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는 포자로 번식하는 괴근이다.
전에는 자연에서만 재배가 가능했는데 이제는 종균을 배양해서 대량생산하고 있다.
60년대나 70년대에는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귀한 약재였다.
지리산에 공비가 출몰하던 시절 한 폐가를 들렀더니
마당과 언덕배기에 천마대가 수북이 돋아 있어 아주 횡재를 한 적이 있었다.
천마의 뿌리
동의보감에 보면 반하백출천마탕은 천마가 들어가서 뇌궐을 다스린다고 했다.
즉 점액성 뇌종양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한 명문대 교수가 점액성 뇌종양으로 인하여
각종 뇌증상과 마비증상을 앓고 있었는데 반하백출천마탕을 6개월 먹고 나았다.
초기증상으로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메스꺼울 때는
보통 20일 정도만 먹어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고향후배가 같은 증세로 쓰러져서 반하백출천마탕을 한달분 먹고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오래된 증상은 치료에 쉽지가 않은 것도 있다.
거제와 충무 일대의 섬 마을을 돌며 무료진료를 다닐 때였다.
1990년대 초반이긴 했지만 섬 마을엔 여전히 의료시설이 빈약했다.
게다가 바다에 남편과 아들을 잃거나 대처로 나간 가족으로 인해 독거노인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저 무료진료를 다녔던 것인데 나중에 독거노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이후부터는 충무의 도산면에서부터 독거노인을 찾아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해야 했기에 무료진료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때까지만 가능했다.
일단 진료를 하고 체질과 병증을 파악한 다음, 환자들에게 맞는 약을 지어 내려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빠듯했다.
진주 사천공항까지 토요일 오후 여객기로 내려갔다가 일요일 오후 여객기로 올라오는 생활을 한동안 계속했던 것이다.
아무튼 독거노인들을 무료로 진료해 준다는 소문이 나자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날도 충무에선가 진료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사천공항 대합실에서 여객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저, 혹시 최형주 선생님 아니십니까?”
말끔하게 경찰제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맞습니다. 제가 최형주입니다.”
“드디어 만났군요. 여러 차례 만나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뵙습니다.”
“무슨 연유로 그러십니까?”
“이 근방 일대에선 원장님 소문이 파다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부탁을 드릴까 해서….
저는 이곳 공항경비대에서 일하는 경찰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불쑥 찾아 뵌 것입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여객기 출발시각까지는 약 30여 분 남아 있었다.
“저는 자녀 없이 홀로 계신 노인들만 진료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 줄 알지만…. 제 일이 좀 불규칙하다 보니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도 독거노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니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진주에 있는 시립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글쎄 뇌에 종양이 생겼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근처 창원과 마산에 있는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모시고 다녔죠.
하나같이 뇌수술을 해야 하는데 너무 고령이어서 수술이 어렵다고 하고,
별다른 치료책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 고생만 하시다가 가실 날만 기다리는 처지로….”
사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원장님께서 저희 어머니 한번 진찰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든 드시면 자꾸 토하시니까 기력도 떨어지시고 빈혈이 심하셔서 물건이 여러 개로 보인다고 하시고….
어려운 걸음인 줄 알지만 한 번만 진료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불효막심하다고 말했지만 그가 누구보다도 효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걸 어떡하나? 여객기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바로 사천읍내입니다.
그저 진맥만 한 번 해 주시지요.
제가 금방 모시지요. 시간도 그리 많이 걸리지 않을 듯싶은데….”
그는 자신의 모친이 일흔이 넘은 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루가 다르다는 말이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나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서울이야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가봅시다.”
그는 차에 나를 태우고 황급히 어디론가를 향해 달렸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오늘 여객기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오히려 느긋해서 좋았다.
“어머니, 제가 유명한 의사선생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방문을 열며 어머니를 찾았다.
당시 총각이었는지 다른 식구는 보이질 않았다.
그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한눈에도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가 침침한 방안에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야, 다 필요 없다. 내일모레 죽을 목숨인데 의사선생은 만나 뭘 하겠니?
또 약은 뭐고, 주사는 뭐겠니? 그런 허튼 돈은 쓰지 말거라.”
병들어 있으면서도 자신보다 늘 자식을 걱정하는 게 부모 심정이리라.
그 말에 내 가슴도 뭉클했다.
“염려하지 마세요. 이 의사선생님께선 어머니 같은 노인 분들을 공짜로 치료해 주시는 분이래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풍경이었다.
“그래요, 돈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용모와 외형만으로는 할머니의 체질을 판단할 수 없었다.
워낙 병이 심해 원래의 모습을 잃은 탓이었다.
나는 맥을 짚어 보았다. 처음 느낌대로 소음인이었다.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뇌종양으로 인해 시신경도 상당히 손상되었고 내가 손을 잡아도 지각신경마저 마비되었는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하백출천마탕 6개월 복용 후 뇌종양 완치
내가 진맥하고 살피는 동안 아들은 계속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문득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여객기 출발 5분 전이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간다고 해도 제 시각에 닿기 힘들었다.
“특이한 처방을 써보았으면 합니다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몸 전체가 많이 허약해진 상태여서 쉽게 나을 병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스스로 생긴 질병일 경우, 불가능한 치료는 없습니다.
내 성심껏 한번 치료해 보겠소.”
대청마루로 나온 나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효심에 감복을 했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대청마루 한쪽에 놓인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론가 바삐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난데, 지금 서울로 가는 여객기, 내가 도착할 때까지 잡아두게. 얼마 걸리지 않을 걸세.”
그는 차를 몰고 쏜살같이 공항으로 달려갔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여객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분가량 늦은 것이다.
승객들이 많지 않아 조금은 덜 미안했지만,
사실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죽어가는 노인,
아니 자식에 대한 희생과 봉사로 살아온 어머니의 뇌종양 진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
다들 백 번 양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반하백출천마탕을 조제해 내려보냈다.
이는 체내의 점액질을 다스리는 약이었다.
소음인 체질은 체내의 물,
즉 수기가 많은 체질로 수분을 소화시키지 못하면 물혹이 생기거나 뇌종양이 발병한다.
그녀는 머리에 물이 가득 고여 종양이 된 사례였다.
이후 6개월가량 약을 지어 내려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천공항에 도착하니 그 경찰관이 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어머니가 다 나아서 밭일을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원장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제마 선생에게 감사하십시오.
지금부터 100년 전에 이제마 선생이 사상의학을 창시해서 체질별로 특효약을 개발한 덕택입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일을 하시고 아들 결혼도 시키고 손자도 보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최형주 한의학 박사·영등포 명성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