"하겠습니까? 어머니를 깨우려면 어머니의 말로 해야지. 말은 생명입니다. 말은 사랑입니다. 그래 나는 모두들 "미스, 미스" 하니 한국엔 아가씨가 없다, 미국놈 다 줘버렸다 합니다. 국민, 신민 하면서 몇천 년 남의 살림을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 조상의 피와 뼈가 쌓여서 된 이 땅이 온통 엉겅퀴 질레밭이 돼버렸습니다. 이제 그 엉겅퀴밭에 어디 내 어머니가 주었던 목걸이가 떨어졌나 찾노라면 목걸이만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납니다. 사실 목걸이는 어머니의 표시밖에 다른 것 아니됩니다. 어머니의 몸은 죽겠지만 어머니의 혼은 그 물려준 목걸이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것을 경히 여기겠습니까? 우리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우리의 '나'를 찾기 위해 잃었던 말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나는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라도 인격없는 역사, 문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격은 특정적이지 일반적이 아닙니다.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나여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이 되면 변할 것입니다. 민족성도 달라지고 문화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질 때는 달라져도 그때가지는 나의 서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溫故知新'입니다.
씨알보다도 더 좋은 말이 있거든 고칠 셈치고 우선은 써봅니다. 民대로도 좋지만 民보다는 좀더 나가기 위해서. 民은 봉건시대를 표시하지만 씨알은 민주주의 시대를 표시합니다. 아닙니다. 영원한 미래가 거기 압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씨알입니다!
-------------------------------------------------------------------------------- 咸錫憲(1901∼1989) 평안북도 용천 출생. 1921년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온 다석 柳永模를 만남. 1928년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0여 년간 五山학교에서 교직생활함. 8·15 직후 평안북도 임시자치위원회 문교부장 지낸 뒤 월남, 56년부터 『사상계』를 통해 본격적으로 논설을 집필, 5·16 직후 한일협정 반대 단식, 3선개헌과 국민투표 반대운동 등을 벌여 군사정권에 저항함. 80년대 『씨 의 소리』를 창간, 발행 겸 편집인으로 사회개혁을 위한 많은 글을 발표하는 한편 독재반대투쟁과 민권운동 펴 나감. 84년 민주쟁치국민운동본부 고문 지내며 말년에 철저한 평화사상과 비교권적 제도에 공감하여 퀘이커교도로 개종. 1979년과 85년 2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 87년 제1회 仁村賞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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