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
1858년 14세 소녀 앞에 성모 나타나 이 사실 알려지자 사람들 모여 기도 성모가 가리킨 샘물 마시고 난치병 고쳐
매년 600만명 성지순례로 발걸음
중환자·장애인 등 고생하는 사람들 기적의 샘물 나오는 마사비엘 동굴 찾아
성모 마리아 본 14세 소녀는 수녀가 돼 기도·은둔 생활하다 35세로 생 마감
프랑스 남서부 오트피레네 주 서부에 위치한 루르드는 해발 420m의 피레네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1858년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타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에게 18번이나 성모마리아가 현신한 장소로 유명한 이 곳은 카톨릭 신자들에게 인기있는 순례여행지로 꼽힌다. 매년 6백만 명의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오는 경우도 있지만, 중환자나 장애인,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갖고 기적의 샘물이 나오는 ‘마사비엘 동굴(Grotto de Massabielle)’로 간다.
‘마사비엘 동굴’ 샘물의 기적
현재까지 약 700여건의 기적이 보고됐지만,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기적으로 병을 고친 후 1년 안에 다시 재발하지 않았음이 의학적으로 증명됐다.
교황청에서 정식으로 기적으로 인정한 것은 70건인데, 프랑스인이 55명, 이탈리아 사람 6명, 벨기에인 3명, 독일인 1명, 오스트리아 사람 1명, 스위스사람 1명으로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마사비엘 동굴의 샘물을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수 많은 순례자들을 위해 동굴 왼편에 수도꼭지가 달려있어서 마시기가 편리할 뿐 아니라 오른편에는 환자들이 몸을 씻는 곳이 준비돼 있다.
또한 동굴 맞은편 강 건너에는 환자들을 위한 요양시설이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이 환자들을 매일 이 동굴의 샘물로 몸을 씻어 주고, 침례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현신
1844년에 태어나 1866년까지 22년을 성지 ‘루르드’에서 살았고, 그 후 13년 동안 ‘느베르(Nevers)’에서 조용히 봉사하면서 살다가 1879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성녀 ‘베르나데타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
1858년 14살의 ‘베르나데타’에게 ‘마사비엘 동굴 Grotte de Massabielle’에서 성모 마리아가 현신한다.(첫 번째 현신: 1858년 2월 11일 목요일)
가브 강변에서 동생과 친구와 함께 땔나무를 주우며, 치마를 걷어 올리고 개울을 건너 마사비엘 동굴로 향하던 중, 바람소리 같은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정체 모를 여인이 보였고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의 양쪽 발에는 노란색 장미가 놓여있으며 허리에는 푸른색 벨트를 매고 머리에 하얀 망사를 썼다고 전해진다.
신비로움에 이끌려 성호를 긋고 묵주를 만지며 기도를 하는 순간 바람처럼 여인은 사라져 버린다.(두 번째 현신: 1858년2월 14일 일요일)
베르나데타의 엄마는 귀부인을 보았다며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딸에게 다시는 그 곳에 가지 말라고 말했지만 불가항력적인 힘에 이끌려 다시금 찾은 동굴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묵주를 만지며 기도를 하자 또다시 어제의 그 부인이 나타났고, 축복의 물을 뿌리자 그 부인이 웃는 얼굴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 기도가 끝나자 사라졌다.(세 번째 현신: 1858년2월 18일 목요일)
베르나테타가 이름을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필요 없다고 하며 부인은 “내세에서는 가능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너에게 행복을 약속할 수 없단다. 15일 동안 이 곳에 와 줄 수 있겠니?”라고 전한다.(여섯 번째 현신: 1858년2월 21일 일요일)
베르나테타의 이야기에 이상한 소문이 돌면서 호기심에 가득 찬 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자꾸 모이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베르나데타에게 형사를 보내 본 것을 말하라고 심문하자 “아께호(저거)”라고만 답했다.(아홉 번째 현신: 1858년2월 25일 목요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자, 부인은 땅을 가리키며 “이 샘물을 마시고 씻어라 그리고 샘주변에 나는 풀을 먹어라”고 말했고 이 샘물을 마시고 병이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나자, 멀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난치병을 고치기 위해 몰려든다.(열세 번째 현신: 1858년3월 2일 화요일)
“사람들이 모이니 이 곳에 교회를 지으라고 신부에게 가서 전하라”는 말씀을 들은 베르나데타가 루르드 주교인 ‘뻬이하말(Peyramale)’ 신부에게 전달하지만, 어린아이의 말을 믿지 못한 신부는 “그부인의 이름이 무엇이지? 만일, 성녀라면 동굴의 장미나무에 꽃을 피우면 네 말을 믿겠다”라고 대답한다.(열 네 번째 현신: 1858년3월 3일 수요일)
새벽 7시부터 3천여 명의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현신한 부인에게 이름을 질문하자 그냥 웃기만 했다.(열 여섯 번째 현신: 1858년3월 25일 목요일)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그 부인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땅을 향해 팔을 늘어뜨리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Que soy era immaculada councepciou’(원죄 없이 잉태된 자)라고 알려준다.
베르나데타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뇌며, 신부에게 뛰어가서 이 말을 전달하는데, 1830년 파리의 ‘기적의 메달 성당’에 현신하셨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기에, 이 단어가 갖는 의미를 이해한 신부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며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고 전해진다.(열 여덟 번째 현신: 1858년 7월 16일 목요일)
인근 동네에까지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자꾸 모여들자 마사비엘 동굴로 가는 길목을 막아놓고 병사들이 지킨다. 베르나데타가 어쩔 수 없이 동굴이 보이는 가브강 건너편으로 향하는데 거기에 최후로 마리아가 현신하신다.
“마치 동굴에 있는 것처럼, 다른 때처럼 똑 같은 거리를 두고 현신하셨는데, 성모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셨다”라고 기록을 남겼다.
베흐나데타 성녀의 어린 시절
베르나데타는 방앗간을 운영하던 어머니와 아버지 ‘프랑스와 수비루(Francois Soubirous)’ 아버지 사이에서 1844년 1월 7일 태어난다.
1844년 11월에 어머니 ‘루이즈 Louise’가 가슴에 화상을 입어 어린 ‘베흐나뎃뜨’에게 젖을 줄 수 없자 루르드 근처의 ‘바흐트레 Bartres’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유모에게서 1년 반 동안 키워진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방앗간 외상값을 독촉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성격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찾아오고, 게다가 작업 중에 아버지가 왼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를 당하면서 1854년 사업이 완전히 망한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 역시 식모, 빨래, 청소,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간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으로 가족의 생활은 점점 안정세를 찾아가기 시작할 때, 방앗간을 빌려 제분업을 다시 시작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가 12살이 되던 1856년 흉년이 닥치자 외가 친척의 집안일을 돕고 카바레의 계산대를 지키는 식모로 일을 시작한다.
점점 기울어가는 집안형편으로 빚더미에 앉은 1857년 초에 집에서 쫓겨나 1평 반 정도의 감옥 같은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살아가는데, 하루는 이웃의 빵집에서 두 부대의 밀가루가 없어지자, 아버지가 도둑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현신 체험 후 수녀가 된 베르나데타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1860~1866년 느베르의 ‘사랑의 자매’ 수녀회에 입회해 기도와 은둔 속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879년 4월 16일 조용히 눈을 감는다.
느베르 도시의 수녀회에는 약 50년이 지나도록 전혀 부패하지 않은 성체가 1925년 8월 3일부터 얼굴과 손에 아주 얇은 밀랍을 입힌 완전한 상태로 유리관에 보존되고 있다.
/정리=민경화기자 mkh@
>>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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