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단체, '영어 이름 회사' 대상 소송 진행
서울지방법원에선 4일 2차 조정서 합의 권유할 듯
신향식 기자
한글운동단체들이 영어로 회사 이름을 지은 일부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한글학회(회장 허웅, http://www.hangeul.or.kr/ )와 국어문화운동본부(회장 남영신, barunmal.com) 등 국어관련 단체들은 지난 2002년 11월 28일 "국민은행과 KT가 기업 간판을 각각 ‘KB’와 ‘KT’로 쓴 행위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을 위반한 불법 행위로 국어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심대한 불편과 정신적 타격을 입혔다"며 두 회사를 상대로 서울지법에 2억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따라 서울지방법원은 재판에 앞서 원고와 피고의 합의를 이끌기 위해 지난달 22일 1차 조정을 한 데 이어 4일 오후 2차 조정을 할 예정이다. 서울지법은 원고인 한글문화단체들과 피고인 국민은행, KT 측에 합의할 것을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인 이대로씨(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대표)는 "국민들의 성원으로 성장한 국민은행과 KT가 영어로 회사 이름을 지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현재 KT는 '한글사랑운동에 신경을 쓰겠으니 소송을 취하해 달라' 반면 국민은행은 '크게 잘못한 게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소송 원고로는 재단법인 한글학회,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임의단체 국어문화운동본부를 비롯하여 남영신(국어학자), 서정수(한양대 명예교수), 김세중(국립국어연구원 규범부장), 이대로(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대표), 최기호(상명여대 교수), 이동훈(부산침례교회 목사), 박종만(까치글방 대표), 김성규씨(경기대 교수)가 포함됐다. 소송 대리인으로는 서울대 국문과 출신인 홍영호 변호사가 맡았다.
한글운동단체 관계자들은 "공기업 또는 국가 기관으로 출발하여 대기업으로까지 성장한 국민은행과 한국통신이 국어 이름을 팽개치고 영어 이름으로 된 간판을 내걸었다"면서 "이는 요즘 만연하고 있는 영어 지상주의 풍조에 편승하려는 얄팍하고 무책임한 망동으로서, 국어를 사랑하고 가꾸어 나가려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국민은행에 대해 "서민 금융을 위해서 국가가 국책 은행으로 설립한 이후 오랫동안 대부분의 국민들을 손님으로 모시고 영업을 해 온 국민은행이, 역시 국책 은행으로 출발한 주택은행을 합병한 뒤에 영어로 간판을 달아 놓고 국민들에게 영어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통신에 대해서는 "한국통신의 전신은 과거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의 산하 기관이었던 전신전화국으로, 스스로 자란 것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이 키워 준 것"이라며 "그런데 한국통신 사람들은 그 회사가 마치 자기들이 돈을 내어 설립한 것처럼 생각하여 이름을 해괴하게도 KT라고 바꾸고 자신의 모든 건물에 KT Plaza라고 영어로 적어 놓음으로써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