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대 청년들은 성령에 대하여 매우 추상적인것은
성령을 아직 체험하지 못한 원인으로 본다.,,
호헌신학대학원 000교수 강의중에서는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고 성령이 함께 동행하면, 나에게 성령의 역사는 아주 구체적이고, 체험적이고, 실제적이다 라고 강의했다.
청년들이여 성령을 체험하라. 느끼라. 만나라. 행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성령을 알아가라.
이시대 청년들은 환-상을 보며...’
‘靈眼(영안)’ 이 활짝 열려야 한다.
이시대 청년들은 교회들과, 지도자들의 잘못한 단점만을 보지말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라.
“성령이 홀연히” 순간적, 예측, 짐작못함 가운데, 내가 상상치 못함 중에 “하늘로부터” 성령은 하늘에서 임한다.
“성령이” 충만한 상태가 ,,충만이다,,.
성령으로 가득 차는것이 충만이다.
가슴이 터질 듯이... 은혜와, 감사가 벅차서
덩실덩실 춤추 듯 기뻐웃으며 감격의 맛으로 감동으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성령을 알아가자
청년들은 성령에 대하여 매우 추상적이다.
성령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고 성령과 함께 동행하면, 성령의 역사는
메우 구체적, 체험적, 실제적인 것이다.
이시대 청년들이여 성령을 체험하라. 느끼라. 만나라.
그리고 감동으로 진정으로 알아가라.
“방언” 을 체험하라!
“꼭 방언을 해야 한다.”
방언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깊은 기도생활이 안되는 사람이다.
방언이 없다는것은 기도의 기초가 하나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한
청년들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방언 받지 못한 청년들은 방언기도 소리에 혐오감을 느끼고, 매도하고, 비방한다.
그런 사람들 속에는, 영적으로 보면 귀신이 들어 있다.
성령을 거부하는 것은 귀신의 역사이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기가 받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청년들이“방언” 에 대하여 “그것 참. 신기하군. 나도 하고 싶어! 해야지.” 부러워하는 청년들은 희망이 있는 청년들이다.
방언은 기도생활과, 신앙생활과, 우리 개인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 은사이다. 청년들이 개인적으로 기도에 깊이 들어 가려면,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기도의 은사가 방언이다. 방언은 私的(사적)인 은사가 아니라, 公的(공적)인 은사이다.
초대교회 성령충만 부흥시대에 한국교회 예배는 1부 ‘말씀, 2부 ‘은사의 예전’ 으로 방언하고, 방언 통역하고, 예언하고, 신유를 베풀고, 은사를 행하고, 영 분별 하는 등의 은사 집회가 반드시 있었다. 그리고 3부 순서에, 간증과 ‘성례의 예전’ 을 집행했다.(1950~1980년)
한국초대교회 성령 시대에는 총 예배 시간이 지켜짐이 거짐없었다.
이시대의 한 시간 예배는 사실상 엉터리 예배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성령 선교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方言(방언)이 없으면, 결국 인간의 이성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깊은 영적 성령 세계에 절대 들어 갈 수 없다.
그러나 방언하면 쉽게, 영적인 하나님의 세계에 깊이 들어 가 버린다.
“방언기도는 그야말로 강력한 확신기도요, 성령을 생생히 느끼는 기도요, 평안의 기도요, 위탁의 기도요, 중보의 기도요, 진정 영적인 기도이다...”
성령의 불 같은 역사를 통해 기도하다가 몸이 뜨거워져, 금새 땀이 나고,몸이 뜨거워진다.
기도가 기운찬 폭포수처럼 터져 나온다.
찬송할 때는 심령이 뜨거워져, 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찬송이 나온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 오면 죄악이 떨어져 나가고, 성결의 역사가 임한다.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이 역사하기 시작한다.
불이 붙는다. 가슴 들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성령의 임재속에 영혼을 살리는 열정은 성령의 불길로만 시작한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25시:7)
청년들은 내가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을 더 많이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잘못은 기억지 않으시고 나의 잘한 것만을 기억하십니다.
2023.2.11. 편저자 lim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