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김정한 동문 (서산새마을금고 이사장)

리더의 품격
-동부시장에서 시작해 전국 최고의 새마을금고로 성장시킨 김정한 동문의 성공스토리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어려움을 이겨내어 성공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흔히 삶의 희망을 주는 ‘리더’라 칭한다.
올해 동문탐방에서는 36년전 금융의 불모지였던 서산에 새마을금고를 창립하여 오늘날
전국 최고의 새마을금고로 성장시킨 김정한 이사장을 찾았다. 김정한 이사장은 부성초
21회 졸업생으로 현재 총동문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래는 김정한 동문과의 일문일답.
Q. (박홍식 편집부장)
바쁘실텐데 이렇게 동문탐방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 (김정한 이사장)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할 입장입니다. 화합대회 준비로 더없이 바쁠실텐데 이렇게
손종세 동문회장님께서도 직접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종세 동문회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눔]
Q. 사실 선배님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왔는데 새마을금고에 직접 와보니 규모가
상당해 보이는데 어느정도인가요?
A. 예. 우리 마을금고는 현재 금융자산이 3,120억원으로 본점 외에 2개지점에 25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점은 약 2,645평방미터(구800py)의 5층건물로
1층 업무공간을 제외한 나머지층은 고객들을 위한 문화공간 및 사회단체의 업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Q. 본점을 회원들의 금융업무 말고 다른 공간으로도 사용하고 계시다는 말씀인가요?
A. 예. 크게 내세울건 못되지만 3,4층은 고객들을 위하여 노래. 한문. 댄스스포츠 등
새마을금고 여성대학을 개설해서 운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2,5층은 지역사회
환원사업의 일환으로 ‘서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개관을 도와 이주여성들의
보금자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Q. 이런 좋은 일들을 하신다니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더욱이 모교 선배님이라 더욱
마음 뿌듯합니다. 6~70년대 다들 어려웠겠지만 선배님께서도 누구못지 않게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A. 예. 제 학력이 초졸입니다. 저에게 부성초등학교란 제 학창시절의 처음이자 전부입니다.
졸업하는 해에는 아버지까지 돌아가셔서 중학교 입학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장래꿈은
커녕 그저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만 있었던 시절이었죠. 어려웠던 시기에 다녔던 학교
여서 그런지 모교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뭉클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곤 합니다.
Q. 선배님 말씀을 듣고보니 그나마 편하게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투정만 부린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런데 새마을금고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A. 제가 처음에 동부시장에서 밀가루 장사를 했었습니다. 당시 상인들은 은행을 잘몰라
사채 아니면 계를 운영하며 돈관리를 했었을때니까요. 그러다가 정부에서 마을금고
조직을 권장해서 시장상인 45명이 일천원씩 모은게 새마을금고의 태동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월급도 받지 못해 서로가 마을금고 업무를 꺼렸습니다. 저 역시
집사람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분명 진실된 마음은 통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죠.
Q. 30여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선배님의 그 확신이 맞은거네요?
A. 예. 뭐 굳이 따지라면 그런 셈이군요. 올해로 창립한지 36년째인 우리 새마을금고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Q. 오늘 선배님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후배들이나
여러 동문들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제 임기가 앞으로 4년정도 남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4년후 은퇴해서도 좋아하는
산이나 오르게 그저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건데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행복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이
주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후배여러분 또 동문여러분께서도 진실된 마음으로 정상을 향해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 ‘행복’ 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를거라 확신합니다.
Q. 바쁘신데도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구요.
말그대로 ‘리더의 품격’ 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