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essay
병영성에 봄이
정은영
추위가 물러가면서 산천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심한 일교차로 옷을 챙겨입는 일이 수월하지 않은 요즘이다. 한낮에는 초여름, 해가 지면 초겨울 느낌이다. 성급한 젊은이들은 벌써 반소매 차림이다.
울산은 봄에 바람이 많다. 차림을 단단히 하고 햇살 퍼진 날 병영성에 오르니 요 며칠 사이 성곽 아래 마른 잔디에도 푸릇푸릇 봄물이 올랐다. 엄동설한, 초목은 언 땅속에서 이미 봄을 준비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쑥쑥 올라옴을 확인하며 병영성을 걷는다. 발아래 이름 모를 싹들이 뾰족뾰족 순을 내민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돌고 도는 자연의 위대한 섭리에 감사할 뿐이다. 혹시라도 밟을까 싶어서 조심하다 보니 걸음도 삐뚤삐뚤하다.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여름에 두문불출하는 하안거 수행을 한다. 많은 생명이 길거리에 나와서 움직이고 있는 계절에 자칫 밟을까 싶어 석 달 열흘 문 닫고 공부한다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에 두 손을 모은다.
병영성과의 인연은 울산에 왔던 1978년부터다. 약 5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는 집이 병영성과 가까워서 자주 찾는 편이다. 성곽을 중심으로 남서쪽은 도심이다. 동북쪽은 동천강이 해자처럼 흐른다.
맑은 날 북문지에서는 100리 밖 경주 토함산이 아슴아슴 보인다. 백두대간 무룡산 자락에 펼쳐지는 연두의 봄빛 풍경은 아름다운 수채화다. 동문지 야경은 울산 12경에 든다. 공단 야경이 아치형 울산대교 불빛과 만나면서 더 화려해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LED 조명 요술에 빠져드는 느낌이 야릇하다.
집에서 병영성까지 구불구불 옛 골목을 걷는 즐거움은 어디 비할 바 아니다. 공단 도시 울산에서 골목이 그대로 온전히 남아 있는 동네가 병영이다. 최근 사라져가는 골목 연구도 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성으로 난 골목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골목은 제비꽃 화단이 있고 기와가 떨어질 것 같았는데 요 며칠 사이 그물로 기와지붕을 아예 싸버렸다. 아슬아슬한 재미는 사라졌지만 대신 안전이 확보된 것은 다행이다.
병영시장에서 오르는 코스를 따라가면 이 길을 물고 외솔 최현배 선생 복원된 생가와 함께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앞 골목은 연탄 손수레가 간신히 지날 비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은 한때 은장도 장인들 공방이 대여섯 곳 있었다. 1990년대는 이 골목을 걸으면 공방에서 “푸 푸” 풀무질 소리가 들렸고 모루를 치는 장인들 망치질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외솔 기념관 근방에는 130년이 넘었다는 병영교회, 외솔 모교 병영초등학교, 일제강점기 만세운동을 주도한 선열을 모신 사당 삼일사가 있다. 병영초등학교 정문에서 병영성 오르는 푹 꺼진 터에 병사들 식수로 사용됐을 거라고 추정되는 우물이 있다. 우물 주변에는 쉴 수 있는 공간, 그 옆에 한 뼘이나 자란 마늘밭도 있다. 밭고랑에는 이미 피어버린 냉이가 가득하다.
병영은 과거와 현재가 어울려 산다. 성곽을 따라 띄엄띄엄 집을 짓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비좁고 미로 같은 현재 골목이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62년 울산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비탈진 골목이 더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성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다. 곳곳이 끊겨 있다. 빈틈이 많은 게 도리어 여유롭다. 국가유산청에서 무너진 성벽을 수리하고 있지만 더디다. 그 바람에 좋은 점도 있다. 성곽이 호젓하다. 옛 그대로 있으니 주민들 외는 별로 찾지 않는다.
각설하고,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함께 피는 세상이 화려하다. 병영성 자락은 그 흔한 꽃나무들도 없다. 성곽이 있는 여느 한적한 산자락 같다. 휑뎅그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 여기저기 봄을 맞아 생명이 움트고 있다. 성벽 아래 쑥이 맨 먼저 키재기를 한다. 마른 잔디 위로 고개를 내민 쑥을 아줌마들이 뜯고 있다. 그들 바구니에 봄볕과 함께 쑥이 수북하다. 병영성에서 봄날이 만들어주는 또 다른 여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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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2007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으며 울산문학상, 울산예술문화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 『부치지 못한 편지』, 『다방열전 1, 2, 3』, 『병영성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