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곤님을 성도라 부르기는 것은 어색하여 “님”자를 붙어 부른다. 그는 본디 철저하게 교회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분이다. 교회 아랫집이어서 항상 만나는 분이어서 인간적으로 친하지만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경계가 분명했다.
그는 나름 자신이 배움이 있다는 우월의식이 있었다. 남에게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가르치는 자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분이다. 신앙에 대해서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선을 그어 놓고 대화를 했다.
나는 김채곤님께 마을 역사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대대마을 골목이야기를 쓰는데 밑천이 되었던 것들도 김채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 그는 마을의 잊혀가는 역사를 남겨 두고 싶었던 뜻이 분명했다. 그도 기억의 한계를 알았던지 기록해 놓은 바들이 있었기에 나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
그는 마을 역사를 궁금해하는 나를 가상하게 여겼던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예전에 들었던 내용을 다시 물어보아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말씀해 주셨다. 젊은 목사가 찾아와서 동네 이야기를 물어주니 고마웠을 것이다.
그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외롭게 살던 기간이 꽤나 길었다. 고고한 성품이다 보니 편하게 다가서는 사람이 별로 없던 분이다. 누구나 사람은 혼자 살면 외로운 법이다. 외로울 때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용무와 무관하게 반갑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누구의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했다. 체면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었다. 더구나 교회의 도움을 받음으로 약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별거 아닌 자존심이 여간 센 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남자가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남자다움을 잃는 것처럼 여기던 분이다.
과연 끝까지 자기 힘으로만 살 수 있었을까? 그는 마지막 임종이 가까이 올 때 예수님을 믿는 딸의 케어를 받았다. 딸은 며칠을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 죽음 준비를 도와드렸다. 마지막 날 밤 딸이 먼저 잠을 청하였다. 잠결에 아버지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주여! 주여!”라는 외침 말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 사연은 설명이 필요하다. 임종 전날 목사 조카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소개를 받았지만 영접하기를 한사코 거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 한 번 더 부탁을 드렸다. “작은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부탁하십시요.”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 따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고... 그러니 목사님이 장례를 맡아달라고 말이다. 자세히 따져 묻지는 않았다. 딸의 말을 믿고 그의 장례를 위해 교회장은 아니어도 교회 다니는 자녀들과 조카들이 많아서 교회장 분위기로 장례를 치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하루 밤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완고한 김채곤님의 장례를 목사가 집례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 남의 도움을 받지 않음을 자랑처럼 여겼던 교만을 내려놓게 했다.
가족들 중에 완고하여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김채곤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강권적인 은혜는 누구도 거절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