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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수많은 크리스찬이 지옥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근래 들어서 칼빈의 예정론과 알미니안의 자유의지론에 대해서 더 많이 보게 되었는데 교리 때문에 오히려 성경을 보는데 방해를 받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구원론에서 예정론이나 자유의지론이 다 좋지만 처음부터 교리에서 구원에 대한 규정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염려하고 마음이 아픈것은 구원파는 구원받은 연 월 일시를 이야기하고 구원받았느냐, 확신이 있느냐, 회심했느냐는 순간을 중요시 여기는 것을 이단이라고 하지만 기존 교회도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으면 구원이 확정되었고 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장로교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회가 구원파의 형식적인 부분만 빼면 거의 비슷합니다. 남침례교회도 마찬가지고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하면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쉽게 이야기하고 공표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구원을 확신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눈을 떴을 때 원했던 천국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면 누가 책임집니까? 말씀을 보았을 때 구원의 확신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하신 말씀을 목사들이 왜곡하여 교리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이것을 오해하고 왜곡했던것입니다. 구원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말씀에 입각한 논리를 다시 이해하셔야 됩니다. 구원은 언약으로 받습니다. 이 부분이 틀린것인데 알미니안주의나 예정론이 구원에 대한 것을 믿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구원은 언약으로 인해 받습니다. 언약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언약으로 이해를 해야 하고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과 언약을 맺으실 때 사람은 죽음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이고 구원받을 자입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거니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금할 것을 말씀하신 처음 맺은 언약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금하라는 말씀을 어겼고 언약을 파기하여 모든 인류가 구원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은 폐해졌습니다. 모든 인류는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어 하나님은 이제부터 사람을 구하려고 하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시니까 자녀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시 사람과 언약을 맺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은 사람과 언약을 네 번 맺으셨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주시면서 하와에게 ‘너의 후손이 사탄의 후손과 싸울 것이고 너희들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짐승 가죽의 언약이고 하나님과 사람이 맺은 첫 번째 피의 언약입니다. 처음에 범죄하지 않았을 때는 열매의 언약이었다면 범죄한 이후에 맺은 언약은 피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계속 피의 언약을 맺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피의 언약을 맺을때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을까요? 아벨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맺었던 피의 언약을 기억하고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립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가인은 이 땅의 풍요와 번영과 땅에서 잘 사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을 소망합니다. 아벨은 그 이름이 ‘허무’이고 이 땅의 모든 소망이 사라지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소망을 갖습니다. 양의 첫 새끼를 잡은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처음부터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히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으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와 맺었던) 하나님과 첫 번째 언약을 파기하고 홍수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멸망당하고 노아의 여덟 식구만 남습니다. 그들이 배에서 내려오자마자 노아는 정결한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피의 언약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제부터는 모든 동물을 먹을 수 있지만 피는 생명이니 먹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이 노아와 맺었던 두 번째 언약입니다. 역시 짐승을 죽여서 피의 언약을 맺으시고 두 번째 언약 까지는 모든 인류와 맺은 언약입니다. 시간이 흘러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과 세 번째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계명의 두 돌을 주시고 ‘이 언약을 지키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을 맺으신 이유와 목적은 죽어 있던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었던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곧 국민과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 전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서 문인방 문설주에 바르고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고통의 예수, 지옥의 형벌과 고통을 당하실 예수를 그들이 먹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기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세 번째 언약도 피의 언약입니다. 이렇게 인류는 하나님과 피의 언약을 맺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언약을 파기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할 때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새로운 언약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구원받는 것은 ‘믿음’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언약’과 약속의 개념입니다. 처음부터 구원론에 대한 교리 자체가 사실은 틀린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파기했을 때 새로 맺었던 네 번째 언약을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34절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과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했다고 말씀하시고 다시 사람과 언약을 맺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언약의 내용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는데 그들이 나와의 혼인 언약을 파기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혼인 언약을 맺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은 십계명의 언약과 같습니다. 법이라고 적어놨는데 ‘언약’입니다. 나의 ‘언약’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결국 이 언약은 우리의 심비에 새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새겨놓으면 잊혀지지 않는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판에 새겨진 심비의 언약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의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하시면서 포도주를 주신 것이 예수님과 우리가 맺은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개인과 맺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많은 목사님들이 오해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는 것으로 인식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복을 받는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는 중요한 핵심 관점이 복을 주는 대상입니다. 이방인 입장에서 전 세계 모든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누가 복을 주는지 모르고, 주는 대상이 없으니까 복을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선하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 내가 확실하니까 복을 받는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을 주는 대상이 정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므로 대상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복을 받으려면 그분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옵니다. 히브리어 ‘복’은 우리와 다르게 〔바라크〕 ‘무릎을 꿇다’는 뜻입니다. 대상이 정확하기 때문에 명제가 정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면 그분이 나에게 복을 주시고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이라는 개념과 그들이 쓰는 복이라는 개념의 용어가 다릅니다.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되고 이것이 구원을 받는 방법입니다.
언약의 방법도 같습니다. 언약은 내가 하나님께 약속을 하는 것이고 내가 그분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분의 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 말씀을 이방인들은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을 주는 대상이 정확하기 때문에 그 설교를 들을 때 정확히 이해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면) 그분이 천국을 허락하신다는 놀라운 복음을 예수님이 전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과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똑같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른 아이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와 무릎을 꿇고 그분 앞에 순종하는 자는 천국에 가는 것을 바로 이해한 것입니다. 간단하지만 이것은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믿음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히브리어로 〔에무나〕라 하고 구약에서 49회 나옵니다. 믿음을 우리 이방인은 신에 대한 개념이 없고 나와 네가 맺는 것입니다. 이방인 입장에서 내가 너를 믿고 계약을 이행하는데 상황이 되었을 때 이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상호간에 상황이 될 때 내가 네 편이 되어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에 대한 개념이고 헬라인이든 모든 이방인이 똑같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고 믿음이라는 대상이 하나님과 맺는 믿음입니다. 신과 맺는 계약을 믿음이라 하는 것이므로 관점이 다르고 뜻이 전혀 다릅니다.
구약의 〔에무나〕는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는 상태로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은, 확고한’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발동되었을 때 내가 마음을 내는 것이 믿음이라는 개념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신과 내가 믿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고 확고하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쓰였던 〔에무나〕의 뜻을 보면 ‘성실, 충성, 진리, 진실’ 입니다. 신과 내가 맺은 ‘언약’에 관한 것이고, 신과 내가 맺은 언약이 지속되는 상태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을 때 이 믿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는 이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믿으며 그 믿음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언약’에 관한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이 하나님이라는 특정한 신이 정해진 상태에서 언어를 쓴 것과, 이방인이 하나님이 없는 상태에서 언어를 쓴 것의 차이입니다.
헬라어의 믿음이라는 뜻과 히브리어의 믿음이라는 뜻은 전혀 다른데 오늘날 목사님들이 이것을 믿음이라는 용어를 헬라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에 대한 것은 나의 확신과 고백으로 바뀐 것입니다. 나의 확신과 고백으로 바뀌어 말씀을 끊어서 첨가하고 한 번 구원이 확정되면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로교와 감리교와 남침례교회가 거의 같고 한 번 믿음이 확정되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언약은 파기하면 안 되고 계약이 끝나는 것이라서 전혀 다른 뜻입니다. 용어에 대한 몰이해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다 보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는다고 착각하다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얼마 전에 초상이 있었고 저희 아버님과 장인어른도 소천하셨습니다. 한참 전입니다만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도 하나님이 구원을 시키려고 병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18년 동안 중풍환, 어머니는 13년 중풍환 이셨고 장인은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을 하셨습니다.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소연 하면서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6개월을 보내셨고 우리 아버지는 요양원에 오래 계셨습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자기 속에 있는 자기가 빠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심령이 가난해져야 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이고 남보다 더 잘났다고 착각하는 것과 자신에게 잡혀 있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많은 분들을 병을 통하여 요양원에 들어가서 비참하게 만든 상태에서 마음이 낮아지고 가난하게 하여서 구원시키십니다. 이런 분들은 구원받았다고 하기도 부끄럽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시키십니다. 자녀들이나 가족들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기 때문에 이렇게 해주시는 것이지만 모두 그런 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구원받는 개념 자체가 틀려서 이 상태로는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이 지옥에 갈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18절에서 24절
18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에스겔서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나와의 언약을 파기하였다고 말씀하신 예레미야 이후에 쓰인 것입니다. 새 언약을 맺는 것에 관한 것이고 하나님이 개인과 언약을 맺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언약과 다르고 십계명 언약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때 언약을 맺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표하시는데 악인은 그 죄로 인하여 죽고, 의인은 순종함과 언약을 지킴으로 살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각자 자기의 행위를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행위구원론이나 이단이 아니라 이론 자체가 다르고 구원은 언약을 이행함으로 받는 것이므로 개념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악인이 구원받는 것이나 지옥에 가는 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자기 행위를 고쳐서 언약 안에 들어오면 삽니다. 의인이 구원 받는다고 확정됐으면 죽기 직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실 것이고 구원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예레미야의 새 언약에 대한 선언을 하신 다음에 나온 말씀입니다. 구약이 아니고 새 언약에 관하여 모든 인류에게 새롭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약을 이행함으로 언약 안에 있을 때 구원받습니다. 언약을 벗어나면 과거에 언약 안에 있었다는 것이 구원을 받는데 도움이 안 됩니다. 과거에 잘못한 것을 묻지 않지만 과거에 잘한 것도 안 묻습니다. 말씀은 정확하게 과거에 잘한 것은 과거이고, 지금 내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를 물으십니다. 구원은 현재 나의 상태로 받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6절에서 28절
26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과거의 죄악을 기억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상태가 언약을 이행만 하고 있다면 과거는 묻지 않겠다는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에스겔 18장 30절부터 32절
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 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는 것은 마귀가 하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30절 끝에 말씀은 인류를 패망케 하는 죄악을 하나님은 용서하여 패망하지 않고 살리시려고 하십니다. 과거는 묻지 않을 것이니 죄와 싸워 이기고 언약을 이행하는 자는 살지만, 언약을 잊어버리고 구원을 확신한 자는 죽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 수 있는 자가 잘못된 교리 때문에 지옥에 가면 너무나 가슴 아픈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유대인이고 헬라식으로 번역을 했다고 헬라식으로 이방인들이 갖고 있는 개념으로 믿음을 이야기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성경을 종합적으로 봤다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절로 성경 자체를 왜곡한 것이지 바울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17절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복음은 예수가 우리를 천국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신 것이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복음이 유대인에게 또한 헬라인에게 능력이 됩니다. 로마서는 이방인에게 쓴 글이 아닙니다.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인에게 쓴 글이고 먼저 유대인에게 말하고 그 다음에 이방인에게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편지의 대상은 첫 번째는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인에게 그리고 이방인에게 겸하여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고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부분에 목사님들의 논란이 많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앞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구원받게 되는 그 복음을 굳게 붙잡으면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고 십자가에 관한 것입니다. 의인은 복음을 믿음으로, 바로 ‘언약’을 이행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고백으로 바꿔버린 것은 왜곡입니다.
로마서 1장 18절부터 20절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만물을 보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게 만드셨다는 것인데 요즘 우리가 자연을 보고 만물을 볼 때 많은 인류가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진화론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이 개념의 출발에서 예수 그리 십자가 보혈의 피를 믿고 그가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부터 25절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고 점점 사람을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을 사랑하는 인류가 죄악을 짓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장 26절부터 32절
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심을 믿지 않고 세상을 다스림을 믿지도 않습니다. 죽고 난 후에 지옥 가는 것도 믿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가난할 때는 위정자에게 복종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위계질서라고 하는 남자와 여자의 분간이 되고 가난한 국가에 갈수록 남자가 높고 여자는 순종해야 됩니다. 자녀들은 종같이 부릴 때도 많고 가난할수록 높낮이가 있는 것이 가난한 국가의 특징입니다.
부유해지면 동성애가 횡행하여 전 세계 선진국가 중에 동성애 안 하는 국가 있습니까?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합헌하려 하고 동성 결혼부터 시작해서 온갖 더러운 짓이 횡행합니다. 가난하지 않고 부요해지다 보니까 무서워할 대상이 사라졌습니다. 부모도 안 무섭고 국가 대통령도 욕하고 위와 아래가 사라져 버리고 쾌락이 보입니다. 사람의 몸을 사랑하게 되고 음란의 끝판인 동성애가 판을 칩니다. 전 세계 선진국이 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을 저버렸더니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인간이 생각하는 대로 마구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질서 파괴와 온갖 범죄를 할 때 두려워 안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2장 1절부터 5절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은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인본주의가 되고 사람 중심의 세상이 되면 사람은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인터넷에 댓글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판단과 비판들이 있습니까? 사람은 아래와 위가 없어지고 자기가 가장 높고 자기 판단이 가장 옳다고 수많은 판단들이 인터넷상에 싸우고 있습니다. 수많은 판단을 하다가 모든 인류가 멸망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자기의 현재 행복을 찾으며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지 말라 하셨지만 그리스도인조차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5절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고 바울은 통탄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예수를 믿는 내가 마음속에 고백하는 것과 구원이 관계가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믿음은 히브리식 믿음이고 하나님과 언약을 굳건히 지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헬라어로 말하고 편지를 이렇게 썼지만 사상은 히브리식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범죄하는 자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6절에서 8절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바울이 말한 것은 구원을 하나님이 각자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합니다. 7절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예수를 믿고 교회에 왔는데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8절에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헬라어를 쓰지만 구원은 언약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정확히 히브리식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가 어려워서 로마서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믿음이라는 개념을 하나님과 나와의 언약, 하나님과 나의 계약이라는 개념으로 바꾸면 로마서는 쉽고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로마서 앞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있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으로 보면 구원이 쉽습니다. 그런데 다른 말씀을 보면 전혀 다른 말씀이 나오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로마서가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든 풀려고 하다 보니까 박사 학위가 그렇게 많이 나온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이행한다는 뜻으로 개념을 바꾸면 로마서를 읽을 때 쉬워집니다.
로마서 2장 9절부터 12절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12 무릇 율법 없이 죄를 범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모든 인류가 심판을 받으리라. 말씀하시고 예수를 믿고 행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 16절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말씀을 듣는 자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언약을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바울이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은 아무도 이의 제기를 안 합니다. 믿음이라는 개념 자체를 히브리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방인은 히브리식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방인 개념으로 보니까 어려워진 것인데 개념만 바꾸시면 됩니다. 바울은 요즘 교리로 말하면 행위구원론자이고 성경 말씀을 봤을 때 행위구원론은 틀린 것입니다. 이제 구원론을 바꿔야 합니다. 구원은 언약을 이행하는 것이고 그것이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곧 의인은 '언약'을 이행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28절 29절
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예레미야에 나왔던 새 언약에 관한 것으로 표면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입니다.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있고,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죄사함으로 인하여 살리라고 믿은 자가 유대인 곧 이스라엘 입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이라고 바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돌이킬 이스라엘은 바로 현재의 표면적 유대인 이스라엘을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마음에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인하여 죄가 사하여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을 늘 기억하며 삽시다. 우리는 넘어지고 쓰러지고 힘들고 지킬 수 없지만 아침과 저녁에 십자가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며, 십자가 사랑과 은혜 앞에 무릎 꿇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어 천국에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언약을 맺어야 되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이행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이행하여 우리가 구원받는 자 되게 아버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에 이르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