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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09
1. 펜트 하우스 / 복도 ( 낮 )
엘리베이터 열리고 태호가 내린다. 몇 걸음 걷다가 멈추는 태호.
/ 8부 49씬, 태호와 흥삼의 통화 장면.
흥삼 : 작두가 널 찾구 있다!
태호 : (의아한) 네?
흥삼 : 니가 배중사를 제꼈다고 오해한 모양이야. 지금 너 잡으려고 서울역을 뒤지고 있어!
태호 : ...!!
/ 다시 현재.
태호, 단단히 표정 갖추고 문으로 향하는.
2. 펜트 하우스 안 ( 낮 )
바를 향해 걸어가는 흥삼. 따라 일어나는 작두, 바라보며.
작두 : 지금이라두 경찰에 찔러볼까? 5년 전에 입국했다 실종된 재미교포가 누군지 찾아보라구?
흥삼 : (술 따르다가 멈칫) ...!
작두 : ...장태호 내놔. 그럼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갖구 갈 테니까.
흥삼 : (그대로 굳은 채, 흘끔 사마귀를 보는) ...
사마귀 : (알아 들었다, 소매를 움직여 나이프를 쥐는) ...
작두 : (모를 리 없다, 눈빛으로 양쪽 살피며) 내가 워낙 돌머리거든. 그래서 이 재밌는 얘기, 까먹을까봐 다 적어놨어.
흥삼 : (꿈틀, 돌아보는) ...!
작두 : (서늘한 미소로) 언제 어디서 객사할지 모르는데, 나두 보험 하나는 들어놔야지.
(일순 미소 사라지며) 어떡할래, 흥삼아? 장태호 넘기든가, 전부 파토내든가... 니가 골라봐.
팽팽하게 서로를 노려보는 흥삼과 작두.
그때 문이 열리고 태호가 들어선다. 동시에 돌아보는 흥삼과 작두.
방 안에 가득한 긴장감에 표정 굳는 태호. 작두, 살기어린 눈빛이 느긋해지며...
작두 : 미스터 장 오셨네? 발이 부르트게 찾아 다녔는데...
흥삼 : (표정 고치고) 앉아라. 한잔 하려던 참이다.
흥삼, 사마귀에게 잔 가져오라 눈짓하고 소파 상석에 앉는다. 경계하듯 작두 맞은 편에 앉는 태호.
작두 : (온화하게) ...장태호. 배중사 어떻게 했니?
태호 : (표정) ...!
흥삼 : (허허 웃는)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야. 알아듣게 설명해줘라.
태호 : 배중사가 사라진 일은... 저하구 상관없습니다.
작두 : 파티는? 배중사가 그거 땜에 찾아갔다구 하던데.
태호 :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작두 : (뚫어질 듯 응시하는) ...
태호 : (담담하게 그 눈빛 받고) ...
흥삼 : (사마귀가 술잔 내오자, 들고) 딱딱한 얘기 관두고, 목이나 축이지.
작두 : 나, 술 끊었다.
흥삼 : (표정) ...!
작두 : (다시 태호를 응시하며) 그래서... 넌 결백하다 이거지?
태호 : 어떻게 해야 믿으시겠습니까?
작두 : (잠시 보다가) 증명해 봐.
태호 : ...?
작두 : 배중사 없어진 거랑 상관없이 결백하다는 거, 나한테 증명해보라구.
태호 : 그게 무슨...
작두 : 내일 3시. 염천교 뒤쪽에 ##으로 와. 배중사하구 못끝낸 파티, 나랑 붙는 거다.
태호 : ...!!
흥삼 : (언짢은 미소) 술 끊었단 사람이 주사를 부리는구만.
작두 : 장태호가 결백하면 캥길 거 없잖어. 어차피 언젠가는 배중사하구 승부를 가려야 되구... (태호를 돌아보는) 안그래?
태호 : (긴장해서 노려보는) ...
흥삼 : 서열 건너 뛰어서 파티를 거는 건, 규칙 위반이야.
작두 : 내 파티가 아니라니깐. 실종된... (눈빛에 힘주는) 아니면 이미 뒈진 배중사, 그 놈 대신 붙겠다는 얘기야.
(태호에게 못박듯) 조용히 해결 하자. 너하구 나, 단 둘이서.
태호 : (불안한, 그러면서도 지기 싫은 눈빛) ...
작두 : (이죽대는) 왜? ...춥냐?
태호 : 내일 3시까지... 가겠습니다.
흥삼 : (노려보는) 장태호!
작두 : (흡족한 미소로 태호를 보는) ...
3. 펜트 하우스 / 복도 ( 낮 )
문을 나서는 작두. 배웅, 혹은 감시를 하기 위해 따라 나오는 사마귀.
작두 : (엘리베이터 기다리며) 마귀야.
사마귀 : (감정없는) 예.
작두 : 신은 저 위에 계시다. (펜트하우스 돌아보며) 저런 방에 처박혀 사는 게 아니고... (피식) 성경책 좀 읽어, 새꺄.
사마귀 : (무표정하게 보는) ...
4. 펜트 하우스 ( 낮 )
굳은 표정으로 술잔 기울이는 태호.
흥삼, 찌푸리며 보다가...
흥삼 : 며칠... 숨어 있어라.
태호 : (보는) ...?
흥삼 : 작두는 내가 수습할 테니까, 잠잠해질 때까지 서울역에 나타나지 마.
태호 : (각오한) 승부를 원하면, 결판을 내야죠.
흥삼 : (뜨악해지고) 결판? 니 실력으론 일개 소대가 덤벼도 감당 못해. 작두 그 녀석은 괴물이야.
태호 : 그런 괴물이... 회장님이 명령한다구 멈추겠습니까?
흥삼 : (표정) ...
태호 : 절 의심하게 된 이상, 누구 하나 쓰러져야 끝날 겁니다.
흥삼 : 니 걱정을 하는 게 아냐! 내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안되니까 피해 있으라는 거다.
태호 : 회장님을 위해서라두 그 파티, 꼭 이기겠습니다.
흥삼 : 태호야!
태호 : (일어난다, 결연하게 바라보며) 무엇보다... 저 자신을 위해 싸울 겁니다. 그래서... 정정당당한 후계자가 됩니다.
흥삼 : (굳은 표정으로 보는) ...
목례하고 돌아서는 태호, 들어서는 사마귀와 엇갈려서 나간다.
사마귀 : (다가와서) 작두 형님... 이대로 두실 겁니까?
흥삼 : 아직 손대면 안돼. 작두가 숨겨둔 보험, 그 종이쪼가리부터 찾아야 된다. (고개 들어 보는) 그 전에... 집안 단속도 좀 하고.
사마귀 : (의아한) 네?
흥삼 : (복잡한 계획이 얽히며, 눈빛 매서워지는) ...
5. 폐차장 ( 낮 )
양복(이전에 미주가 사준)을 입고, 가방을 든 종구가 버스에서 내려선다.
걸어오는 작두, 뜻밖의 모습에 웃음이 번진다.
작두 : 여어~ 어디 좋은 데 가냐? 데이트야?
종구 : 오늘 못들어온다.
작두 : (휘둥그래) 외박까지! 상대가 누군데? 서마담?
종구 : 정신빠진 놈...
작두 : (히히 웃다가, 생각난) 장태호란 녀석, 니 제자였다며?
종구 : (태호 얘기에 보는) ...?
작두 : 독사가 그러더라. 니가 복싱 가르쳤다구. (낡은 소파에 털썩 앉고) 어때? 주먹은 좀 쓰냐?
종구 : (긴장) 알아서 뭐하게?
작두 : (귀를 후비며) 그냥 뭐... 궁금해서.
종구 : (설마 싶은) 쓸데없는 오해하지 마. 깡다구는 있는데, 그렇다구 배중사 제낄 실력은 못돼.
작두 : (귀담아 듣지 않는, 손 흔들며) 데이트 잘해라~
종구 : (못미덥게 보는) ...
6. 더 클럽 / 홀 ( 낮 )
영업 준비중인 홀. 미주, 주문서를 확인하며 종업원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한다.
그러다 기척에 돌아보면, 입구에 종구가 서 있다.
양복 차림을 보고, 무슨 일인지 짐작하는 미주, 담담한 표정으로 다가선다.
미주 : 심부름 센터에서 연락 왔어요?
종구 : 부산에 있을 지도 모른대. 주소는 받았어.
미주 : 이번엔 제대로 찾은 거면 좋겠네요. (마무리하려고) ...다녀오세요.
종구 : (돌아서려는 미주에게) 미주야.
미주 : ...?
종구 :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은지를 찾든, 못찾든... 이번에 갔다오면 난... 서울역 떠날 거다.
미주 : (표정) ...!
종구 : 같이 가잔 말은 못하겠다. 니 말대로 더 이상 열여덟살 꼬맹이는 아니니까.
미주 : (애써 담담히) 그래서요?
종구 : 내가 다녀올 때까지... 한번만 더 생각해보라구.
미주 : (떨리는 속내를 감추고 보는) ...
종구 : (조심스러운) ...안되겠냐?
미주 : (평정 유지하며) 약속은 못하겠네요. 오늘, 내일... 가게 일이 바빠서.
종구 : 약속같은 거 필요없어. 그냥 생각해보라는 거야. 나하구 같이 떠날지.
깊은 시선으로 보는 종구.
미주, 이러다간 이 사내 앞에서 무너질 거 같다. 지나가던 종업원을 황급히 돌아보는 미주.
미주 : 제일 유통 전화해서 와인 몇시까지 오는지 확인해. 서회장님하고 VIP들, 그 와인 아니면 뭐라 하실 거야.
(다시 종구를 보는, 표정 관리하며) 아무튼 잘 다녀와요.
씁쓸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종구, 돌아서서 나간다.
우두커니 서 있던 미주, 손을 내려다본다. 들고 있던 주문서가 손바닥 안에 꼬깃꼬깃 구겨져있다. 저도 모르게 힘껏 쥐고 있었던...
7. 더 클럽 앞 ( 낮 )
문이 열리고 미주가 뛰어 나온다. 그러다 멈칫 선다. 어느새 길을 건너간 종구,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미주, 그를 불러 세우고픈 마음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겨우 삼키고 바라본다.
젖어드는 미주의 시선을 모른 채, 점점 멀어져가는 종구.
8. 상가 사무실 / 계단 ( 낮 )
눈가에 멍이 든(작두에게 한대 맞아서) 해진, 심각한 표정으로 쿵쾅쿵쾅 계단을 올라온다.
9. 상가 사무실 ( 낮 )
작두가 한바탕 휩쓸고 간 사무실.
코에 솜을 틀어막은(역시 작두에게 한대 맞은) 영칠이 부서진 집기를 치우고, 머리에 얼음 주머니를 댄 오십장이 소파에 누워있다.
걱정스레 보는 태호와 조회장.
태호 : 병원에 안가봐도 되겠어요?
오십장 : (억지로 웃으며) 스크라치 쪼깨 난 거라 꼬맬 것두 읎어.
태호 : (착잡한)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오십장 : 아따, 고런 소리 허덜 말어. 마실에 미친 개가 돌아댕긴다구 고것이 워치케 자네 책임이여?
조회장 : (돌아보는) 장이사. (‘1억’ 적은 메모지를 건네는, 근심스럽게)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면 이걸루 하게.
그런 위험한 작자는 멀리하는 게 좋아.
태호 : (메모지 받고 묵묵히) ...
해진 : (쾅! 문을 열고 들어서는) 태호씨!
일동 : (돌아보는)
해진 : (씩씩대며 다가서서) 미쳤어? 돌았어? 제정신이야?
태호 : (어리둥절해서 일어나는) 앞뒤 다 자르고 무슨 소리야?
해진 : 서울역에 소문 쫙 퍼졌어! 작두하고 파티 붙는다며?
태호 : ...!
영칠 : (기겁하는) 작두면... 아까 그 또라이요?
오십장 : (일어나 앉으며) 워메! 고것이 참말이여?
태호 : (냉랭한) 호들갑 떨지 마. 배중사 파티 대신이니까.
해진 : 상대는 배중사가 아니잖아! 태호씨, 그 놈 손에 죽을 수도 있어!
(덥썩! 태호의 팔을 잡는다, 울상이 돼서) 도망쳐! 지금이라두 빨리 도망쳐야 돼!
태호 : (해진의 손을 뿌리치는) 내 문제야. 도망치든 말든 내가 결정해.
해진 : (답답한) 태호씨!
조회장 : (근심 가득한) 장이사...
태호 : (걱정하는 시선들 피해서 사무실 나가는) ...
10. 할매 식당 ( 낮 )
나라, 손님이 먹고 간 테이블을 치우고 있다.
심기불편한 할매는 주방에서 왈그락 달그락 설거지하며...
할매 : (나라 들으라고 크게) 나이 콩콩 주워 먹은 게 무신 자랑이라구 팔순이여, 팔순이...
나라 : (빈그릇 챙겨서 주방에 가져오는) 아휴... 그냥 가서 축하해드려요. 남대문 할머니, 그동안 고생 많이 하구, 힘들게 사셨잖아.
할매 : (기다렸다는 듯, 고무장갑 벗고 나오며) 그러니께 하는 말이여, 시방!
팔자 드센 걸루 따지믄 나보다 열 곱은 박복한 할망군디... 늘그막에 무신 복이라구 증손주 줄줄이 끼구 팔순잔치냔 말여!
나라 : 할머니두 팔순 챙겨 드릴께, 내가.
할매 : 시방 잔치가 중허냐! 그 할망구는 증손주 재롱에 뼈가 녹는다는디, (가슴 팡팡 치며) 나는 요 꼬라지가 한심혀서 그라제!
나라 : (용건 파악했다, 찌푸리는) 또 잔소리에요? 나 시집가라구?
할매 : 알믄 왜 안가냐? 니가 워디가 워때서?
나라 : (째려보는) 할머니... 나 키워서 잔소리하려구 업어왔지?
할매 : 저, 저... 뚫린 입이라구...
나라 : (앞치마 벗으며) 잠깐 나갔다 올께요.
할매 : 헌디... 그 눔은 워째 콧빼기두 안비치는겨?
나라 : 누구?
할매 : 황천갔다 말짱하게 살아온 눔 있잖여.
나라 : (뜨끔) 그 사람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도망치듯 나가며) 가요.
할매 : (나가는 뒷모습에 대고) 이것아! 넘 뒤치닥꺼리두 좋지만 니 앞치닥꺼리두 혀!
11. 골목 일각 / 화단 ( 낮 )
쪼그려 앉아서 꽃밭을 살피는 나라, 일어난다. 길 양쪽을 둘러보고,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다.
낮게 한숨 쉬는 나라, 벽에 기대선다. 발로 땅을 툭툭 차면서 태호를 기다리는...
12. 창고 일각 ( 낮 )
조용하고 외진 장소. 태호가 구슬땀을 흘리며 체력 단련 중이다. 푸시업, 윗몸 일으키기, 펀치 연습... 빠르게 전환되는 컷컷.
파티를 앞둔 태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몸을 혹사시킨다.
한쪽에 놔둔 핸드폰에서 ‘나라씨’ 뜨면서 진동한다. 운동에 몰입한 태호, 알아채지 못하고...
13. 폐버스 안 ( 밤 )
작두 혼자 매트리스에 누워 자고 있다. 괴괴한 적막이 흐르고... 딸그락, 스치듯 들리는 소음.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는 작두, 차창 밖을 내다본다. 어둠에 잠긴 폐차장.
계속 창 밖을 살피는 작두, 바닥에 있는 스패너를 가만히 움켜쥔다.
천천히 버스에서 내려서는 작두. 사방을 둘러봐도 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작두 : ...어이, 사마귀냐?
그때 야옹~ 저만치에 도둑 고양이가 고철 더미 사이로 뛰어간다.
긴장 풀리는 작두, 스패너를 툭 내던진다. 돌아서려는데 샌드백이 눈에 든다.
다가가는 작두, 어깨 움직여 몸을 풀더니 자세 잡는다. 살기로 번득이는 눈빛.
순간 퍽! 빠르고 정확하게 샌드백을 때리는.
14. 상가 사무실 ( 새벽 )
앞 씬의 타격음과 동시에 헉!! 숨을 토하며 일어나는 태호. 땀범벅이 된 얼굴로 둘러보면 사무실 소파에서 자던 중.
악몽을 꾼 듯, 진저리를 치는 태호, 마른 세수를 한다.
땀에 젖은 손을 내려다보는 태호, 주먹을 쥐어본다. 이길 수 있을까, 최소한 살아 남기라도 할까...
어둠 속에 태호의 실루엣, 고독하고 위태롭다.
15. 펜트 하우스 ( 아침 )
조용히 들어서는 사마귀.
피곤해보이는 흥삼, 창가에 못박힌 듯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사마귀 : 한숨도... 안주무셨습니까?
흥삼 : 나쁜 꿈을 꿨어. 지진같은 게 일어나서 저기 서울역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꿈... (돌아서서 오디오 있는 쪽으로 가는)
그럴 땐 음악을 들으면 다시 잠이 들었는데... (턴테이블에 놓인 ‘들장미’ LP를 들고) 이것도 영 못쓰게 돼버렸군.
사마귀 : 최대한 빨리 구해 보겠습니다.
흥삼 : 그건 그렇고... (돌아보는) ...알아 봤니?
사마귀 : 네. 회장님이 추측하신 대롭니다.
흥삼 : (표정) ...!
사마귀 : 어느 쪽부터 처리할까요?
흥삼 : 그 놈들은 나한테 맡기고, 작두한테 따라붙어. 빨리 손쓰지 않으면 장태호, 죽은 목숨이다.
사마귀 : ...알겠습니다.
물끄러미 LP를 내려다보던 흥삼, 갑자기 가구 모서리에 내리친다. 빠각! 바닥에 흩어지는 LP조각.
표정없이 내려다보는 흥삼.
16. 폐차장 ( 오전 )
버스에서 내려서는 작두, 기지개를 켠다. 저만치 고철 더미 뒤에 몸을 숨긴 사마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켜본다.
찢어지게 하품을 한 뒤, 어디론가 슬렁슬렁 걸어가는 작두. 사마귀, 그를 미행하고.
17. 지하철역 입구 ( 오전 )
사마귀 시점. 저만치 등을 보이고 걸어가는 작두. 막 지하철역 입구로 내려서는 참이다.
/ 작두 시점. 아무런 전조없이 휙! 돌아보는 작두. 행인들만 오갈 뿐, 수상한 낌새는 없다.
/ 사마귀 시점. 건물 입구에 몸을 감추고 숨 고르는 사마귀. 몇 초 기다렸다가 고개 내민다.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작두의 머리가 보인다.
18. 지하철역 / 코인로커 ( 오전 )
덜컹. 로커 문이 열린다. 제자리에 그대로 놓인 편지 봉투.
안도하는 작두, 다시 문을 닫고 동전을 넣고, 키를 챙긴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휘적휘적 걸어가는 작두.
/ 짧은 시간경과. 로커 앞에 서 있는 사마귀, 의미심장한 표정. 여기에 숨겨둔 것이 분명하다!
19. 더 클럽 / 내실 ( 낮 )
서둘러 들어서는 미주. 상석에 흥삼이 혼자 앉아 있다.
미주 : (긴장)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흥삼 : 밥이나 먹고 가려고... 여기 주방장, 웬만한 레스토랑에 견줘도 빠지는 솜씨 아니잖아.
미주 : 기다리세요. 주방에 주문 넣을게요.
흥삼 : 사람 더 올 거다. 3인분 준비해.
미주 : ...?
흥삼 : (전화 울리자 받는) 응. (표정 변하는) 그래?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어. 시간이 별루 없다.
전화 끊고 생각에 잠기는 흥삼. 나가지 않고 문가에 서서 지켜보는 미주.
그 시선에 고개 드는 흥삼, 눈빛으로 묻는.
미주 : 은지 있는 곳... 언제 알려주실 거에요?
흥삼 : (쓴웃음) 니 머리 속엔 자나깨나 류씨 걱정 뿐이구나.
미주 : 진짜로... 알고 있긴 해요?
흥삼 : (미소 유지) 왜? 내가 널 갖고 노는 거 같니?
미주 : 전 상관없어요. 어차피 회장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세니까...
그치만 아저씬 달라요. 은지 있는 곳만 알면, 얼마든지 새출발 할 수 있어요.
흥삼 : (지긋이 보는) ...
미주 : (애타는) 제발... 아저씨한테 기회를 주세요.
흥삼 :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미주 : ...?
흥삼 : 정사장 제끼러 가기 전에 류씨가 부탁하더군. 자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널 놔주라고...
미주 : ...!
흥삼 : (씁쓸한 웃음을 담아) 재밌지 않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사람이... 나를 가장 벗어나고 싶어하는 거...
미주 : (말문 잃고 보는) ...
그때 문이 열리고 독사와 악어가 들어선다.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목례하는 두 사람.
독사 : 부르셨습니까?
악어 : (쭈볏거리며) 즈이들 왔슈.
흥삼 : (따뜻한) 거기들 앉아라. 오랜 만에 밥이나 같이 먹자구 불렀다.
독사, 악어 : (조심스럽게 보는) ...?
20. 할매 식당 / 안채 ( 낮 )
허겁지겁 마당에 들어서는 오십장과 영칠. 그 소리에 해진과 조회장이 쪽방에서 나온다.
해진 : 찾아봤어?
오십장 : 사무실에두 읎구... 당최 코빼기두 안뵈는구먼.
영칠 : 서울역 근처는 다 돌았는데 아무도 못봤대요. 벌써 파티 붙어갖구 피떡이 되게 당했나?
해진 : (버럭) 닥쳐, 새꺄!
영칠 : (찔끔) 왜... 소리를 지르구...
오십장 : (조바심 나는) 아따... 워디서 붙는지나 알아야 우덜이 달려가서 몸빵이라두 해줄 것인디...
해진 : (초조하게 입술을 씹는) ...
조회장 : (쯔쯔... 혀를 차며) 숫타니파타라는 불경에 이런 말이 나오지.
21. 창고 일각 ( 낮 )
웃옷을 벗은 태호, 어제에 이어 다양한 스트레칭, 격렬한 푸시업, 자세 잡고 주먹 날리고...
파티를 대비해 단련하는 일련의 화면 위로, 앞 씬의 조회장 목소리 이어진다.
조회장 : (소리)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끙! 외마디 기합과 함께 탈진한 태호, 바닥에 누워 헐떡거린다.
22. 할매 식당 / 안채 ( 낮 )
마루에 걸터 앉은 조회장과 둘러서있는 해진, 오십장, 영칠 등.
조회장 : 결과가 어찌되든... 장이사는 혼자 싸울 작정인 게야.
일동 :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
나라 : (소리) 싸우다뇨?
일동, 돌아보면 방에서 나와선 나라가 굳은 표정으로 보고 있다.
나라 : 태호씨가... 누구랑 싸운다는 거에요?
일동 : (난감하고) ...
23. 폐차장 ( 낮 )
어슬렁 걸어오던 작두, 멈칫 선다.
낡은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는 종구, 굳은 표정으로 작두를 쳐다본다.
작두 : (웃으며 다가오는) 언제 왔냐? 데이트는 잘하구?
종구 : (대꾸없이 일어난다, 양복 상의를 벗는) ...
작두 : 너, 지금 뭐하냐?
종구 : (담담히) 파티해야지. 5년 전에 못한 거.
작두 : (어이없는) 뭐?
종구 : (대충 소매 걷고, 작두 앞에 서는) 니가 이기면, 넘버 투해라. 내 챔피언 벨트도 가지구.
작두 : (그제야 짐작이 가는) 들었구나? 내가 장태호랑 파티하는 거.
종구 : 그 녀석은 니 상대가 못돼. 붙을 거면 나하고 끝내자.
작두 : (웃으며) 야, 너하구 승부는 가리고 싶은데... (다가오는) 그래도 선약은 장태호하고 했거든.
종구 : (도발하려고) 왕년의 작두 어디 갔냐? 쫄았어?
작두 : 쫄긴, 새끼... 그때 보니까 너, 그 옆구리 다친 거, 아직 다 낫지두 않았더만. 왼쪽...이었나?
하다가 순간 종구의 옆구리를 강하게 내지르는 작두. 컥! 숨을 삼키며 쓰러지는 종구.
재차 발길질로 다친 부위를 걷어차는 작두. 새우처럼 구부러지는 종구,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셔츠 위로 피가 번지는...
작두 : (평온한 미소로 내려다보는) 제자를 아끼는 마음은 알겠는데, 니가 나설 판이 아냐.
종구 : (옆구리 움켜쥐고 겨우 소파를 짚는) 니 상대는... 나야. 그 자식은... 내버려둬.
작두 : 넌 내가 겨우 장태호, 그깟 피래미 하나 잡겠다구 이러는 거 같냐?
종구 : (헐떡거리며 보는) ...?
작두 : 흥삼이한테 보여주려는 거야.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라구.
종구 : (표정) ...!
작두 : 우리가 서울역에서 함께 다져 올린 믿음, 의리... 그걸 다시 기억하라구... 그래서 건드리는 거야.
종구 : (쥐어짜듯 내뱉는) 그런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어.
작두 : 너는 끝났겠지. 근데 난 아니다.
종구 : (씁쓸히 보는) ...
작두 : (쓴 웃음으로) 옆구리, 미안하다.
돌아서는 작두, 휘적휘적 걸어간다.
소파를 짚고 선 채, 고통을 참는 종구, 멀어지는 작두를 망연히 바라보는.
24. 지하철역 / 코인로커 ( 낮 )
로커 잠금 장치에 꽂히는 락픽. 사마귀, 주위를 의식하며 딸칵,딸칵 락픽을 움직인다. 그러다 찰칵! 풀리는 소리.
사마귀, 재빨리 로커를 열고 편지봉투를 꺼낸다. 봉투 안에 누렇게 바랜 편지지.
메모를 꺼내서 읽는 사마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내용은 보이지 않아도 되는)
25. 편집 화면 ( 낮 )
/ 창고. 상의를 걸치고, 비장하게 창고 문을 나서는 태호.
/ 거리. 나라, 허겁지겁 달리며 핸드폰을 건다. 신호음만 계속 울린다.
/ 다른 거리. 진동하는 핸드폰을 움켜쥔 태호, 입을 굳게 다문 채 뚜벅뚜벅 걸어간다.
/ 상가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나라, 들어선다. 텅 빈 사무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라, 울음이 터질 듯한.
/ 멈춰서는 태호, 고개 들어 올려다본다. 중단된 공사 현장 전경. 저 위에 작두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건물로 향하는 태호.
26. 폐건물 / 수술실 ( 낮 )
뜨악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작두. 그 옆에 서 있는 독사와 악어.
악어 : 그 공사판은 오다가다 보는 눈도 있구, 뒷처리두 곤란해유. 여그가 그려두 좀 한갓지쥬.
작두 : 장태호도 이리 오라구 했냐?
독사 : (굳은 표정) ...네.
작두 : (고개 끄덕하고, 의자로 가서 앉는)
악어 : (다가가서 음료수를 내미는) 쪼개 덥쥬? 션하게 한모금 때리세유.
마침 목이 말랐던 작두, 꿀꺽꿀꺽 음료수를 마신다.
악어, 흘끔 독사를 본다. 눈이 마주친 독사, 벌레 씹은 표정이고.
27. 더 클럽 / 내실 ( 몇 시간 전 )
하나도 손대지 않은 스테이크 두 접시. 독사와 악어, 사색이 된 채 굳어 있다.
그들은 아랑곳없이 고기를 썰어 맛나게 우물거리는 흥삼.
독사 : (겨우 입을 여는) 형님... 뭔가 오해를... 하신 거 같습니다.
흥삼 : (고기를 씹으며 태연하게 보는) ...
악어 : (어색하게 웃으며) 그류. 배중사허구 장태호 파티 야그는 지들두 소문 듣구 알았슈.
흥삼 : 내 가게에서, 내가 사주는 밥 먹으면서... 날 모욕할래?
독사,악어 : (찔끔) ...
흥삼 : (포크 내려놓고, 입 닦고, 차분히 둘을 노려보며) 미친 개가 한마리 나타났는데, 니들이 꼬리에 불을 붙였어.
그러니까 그 불은 니들이 꺼야지. ...안그래?
독사,악어 : (거부할 수 없는) ...
흥삼 : ...고기 식는다. 썰어라.
흥삼의 위압적인 표정 위로... 쨍그랑! 유리병 깨지는 소리.
28. 폐건물 / 수술실 ( 낮 )
음료수병을 떨어뜨린 작두, 휘청하면서 의자 팔걸이를 짚는다. 눈 앞이 어지러워진다.
이를 악물고 독사와 악어를 노려보는 작두.
작두 : 쥐새끼같은 놈들...
독사 : (침통한) 죄송합니다, 형님.
악어 : (찡그리며) 워뜩허것슈... 지들두 살구 봐야쥬.
작두 : (순간 스프링처럼 일어나서 독사 멱살을 움켜쥐는)
독사 : (컥컥대며 버둥거리고) 혀... 형님!
작두 : (핏발선 눈으로) 싸그리... 죽여 버린다...
당황한 악어, 겁나서 덤벼들지도 못하고 엉거주춤인데...
그때, 악어를 지나쳐가는 그림자, 그대로 작두의 등에 칼을 꽂는다. 컥! 몸이 꺾이며 뿌리치는 작두.
사마귀가 적당한 거리를 벌리며 선다.
작두 : 사마귀... 너 이 새끼...
사마귀 : (양복 상의 벗으며) ...다들 나가시죠. 여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악어, 켁켁대는 독사를 부축해서 황급히 나간다.
벽을 짚고 겨우 지탱하는 작두. 사마귀, 저승사자같은 포스로 서 있는데, 작두 시점에서는 약기운 때문에 초점이 안맞고 흔들린다.
사마귀 : (담담한) 빠르고 간단한 쪽, 괜한 오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쪽... 어느 걸 원하십니까?
이글거리는 작두, 일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거의 동시에 작두를 향해 쇄도하는 사마귀.
29. 공사 현장 - 펜트 하우스 ( 낮 )
초조하게 기다리는 태호, 주위를 둘러본다. 작두는 물론, 독사나 악어도 보이지 않아 의아한데...
핸드폰이 울린다.
태호 : ...접니다.
흥삼 :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뭐하구 있어? 어제 미팅한 거, 정리됐으면 들어와서 보고해야지.
태호 : 작두 형님 기다리고 있습니다.
흥삼 : (감정없는) 작두... 거기 못간다.
태호 : (표정) ...!
30. 폐건물 / 수술실 ( 낮 )
우당탕! 나가 떨어지는 작두. 찔리고, 베이고, 터지고... 피투성이가 된 상태.
그에 비해 사마귀는 몇 군데 피를 흘리고 숨만 헐떡일 뿐, 멀쩡하다.
젖은 걸레처럼 구겨진 작두, 일어나려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이프를 꺼내는 사마귀,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다가서는데...
쾅!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태호, 한 눈에 상황파악한다.
방해받을까봐 얼른 작두에게 다가가는 사마귀.
태호, 재빨리 달려들어 일격 날린다. 퍽! 흉기를 놓치는 사마귀, 움찔하더니 반격한다.
몇 차례 치고 받는 태호와 사마귀, 짧지만 치열한 접전 뒤, 팽팽하게 대치한다.
사마귀 : (조금 지친) 비켜 주시면... 제 일이 좀 수월해지겠습니다.
태호 : (으르렁) 니가 꺼져. 이 파티는 내 꺼야.
사마귀 : 회장님 명령입니다.
태호 : 그럼 나까지 제껴 봐.
사마귀 : (낮게 한숨) 그럴 수는 없죠. 장태호씨는 회장님께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배중사도 그래서 제거됐구요.
작두 : (희미하게 보다가, 그 말에 꿈틀) 뭐?
사마귀 : (시선 돌려 보는) ...
작두 : 배중사... 니가 담궜냐?
사마귀 : (담담한) ...예.
작두 : (충격) ...흥삼이가 시켜서?
사마귀 : (끄덕) ...
작두 : ...!!
사마귀 : 형님의 신은 저 위에 계시지만... 제가 모시는 신은 펜트하우스에 사십니다.
작두, 울컥해서 일어나려다 부상 때문에 주저 앉는다. 얼른 부축하는 태호.
물끄러미 보던 사마귀, 재킷을 걸친다.
사마귀 : 회장님이 언짢아하실 겁니다.
태호 : 닥치구 꺼져!
사마귀 : (무표정하게 일별하고, 나가는)
태호 : (작두를 살피며) 일어날 수 있겠어요?
작두 : (충격, 배신감에 망연자실, 초점잃은 눈빛) ...
31. 무료 병원 / 복도 ( 낮 )
태호, 작두를 부축해서 들어선다.
이미 연락을 받은 나라, 진료실 문 열고 뛰쳐 나오다 멈칫! 태호를 보자 놀라고, 피투성이인 작두 때문에 더욱 경악하는!
태호 : 빨리 환자부터...
나라 : (정신차리고) 이쪽으로요!
32. 펜트 하우스 ( 낮 )
책상 너머에 앉은 흥삼, 낡은 편지 봉투의 내용물을 읽는다. 그 앞에서 기다리는 사마귀, 격투의 흔적이 남은.
흥삼 : (다 읽고 덮는) 다른 사본은?
사마귀 : 폐차장에 가서 소지품도 뒤져봤는데 그 원본 밖에 없습니다.
흥삼 : (생각에 잠기는) ...
사마귀 : 불안하시면... 완전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흥삼 : (흘끔 쳐다보는) 그 몸으로 되겠냐?
사마귀 : 문제없습니다.
흥삼 : (피식) ...놔둬. 작두는 벌써 죽었다.
사마귀 : 네?
흥삼 : 독사랑 악어한테 뒤통수 맞구, 배중사 제낀 배후가 나라는 것까지 알았으니... 그 성격에 쇼크가 클 거다.
게다가 구차한 목숨을 건져준 녀석이 하필 장태호잖아. 몸은 살았어두, 정신은 끝장났어.
사마귀 : (미심쩍은) 혹시... 장태호한테 귀뜸하셨습니까?
흥삼 : (라이터를 꺼내며) 그래. 내가 알려줬다. 태호 그 놈, 그릇 좀 보려구.
사마귀 : (표정) ...?
흥삼, 종이에 불을 붙인다. 재떨이 위에서 화르륵~ 타오르는 종이.
흥삼 : 한번 결심이 서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드는 놈이야.
(불빛에 어른거리는 표정) 내가 그리는 용에... 마지막 점 하나를 찍어줄 거다, 장태호 그 녀석이.
33. 무료 병원 / 옥상 ( 저녁 )
태호, 생각에 잠긴 채 거리를 내려다본다. 다가와 서는 나라.
나라 : (건조한) 방금 종구 아저씨 왔어요.
태호 : (돌아보는) 그냥 가야겠네요. 마주치면 욕이나 먹을 텐데.
나라 : 나한테 욕 먹는 건 괜찮구요?
태호 : (짐작하고 있는) 어제 일은 미안해요. 뒤늦게 생각나서 달려갔는데, 나라씨는 안보이더라구요.
나라 : 바람 맞은 얘기가 아니에요.
태호 : (표정) ...?
나라 : 태호씨, 전에 분명히 약속했어요. 다른 사람은 물론이구, 태호씨 본인도 다치는 일 없게 하겠다구. 근데 이게 뭐에요?
태호 : (가볍게 웃는) 다친 데 없어요, 나. 게다가 내가 싸운 것도 아니구요.
나라 : (웃지 않고 쏘아보는) 눈 가리구 아웅해요? 싸움인지 파틴지... 태호씨, 그거 할 생각이었잖아요.
태호 : (달래보려고 한발 다가서며) 나라씨...
나라 : (한걸음 물러나는, 원망스레) 다친 사람이 태호씨가 될 수도 있었어요. 저 아래 병실에 피투성이가 돼서요!
태호 : (낮게 한숨, 표정 무거워지고) ...해야 할 일이 많아요. 내가 잘해낼수록 그걸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늘어나구요.
저쪽에서 주먹이 날아오는데, 멍청하게 맞고 있을 순 없잖아요.
나라 : (뜨악하게 보는) 그게 태호씨가 말했던 악당이 되는 방법이에요? 그렇게 싸워서 서울역을 가지려구요?
태호 : (오기가 뻗치는) 맞아요. 이게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에요. 나라씨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나라 : 아뇨. 태호씨가 가르쳐줘요. 내가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야 더 이상 무섭지 않구, 불안하지 않게 태호씨를 볼 수 있어요?
태호 : (묵묵히 응시하는) ...
나라 : (서운하다, 휙 돌아서서 가다가 멈추고) 인디언 설화 중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태호 : ...?
나라 :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마음 속에 늑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대요. 한마리는 탐욕, 질투, 오만함이고
다른 하나는 선의, 희생, 양심이래요. 그 늑대 두 마리는...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마음 속에서 싸우는 거죠.
태호 : (물끄러미 보다가) 그래서... 누가 이기는데요?
나라 : ...태호씨가 먹이를 주는 쪽이요.
옥상을 내려가는 나라.
답답한 태호, 고개 젖히고 하늘을 보는...
34. 무료 병원 / 병실 ( 저녁 )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작두. 그 옆에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보는 종구, 어쩐지 목이 메인다.
겨우 눈 뜨고 보는 작두.
작두 : (멍한 시선, 갈라진 목소리) ...종구야.
종구 : 말하지 마. 그냥 쉬어.
작두 : 흥삼이... 어쩌다 그렇게 됐냐?
종구 : 난들 알겠냐...
작두 : (멍하게 천장을 보는)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 놈.
종구 : (자조적인) 미쳐 버렸나부지.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작두 : (시선 돌려 흘깃 보더니) 그래서 말인데...
종구 : 말 그만 하라니까.
작두 : 나... 아주 떠날란다, 서울역.
종구 : (표정) ...!
작두 : 여긴... 이제 아무 것두 지킬 게 없어.
종구 : 작두야...
작두 : ...넌 남아. 남아서 뭐든지 해.
종구 : (먹먹해지는데) ...
작두 : (더듬거려 손을 내민다. 종구의 손을 잡는, 힘없는 미소) 기도해줄께. 너하구 흥삼이 위해서...
종구 : (눈가가 붉어지는) ...
35. 서울역 근처 ( 새벽 )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각. 작은 가방을 걸쳐맨 사내가 절룩절룩 걸어간다.
부상이 다 회복되지 않은 작두, 황량한 새벽 거리... 그 어딘가로 점점 멀어져가고.
36. 펜트 하우스 ( 낮 )
문을 열어주는 사마귀. 태호가 들어선다.
가봉된 양복을 걸치고 있는 흥삼. 머리가 희끗한 재단사, 핏을 살피며 군데군데 초크로 표시하는.
흥삼 : (태호를 흘끔 보더니) 왔니? 잠깐 기다려라.
태호 : (앉지 않고 서서 기다리는) ...
흥삼 : (재단사에게 허물없이) 작년하고 또 다르죠? 살이 좀 붙어서.
재단사 : (가봉복을 벗겨주고) 곽회장 나이에 이 정도면 준수한 걸세.
흥삼 : 중요한 행사가 있습니다.
재단사 : (옷과 도구를 챙기며) 염려말게. 약속한 날짜까지 완성될 게야.
흥삼 : (사마귀에게) 배웅해드려.
사마귀, 재단사의 짐을 들어주고 문 밖으로 안내한다.
흥삼 : (소파로 와서 앉는) 명동에서 45년 넘게 양복점을 하신 분이야. 생전에 우리 아버지도 단골이셨고...
태호 : (별 감흥없는) ...그렇습니까?
흥삼 : 어떤 일이든, 그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양복이든 주먹이든... 중요한 건 신뢰지.
(의미심장하게 보는) 내가 널... 어디까지 믿는 거 같냐?
태호 : 명령을 어겨도... 살려둘 정도는 믿으시죠.
흥삼 : (냉랭하고) 작두 일은 니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었어.
태호 : 파티도 아니고, 함정이었습니다. 만약 작두 형님이 그런 식으로 제거 당했으면, 회장님 평판이 악화됐을 겁니다.
흥삼 : (코웃음) 내 이미지 관리까지 해주고... 대견하구나.
태호 : 미래도시 프로젝트... 최종 계약서에 싸인만 남았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차질이 생기면 곤란합니다.
흥삼 : (멈칫 봤다가, 흐흐... 웃음이 새어 나오는) 내 핑계만 댈 거 없다.
너도 그 놈의 오기 때문에 목숨 걸고 파티 붙으려고 했잖아.
태호 : 제 오기가... 회장님의 무기입니다.
흥삼 : (웃음 멈추고 보는) ...
태호 : (단단하게 마주 보는) ...
흥삼 : ...작두는 벌써 서울역 떴다. 아마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야.
태호 : (잠깐 표정 스치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흥삼 : (느긋해지며) 골치 아픈 문제도 해결됐고, 넌 최종 계약만 제대로 마무리 해. 그 얘기하려고 불렀다.
태호 : (가볍게 고개 숙이는) 조만간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흥삼 : (흡족하게 끄덕) ...
37. 펜트 하우스 / 복도 ( 낮 )
밖으로 나오는 태호. 마침 미주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미주 : (다가오는, 냉소를 담아) 장태호씨... 요즘 잘나간다면서요?
태호 : (변죽좋게 받는) 이야, 소문 빠르네요. 마담까지 알아주시고...
미주 : 용건 있을 때마다 회장님하고 독대하는 거, 다른 보스들은 꿈도 못꾸는 특권이에요.
태호 : 그럼 저두 마담 레벨하고 비슷해진 겁니까?
미주 : (쓴웃음) 잘못 알구 있네요. 난 장태호씨같은 능력두, 야심두 없어요.
태호 : 그런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종구 형님한테 등 돌리길래, 마담두 나랑 같은 종류의 인간이구나, 생각했는데...
미주 : (꿈틀) ...!
태호 : (태연한 미소) 시간 나면 술 한잔 하러 가겠습니다.
지나쳐가는 태호. 미주, 못박힌 듯 서서 입술을 깨무는...
38. 펜트 하우스 ( 낮 )
흥삼, 테이블 위로 봉투를 쓰윽 밀어준다. 눈빛으로 묻는 미주.
흥삼 : 편도 티켓이다. 그거면 류씨는 영영 서울역을 떠나게 될 거야.
설마 싶은 미주, 얼른 앉아서 봉투 안을 확인한다. ‘강원도 ##군 ##면....’ 주소가 적힌 메모지.
미주 : (믿기지 않는) 은지가... 정말 여기 살구 있는 거에요?
흥삼 : 찾는 건 류씨더러 직접 하라구 해.
미주 : (놀랍고, 떨려서 다시 메모를 들여다보는) ...
흥삼 : 난... 약속 지켰다. 아니, 약속보다는 거래에 가깝지.
미주 : (고개 들어 보는) ...
흥삼 : (미소 짓고 있지만 경고를 담아) 미주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손해보는 거래야. ...알지?
미주 : (위압감에 눌리는) ...
39. 폐버스 안 ( 낮 )
작두가 쓰던 매트리스를 걷어서 치우는 종구. 문득 구석에 놓인 성경책을 발견한다.
먹먹한 기분으로 몇 장 넘겨보는 종구.
/ 9부 34씬. 무료 병원에서 종구와 작두.
작두 : 나... 아주 떠날란다, 서울역.
종구 : (표정) ...!
작두 : 여긴... 이제 아무 것두 지킬 게 없어.
종구 : 작두야...
작두 : ...넌 남아. 남아서 뭐든지 해.
/ 현재.
성경책을 덮는 종구, 멍하게 둘러본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트로피.
종구 표정에 어떤 결심이 떠오르면서 음악 시작되고.
40. 편집 화면
/ 지하도 일각 (낮).
생각에 잠겨 걸어오는 종구, 멈칫 선다. 공익들이 박스를 치우고, 방역 요원이 소독 가스를 곳곳에 뿌린다.
소지품 비닐 봉투를 든 양씨와 최군, 노숙자 몇이 힘없이 돌아선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종구.
/ 골목 화단 (낮).
왔다갔다... 천천히 서성거리는 태호, 좌우를 둘러본다. 혹시 나라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포기하고 돌아서던 태호, 다시 화단을 본다. 꽃잎이며 이파리가 메말라 있다.
들고 있던 생수병을 여는 태호, 휘휘 물을 뿌려준다.
/ 무료 병원 병실(저녁).
늙은 노숙 환자를 살펴주고 돌아서는 나라, 병실 나와서 벽에 기대선다. 피곤하고 심란하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그리고 다시 기운내서 머리끈을 질끈 묶는.
/ 더 클럽 홀 (늦은 밤).
영업이 끝난 듯, 의자 올리고 걸레질하는, 쓰레기봉투를 내가는 종업원등등.
BAR에 걸터앉아 있는 미주, 가라앉은 표정이다.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메모지가 있다.
종구에게 전해야하는, 결국 그를 떠나게 할 티켓... 결심한 듯 메모지를 핸드백에 넣는 미주.
41. 할매 식당 앞 ( 아침 )
하품하며 걸어오는 나라, 멈칫 선다. 식당 앞에 미주, 흥삼이 건네줬던 메모지를 들고 망설이며 서 있다.
의아해서 다가가는 나라.
나라 : 누구... 세요?
미주 : (돌아보는) ...?
나라 : 저희 가게, 아침 식사두 돼요. 들어가세요.
미주 : (누군지 알아채는) 나라씨죠?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나라 : (짚이는) 아! 그럼 혹시 종구 아저씨가 만난다는... (문득 의심스러운) 아저씨가 뭐랬는데요? 제 흉 봤죠?
미주 : (미소) 씩씩하다구요.
나라 : (멋적게 웃다가) 왜 안들어가세요? 아저씨 만나러 오신 거 아니에요?
미주 : (난감하고) ...
42. 할매 식당 ( 아침 )
설거지하는 척, 슬그머니 밖을 흘끔거리는 나라와 할매.
2인분 식사가 놓인 테이블. 미주, 수저 들 생각 없이 가만히 보고 종구는 앞에 아무도 없다는 듯 혼자 밥을 먹는다.
저, 저... 종구 향해 쏘아 붙이려는 할매. 화들짝 놀란 나라, 얼른 할매를 떠밀어 뒷문으로 내보낸다.
다시 두 사람을 살피는 나라.
미주 : 대답을 듣고 싶어할 거 같아서 왔어요.
종구 : (깍두기만 우적우적) ...
미주 : 아저씨랑... 떠나지 않을 거에요.
종구, 멈칫! 했다가 가만히 수저 내려놓고 물을 마신다. 담담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미주.
종구, 화난 것도 아니고 실망한 기색도 없는.
종구 : ...더 할 얘기 있냐?
미주 : (생각보다 차분한 종구 반응에 표정) ...
종구 : 없으면 먼저 간다. (일어나려는데)
미주 : 잠깐만요. (탁자 위로 메모지를 내미는) 은지... 외삼촌네 주소에요.
종구 : (표정) ...!
미주 : 이번엔 확실해요. 여기로 가면 은지,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종구 : 어떻게 알아낸 거야? 심부름 센터는 다른 얘기 없었는데.
미주 : 그냥... 제가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접혀있는 메모지를 물끄러미 보는 종구, 그러다가 메모지를 조각조각 찢어 버린다.
흠칫 놀라는 미주. 주방에서 보던 나라도 놀라고.
미주 : 아저씨!
종구 : 나... 서울역에 남을 거다.
미주 : (표정) ...!!
종구 : 남아서... 나보다 한심하고, 나만큼 대책없는 인생들하고 부대끼면서 살 거야.
내가 뭘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뭐든 해보려구.
미주 : 그치만 우선 은지부터 찾고...
종구 : 내 앞가림두 못하면서 딸자식 찾으면 뭐하게? 욕심이야, 그거. (차분 하지만 분노가 담긴) 거기에 한번 눈 돌아가면
사람이 사람 아닌 게 된다. 20년 가까이 형제처럼 지냈어두... 방해가 되면 등에 칼까지 박아넣는 게 욕심이거든.
미주 : (알아듣고, 불안해지는) 회장님하구... 맞서지 말아요.
종구 : (굳은 채, 미소) 싸우려는 게 아냐. 살아야겠다는 거지.
(일어나는) 언젠가 은지를 찾을 준비가 됐을 때... 고맙다는 말은 그때 하마.
식당을 나가는 종구.
미주, 망연자실한데... 미주 앞에 소주병을 탁! 놓는 나라.
미주, 고개 들어서 보는.
나라 : 답답할 땐 알콜이 만병통치약이에요. 간호사라서 제가 좀 알죠. (흘끔 시계 봤다가) 아침부터 술은 좀 그런가?
미주 : (마음 써주는 나라에게 미소로) 고마워요. 다음에 기분좋을 때 같이 마셔요. (일어나서 문으로 가는)
나라 : 아저씨가 원래 앞뒤가 좀 막혔어요.
미주 : (돌아보는) ...
나라 : 남자들 보통 그러잖아요. 엉뚱한 데 꽂히면 남의 말 안듣고 고집 쩌는 거... 제가 아는 남자두 그런 스타일 하나 있거든요.
미주 : (미소 끝이 씁쓸한) 아저씨한테... 잘못한 게 많아요, 제가...
나라 : ...?
미주 : (쓴웃음으로 일별하고 나가는) ...
/ 시간경과.
나라가 스카치 테이프로 종이 조각을 붙이고 있다. 글자 모양대로 찾다가 찢어지게 하품... 야근하고 온 뒤라 피곤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조각 맞추기에 몰두하는.
43. 달리는 차 안 ( 낮 )
운전하는 세훈. 옆자리에 정민이 앉아 있고.
정민 : 지금 우리, 어디 가는 거에요?
세훈 : 바다 보러요.
정민 : 네?
세훈 : ...라구 하면 좋겠는데, 일하러 갑니다.
정민 : (흘겨보는) 실장님!
세훈 : 기다려봐요. 다 왔으니까.
정민 : (의아하고) ...?
44. 상가 사무실 ( 낮 )
태호, 해진, 조회장은 소파에 모여 서류를 검토하고 영칠은 언제나처럼 모니터를 파고드는 자세로 키보드 두드리는 중.
조회장 : (돋보기로 서류 들여다보며) 그러니까... 내가 이 투자회사에서 대표 이사를 맡았다... 이건가?
해진 : 서류상으로만 대표 이사죠 뭐. 실제 투자자는 곽흥삼 회장인데, 우린 그냥 명의만 빌려주는 거에요. 저는 전무 이사구요.
태호 : 지난 번 같은 사기는 아닙니다. 정식으로 계약하고 투자하는, 합법적인 사업이에요.
조회장 : (갸우뚱) 자네 말대로면... 곽회장이 뒤에 숨을 필요가 없지 않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어째서...
영칠 : (고개 쏙 내밀고) 안봐도 비디오죠! 하는 일마다 꼼수 부리고 통수 치는데, 이거라구 다르겠어요?
태호형두 조심해요. 괜히 안좋은 소문에 휘말리지 말구.
태호 : (돌아보는) 무슨 소리야?
해진 : (대신 나서며) 아니 그게... 작두 형님 그렇게 된 거, 곽회장이랑 태호씨가 처음부터 짜고친 고스톱이라구...
뭐 그런 소문이 있어.
태호 : (찌푸리는) 뭐? 그딴 헛소릴 믿는 거야, 지금?
해진 : (펄쩍 뛰는) 우리야 안믿지! 안믿는데... 요새 태호씨가 워낙에 곽회장 신임을 받으니까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더라구.
영칠 : 명의두 말이죠, 거 함부로 빌려주고 그럼 안되거든요. 사람은 이름 석 자를 귀하게 써야 한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해진 : (눈짓으로 영칠을 말리는)
태호 : (표정 굳은 채, 조회장을 보는) 내키지 않으세요, 회장님?
조회장 : 자네한테 도움이 된다면... 도와야지.
태호 : 해진씨는?
해진 : (어색하게 웃는) 나두 노 프라블럼.
태호 : (쐐기 박는) 좋아. 그럼 그대로 진행하죠. 다른 불만 있습니까?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보는 해진, 조회장, 영칠.
그때 똑똑, 노크 소리.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세훈과 정민.
태호, 감전된 사람처럼 몸이 굳는다. 정민 역시 예상 밖이라 놀라는...
세훈 : (미소로) 실례합니다.
해진 : 어떻게 오셨습니까?
태호 : (표정 고치고) 한중그룹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일동 : (휘둥그레 눈이 커지는) ...!!
태호 : (세훈을 보며, 팽팽한) 밖에서... 뵙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세훈 : 사업 파트너가 될 회사 아닙니까? 한번쯤 찾아오는 게 예의죠.
(둘러 보며) 생각보다 멀쩡하네요. 존재하지 않는 주소일까봐 걱정했는데.
해진 : (거슬리는) 거... 아무리 갑이라두 찾아오려면 을한테 미리 연락 정도는 해야...
태호 : 해진씨.
해진 : 어?
태호 : (냉랭한) 자리 좀 비켜줘.
45. 상가 사무실 앞 ( 낮 )
터덜터덜 건물을 나서는 해진과 조회장, 영칠. 건물 앞에는 매끈하게 빠진 세훈의 차가 서 있다.
해진 : 지 생긴 대로, 뺀질뺀질한 걸 몰구 다니는구만.
(영칠에게) 야, 오십장 더러 오함마 갖구 오라 그래. 이거 확 폐차시켜 버리게.
영칠 : (진지한) 그 형님, 대전에 공사현장 갔는데?
해진 : (혀를 끌끌) 관두자, 관둬. 내가 너랑 무슨 농담을 하겠냐?
조회장 : 장이사... 괜찮겠는가?
해진 : 왜요?
조회장 : 글쎄... 심기가 불편해보이더구만.
해진 : (영칠 향해) 얌마! 니가 쓸데없이 긁는 소리해서 그렇잖아!
영칠 : 우리가 태호형 쫄따구도 아니고, 그런 소리두 못해요? (부루퉁) 암튼, 태호형 요새 좀 재미없어졌어요.
해진 : (답답한듯) 자샤! 태호씨가 떡시루를 만져야 우리가 떡고물이라두 얻어 먹는 거야, 알간?
영칠 : 모르간!
46. 상가 사무실 ( 낮 )
태호, 소파에 앉아 있고, 맞은 편에 세훈과 정민이 있다.
정민 : (사무적인 말투로 서류를 뒤적이며) 내일 오후 2시, 한중그룹 컨벤션 홀에서 미래도시 선포식이 거행됩니다.
윤일중 회장님은 물론, 프로젝트에 관계되는 기관 및 사업체가 전부 참석할 예정이구요.
태호 : (묵묵히 보는) ...
정민 : (고개 들고) 참석을 원하시면 초청장은 따로 발송하겠습니다.
태호 : (세훈을 돌아보는) 팩스로 보내도 되는 일인데, 실장님까지 오시고...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세훈 : (미소) 장과장님하고 친해지고 싶어서요.
태호 : (미소로 정민을 보는) 대리님은 불편하신 거 같은데요.
정민 : (꿈틀) ...!
그때 세훈의 핸드폰이 울린다. ‘들장미’ 멜로디. 멈칫, 눈빛 바뀌는 태호.
그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전화 받으며 일어나는 세훈.
세훈 : 잠시만요.
세훈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고, 태호와 정민만 남는다. 어색한 침묵...
태호 : 표정 풀어. 니 애인이 눈치채겠다.
정민 : (냉랭한) 하두 자신만만하길래, 뭔가 싶었더니... 겨우 이거야?
이런 데서... 그런 노숙자들하구... 사채업 자금으로 프로젝트에 끼어들어 보려구?
태호 : 맞아. 그게 내 계획이야.
정민 : ...한심해.
태호 : 니 목표에 비하면 그렇겠지.
정민 : 뭐?
태호 : (세훈이 나간 문 밖으로 쳐다보고) 출세길 오른 남자, 완벽한 니걸루 만들어서...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그룹도 손에 넣고...
그게 니 원대한 목표잖아. 안그래?
정민 : (멈칫, 그러면서 입꼬리엔 미소) 유감이다. 태호씨가 중도 탈락만 안 했어두, 장미빛 미래가 펼쳐지는 건데...
그렇다구 너무 오바하진 마. 지나간 감정 때문에 무리하기엔... 우리 이미 늦었어.
태호 : (서류 들어서 보며, 심드렁히) 안심해. 나 좋아하는 여자 생겼으니까.
정민 : (충격) ...!!
태호 : 내 감정 신경쓰지 말고, 니 남자나 체크해.
정민 : 무슨... 뜻이야?
태호 : (서류에서 시선 들고, 도리어 의아한) 너, 니가 사귀는 남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널 여기까지 왜 데려온 거 같은데?
정민 : (표정) ...!
47. 달리는 차 안 ( 낮 )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바라보는 정민. 운전하는 세훈, 흘끔 본다.
세훈 : 뭐, 기분 나쁜 일 있었어요?
정민 : ...
세훈 : 정민씨?
정민 : ...차 세워요.
의아한 세훈. 정민은 여전히 얼음장같은...
세훈, 갓길에 차를 댄다.
세훈 :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정민 : (여전히 앞만 보는) ...알고 있었죠?
세훈 : ...?
정민 : (돌아보는) 태호씨가 나랑 사귀었던 거, 다 알구서 이러는 거죠?
세훈 : (표정) ...!
정민 : (대답 기다리는, 싸늘한) ...
세훈 : (눙치듯) 아... 거짓말 못하겠네.
정민 : (꿈틀, 그러나 평정 유지하며) 근데... 그 사람도 알구 있어요. 세훈씨가 내 애인이란 거.
세훈 : (놀라는, 표정 관리하며) 정민씨 성격에... 헤어진 남자한테 새 남자가 누군지 보고할 리는 없구...
장태호 그 친구, 거짓말 잘하네.
정민 : (경고하듯) 사람 갖구 놀지 말아요. 세훈씨 호기심에 장단 맞춰줄 생각 없으니까.
세훈 : (변명하려고) 정민씨, 그건...
냉랭하게 차에서 내리는 정민, 또각또각 걸어간다.
따라 내리려다 멈추는 세훈, 지금 사과해봤자 먹힐 거 같지 않다.
멀어지는 정민을 보면서 입맛이 씁쓸한 세훈. 만만치 않은 여자다.
48. 상가 사무실 ( 낮 )
소파에 앉은 채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는 태호, 생각에 잠긴.
/ 6부 55씬. 습격 받기 직전의 펜트 하우스.
태호를 위해 직접 술을 따라주는 흥삼. 턴테이블에서 돌아가는 LP. ‘들장미’가 흐르고...
/ 9부 46씬. 세훈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들장미’ 멜로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 태호.
/ 7부 48씬. 레스토랑에서 태호에게 세훈을 소개하는 흥삼.
흥삼 : (태호에게) 인사드리지. 한중그룹 기획전략실, 강세훈 실장님일세.
/ 다시 현재.
흥삼과 세훈이 무슨 관계일까... 머리 속이 복잡한 태호, 벌떡 일어나서 문으로 향하는.
49. 골목 일각 / 화단 ( 낮 )
화단 앞에 쪼그려 앉은 나라, 물끄러미 생각에 잠겨 있다.
/ 9부 33씬. 병원 옥상에서 태호와 나라.
태호 : (오기가 뻗치는) 맞아요. 이게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에요. 나라씨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 현재.
태호 말이 떠올라 입이 삐죽 나오는 나라.
나라 : ...안싸우면 되지, 그걸 몰라 묻냐? 멍충이...
에잇! 잡생각을 털어내는 나라, 일어나다가 멈칫? 화단 구석에 반쯤 남은 생수병이 보인다. (태호가 남겨둔 것)
의아해서 보던 나라, 생수병을 연다. 손가락 펼쳐 손등 위로 물을 흘린다.
손 끝을 가볍게 털자 물방울이 골고루 떨어진다. 금세 촉촉해지는 꽃잎들. 나라 표정도 조금은 환해지고.
50. 거리 일각 ( 이른 저녁 )
가게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밖으로 나온 가게 주인, 처마 아래서 쉬고 있던 양씨와 최군을 내몬다. 더 퍼지르지 못하게 양동이로 물까지 뿌리는 가게 주인.
양씨와 최군, 투덜대며 자리 옮기는데... 몇 걸음 앞에 종구가 서 있다.
종구 : 남의 가게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지하도는?
양씨 : (한숨) 여름이잖어. 위생상 좋지 않다구 다른 데로 가래.
최군 : 어디루 가죠? 영등포역두 마찬가질 텐데...
양씨 : 찾아보믄 밤이슬 피할 데 없겠냐. (힘없이) ...가자.
종구 : (걸어가는 양씨, 최군을 보다가) 어이!
양씨, 최군 : (돌아보는) ...?
51. 폐차장 ( 저녁 )
태호, 샌드백을 퍽퍽 두드리고 있다. 뜨악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종구.
종구 : 여기서 뭐하냐, 지금?
태호 : (멈추고 보는) 연습하던 거, 생각나서요. 별로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어째 옛날 얘기같네요.
종구 : (표정없이 보는) ...
태호 : 작두 형님은... 잘 가셨습니까? 인사도 못드렸는데.
종구 : 안그래도 너 한번 보려던 참이다. (버스로 가며) 올라와.
태호 : ...?
52. 폐버스 안 ( 저녁 )
코인로커키를 내미는 종구. 의아해서 보다가 받는 태호.
종구 : 작두가 주라고 하더라. 너한테 고맙단다.
태호 : 뭡니까... 이게?
종구 : 흥삼이 아킬레스건.
태호 : (표정) ...!
종구 : 내용은 나도 몰라. 똘똘하고 근성있는 녀석이니까, 넌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태호 : (로커키를 만지작거리며 보다가) 번지수가 틀렸는데요.
종구 : ...?
태호 : (쓴웃음으로 쳐다보는) 이래뵈도 저, 곽회장 오른 팔입니다. 제법 규모가 큰 사업도 추진하고... 꽤 신임받고 있어요.
종구 : 그래서? 기특하다고 엉덩이라도 쳐줄까?
태호 : 작두 형님 덕분에 한가지 교훈을 배웠습니다. 곽회장 옆에서는 아는 게 적을수록 오래 갈 수 있다는 거...
게다가, 절 믿어주고 키워주겠다는 보스를 배신할 이유는 없죠.
(로커키를 내려놓고) 정 궁금하면... 판도라의 상자는 형님이 열어 보시든가요.
종구 : (싸늘하게 보는) ...
태호 : (일어나는데) ...
종구 : 태호야. (돌아보는 태호를 응시하며) 5년 전에 그 남자, 작두가 죽인 거 아니다. 흥삼이 손에 묻은 피, 대신 뒤집어 쓴 거야.
태호 : (충격) ...!!
종구 : ...궁금하지 않냐? 어떤 게 진짜 흥삼이 얼굴인지...
태호 : (혼란스런 눈빛으로 종구를 보다가, 로커 키를 보는) ....
53. 펜트 하우스 ( 아침 )
화면 시작되면... 거울 앞에 서 있는 흥삼. 재단사가 완성된 양복을 들고 다가온다.
한쪽에서 사마귀가 해외 배송된 상자를 뜯는다. 완충재 속에 들어있는 ‘들장미’ LP.
팔을 꿰고, 똑바로 서서 품을 재는 흥삼.
사마귀가 LP를 튼다. 익숙한 멜로디가 흐르고.
54. 지하철역 / 코인로커 ( 과거 -> 현재 )
앞 씬의 음악이 이어지면서... 9부 18씬에서 미처 보여지지 않은 부분.
코인로커를 여는 작두. 저만치 뒤에서 지켜보는 사마귀의 시선. 작두, 사마귀의 미행을 이미 알고 있다.
로커를 잠그는 작두, 사마귀가 눈치채지 못하게 맨 아래쪽 로커를 흘끔 보고 돌아선다.
/ 현재, 낮.
망설이는 태호, 맨 아래쪽 로커를 응시한다. 결심하고 키를 꽂는 태호.
로커를 열면 편지봉투가 나온다. 봉투 안에는 낡은 원본이 아닌, 그 메모를 복사한 종이가 들어 있다.
태호, 작두가 휘갈겨 써놓은 내용을 본다. ‘스티븐 김. 40세. LA 킴스 무역 대표’
그 아래 줄을 보던 태호, 충격으로 굳는다! ‘강세훈. 35세. 캐나다 입양 고아. 한중그룹 입사. -> 곽흥삼?’
55. 한중 컨벤션 홀 / 건물 앞 ( 낮 )
당당한 눈빛의 세훈이 서 있다. 그 옆에는 굳은 표정의 정민. 임원들 역시 양쪽으로 서서 회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 뒤로 보이는 현수막. ‘한중그룹 미래도시 프로젝트 선포식’
세훈 : (다른 사람한테 들리지 않게, 농담조) ...인상 펴요. 중요한 날인데,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흘깃 째려보는 정민. 태연한 미소로 윙크하는 세훈.
그때 윤회장의 차가 들어선다. 분주해지며 정렬하는 사람들.
윤회장과 윤재성이 차에서 내린다. 일제히 목례하는 직원들.
윤회장, 여유있게 끄덕이며 건물로 들어선다.
고개 드는 세훈, 날카로운 눈빛! 그 번득이는 표정에서...
56. 편집 화면 / 흥삼父의 서재 ( 과거 , 낮 )
‘들장미’ BGM과 함께 컷컷! 이어지는 장면. (구체적인 과거는 10부에)
/ 쿵! 고목처럼 쓰러지는 흥삼부. /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17세의 흥삼. 충격 받는.
/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는 약병. / 덜덜거리는 손을 뻗는 흥삼부.
/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윤일중 회장(40대).
/ 아버지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흥삼(17세). 그 옆에서 겁먹은 듯 보는 세훈(10세)
57. 한중 컨벤션 홀 / 건물 앞 + 차 안 ( 현재, 낮 )
오열하는 흥삼(17세)이 현재의 흥삼으로 이어진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흥삼, 어금니를 꾹 깨물고 어딘가를 바라보는데...
저만치 선포식을 마친 윤회장이 투자자들과 악수하거나, 배웅을 받으며 건물을 나서고 있다.
그 옆을 따르는 세훈과 정민, 윤재성과 임원들.
/ 세훈쪽 시점. 윤회장을 수행하는 세훈, 무심코 시선 돌리다 멈칫, 굳는다. 차에서 내린 흥삼이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다.
긴장한 세훈, 돌아보는데 윤회장은 아직 다가오는 흥삼을 모르고 있다.
오직 윤회장만을 응시하며 다가오는 흥삼, 이글거리는 눈빛!
/ 코인로커 앞. 작두가 남긴 메모를 든 채, 충격으로 얼어붙은 태호.
그런 흥삼과 태호가 한 화면에 꽂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