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玄)과 현묘지도(玄妙之道) (1)
1. 현묘지도(玄妙之道)와 최치원
최치원이 지은 난랑비서(鸞郎碑序)에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처음으로 나온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의 정신을 ‘현묘지도’로 표현했고, 이것을 풍류(風流)라고도 했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가르침을 베푸는 바탕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는데, 그 실제 내용은 유·불·도 삼교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종합하여 백성을 교화한다는 것이다. 우선 집 안에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처신하고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노자 사상의 종지다. 어떠한 악도 실행하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석가모니의 방식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나서 당나라에서 관직생활도 하는 등 17년간이나 중국에서 머물렀다. 그 후 조국에 돌아와서 유불도를 통합한 현묘지도인 풍류사상이 본래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2. 현묘지도와 노자 『도덕경』 1장
최치원이 말한 현묘지도가, 도덕경 1장의 “모호하고 더욱 모호한 곳으로 나아가면 여러 오묘한 궁극적 실재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玄之又玄 衆妙之門)에서 ”현(玄)과 묘(妙)”를 차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라고 생각하여 말할 수 있는 도는 항상의 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도라고 생각하여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는 이름은 항상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 없음이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음이 만물의 어미이다. 그러므로 늘 이름 붙이고자 함이 없어야 그 대상의 오묘한 실재(實在, reality)를 보고, 늘 이름 붙이고자 함이 있어야 그 대상의 분명한 현상(現象, appearance)을 본다.
이 실재와 현상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며 이름이 없고 있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양자는 만물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같음’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 경계는 모호해진다. 모호하고 더욱 모호한 곳으로 나아가면 여러 오묘한 궁극적 실재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도덕경 1장에서 “모호하고 더욱 모호한”(玄之又玄) 바로 앞의 문장은 “‘같음’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 경계는 모호해진다.(同謂之玄)”이다. 이 말을 줄이면 ‘같음이 현이다’가 된다. 그러면 무엇의 같음이 현(玄)인가? 이름 없음(無名)과 이름 있음(有名)이 같다는 것을 현이라 한다. 이름 없음은 실재(實在)이고, 이름 있음은 현상(現象)이다. 실재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현상은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실재방향으로 가면 한정하는 형식이 드러나지 않으니 이름 붙일 수 없다. 반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현상방향으로 가면 한정하는 형식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름 붙일 수 있다. 이 이름 없는 실재와 이름 있는 현상은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임의의 실재가 겉으로 드러나면 현상이고, 그 드러난 현상의 드러나지 못한 부분이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음인 현(玄)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하고 더욱 모호한(玄之又玄)”과 “여러 오묘한 궁극적 실재(衆妙)”가 말하는 것처럼 거듭된다. 이것은 현상과 실재의 같음 뿐만 아니라, 궁극적 실재 쪽으로 가려면 ‘같음’이 거듭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치원은 같음방향으로 거듭가야만 알 수 있는 이러한 ‘궁극적 실재’를 ‘현묘지도’라고 하였고, 풍류(風流)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최치원은 이러한 사상이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온 유불도(儒佛道)를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여러 사상(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도 우리나라는 모두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시예고
22회(11.20) 이태호 (철학박사/『노자가 묻는다』저자) 현과 현묘지도(2) 23회(11.27) 김상환 (문학박사/시인) 현과 사진미학(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