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 같은 국민가수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어느 날 차 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사람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다정한 사람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 번쯤은 생각해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사람
외로운 내 가슴에 살며시 다가와서
언제라도 감싸주던 다정한 사람
그러니까 미워하면 안 되겠지
다시는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
철없이 사랑인 줄 알았었네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사람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사람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사람"
작가란 무엇인가의 추천사에서 소설가 김연수는 작가는 데뷔를 할 때 자기 몸을 불사르고 재가 된다고 한다. 재가 되어 데뷔를 하고 나면 모든 예술가들에게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놓인다. 젊은 날 몸과 정신을 받친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삼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가던지, 다 타버린 재 속에서 약간의 숯을 발견하고 그것을 불소씨개로 하여 남은 인생 작가로 살아가던지.
여기 자기 몸을 불사르고 영혼을 태워 하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가수가 있다.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 그녀의 본명은 심민경. 록이나 발라드 위주였던 대학가요제에서 트로트로 강렬하게 데뷔한 후 예명인 심수봉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세상의 풍파를 다 겪고 이제는 만개한 들꽃이 되어 우리들 옆에 누이같이 든든히 서있다. 그녀의 노래와 인생은 꺼지지 않는 재가 되어 사그라지지 않고 영원히 타올라 사랑에 울고 인생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오늘도 조용히 위로해 주고 있다.
국악인 가족이었던 영향으로 타고 난 재능과 단련된 가창력으로 일찍부터 가수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녀의 운명 앞에 세 번의 강렬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만남은 좋은 인연이었다. 가수 나훈아와의 만남. 우연히 들른 호텔 라운지에서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하며 노래를 부르던 심수봉을 만나게 된다. 재치 있게 나훈아의 히트곡 "물레방아 도는데"를 즉흥 연주해준 그녀의 음색을 듣고 나훈아는 음반기획사 사장을 데리고 와 그녀의 음반 출반을 제의하게 된다.
두 번째 운명적 만남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만남. 뛰어난 가창력과 호소력 있는 음색으로 청와대 연회에 초청받아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하게 된다.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문에 그 이후에도 그녀는 청와대 연회에 자주 초대받고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 당시 분위기로 거부할 수 없는 초대이기도 했던 그 자리가 그녀의 운명을 변화시켜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10.26 사건 때문이었다.
현직 대통령 시해사건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그녀는 대중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았고, 수사 후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신군부의 보이지 않는 탄압을 많이 받게 된다. 대통령의 그 일이 있기도 전에 작곡한 "순자의 가을"이라는 노래가 누군가를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무궁화"의 가사가 민중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속 은유적 표현은 노랫말이 외설적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와 정신병원 강제입원, 이혼이라는 여러 가지 시련을 겪게 된다.
이렇듯 세 번째 만남은 피비린내 나던 시대적 아픔을 한 개인이 겪어야 하는 시련으로 맞이하게 만든다. 이런 아픔도 민주화로 인하여 서서히 지워지고 가정적인 안정과 함께 꾸준한 공연 등으로 제2의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올핸 "피어나라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힘을 주는 비대면 콘서트를 성공시키며 다시 한번 국민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그녀를 보면 그 많은 시련을 버티어 내고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 낸 그녀의 창작정신에 존경의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은 가수, 생각하기도 싫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아 안개꽃 속에서 살포시 얼굴을 내민 들꽃같은 그녀에게 백만송이 장미꽃을 묶어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그녀의 노래 "그때 그사람"은 명곡의 반열에 올라 대한민국 가요사에 영원히 남아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o-IX1DwgQ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 감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