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김연수 소설 활용법
서대문 이진아 도서관은, 기자가 그 동네로 이사 간 이듬해 문을 열었다.
2005년 가을, 독립문 공원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던 즈음이었다.
처음 이 도서관을 찾았을 때의 기억 두 가지가 남아 있다.
하나는 당시만 해도 드물던 모자(母子) 열람실, 또 하나는 도서관 이름에 관한 사연이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한 부모의 쾌척. 평소 책을 좋아하는 소녀였다고 했다.
새로 생긴 도서관을, 그 무렵 태어난 아이와 다니기 시작했다.
모자 열람실은 젖먹이와 아빠 모두 허락되던 너그러운 방.
녀석은 곧 동갑내기인 도서관과 친구가 됐고, 걷기 시작한 이후에는 아주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가 됐다.
일기장에나 어울릴 기억을 풀어놓은 이유는, 최근 읽은 김연수(43)의 단편에서 그 도서관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해를 정리하는 달(月)이 시작된 지금,
올해 있었을지 모를 당신 주변의 고통이나 죽음을 극복하는 태도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집의 제목은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그 도서관이 익명으로 등장하는 단편 제목은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이다.
암이 찾아온 '엄마'를 돌보기 위해, 큰누이는 20년 넘은 간호사 생활을 접는다.
모녀가 함께 입주한 독립문 공원 뒤편의 아파트.
누이는 남대문시장에서 캐논 DSLR을 구입하고, 베란다 앞에서 엄마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하나도 버리지 않은 엄마의 옛 옷들과 함께. 엄마도 엄마지만,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늙은 누나는 여중생도 되고, 지방 종합병원에 실습 나간 간호대 학생도 된다.
그 중에는 '허연' 무다리 내놓는다고 남편에게 구박받으면서도,
외동아들이 늙은 엄마 창피해할까 봐 용기 내 사 입었다는 빨간 스커트도 있다.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 엄마가 입었던 짧은 치마다. 소설에서 누이는 도서관이 완공될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서서히 죽어가고, 그런 엄마 뒤에서 도서관은 점점 키가 커진다. 어느 순간 엄마는 없고, 이제 건물만이 남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소설은, 위에서 요약한 물기와 온기 많은 드라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유머러스하게 출발한다.
심야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오누이의 대화는 어쩌면 티격태격과 옥신각신으로 이뤄진 명랑 만화.
키득거리며 유머와 위트 넘치는 작가의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윽박지르지 않고 들려주는 삶의 위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12월이 시작됐다. 이 소설집을 쓰는 동안 작가는 가족을 잃었고,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아물지 않은 올해의 상처가 있을 것이다.
'주쌩뚜디피니'(Je sais tout est fini)는 아다모의 샹송 첫 구절을 불어 한 마디도 모르는 엄마가 들리는 대로 읽은 것.
"모든 게 끝났다는 걸 나는 안다"는 뜻이다.
김연수는 타인과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는 비관주의자.
하지만 엄마가 하늘로 떠난 다음에도 기운차게 건물은 올라갔고,
그렇게 탄생한 도서관은 이제 아홉 살 소년과 동갑내기가 됐다.
이번 주말에도 녀석은 도서관을 찾을 것이다. 씩씩하게.
어수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