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열흘 앞두고 있다.
지난주 혼사가 있었다.
큰 아버지댁의 큰 아들은 작은 아버지보다 일찍 세상을 떴다. 제사를 받을 사람이 없다.
이웃 사촌이 먼 곳 친척보다 낫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진짜 사촌얼굴은 점점 보기 힘들다.
제사가 없으니 명절이 의미가 없다는 어르신들은 화가 난건지 세상의 변화에 소탈해진건지 점점 말씀이 줄어든다. 재작년 노인돌봄을 하면서 함께 한 어른들의 명절이 새삼 떠오른다.
나이가 든다는건,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야 하나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건 맞고 저건 틀렸다는게 통하지 않음을 이해할 때가 온 것인가. 가족은 이제 그들만의 가족이 생겼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어떤것도 당연한건 없다는걸, 세상 모든 일이 그럴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알아야 편할 일이다
……
가족의 탄생 1 /권창섭
어머니와 아버지가 상주가 되면서
우리집에는 장년만 남았다
에미애비도 없는 것들과
에미애비도 없는 에미애비를 가진 것들은
이제 더 이상 같은 집에 살지 않아서
함께 자지도 함께 먹지도 않지만
가족이나 식구 같은 말들은 여전히 유효한 공시태
이제 이 집에는 손님들만 모여서
점 백 짜리 고스톱의 패를 돌리고
똥을 드시라, 내가 싼 걸 드시라
덕담들을 건네며
우리들은 고아가 된다
달력의 명절들은 사라진 지 오래고
며칠을 연락이 되지 않아도
실종자 신고는 필요없는 시점들
이십사절기는 그런 면에서 유용하고
탈상 때마다 실업자가 생겨난다
좀처럼 청년이나 소년이 없을 때
조심스레 유년이 태어나고
안녕, 나의 조카?
평생 널 부르는 발음을 조심할게
우리는 거시적으로 축복받는다
웃음의 소실점을 한 곳으로 모으자
조카를 위한 기저귀를 사면서
엄마를 위한 기저귀를 함께 사고
똥을 먹으려던 아빠의 화투패는 잠시 주춤한다
이 똥을 먹어야 할지 저 똥을 먹어야 할지
쌍피를 먹어야 할지 똥광을 먹어야 할지
그럴 만한 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