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위원장이 노동조합에 처음 발을 딛었던 1998년은 당시 노조는 재정적으로 넉넉지 않았다. 조합비 0.7%로 상급단체에 의무금 내기도 빠듯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노조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IMF 광풍 이후 조합원들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지쳐있었다. 그러니 더욱 노조가 뭔가 해야 할 시기였다.
박 위원장은 일단 지역에 있는 극장을 찾아갔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극장 홍보를 할 테니 조합원에게 영화할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극장주 입장에서는 홍보효과와 더불어 객석점유율도 높아질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노조위원장이란 사람이 찾아와 부탁을 하니 더욱 그랬다. 그 결과 조합원들은 50%가 할인된 가격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다. 공장의 식당운영업체 계열사의 유명 요리사를 섭외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요리강좌와 칵테일 강습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같은 상급단체에 속해있는 태평양 노동조합과 연계해 여성조합원을 대상으로 메이크업 강좌를 열기도 했다.
“돈이 들지 않는 범위에서 모든지 찾아다녔습니다. 당장 손에 쥔 게 없으면 발로 뛰어야죠.”
이렇게 발로 뛰어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니 조합원이 노동조합 주위에 모여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발로 뛰는데 그치지 않았다. 박 위원장이 생각하는 리더란 ‘권위’를 가진 자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조합원과 함께 하려면 발로 뛰는 것 외에도 뭐든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족구 한판을 하더라도 제가 헛발질을 해대면 아무리 위원장이라도 어디 공격을 시켜주겠습니까?”
그래서 조합원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이제는 족구는 누가 뭐래도 수준급이라고 어깨를 으쓱, 하는 그의 모습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좋은 게 있으면 일단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외부에 강의를 나가서도 벤치마킹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찾는다.
얼마 전 우리제품 사랑운동을 펼치게 된 것도 박 위원장이 태평양으로 강의를 다녀온 후 얻은 아이디어이다. 또 현재 유한양행에서 시행되고 있는 ‘밝은 유한인’ 제도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나갔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회사에 제안했다.
박 위원장의 이런 면모는 노동조합 상집간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간부들이 비즈공예나 포장공예, 배드민턴 등을 배운 뒤에 직접 강사가 되어 조합원들에게 강습을 하기도 하는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반응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2000년 주 40시간제 도입 이후 노조가 주말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모두 조합원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즐겁다는 박 위원장의 소신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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