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1. 부산설렁탕, 2. 국일따로, 3. 옛집식당 육개장, 4. 진골목식당 육개장, 5. 벙글벙글 따로, 6. 교동 따로
육개장-우거지 선지국-선지 육개장, 조리법은 통일 안된 채 이름 같이 사용 주문방식에 의한 분류…식재료 차이 제자 : 蘭汀 李美蘭
# 해부! 따로국밥
3.14….
따로국밥 해부가 꼭 원주율, 즉 파이(π)값 끝자리수 찾는 것만큼 어렵기만 하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국은 우리말이고 한자로는 갱(羹)·학()·탕(湯)으로 불린다. 작고한 대구 출신 이성우 교수(영남대 가정대학장,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등 역임)의 주저 '한국요리문화사'(교문사·1985년)에 따르면 갱은 채소가 섞인 고깃국, 확은 채소가 섞이지 않은 고깃국이라 언급돼 있다. 이 기준법에 따르면 육개장, 해장국, 보신탕 등은 갱으로 분류되고 곰탕, 설렁탕 등은 학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대구 따로국밥은 따로 국밥 형 갱에 분류된다. 학과 갱에서 수분량이 감소되면 점차 전골→찌개→찜 순으로 발전해나간다. 서양에선 갱과 학을 합쳐 '수프'라 통칭한다. 일단 국→국밥→따로 국밥 순으로 분석해 본다.
국은 국밥에서 밥을 뺀 것이다. 국밥은 국과 밥이 한데 섞인 상태이다. 따로국밥은 반대로 국과 밥이 따로 떨어져 있다. 국은 밥을 위해 만들어진 주반찬으로 곰탕, 설렁탕, 추어탕, 복어탕, 대구탕, 보신탕, 황태탕, 생태탕, 삼계탕, 매운탕, 고디탕, 미역국, 재첩국 등 그 종류만도 수백종에 달한다. 이런 국에 밥을 말면 그게 국밥이다.
그런데 우린 언젠가부터 국밥을 쇠고기·돼지 국밥으로 한정시켜려 한다. 그래선 안된다. 곰탕도 밥과 국이 따로 나오면 곰탕 따로 국밥인거고 처음부터 밥을 말면 곰 국밥이다.
국밥은 국과 밥의 결합형태를 가리는 분류기준이다. 따라서 메뉴로 제시할 땐 '돼지 국밥'하는 식으로 국 종류를 알려주는 접두사를 붙여줘야 한다. 대표적인 게 콩나물 국밥, 돼지국밥, 선지해장국밥, 굴국밥 등이다. 설렁탕은 국밥형, 따로국밥형 두 종류가 있다. 서울 이문 설농탕은 국밥형이고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설렁탕집인 종로초등 뒷문 옆 부산 설렁탕은 밥을 말지 않은 따로 설렁탕이다.
문제는 '대구 따로국밥'.
대구시가 1997년 시내 따로국밥 전문 취급업소 21곳 중 국일, 벙글벙글, 대덕, 교동, 대구전통따로, 한우장을 국밥 전문 향토음식점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그 따로국밥이 타지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전주 비빔밥, 콩나물 국밥은 조리법이 통일돼 있다. 어디서 먹어도 그 맛이다. 하지만 대구 따로국밥은 식당마다 식재료와 맛이 다르다.
40여년 역사의 공평동 벙글벙글은 스스로 따로 국밥집이라고 불리는 걸 원치 않고 그냥 '대구 육개장집'으로 불리길 원한다. 거긴 선지가 안들어가고 그냥 사골을 곤 육수에 파와 무만 들어간다. 53년 역사를 가진 중구 시장북로 옛집과 최근 생긴 체인점 온천골 가마솥 국밥도 한 항렬이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왜 그걸 육개장이라 하지 않고 따로 국밥으로 고집하는지 의아해 한다. 참고로 서울 육개장엔 고사리와 계란이 추가된다. 벙글벙글도 처음엔 육개장이란 말만 사용했지만 대구 따로국밥이 워낙 강세라서 장사를 위해 따로 국밥이란 말을 차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향토식당이길 거부한 옛집만 옥호 위에 육개장이란 말을 달았다. 국일, 교동, 대구, 한우장은 선지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벙글벙글·옛집과 다르다. 파와 무, 양지머리 대신 우거지만 사용하는 대덕식당과도 다르다. 대덕도 따로국밥이란 말 대신 선지해장국을 선호한다.
결국 대구 따로국밥은 제각각이다. 크게 보면 대구식 육개장, 우거지 선지국, 선지 육개장 등으로 3분된다. 육개장이란 쉽게 개고기 대용의 쇠고기 국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땐 대구식 육개장이 '대구탕(大邱·代狗湯)'으로 불리기도 했다. 광복 직후 절대적 인기를 얻었던 만경관 맞은편 청도 해장국은 대덕식당과 비슷한 반면 청도는 된장을 넣지만 대덕은 그렇지 않다.
사실 대구 따로 국밥은 조리법이 아니고 주문 방식에 의한 분류법이다. 국일 전엔 따로 국밥이란 말이 없었다. 그냥 국밥으로 통칭됐다. 그런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따로국밥이란 새 메뉴가 탄생된 것이다. 그 메뉴가 태동한 국일은 따로국밥 본향이 됐고 자연 대구식 육개장을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둔갑한 것이다. 그런데 타 지역에서도 경상도 사람 때문에 따로국밥이란 말을 맘대로 이용했다. 물론 대구 따로국밥과 스타일이 달랐다. 브랜드를 도둑맞았지만 그 누구도 정식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제 따로국밥에 제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 조리법에 대한 기준과 원칙이 정해져야 한다. 아직 학계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일단 따로국밥 식당 관계자와 당국자들부터 앞장서야 한다.
대구 따로국밥의 본명은 뭘까? 대충 '대구따로' '따로'로 압축된다. 선택은 공청회 등을 거치면 될 것 같다. 30년전 국일따로는 한 그릇 95원인 '따로'란 메뉴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변별성이 부족한 따로국밥이란 메뉴를 사용하고 있다. 국일측도 따로로 돌아갈 모양이다. 관계자들끼리 논의를 잘 하면 합의점도 도출될 법하다. 일차적으로 대구시 등이 전국적 홍보를 하고, 2차적으로 대구시 예산으로 메뉴판과 간판 교체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조리법까지 통일할 필요는 없다. 국일식 따로, 벙글벙글식 따로, 대덕식 따로로 특화시키면 된다. 물론 식당 앞이나 홀 한 쪽에 그 집 따로의 특징과 조리법을 공개해도 좋을 듯 싶다.
서울 종로지역 국밥집의 도전
"국에 밥 안말면 따로국밥이지…왜 대구 것이냐"
#해장국 골목 1번지 서울 피맛골
코털까지 얼어붙는 서울 세종로의 밤. 교보문고 동편 출입문 맞은편 피맛골 안내판이 '장명등(長明燈)'처럼 따스하게 보인다. 차량 경적소리와 생선 굽는 냄새, 가마솥에서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김, 24시간 편의점과 빌딩 불빛이 그윽한 앙상블을 빚어낸다. 혈관처럼 깔린 '미로(味路)' 같은 좁다란 골목 안에선 미각도 기운을 받는다. 1㎞ 남짓한 피맛골 골목, 서울 식도락가들에겐 '청진동 해장국 골목'으로 유명하다. '피마(避馬)'란 말은 예전 양반들이 경복궁으로 등청할 때 행인들이 잠시 말을 피한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현재 교보문고 동편 종로1가에서 인사동을 거쳐 종로 3가 YMCA까지 이어지며 대구 종로 진골목, 계산동 뽕나무 골목에 비견되는데 요즘 재건축중이다.
대구에선 중구 전동 따로 국밥이 '대빵', 서울에선 종로구 피맛골(청진동) 해장국이 '대빵'인 시절이 있었다. 지금 피맛골 언저리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로구 공평동 이문 설농탕을 비롯해 반세기는 족히 넘었을 것 같은 종로구 청진동 한일관(한정식)과 선지 해장국의 원조격인 청진·청일옥(선지 해장국), 종로구 인사동 YMCA 옆 골목 안 시골집(안동 장터 국밥)과 그곳에서 분화한 사동면옥(국밥), 종로구 돈의동 영춘옥(꼬리 곰탕), 중구 을지로 2가 판코리아 골목안 이남장(설렁탕), 을지로의 하동관(곰탕), 강남으로 건너 뛴 역삼동 곰탕집 장도리….
그 판세가 대구와 닮은 꼴이다. 피맛골 언저리 국밥집이 대구은행 중앙로지점 옆 국밥집과 비교된다. 도심에서 좀 벗어난 강남의 장도리가 남구 앞산 안지랑골 초입 대덕식당처럼 후발주자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피맛골 식당 주인들을 만나 넌지시 대구 따로국밥에 대해 운을 뗐다. 알긴 알지만 다들 따로국밥이 도대체 어떤 성격의 국밥인지 의아해 한다. 한마디로 대구 따로국밥이라고 해서 유별난 게 뭐냐고 반문하며 대구가 독점하려는데 제동을 건다. 종로구 L식당의 한 조리사 왈, "국에 밥을 말지 않으면 모두 따로 국밥이 아니냐, 따로 국밥이 어떻게 한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냐"라고 볼멘소릴 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교보문고로 갔다. 음식 관련 코너에 들러 수십 권의 음식 관련 책을 일별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확인됐다. 몇몇 교수가 펴낸 조리학 경상도 음식 편을 읽었는데 따로국밥이란 말 자체가 언급되지 않았다. 홍보 부족일까, 교수들의 관심 부족일까. 대구 따로국밥, 일관되고 표준화된 홍보지침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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