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나이가 문젠가~”

광진 노인복지관서 공부한 16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장안초교서 명예졸업장받아
‘50년 만의 졸업장’
서울 광진노인복지관에서 뒤늦게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 70대 노인 16명이 지난 14일 장안초등학교서 졸업장을 받고 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파주가 고향인 우종학(71세, 서울시 광장동) 할머니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 또래 친구보다 늦게 학교를 다니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가느라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우 할머니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랬듯이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곧바로 생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우 할머니는 의상실에서 재봉기술을 배워 제법 큰 의상실도 운영할 정도로 사업에 성공했지만 학교와는 점차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십년, 이십년이 지나다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배움에 대한 열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결국 우 할머니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서울특별시 평생학습관’으로 지정된 광진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중입검정고시반 ‘카네이션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우 할머니처럼 노년에 향학열을 불태우는 16명의 카네이션학교 학생들은 지난 해 9월4일부터 손자뻘 되는 대학생자원봉사자 선생님으로부터 초등학교 교과과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주 월, 수, 금요일마다 광진노인종합복지관에서 국어와 수학, 과학, 사회, 실과, 도덕과목을 배웠다.
나이 어린 대학생이지만 수업시간만큼은 무서운 선생님. 수업마다 나오는 숙제를 하느라 카네이션학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매번 진땀을 빼야만 했다. 방학도 없이 노년에 힘겹게 학업을 이어가는 카네이션학교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광진노인종합복지관은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복지관 바로 옆에 위치한 장안초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는 일.
카네이션학교 학생들은 지난 14일 장안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제53회 졸업식에서 이문규 교장으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429명의 나이 어린 졸업생과 더불어 연세 지긋한 16명의 어르신들이 졸업장을 받은 것이다. 이날 졸업식 참가자들은 카네이션학교 졸업생에게 더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길 기원했다. 카네이션학교 졸업생들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갔다.
이처럼 복지관에서 배운 특별교육과정에 대한 졸업장이 정규학교에서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같은 일은 광진노인복지관과 장안초등학교 간 사업협약체결로 인해 가능했다. 장안초등학교는 매년 카네이션학교 졸업생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고, 광진복지관은 장안초등학교의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학교와 방학캠프를 운영하면서 밑반찬 지원 등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명예졸업장 수여로 큰 힘을 얻은 카네이션학교 학생들은 오는 9월에 있을 중입검증고시 준비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우종학 할머니는 몸이 허락하는 한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마치고 싶다는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동안 어디를 가던지 죄인같다는 느낌을 떨쳐 낼 수가 없어 많이 위축됐었어. 여기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만큼 계속 공부해 고등학교 과정도 마칠 거야.”
광진노인종합복지관장 화평스님은 “복지관 자체적으로 졸업장을 수여하기 보다는 정규학교에서 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더욱 더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면서 “비록 뒤늦게 다시 불붙은 학구열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인탁 기자
[불교신문 2304호/ 2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