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가 안 나가 채널 돌리다 우연히 보았다.
서울 상경, 식모살이 주인집 아들이 댐비고. 어, 이거 뻔한 한국영화다.
EBS 한국영화특선
우글거리던 동생들 땜에 그녀는 이제 공장생활,
담에는 술집을 가려다 말고 버스차장
그리고 팔을 잃는다. 그래도 남는 것이 몸뚱이라 몸을 판다.
동시녹음이 아니라 입모양은 어색하지만 나는 한국현대사의 압축을 본다.
최은희 김지미 문희 남정임 윤정희를 넘어서는 염복순이라는 튀는 듯한 일찌기 없던 캐릭터를 발굴한 이는 김호선이다.
그리고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작은 남자 때밀이 창수 역을 한 송재호라. 그 약한 몸, 선한 눈짓이라니
그는 배우를 발견하는 눈이 있었다. 박찬욱도 이영애나 송강호로 가는 것을 보면 그런 점에서는 ....
그는 장미희 주연한 <겨울 여자>로 깃발을 날렸지만 후일 어린애 건들다가 신세 조진 사람.
김호선 감독의 배우발견 역량도 탁월한 것이지만
조선작 원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는 and then, and then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한국 영화다.
맥락없이 사랑하고 울고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말씀.
두번째 보는 이영화를 보는 내내 짠했고
이제사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김기영의 <하녀>나 <육체의 약속>에 별로 뒤질 것이없다는 생각(갠적으로 하녀보다는 육체의 약속을 좋아한다)에 조금은 뭉클해지기도 했다. 시방.
나만 그랬겠는가? 프란시스 코플라의 <대부>에 경도되었고 (그때, 마이클 역을 맡은 알 파치노는 얼마나 풋풋했던가)
<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뭐 이런 것에 빠져 있었고
한국영화를우습게 아는 버릇이 익숙해져 있었던 시절
이리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 때, 담배연기 자욱한 극장에서 화면속의 사회적 맥락은 전혀 잡지 못했다.
중앙동의 황금당이나 삼남극장 아래 지구음악다방에서 팝송은 열심히 들었던 시절
밥 딜런이 방글라데시에서 반전 콘서트를 한다거나 김민기가 부른 친구 정도를 겨우 알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맥락은 북괴의 남침을 우려하던 고딩이었을 뿐.
단지 창녀촌(이리역 주변의 포주 아줌마들의 징그러운 펨푸질이라니)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과
염복순의 벗은 몸을 살피러 갔을 것이다.
제법 속도를 낼 줄 아는 영화,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생략을 아는 영화.
길가에서 양치하고 머리를 감는 창녀들 장면들은 어떻게 심의를 통과 했을까.
작은 타일이 깔린 목욕탕에서 송재호가 염복순의 때 밀어 주는 장면이 제법 슬프게 보이는 것은
내가 예술의 사회사를 알 정도로 철이 들었다는 것일까?
그 때
삼중당 문고가 200원이었고, 3홉(이런 맥주가 있었다)드리 맥주가 205원 했었다.
김형석 류부터 무기여 잘 있거라 같은 것을 사 본 기억이 난다.
뭐 여학생들은 전헤린이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도 교회 다니던 이리여고 여학생 때메 열심히 읽었다.
입을 옷이 교련복 밖에 없던그 때
없는 돈에 한 번은 문고를 사고 한 번은 맥주를 샀던 것 같다.
총을 어깨에 일자로 걸친 <자이언트>의 제임스 딘처럼 해지는 모습을 오래 보던 나는
밤 깊어 야간 자습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터미널 근처 고가도로 위에서 맥주병을 나발 불었다.
달려오는 기차에다 그 병을 던져버릴 때,
병 부서지는 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귓바퀴에 감기던 쾌감 잊을 수 없다.
살인을 마친 대부의 갱처럼 돌아와 식구들우글거리는 방에 몰래 들어와 자던
그 때,
나는 팬티가 더럽던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롱롱 타임 이어즈 어고우, 나인틴 세븐티 파이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익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