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새벽 6시, 알람소리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진다. 피곤하긴 하지만 일정을 소화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려 1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간단한 조식뷔페가 마련되어 있다. 쌀국수 국물이 입맛에 맞는다. 이렇게 아침을 먹고 7시 20분에 로비에 집결, 출발 준비를 한다.
15인승 버스에 치과진료팀과 모두 타고 우리는 덤락돔 구 쓰레기매립장에 있는 진료소로 향한다.
열악한 환경을 예상했으나 진료소는 의외로 깔끔한 건물에 에어컨까지 설치되어 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이 한쪽에 있고 입구에 들어서니 넓찍한 로비가 있고 그 뒤로 진료소 방이 연결된다. 맨 뒷쪽의 방에 치과 유니트체어가 3대나 설치되어 있다. 그간 이 진료소를 만들기 위해 애쓰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여기는 이곳 선교팀(5가족이나 된다)이 운영하는 무료진료소다. 여기에 미보치과 공윤수 원장의 희생과 봉사가 더해져 아름다운 결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심평원 13기 동문들의 여름진료봉사를 위해 오늘 나와 최종수 원장이 답사차 온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 챙겨온 진료장비를 점검하며 준비를 한다. 죽염,세신,패장 등의 약침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침과 약침만으로 이곳에서 진료를 해야 한다. 침치료를 위해 간이 베드를 두 개 더 준비해 두었고 진료장비 점검을 마쳤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쓰레기 매립장으로 견학을 간다. 류철종 선교사님의 승용차에 타고 20여분 외곽으로 나가니 쓰레기 매립장 입구다. 어찌된 영문인지 매립장 입구에서 수위 역할을 하시는 분이 차를 막는다. 내부에 뭔 일이 있는지 못가게 한다. 선교사님이 차에서 내려 한참을 대화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쓰레기장에 들어서니 악취가 훅 끼쳐온다. 마스크를 준비하면 좋을텐데, 거기서 일하며 생활하는 사람들과 거리감을 줄이고자 일부러 마스크 착용을 자제한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맑은 날씨고(지금은 이곳이 건기라 비가 안 온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매우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쓰레기 하역장에는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에 몰려들어 재활용 가능한 물건들을 집어내느라 정신이 없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쓰레기 더미에서 저마다 마대자루에 열심히 물건들을 담아내고 있다. 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들도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쓰레기장이 끝나는 부분쯤에 판자집들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500여명쯤 된다고 한다. 저렇게 불결한 생활환경속에서 버텨야 하는 아이들의 삶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문득 국가란 국민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의문이 생긴다. 이들에게도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는가!
쓰레기장 견학을 마치고 진료소로 돌아왔다. 시간이 약간 남아서 킬링필드를 가 보려했는데 거기까지 보기에는 시간이 안되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진료소 인근의 빈민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간을 좀 더 소비하고 우리도 진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오전에 3명정도 환자를 봐 드리고나니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한국식당에서 도시락이 배달되어 왔다. 반찬도 훌륭하고 맛도 좋아서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여름 진료때도 이 도시락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식사 후 짧은 휴식을 마치고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진료가 시작되었다. 이곳저곳 아픈 분들이 많고 중풍 후유증으로 한쪽 편마비 환자도 오셨다. 어느 나라나 빈부의 차이를 떠나 아픈 환자는 대개 비슷하다. 허리,무릎,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이 가장 많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일수록 화상 및 피부병 등 안전이나 위생과 관련된 질환이 많다. 오늘도 어린 아이가 하나 왔는데 팔에 화상을 입었고 그 처치가 잘 안되어 피부감염으로 번진 환자를 최종수 원장이 꼼꼼히 돌봐주었다. 마지막에는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 선교사님들과 그 가족들의 진료상담과 치료를 해 드렸다. 가져간 소화제를 드렸더니 감사해 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오후 5시까지의 진료일정을 마치고 간단한 기념촬영을 했다.
진료소를 빠져나와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이동한다. 퇴근시간의 러시아워는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로 길이 막힌다. 특히나 이곳은 교통신호등도 거의 설치되지 않았고 각종 차량과 그 사이로 오토바이들이 뒤섞여 혼잡을 극심하게 한다. 30여분을 이동하여 도착한 식당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다.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라 한다. 탕수육과 짜장면, 굴짬뽕 등을 시켜서 맛나게 먹는다. 즐거운 만찬을 마치고 모임을 정리하는 의미로 자유발언 시간을 가졌다. 각자 2박3일간의 소감들을 이야기했고, 캄보디아 통역학생들은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발언들이 이어졌다. 내가 가진 작은 기술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의료봉사는 항시 행복한 마음으로 마무리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방문한 지역은 쓰레기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이며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하루종일 국가라는 화두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최근 우리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최순실게이트와 그로 인한 국민들의 상실감이 생각나게 되었고 국민의 최저생활도 보장하지 못하는 이 나라를 비교해 본다. 과연 어느 나라가 더 비참한 현실일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이런 상념들을 뒤로 하고 식당을 빠져나와 이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가 긴급제안, 시간 여유가 있으니 발마사지라도 받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동의했고 우리는 공항 인근의 한 마사지샾을 발견하고 그리로 향했다. 하지만 마사지사들이 부족하여 일행 중 5명만 받기로 했다. 운좋게(? 사실 나이가 많으니 경로우대를 받은 셈이다) 나도 마사지를 받게 되었고 우린 4층의 마사지실로 안내받아 올라갔다. 30분간의 발마사지는 제법 시원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의 피로는 풀린 느낌이다. 마사지를 끝내고 공항으로 이동, 우리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커피숍에 가서 차를 한 잔 같이 먹는다. 올 여름에 심평원 13기 연합봉사단의 활동에 대한 상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저녁 11시가 다 되어 이곳 선교사님들과 작별을 하고 우린 공항으로 들어선다. 사람들은 공항에 들어오자마자 이부터 닦는다. 역시 치과진료팀 답다. 나도 하루종일 신었던 꿉꿉한 양말을 새걸로 갈아신고 가볍게 세수도 하고 양치도 했다. 개운하다. 오늘아침 6시부터 일어났으니 거의 18시간 정도를 움직이며 긴 하루를 보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12시 15분 출발이다. 티켓팅을 하고 검색대를 통과 출국수속을 마쳤다. 면세점에서는 아이쇼핑만 간단히 하고 공항라운지에서 맥주를 한 잔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1박2일의 짧은 캄보디아 답사기록을 이렇게 마친다.
** 후기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그 외곽에 위치한 덤락돔 - 여기는 그래도 비교적 깨끗한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쓰레기산을 뒤지며 그 속에서 생활도구와 돈벌이감을 찾는다. 인구 2천여명이 사는 비교적 큰 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NGO단체에서 제공한 조립식 주택들도 있으나 그 주변으로는 곧 쓰러질 듯 보이는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다.
쓰레기 신매립장은 당까오 지역이라 한다. 우리가 여름에 오게 되면 이곳 당까오에서 천막을 세워놓고 진료를 해야 할 것이다.
준비할 일들이 많다. 우선 진료일정을 정해야 하고 참여인원들이 확정되어야 한다. 비행기표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참여 의료인력과 보조인력 그리고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분될 것이다. 많은 숫자의 이동이므로 관광회사를 선택할 필요가 생긴다. 우선 이상으로 답사여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