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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원명신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는 시월 초하루기도법회가 봉행되었다. 대웅전 일주문위에 모셔진 불국토 건설 대원성취 부처님 점안식을 마치고 곧바로 진행된 초하루기도법회에서 회주 큰스님께서는 지난달에 이어서 중국선종사찰 순례길에서 담아 오신 육조혜능스님의 일대기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 주셨다.
~~~ 회주큰스님 시월 초하루 법문 ~~~
모든 도량 모든 불자들께서는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금일 시월 초하루 기도 길일을 맞이해서 정성껏 기쁜 마음을 모으겠습니다. 모두 따라하십시오, 오늘 너무 기쁩니다. 정법도량 한국불교도량 대관음사 초하루기도에 동참하게 된 것이 기쁩니다, 기도성취도량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33년 수행 대정진, 3년차 입재수행정진에 동참하게 된 것이 기쁩니다.
평화행복도량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불국토건설 대원성취 부처님 봉안에 동참하게 된 것이 기쁩니다. 오늘 이와 같이 기쁜 것처럼 나날이 기쁘기를 원 합니다 이 기쁜날들을 주심에 불법승 삼보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지난달 초하루 법문 육조 혜능님에 대한 아주 흥미진지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 겠습니다. 중국선종 사찰 순례에서 가장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육조스님에 관계된 유적 및 사찰입니다. 육조혜능 스님의 유적지는 대유령, 남하선사, 대감사, 국원사 이런 곳입니다. 오늘 대구 큰절 대웅전 입구 현관 위에 대원성취부처님을 모신 이런 뜻깊은 날에 33년 수행 대정진 3년차 기도 입재하는 이 날에 육조스님 얘기를 같이 하게 된 것도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닌가? 기이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육조혜능스님은 전 시간에 말씀을 드렸듯이 구광에서 자기 은사스님이신 5조 홍인 대사와 작별을 하게 됩니다. 구강나루에서 대유령이라고 하는 이 고개까지는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 거리이냐 하면 두달 반쯤 걸렸다고 육조단경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은사스님하고 헤어지고 대유령 꼭대기 까지 오기가 두달 반이 걸렸습니다. 물론 길이 요즘보다는 많이 험했을 테고 많은 장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 대유령이라고 하는 고갯길은 광동선 영남지방과 중국 중원의 강서성 지방을 나누는 고갯길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대유령. (대유령.) 대유령이라고 하는 고갯길을 넘어서면 바람이 다릅니다. 아주 따뜻한 더운 바람이 불고 대유령 이쪽 중원지방은 강서성 쪽은 바람이 좀 차지요. 고갯길 하나 때문에 그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대유령 고갯길을 막 넘어서는데 저 뒤에서 '노행자. 노혜능행자 거기 섰거라‘ 하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거기 서서 뒤를 돌아보니 혜명이라고 하는 3품 장군 출신이 따라 붙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발우를 근처에 있는 바위덩어리 위에 올려놓고 풀숲에 몸을 숨겼더라 그랬잖아요.
그 풀숲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는데 이 혜명수좌가, 3품장군 출신의 스님이 그 가사 발우를 들어 올렸습니까? 못 들어 올렸습니까? 못들어 올렸지요? 끙끙대다가 행자를 부르잖아요? ‘행자야 나는 이제 욕심이 없어졌다. 나와서 가르쳐다오.’ 하니까 노행자가 안심하고 풀숲에서 나오게 된거지요. 그 때에 스님께서는 가르치기를 ‘불사선 불사악 하라.’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마라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조그만 절이 하나 새워져 있는데 그 절이 육조사라고 하는 절입니다. 거기 보시면 그림 2번입니다. 육조사라고 쓰여져 있지요? 육조사는 여기서 한 2, 30미터 정도에 절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
처음에는 육조사라고 쓰여진 이 바위덩어리가 의발석이 아닌가 이 위에다가 가사 발우
를 올렸는가 싶어서 제가 들고 다니던 짐을 올려놨습니다.
그런데 한참 돌아다보니까 2,30미터 밑에 3번 그림의 바위덩어리가 있고 의발정,
의발을 올렸던 돌이고 그 위에는 정자를 이렇게 그 하얀 것은 정자입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제가 거기서 춤을 한 번 춘겁니다. 제가.
지금보니까 자세가 나오네요.
제가 춤추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겠다고 한 것을 전달에 법문 끝에 보니까 쓰여져
있더라고요. 기자들이 녹취해 놓은 것을 보니까.
그래서 제가 지금 춤추는 것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육조사라고 하는 것은 육조 혜능스님의 덕을 기리기 위한 절이지요.
육조사라고 하는 절은 스님도 없고 그냥 형식적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사진을 찍고 누가 관리를 안 해서 아주 형편없는
절인데 육조사라고 해서 지표석을 세우고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해 놨습니다.
저는 주위 경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풀숲에 노행자가 숨었던 그 자리에 전번 달에 말씀을 드렸던 상사화, 쑥부쟁이, 쑥부쟁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망초, 여뀌, 이런 꽃들이 아주 화려하게 피어 있고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는 칡넝쿨이 여기저기
많이 우거져 있고 자연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식물이 거의 그 속에 다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유령까지 올라가는 그 길은 아주 납작납작한 돌멩이로 잘 만들어 놨는데 그 길은
수나라 당나라 때부터 내려오던 길입니다.
그러니까 영남지방으로 즉, 광동성으로 통하던 외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 뒤에서 5조 홍인대사의 제자들이 서로 육조가 되겠다고 따라 붙었는데 남쪽으로
갔다 하니까 따라 붙였는데 그 길이 외길이었기 때문에 따라 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상황을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의발을 뺏으려고 했던 그 자리가 오조 홍인대사가 계셨던 구강 근처가 아닌가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보면 그것이 이해가 됩니다.
오조 홍인대사로부터 나와서 두 달 반 만에 대유령 고갯길에 오게 되었는데 그 대유령
고갯길에 육조사라고 하는 기념적인 절이 하나 서 있다는 이 말입니다.
거기 주련을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의발 남매 중승 추족
의발이 남쪽으로 갔는데 가사와 발우가 남쪽으로 갔는데 뭇스님들이 따라 왔더라 이
말입니다.
육조사의 주련, 절의 기둥에 씌여진 글을 주련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또 읽어보겠습니다.
(해명 구도 차지 분등) 혜명이 도를 구하기 위해서 이 당에 왔는데 여기서 등불을 나누었다.
일단은 혜명이라고 하는 평 스님이 혜능 행자로부터 법을 듣게 됩니다.
‘불사선 불사악 하라.’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마라. 그 자리에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선도 생각지 않고 악도 생각지 않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고.
여기는 대부분이 다 부모들이니까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할 때에는 선이다 악이다 생각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식을
살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식이 없는 우리들은 이해가 잘 안돼요.
불사선 불사악의 경지가 어떤 경지인가.
아무튼 미루어 짐작 컨데 부모의 심정이라면 자식을 끔찍이 생각 하는 그 마음이 선도
생각지 않고 악도 생각하기 전 그 전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또 그러한 주련이 있는 육조사가 있는가 하면 3번의 제가 춤추고 있는 돌을 의발석이라
고 하고 그 위에 지어진 전각을 의발정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의발정에 주련이 하나 있는데 그 주련의 내용은 대유령의 깨달은 안목이 사람들을
지금도 그립게 한다고 그런 내용이 한문으로 씌여져 있습니다.
유령풍광 계모인 사모한다는 모 인이라 그렇게 씌여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육조 혜능대사는 행자의 신분으로 더욱 더 남쪽 길로 내려오게 됩니다.
물론 혜명이라고 하는 장군 출신의 스님이 따라 오는 뒷 무리들을 다 막아주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신장을 하나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조계산에 옛날부터 있었던 조그만 절 보림사에, 허물어진 절에 들어가서 9개월
동안 지내는데 거기까지 나쁜 무리들이 쫓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피난석이라고 하는 전 시간에 말씀드렸던 피난석으로 피난을 하게 되고 그 뒤로는
사냥꾼을 따라 다니면서 15년 동안 피신을 합니다.
그 때 사정이나 지금 사정이나 나쁜 무리 또는 사악한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사냥꾼을 따라 다니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게 됩니다.
쉽게 법을 설하지 말라고 은사인 오조 홍인대사께서도 말씀을 하셨고 상황이 법을 설하면
사람이 다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사냥하는 사람들을 따라 다니면서 그 사람들을 상대로 조금씩 법을 설했는데 사냥
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비록 자기들을 따라다니는 사냥꾼이지만 사냥하는 무리 속에 있기
는 하지만 예사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노행자 보고는 사냥을 직접 시키지 않고 그물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지키고 있으면 활을 쏘거나 창을 던지고 해서 동물들을 몰아오겠지요.
그러면은 그물에 걸리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노행자는 빨리 딴 사람들이 눈치를 못 차리게 그물에 걸린 짐승들을 다 놓아 주었
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공양을 할 때는 딴 사람들은 다 고기를 먹을 때에도. 사냥꾼들이니까 고기가
주식이겠지요. 그렇지만 자신은 채소를 뜯어서 고기를 굽는 주변에 놓아 두었다가 속이 좀
안 좋아서 이걸 먹어야 된다는 핑계를 대면서 고기는 안 먹고 육변채라 고기 주변의 채소만
먹었다는 이런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을 보내고 15년쯤 지난 뒤에 이제는 마땅히 법을 설할 시기 왔구나. 인연이
되었구나 하고 광주의 법성사라고 하는 절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법성사라는 절은 현재 이름은 광효사라고 하는 절입니다.
광효사는 15번 그림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광효사. 광효사.
법성사, 이 광효사에 인종법사라고 하는 분이 열반경을 설한다고 해서 많은 대중들이
모였던 모양입니다.
우리 절에는 법회 합니다.
하고 깃발을 하나 올려놓았어요.
시골에 절에 가면 당간지주라고 해서 돌이 두개 크게 서 있지 않습니까?
통도사나 이런 큰절에 가도 그렇고. 그러면 당간지주라고 하는 것은 당간주를 이렇게
잡아주는 돌덩어리입니다.
기둥이 이렇게 서고 그 작대기에 깃발을 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깃발은 주로 절에서 행사를 할 때에 불교기를 단다거나 요즘으로 말하면 게양대
비슷한 것입니다.
그 그림이 17번 그림입니다.
17번 그림 보고 있습니까?
그 아래 보면 깃발 하나 나부끼지요?
이것은 광효사에 있는 그림이 아니고 이 뒤에 설명 드리게 되는 육조 혜능스님께서 돌아
가신 절 국은사 벽화에 나오는 그림을 찍어 놓은 것입니다.
육조 혜능대사가 행자의 신분으로 - 그 때 까지도 행자입니다. 그러니까 행자 생활을
16년간 하게 되는 것이지요. - 그러니까 17번 그림처럼 열반경 강의 중에 쉬는 시간에
대중들이 바깥으로 나와서 쉬고 있는데 눈 앞에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스님둘이 이 깃발에 대해서 옥신각신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저 기발이 움직인다.’ 하니까 ‘어떻게 깃발이 움직이느냐?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또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이는데 바람이 움직인다 하느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깃발이 움직인다.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 바람이 움직인다 하면서
둘이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 때에 옆에 사냥꾼을 따라 다니던 혜능 행자가 옆에 섰다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
이도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대단한 얘기였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도 이런 법문을 많이 들으니까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우리처럼
수준이 안 높은 사람이 봤을 때는 대단한 얘기라는 말입니다.
육조단경 같은 데서는 주위에 있던 대중들이 다 놀라 자빠졌다고 했습니다.
다 놀랐다 이 말입니다.
놀랄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는데 나타나가지고는 바람이
움직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너희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했으니 그 얼마나 대단한 말이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금방 인종법사에게 전달이 된 것입니다.
대단한 처사가 하나 와서 있습니다. 해서 인종이 얘기를 들어보니까 대단한 사람이라
급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상석에 앉히고는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봤을 때에 그대는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황매의 가사가 남쪽으로
왔다고 듣고 있는데 혹시 그대가 가사 발우를 지니고 있는 노행자가 아니십니까?’
하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그 때에 행자는 단경에 표시는 그래요. ‘내가 맞습니다.’ 하지 않고 불감이라,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라고 하는 말은 뭡니까?
내가 맞습니다. 하면서도 겸손을 나타내는 말이잖아요?
이런 말을 우리가 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네가 했지?’ 하면 ‘아이고 스님,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상대방이 알
것인데 내가 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것은 좀 모자라는 사람이지요?
좋은 일을 두고 칭찬을 하면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한 것이
분명하구나.’ 다 알 터인데 ‘아이고 스님 그 때 내가 했지요. 잘 한 것 맞지요?’ 그러는
것 보다는 ‘부끄럽습니다.’ 하면 더 인정을 받잖아요.
바로 노행자가 그렇게 했습니다. ‘스님 부끄럽습니다.’ 그러니까 인종이 ‘가사발우를
좀 보여주십시오.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걸망에 넣어 두었던 것을 풀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틀림없는 그 분이구나!’ 하고 이제 확실히 인정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림을 보시면 19번 그림도 광효사의 그림인데 저 뒤에 보이는 것은 아주 낡은 아파트
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철거해야 할 아파트입니다.
이 광효사 즉 법성사는 시내에 있는 절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는 다녀보면 시내에 있는 절들은 아주 신도들도 많고 그 사세가 대단한데
시골에 있는 절들은 힘이 듭니다.
이 법성사, 광효사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절입니다.
그걸 보여 주기 위해서 이 아파트를 그대로 찍어 놓은 것입니다.
옛날부터 시내에는 이런 법회가 많이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뒤에 가면 또 나옵니다.
아무튼 드디어 육조가 되는 혜능행자가 여기서 삭발을 하고 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래서 육조께서 삭발하고 계를 받는 장소가 어디냐 하면 10번 그림입니다.
10번 그림 안에 탑이 있지요? 이것이 삭발탑 입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다 보리수나무입니다.
이 자리에서 육조스님이 삭발을 했다는데 여기에 머리카락이 봉안되어 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스리랑카 스님이신 망갈라티샤 스님이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모아서
위빠사나 명상 특강을 하면서 사리 친견 법회가 있으니 인사 말씀을 좀 해 주시면
좋겠다고 해서 지난 일요일이지요? 그래서 3층 법당에 갔더니 많은 노동자들이
와 있고 앞에 장엄을 잘 해 놨어요.
앞쪽에 가서 뚜껑을 열면 솜 같은데 그 위에 사리가 있다고 해서 뚜껑을 열고 솜
같은데를 보는데 사리가 없어요.
왜 사리가 없나 해서 보는데 옆에 망갈라티샤 스님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까만 머리카락을 하나 올려놓았는데 그 까만 머리카락이 부처님 머리카락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도 우리는 믿어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믿는
마음으로 ‘아! 그것이 부처님 머리카락이구나.’ 하고 보는 것이지 보통사람 같으면
‘아이구 머리카락이 무슨 사리야!’ 하고 아주 폄하하는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스리랑카에서 온 모든 노동자들이 티샤스님 본인은 말 할 것도 없고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오색영롱한 사리 있잖아요? 머리카락 하나를 두고 완전히 사리
보다 더 중한지도 모르지요. 부처님 머리카락이니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고 부처님 머리카락이겠나?’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부처님
을 믿고 부처님 사리를 믿고 절에 와서 부처님 말씀을 믿는 것은 그 정도로 믿어야
됩니다.
‘무조건 부처님 머리카락이다.’ 그 정도로 믿어야 되지요.
‘아! 무조건 부처님 머리카락이다. 이렇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10번의 이 탑도 육조스님의 삭발탑인데 이 안에 그 아주 귀한 혜능행자의 삭발 할
때의 머리카락을 잘 모셔놓았다 생각을 하고 참배를 하면 더 신심이 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광효사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삭발을 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탑이 바로 이 탑입니다.
광효사 보리수나무는 누가 심었느냐 하면 502년, 그러니까502년에 육조혜능 스님이
행자로서 여기 나타나기 170년 전에 지약삼장이라 지약삼장은 7번의 한문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지약삼장 (지약삼장).
이것은 있다가 또 말씀을 드리게 되는 남아선사, 옛날 보림사 남아선사에 있는
현액입니다.
지약삼장이지요.
지약삼장이라는 대단한 분이 해로를 따라서 중국의 남쪽에 들어와서 드디어 옛날의
법성사, 광효사까지 오셔서 보리수나무를 여기에 심고는 ‘이 나무 아래에서 가장
훌륭한 법을 열고 연설하여 한량없는 대중을 제도할 것인데 참으로 부처님의
심인을 나타내는 법의 주인이 나타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법의 주인이 바로 혜능행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170년 전에 지약삼장이 예언을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 지약삼장은 남하선사의 보림사 터를 잡고 한 분이 지약삼장이지요.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지약삼장 (지약삼장) 이 지약삼장이 법성사 보리수나무를 심고 심으면서 하는
얘기가 ‘앞으로 170년 후에 육신보살이 나타날 것이다.’ 육신보살은 이 모 이대로
보살행을 하면 육신보살입니다.
그래서 육조혜능스님을 바로 육신보살이라고 표현하면서 육신보살이 나타나서
여기서 축발 수계할 것이다.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 예언이 딱 적중을 하게 됩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면 15년 동안 사냥꾼을 따라 다니다가 16년 되는 해에 인종
법사를 만나게 되었고 이 인종법사께서 정월보름에 머리를 깎았어요.
그 날 바로 머리를 깎은 것 같아요. 머리를 깎아 주고 2월 8일 음력으로 정월보름에 머리를
깎고 행자생활도 거의 안했습니다. 2월 8일에 구족계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비구계를 바로 줘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한 일 년 정도는 지냈던 모양입니다.
그 다음 해 봄에 드디어 법성사, 지금의 광효사, 법성사에서 보림사, 지금의 남하선사입니다.
법성사에서 보림사로 돌아오게 됩니다.
인종법사가 천 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전송을 해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니까 모든 걸 다 떠납니다.
그 행자가 사냥꾼을 따라다녔다는 것도 다 묻히는 것이고 나이도 다 묻히는 것이고 행자
에서 바로 비구계를 받았다는 것도 다 묻혀 가는 것입니다. 육조니까.
그래서 이제 모든 대중들이 다 전송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보림사로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지금의 남하선사이지요.
남하선사 그림은 전달에 많이 보여드렸기 때문에 빼고 1번 그림에 보이는 탑이 영조탑
이라고 하는 탑인데 이 영조탑이 남하선사, 보림사에 있는 탑입니다.
이 조계산 보림사에 돌아왔는데 금방 대중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수 백 명의 스님들이 모이다 보니까 당우가 좁아 집이 너무 좁아 가지고 절을 좀 확장을
해야겠는데 그 땅 주인은 촌민인데 이름이 진하선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진하선이 땅주인인데 땅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거사님한테 좌복 깔 땅을 좀 구하는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 땅 좀 시주 하십시오.’
했습니다.
돈은 없었겠지요. 그러니까 다짜고짜 시주 좀 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진하선이 ‘그러면 좌복 깔 땅이라 했는데 스님 좌복이 얼마나 큽니까?’
스님들은 옛날에 비구육물이라 해서 좌복을 가지고 다녀도 되도록 해 놨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다니던 좌복을 꺼내서 보여 줬습니다.
좌복이라고 해 봐야 요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진하선은 ‘땅 몇 평 주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아이고 그 정도는 드리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러자 육조혜능스님은 ‘제가 이걸 펴면 조금 많아서 커집니다.’ 하면서 들고 툴툴 털면서
바람에 휙 하니까 조계산 전체를 덮어버렸습니다.
조계산 전체를 덮어버리니까 사천왕들이 나타나서 바람에 안 날리도록 꼭 꼭 누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더니 좌복 크기만큼 땅을 준다고 해 놓고 안 줄도 없고 진하선이 아주 입장이
곤란해져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 스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지 얘기하기를 ‘큰스님의 법력이 크고 넓은 것은
알겠습니다만 고조의 분묘가 여기 있으니 후 일이라도 우리 묘는 좀 놔두십시오.’ 하고
아주 소박한 그런 바램이지요.
‘그 대신에 제가 약속을 드렸던 것처럼 영원히 여기에다 절을 하십시오.’ 했습니다.
그런 사람 어디 좀 없어요? ^^
절을 하고 있는데도 땅 때문에 문제가 되고 그렇습니다.
나중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도량 중에 그런 데가 또 있습니다.
보림사라는 절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육조혜능스님께서 그 쪽으로 들어오시면서 확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까 지약삼장법사스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지약삼장법사 스님이 170년 전에
아까 광우사에도 들렀다고 했는데 지금 얘기하고 있는 남하선사 보림사를 지나치면서
‘이곳에 물맛이 좋구나. 170년 후에 이곳에서 위대한 육신보살이 나타나서 연설하고
교화해서 도를 얻는 자가 저 수풀과 같이 많을 것이니 보림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사실은 170년 전에 인도스님인 지약 삼장법사가 이름을 보림사라고 붙여 줬습니다.
그렇게 오다가 이름이 나중에 남하선사라고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타나는 보림사의 유적지는 어디냐 하면 1번 영조탑. 그다음에 4번
보이지요?
어떤 남자가 물을 쳐다보고 있지요?
그것이 접니다.^^ 우학스님이고 탁장천이라고 하는 우물입니다.
탁장천은 지팡이 장(杖) 자를 쓰서 탁장천.
여기 왔는데 대중이 많아지다가 보니까 물이 좀 모자라요. 그러니까 육조혜능스님이
산능선도 아니고 평지는 아니고 조금 비탈이 있는데 그 위에 올라가셔가지고는 지팡이를
가지고 땅을 몇 번 찍으니까 거기서 물이 팍 팍 솟아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우물이 지금도 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 곳이 탁장천이라고 하는 우물입니다.
물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남하선사, 구 보림사하고 관계되는 곳이 5번입니다.
5번에 어떤 사나이가 절을 하고 있지요?
이것도 접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4번 5번 같은 사람입니다.
중국의 절은 절을 하고 싶어도 절을 잘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신을 신고 전부 법당 안에까지 들어가는 거지요. 신을 신고.
신을 신지 않고 법당 안에까지 들어가는 절은 딱 한 군데 봤습니다. 그 법당 하나.
그것은 나중에 또 소개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녔느냐 하면 그냥 신발 신고 들어가서 요만한 판자하나 놓고 딱
무릎만 꿇도록 해 놓았습니다.
절은 우리처럼 108배를 하든가 할 수가 없는 거지요.
이 보자기는 나중에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조사라고 하는 절에서 스님한테 보자기를 얻어가지고 다닐 때마다 절을 하고 했는데
이 앞에 절하는 앞쪽에 뭐가 있는가 하면 육조대사의 진신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전 번 달에 드렸던 육조대사의 진신상. 아주 온전하게 그대로 옻칠만 해 가지고 그대로
앉아 계시는 육조스님. 전에 사진 드렸지요?
그 분이 이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법당 안에 육조스님이 천년세월을 지키면서 앉아 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절을 하기 힘이
들기 때문에 마당에서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하선사, 지금은 남하선사라고 말을 합니다.
이 남하선사는 스님들이 한 삼 백 명 정도 비구, 비구니가 같이 살고 있고 또 선방스님도
한 20여명 있고 대부분 불학원, 우리나라로 말하면 강원 승가대학 스님들이 많이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3년, 3년, 3년, 해서 약 한 10년 정도는 공부하도록 그렇게 편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하선사는 열대우림지역이라고 해서 아열대 지역입니다.
아열대지역쯤 돼서 숲이 아주 울창하고 숲이 울창하기도 하지만 자연경관도 좋고 물도
많고 터를 아주 잘 잡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지약삼장 기념관, 전 시간에도 제가 소개를 했던 허운화상. 120살
까지 사셨던 허운화상의 기념관도 있고 허운화상에 대해서 나중에 또 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보림사라고 하는 이름은 지약삼장법사께서 여기서 도를 받는 자가 저 수풀과 같이
많을 것이니 이름을 보림사라고 한다고 해서 보림사인데 이 보림사가 나중에 남하선사
가 되는 것이지요.
이 보림사에서 법을 설하는데 한 번은 소주의 위자사라고 하는 사람이 스님을 찾아
왔습니다.
불자였던 모양입니다.
혜능스님을 찾아와서 뵙고는 ‘스님, 대범사에서 법을 설해 주실 것을 청하옵니다.’
대범사는 어디쯤 되는가 하면 보림사에서 승용차로 15분쯤 거리에 있는 시내입니다.
지금의 남하선사도 시내하고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마선사의 시내에 분원에 해당하는 대범사라고 하는 절이 옛날 이름
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대범사가 아니고 대감선사입니다. 8번 그림입니다.
8번 그림의 대감선사가 대범사였습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대감선사(대감선사).
이 대감은 육조스님의 시호입니다.
돌아가시면서 황제가 내린 시호인데 대감선사는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참선하는 절이라는 것이지요. 대감선사.
원래 이름은 대범사 였습니다.
대범사는 시내에 있습니다.
시내니까 어느 정도 시내냐 하면 9번 그림이 대감사 일주문에서 바깥으로 찍은
것입니다.
보이지요?
여기에 보면 대감선사 대감사 그 아래쪽에 그림 일주문에서 바깥으로 보고 찍었는데
여기는 일주문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천왕문이고 바로 대웅전이 나타납니다.
절이 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쪽에서 내다보면 저 멀리 노란 간판 밑에 뭐가 주렁주렁 달렸지요.
저것이 통닭입니다.
통닭, 오리, 저쪽에는 보일런가 모르겠는데 뱀탕하는 뱀도 우글거리고 옛날부터
이 대감사는 시내의 한 복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자사, 소주의 가장 높은 어른 위자사가 15분 거리라도 요즘 자동차로
15분이지 옛날 같으면 마차로 갔으면 한 시간은 걸리겠지요? 매일 강의를 듣기
힘드니까 스님한테 가서 부탁을 한 것입니다.
대법사에 나오셔서 법문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법을 듣고 싶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금강경, 반야심경 모두가 마하반야바라밀 법입니다.
그러니까 스님께서 법문을 어디서 하시느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육조단경,
제가 불교테레비젼에서도 강의를 한 바가 있지요? 바로 이 육조단경은 대감선사,
옛날 이름으로 대범사에서 육조단경 강의를 하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련에 보면 8번 그림 왼쪽 주련에 보면 거기 뭐라고 해 놨습니까?
감조 라 대감의 감 자를 따서 감조수기연단경이라고 그 아래 단경이라는 말이
묻혔습니다.
감조 라는 말은 육조스님을 말하고 육조스님께서 수기, 근기를 따라서 연 단경이라
단경을 연설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마선사에서 육조단경을 설하신 것이 아니고 지금의 대감선사 옛날의
대범사에서 단경을 설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육조단경에도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자사가 중심이 되고 자사의 관료 30명 유교 유학자 30명 비구 비구니 그
외에 거사 보살을 포함해서 천 여 명이 여기에서 육조단경을 들었다 그런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육조단경을 설하시면서 어떤 법문이냐 하면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아 (여러분들아)
보리의 자성이 본래 밝고 깨끗하니( 보리의 자성이 본래 밝고 깨끗하니)
다만 이 마음만 잘 쓰면( 다만 이 마음만 잘 쓰면)
바로 성불할 것이니라.( 바로 성불할 것이니라.)
바로 마음 잘 쓰는 그 자리가 바로 부처의 자리다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동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동교.
그러시면서 하는 얘기가 ‘내가 그동안 갖은 고생을 하였고 목숨이 실낱 같았는데
여기서 육조단경을 설한다 하니 누급의 인연이 아닐 수 없구나. 참으로 감개무량 하구나.’
도인이지만 다 감정이 있는 것이니까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하시면서 단경에는 보면 공에 집착하지 말고 무기공이라, 무기공에 떨어져서도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하십니다.
육조스님께서 오조 홍인 은사스님으로부터 가사발우도 받았지만 제가 전반에 해 놓은
것을 불교인드라망에 들어가서 들어 보시기바랍니다.
뭐를 받았느냐? 가사와 발우와 동교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동교.
따라 해 보십시오.
동교 (동교). 동교 (동교)
동교의 핵심이 뭐냐 하면 내가 본래 부처이고 내가 본래 훌륭한 인격자이고 내가 본래
잘 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교 입니다.
우리가 중생인데 하도 닦고 닦아서 나중에 부처가 된다는 것이 아니고 나는 본래 부처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나는 원래 부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뭡니까?
나는 본래 하늘이었는데 구름이 좀 끼고 매연이 좀 끼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구름 또는 매연이 있는 공간을 떠나서 다른 맑은 하늘을 찾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만 걷어내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바탕은 부처님의 바탕하고 똑같다 이 말이지요.
잘 새겨 들으셔야 됩니다.
그래서 번뇌 즉 보리 라.
바로 이 공간 그대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힘들고 마음이 좀 갑갑하다.
번뇌가 좀 있다 하더라도 이 공간을 떠나서 달리 보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간 이대로 변화시켜 버리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의 자리이지요.
그런 가르침을 동교라고 합니다.
홀로 깨달아 내가 그 자리 부처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받는 그것이
동교입니다.
그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애들한테도 그런 훌륭한 속성이 다 있는 것이고 아무리 우둔한 사람, 아무리
포악하고 악랄한 사람한테도 그 마음 가운데는 훌륭한 선의 종자가 다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동교의 가르침이지요. 번뇌 즉 보리 라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번뇌 즉 보리. (번뇌 즉 보리)
번뇌 즉 보리. (번뇌 즉 보리)
동교 동교 하니까 동교의 뜻을 알고나 말을 해야 합니다.
동교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거기서 이제 대범사 즉 대감선사에서 시중 한복판에서 법을 설했다는
것은 옛날에도 시내에서 법을 설했는데 현재 우리는 더욱 더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시골에 누가 자동차가 있다 하지만 법문들으러 가기도 여간 어렵지 않느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천개 도량을 세운다하면 저 산중에는 절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모든 도량이 잘 발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이웃들 사람들 중생
있는 시내에 절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조혜능스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그 광효사도 바로 시내에 있었고 대감선사, 대범사도 바로 시내에 있습니다.
남하선사에서 하시는 얘기입니다.
대중들이 다 울었습니다.
그 신해만이 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신해만이 울지 않고 있으니까 ‘저 신해가 마음의 평등을 찾은 제자구나’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울고 있으니까 ‘도를 닦는 자들이 울기는 왜 우는고’ 하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지금 슬피 우는 꼴이 좋다.’ 이랬습니다.
내가 국은사 가서 열반에 든다 하니까 왜 우느냐는 것이지요,
얼마나 심하게 얘기 했느냐 하면 너희들 누구한테 잘 보일려고 우느냐는 겁니다.
보통 그럴 수가 있습니다.
초상 치는데 가보면 누가 오면 엉엉 울고 안 오면 뒤에서는 웃고 있고....
일부러 막 우는 사람 있지요?
육조혜능 스님은 그 정도는 다 압니다.
너희들 나한테 잘 보일려고 울고 있느냐 이겁니다.
내가 만일 가는 곳을 알지 못해서 불안해서 울 필요는 없다.
나는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울지 마라는 겁니다.
도인의 경지에서는 도저히 생사는 없는 것입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본래 생사는 없다.
법의 성품에는 생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불생불멸이니라. 대신에 나는 가사 발우는 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가사발우가 그 때 딱 끊어지고 가사발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1번의 영조탑 이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1번 안에
이것도 스님 뭐 진짜 있겠습니까? 하는데 믿음을 가지고 ‘아! 여기 모셔져 있구나.’
하면 모셔져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7월 1일에 대중들을 모아 놓고 선언을 하고는 7월 8일에 드디어 신주 땅에
국은사로 가게 됩니다.
‘나는 이제 신주 국은사로 간다.’
대중들이 더 계시기를 간곡하게 얘기 했지만 육조스님은 모든 부처님은 출현하여
열반을 보였듯이 오면 반드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엽락귀근 (엽락귀근) 엽락귀근 (엽락귀근)
입사귀 연 자, 떨어질 락 자, 돌아갈 귀 자. 뿌리 근 자.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는 얘기를 하시고 갑니다.
모든 존재는 다 그렇습니다.
오늘 또 보면 3층에서 재를 지낸다고 기다리고 있는 분도 있고 1년 49주 천도재도
지내고 아직 뒷 시간이 남았습니다.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것을 몸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엽락귀근 (엽락귀근).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육조스님은 이 말씀을 하고는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다시 또 부탁을 합니다.
‘세속의 정으로 절대 울지 마라.’
울면 영가도 집착을 하게 됩니다.
도인이야 집착을 하지 않겠지만 보통 영가들은 많이 울고 그러면 잘 못 갑니다.
죽지 전에 잘해줘야지 죽은 뒤에 울고불고 ‘내 그 때 좀 잘해 드릴걸’ 하고....
그렇잖아요?
그리고 또 둘째로 부탁하기로는 조문도 받지마라.
셋째는 상복도 입지마라.
육조스님 이전에는 스님들도 다 상복을 입었습니다.
상복도 입지마라는 것입니다.
그 때 당시에는 대단히 혁신적인 것입니다.
요즘 스님들은 은사스님이 돌아가셔도 상복을 안 입습니다.
그냥 가사장삼만, 장삼만 입고 있지요..
가사는 법의 지표니까 잘 수하지 않지만 장삼은 평상복이니까 입고 장례를 치릅니다.
그래서 드디어 육조스님이 국은사로 옮기게 됩니다.
국은사로 갔습니다.
열반지가 국은사인데 국은사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18번이 국은사입니다.
16번도 국은사입니다.
16번에 차 한 대 대놓고 차 문 열어 놓고 있지요?
그게 지금 차 고사 지내는 것입니다.
국은사 스님들이 차 고사 지내는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돼지대가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차 고사 안 지내도 됩니다.
‘그러면 스님 차 고사는 어떻게 지냅니까?’ 하는데 서점에 가서 염주 깨끗한 것 좋은 것
하나 사가지고 부처님 위에 올려놓고 아니면 종무소에 차 기도 신청을 해요.
그러면 염주 사다 올려놓고 그 날 하루기도 끝나면 염주를 차 백밀러 위에 잘 걸어 주면
그보다 더 좋은 고사가 어디 있냐는 말입니다.
그 기도가 최고지 차 대놓고 스님들이 빙빙 돌면서 염불을 하고 그리 하는데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안 하는 것 보다 낫겠지만 궂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염주 깨끗한 것 사다 잘 올려 놓았다가 기도한 뒤에 자재분이면 자재분 차에 걸어주면
어머니의 기도 아버지의 기도니까 본인의 차는 말 할 것도 없고 더 이상 방편이 되고
더 이상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차 고사는 할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시간이 지금 12시 10분에 끝내야 되는데 10분 동안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4번 그림은 시내다 보니까 고기를 냉장고에도 안 넣고 내다 놓고 팔고 그럽니다.
날씨도 무지 더운데 안 썩는가 몰라요.
18번 그림이 어디라 그랬지요?
예 국은사. 드디어 국은사 열반의 날이 다가 왔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 법문을 하십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탕탕심무착 (탕탕심무착) 탕탕심무착 (탕탕심무착)
넓고 넓은 마음이 걸림이 없구나!
넓고 넓은 마음이 걸림이 없구나! 이 말은 나는 이제 자유자재하다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단정히 앉아가지고 드디어 삼경이 되었습니다. 삼경, 밤중이 되었습니다.
단정히 앉아 가지고 ‘나는 간다.’ 이랬습니다.
오 행의라. 중국말로 한문으로 오행의 라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나는 간다. (나는 간다.) 나는 간다. (나는 간다.)
이렇게 말을 하고 갈 줄 알아야 되는 거라......
그 정도는 돼야지 불자가.....
그리고는 그대로 가버렸어요. 가만히 앉아가지고.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흰 무지개가 땅에 꽂히고, 숲과 나무들이 슬펐는지 하얗게
변하고 짐승들도 슬피 울었다는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고 11월에 광주 소주 신주 이 세 군의 관료와 백성들이 서로 큰스님의
법체를 서로 자기 고향으로 모시고 가려고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가지고 중재를 했는데 뭐냐 하면 모 일 모 시에 향 한 자루를
피워 놓고 마당에 향 연기가 가는 쪽으로 시신을 보내드리자. 고 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이 길을 갈까 저 길을 갈까 할 때는 침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탁 치잖아요.
스님들도 만행을 하다가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이 쪽도 가고 싶고 저 쪽도 가고
싶고 그러면 스님들끼리라도 논쟁이 붙어요.
그러면 스님들도 논쟁이 붙으면 신발을 던져 봅니다. 신발 가는대로 가는 거지요.
어떤 때는 침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침이 튀는 대로 갑니다.
그 때 스님들도 지금의 한국스님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향 연기 나는 쪽으로 모셔가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향 연기가 어느 쪽으로 갔느냐 하면 조계산 보림사 쪽으로 향 연기가 갔습니다.
조계산 보림사하고 국은사 하고는 거리가 얼마냐 하면 사백 킬로입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입니다.
스님께서 왜 국은사쪽으로 오셨느냐 하면 고향이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이 도인들도, 우리가 고향 하면 마음의 고향, 우리가 마음의 고향은 부처님이 아니
겠습니까?
그런 고향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런 차원 높은 고향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 자기가 어릴 때 살았던 고향을 늘 그리워
하는것 같아요.
부처님도 쿠시나가라로 가실 때 그 곳이 고향으로 가시는 길입니다.
지금 이 도인도 국은사는 바로 고향땅입니다.
이 고향 땅에 세계적인 도인이 났으니까 지금 이 사람들이 지금은 신흥땅인데 신주땅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겠습니까?
11번 그림을 봐요.
지금은 시내서 사통팔달 교통량이 아주 많은 한 중간에 큰 공원을 하나 조성해 놓고
육조 혜능대사를 이렇게 잘 모셔놓았습니다.
시내 한 복판에 공원을 아주 잘 조성해 가지고 여기서부터 국은사까지 들어가는 길을
넓은 길을 아주 잘 닦아 놓고 이 도로를 육조대로라고 해 놓았습니다. 육조대로.
그 정도면 육조혜능대사가 법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도 법력이 미치고 있는 것이니까.
이 돌의 높이가 눈으로 봐서는 한 뼘도 안 되지만 이게 수십 미터짜리 입니다.
수십 미터 원석으로 이렇게 모셔 놓았습니다.
나중에 광동성에 가시면 한 번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중에 돌아가시고 옻칠을 했습니다. 몸에다가 옻칠을.
몸에다가 향을 바르고 옻칠을 해서 방변이라고 하는 제자가 그 쪽에 조애가 있어서
옻칠을 해서 76세에 돌아 가셨는데 옻칠을 해서 남아선사에 1번 그림 영조탑 쪽으로
옮겨 옵니다.
그 영조탑에 잘 모셔 있다가 나중에는 그 집 안으로 아까 제가 5번의 절하는 그 앞에
지금 육조스님의 진신 상을 모신 집을 하나 지어서 새로 옮겨 모신 것입니다.
육조혜능스님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드리면 24살 때에 오조 홍인대사로부터
가사와 의발을 전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39세에 머리를 깎고 정식으로 스님이 되었고 37년 동안 법문을 하시다가
그 아래에서 도를 깨달은 사람이 43 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많은 교화를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가사발우는 탑을 주관하는 시자가 맡았는데 그 탑이 1번 영조탑 입니다.
가사발우는 영조탑에 모셔져 있다는 그런 얘기이고 육조단경을 설한 이 대감선사는
지금의 소관이라고 하는 소주땅 소관의 중심 시내의 한 복판인데 왜 대감선사에서
육조단경을 설하셨겠는가를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놓친 그림 가운데 18번 그림을 보시면 18번 그림은 아까 어느
절이라고 했지요?
예 국은사인데 여기 뭘 받쳐 놓은 나무는 1,310년 된 여자나무라고 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거기 보면 육조수식고여라 육조께서 손으로 직접 옛날 여자나무를 심으셨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육조스님께서 계셨던 이 도량은 아주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고 18번에 거기도 보면
탑이 하나 있지요.
이것이 보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는 보은탑 입니다.
저도 나중에 부모님을 생각해서 보은탑이나 하나 지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은사의 상징물입니다.
수 년 전에 이 탑 옆에서 옛 유물이 발견이 되고 부처님 사리도 있는데 절 안으로 들어왔는데
또 입장료를 받아요.
한 사람이 50원인데 우리나라 돈으로 9000원입니다. 일행이 다섯 명이니까 5 곱하기 9는
45, 45,000이면 많은 거지요.
절 안에 별도의 작은 박물관을 해 놓고 50원씩을 받길래 ‘저기는 들어가지 말자.’ 하고 안
들어가려고 하는데 같이 다니는 보살이 두보살이 있었는데 한 보살은 늘 보면 얼굴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인데 수표처, 중국사람들은 매표소를 수표처라고 합니다.
표를 파는 곳이라는 말인데 수표처에 가서 막 눈웃음을 짓고 살래살래 하더니 두 사람
다 조선족인데 거기 표 파는 남자가 있었는데 여자의 간드러진 말과 웃음에 표 파는
남자가 다 들어가라고 해서 공짜로 다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조금 무뚝뚝한 보살한테 저런 것 좀 배워라고 하니까 보살님이 하는
얘기가 ‘제가 요즘 며칠 다니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무뚝뚝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보시 가운데 웃음 보시가 제일이구나. 제가 그걸 절실하게 느낀게 있습니다.
웃으니까 남자들이 250원 같으면 거금인데 그걸 안 받고 넣어 주더라니까요.
집에 가서도 좀 웃으라니까요. 웃으면 남편한테 용돈도 좀 잘 받을텐데 맨날 입이 튀어
나와 가지고는 주던 돈도 빼앗겠다. 그래가지고는 ^^
또 제가 국은사에서 어느 스님을 만났는데 책을 그냥 줘요.
육조단경, 중국 글은 번자체가 있고 간자체가 있는데 번자체는 옛날의 글이고 요즈음은 다
간자체를 안 씁니까?
간자체로 번역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자체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필요한 책인데 책을 한 권
주더라니까요.
그래서 제가 중국 절을 다니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아! 법을 보시하는것, 책을 보시하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오늘도 월간 법보시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월간 법보시 이런 책은 누구한테 주어도 다 공덕이 됩니다.
한 권씩 사가지고 돌리기를 바라고 그래서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법보시 운동을 부처님 경전 보급 운동을 좀 많이 해야 되겠다.
무료로. 그래서 33년 기도니까 33억 권은 해야 되겠다. 33억 권.’
그것은 수 천 억 원이 드는 돈입니다.
33년이니까 까짓것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참좋은 인연 BUD 국제적인 구호사업 NGO에서 이 일을 추진할
것입니다.
월간 법보시는 그냥 나오는 것이고 일반 경전 스님들이 낸 책 이런 것을 통해서 책을
대대적으로 무상으로 보급하는 그런 운동을 할 것입니다.
공양 중에서는 제일 훌륭한 공양이 법공양인데 그 법공양이 바로 부처님 말씀이 담긴
책을 보시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다 좀 동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마지막으로 아까 말씀드렸던 그 내용이, 웃으면서 얘기한 것 중
하나가 우리가 더 귀중한 것이 뭐냐 하면 밝은 얼굴 밝은 웃음입니다.
그것이 다 보시입니다.
그리하면서 부처님 법문이 담겨져 있는 책을 보시하는 운동에 동참을 해 보자.
그것이 다 공덕 짓는 일이다. 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고 선종사찰 순례
이야기는 다음 달 또 초하룻날 이어 가겠습니다.
제가 이것만 해도 한 일년 정도는 우려먹을 것 같아요.^^
초하루 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오늘 불사에 동참하시고 한 공덕으로 모든 일이 잘
되실 것입니다.
모든 일이 다 잘 되시기를 기도드릴 것 입니다.
모두 다 건강하시고 가족들의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지시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리면서
오늘 법회는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초하루 법회가 끝나고 스님들께서는 대원성취부처님 점안식에 장엄되었던 행운의
오색실을 신도님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고 대웅전 3층 대법당에서는 일년 49주
천도재가 봉행 되었다.
그리고,
노천법당에는 바자회로 야단법석이 되었고 계단청소, 화장실 청소, 요가수행, 대불회법회.
포교사대비반 수업, 원각회 절수행, 철야법회 등 엘리트불자들의 다문화 공간인 우리
절은 공부, 참선, 수행하고 봉사하는 신도님들로 밤이 늦도록 활기가 넘쳤다.
첫댓글 법문 감사 드립니다 ()()()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