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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7월 8일 월요일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아내로 삼으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혈루증을 앓는 여자에게,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하시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어 그의 죽은 딸을 일으키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6.17ㄷ-18.21-2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6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17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
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21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22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려고 나서신 길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믿음을 담아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자, 예수님께서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신 ‘계획 밖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일어난 기적의 주체는 바로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으십니다. 그러자 그가 죽음에서 일어나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기적은 그의 아버지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절망적인 순간이 닥칠 때마다 오늘 복음의 메시지를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께 의지하며 내미는 우리 믿음의 손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찾는 믿음입니다. 정작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여야 할 때 그분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보다는 자신의 인맥과 능력을 동원해서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상처와 아픔 앞에서 그분께 믿음으로 다가가기보다 분노하고 성을 냅니다.
예수님께 다가갑시다. 그리고 그분께 믿음의 손을 내밉시다. 우리가 청하는 것이 비록 그분의 계획 밖에 있거나, 죽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손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은총을 일으키는 힘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더 간절히 청해야 할 치유는 영적인 치유요, 내적인 치유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네 복음서에 실린 이적(異蹟) 사화 혹은 기적 사화 30편은 크게 네 가지 사화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병을 치유하는 치유이적사화, 악령을 추방하는 구마이적사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소생이적사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자연이적사화 4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하는 마태오 복음서에는 두 가지 이적사화, 즉 치유이적사화와 소생이적사화가 동시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이적사화들을 통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치유이적사화에서 강조되는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치유를 위한 가장 1차적인 조건은 믿음입니다.
치유를 이행하는 제자들에게도 믿음이 필요하지만, 치유대상자인 환자의 믿음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치유되면 고맙고 되지 않아도 괜찮고가 아니라,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므로 꼭 치유시켜주시리라 믿는 강한 믿음이 치유의 전제조건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신 이유는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치유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치유자와 치유 대상자 사이의 교감과 공감입니다.
치유사화와 소생사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정한 의미는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삶과 죽음을 지배하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필멸(必滅)의 존재이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때,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열두 해’라는 표현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성경 안에서 12라는 숫자는 각별합니다. ‘완전함’ ‘꽉 찬’이라는 의미입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증세는 그 어떤 명의(名醫)도 더 이상 손써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중증이었던 것입니다.
극에 달한 통증, 극단적 고통, 따라서 부족한 인간의 힘으로는 방법이 없는, 다시 말해서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주님만이 치유하실 수 있는, 그런 상황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치유와 소생 사화를 통해 우리는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진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분 앞에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망하지만 그분은 희망하십니다. 우리는 포기하지만 그분은 다시 원점에서 다시 한번 출발하십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 낡은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 말라 죽은 고목에서도 새싹을 돋게 하시는 분,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와 소생 사건 앞에서, 진정한 의미의 치유와 소생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그리도 간절히 반복해서 원하는 육체적 치유는 다분히 제한적이고 유한한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의 끝도 없는 치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더 가치있고 중요한 치유, 그래서 우리가 더 간절히 청해야 할 치유는 영적인 치유요, 내적인 치유입니다. 내면의 치유요, 마음의 치유입니다. 그릇된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치유요, 고정관념의 치유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이 땅 위에서 살 것이라는 착각에 대한 치유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는 오류에 대한 치유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심판과 단죄의 하느님, 두려운 하느님이라는 그릇된 신앙에 대한 치유가 필요합니다.
바람과 희망의 차이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회당장은 엄청난 믿음을 보여줍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이는 믿음은 하느님 능력을 말해줍니다. “당신은 손만 대면 죽은 이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이는 하느님 능력은 물론이요, 자비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능력자시요 자비로우신 분으로 여기게 되면 우리 마음에 생기는 것이 ‘희망’입니다.
믿음과 희망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과 희망이 우리를 주님께로 이끕니다.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분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자비를 희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 우리는 희망과 바람을 착각합니다. 희망은 믿음이고 바람은 인간적인 욕구입니다. 바람으로 구원되지는 못하지만, 희망으로는 구원에 이릅니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김형규 씨가 담배꽁초 20만 개로 실물 크기의 자동차를 만들어 금연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담배꽁초 수집에만 2달, 분류하는 것만 2주가 걸려 거의 3달에 걸친 작업이었습니다. 작업이 끝나자 두드러기가 나서 병원에 가보니 면역체계가 무너졌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함께 작업한 30명 대동소이한 반응이었습니다. 그 중의 흡연자가 15명이었는데 모두 금연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15명 모두 다시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희망한 것일까요, 아니면 원했던 것일까요? 인간적인 바람으로는 얻어지는 게 없습니다. 희망은 믿음과 함께하기에 반드시 방법을 찾아내고 끝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제가 유학을 다녀와서 피부 알레르기 때문에 여러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해결책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레이저로 붉게 된 얼굴을 지졌습니다. 그래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한약도 먹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찾으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계면 활성제에 대한 일부 의사의 소견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10년째 비누를 쓰지 않습니다. 그때 시도해 보았더니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믿음과 하나입니다. ‘죽은 아이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얹으면,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나을 거야!’란 생각 안에 ‘방법’과 멈추지 않게 하는 믿음이 들어있습니다.
성녀 요셉피나 바키타는 어렸을 때 납치되어 매일 매를 안 맞는 날이 없는 노예 생활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쇠사슬에 묶여 900킬로를 걸어서 끌려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매일 때리고 그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나 아이는 자연을 만드신 분을 찾고 싶었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이 주인이 되었을 때 그에게 매달려 이탈리아로 넘어옵니다. 거기에서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수단으로 보내지려 할 때 그녀는 이탈리아 법정에까지 나아가 그들과 싸우며 자유를 쟁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녀원에 들어가 겸손하고 온화하고 위로하는 수녀님으로 47년을 삽니다. 그녀는 자기 삶에 관해 쓴 책으로 많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희망하는 삶입니다. 희망하는 삶이 반드시 열매를 맺는 이유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선물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연옥의 한순간의 고통은 지상의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 더 무섭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연옥에 가지 않기를 원해야 합니다. 원하는 사람은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사람은 찾습니다. 연옥에 안 가게 하는 유일한 기도가 있습니다. 비르짓다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입니다. 사실 이것을 바치지 않는다면 원하기는 하지만, 희망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법을 찾고 꾸준할 수 있어야 기적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희망이 단순한 바람과 다른 점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교구사제 모임 중에 교구장님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강론을 하는 것은 보람이지만, 강론을 듣는 것은 기쁨입니다. 교구장님은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나라와 하늘나라’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하느님의 나라와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이방인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을 대는 ‘하늘나라’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라는 표현대신 ‘주님’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는 ‘하느님의 나라’ 대신에 ‘하늘나라’라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저는 교구장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하느님의 나라와 하늘나라는 같은 의미라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는 나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에 대한 개념입니다. 미국에 이미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 아직 온전히 미국에 거주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서류가 미비한 사람들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취업에 제약이 따르기도 합니다. 서류가 미비한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갈 수는 있지만 재입국이 거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시간의 특징은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입니다. 구원은 선형적으로 나열되는 시간 경과를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도래한 하느님 나라와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 나라 사이의 긴장과 역동 속에 십자가 사건이 놓여 있습니다. 구원은 과거에 박제된 사건일 수 없습니다. 나의 생생한 현실이며 오늘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아직 하느님의 나라를 온전한 마음과 정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속에서 마지막 때를 사는 지금 나는 온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교구장님은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2의 그리스도로 살아가야 하는 사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가야 하는 사제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12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인은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이제 그 여인은 하혈이 멈추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께 대한 간절한 믿음으로 하혈하던 여인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하느님의 나라를 체신현험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전승은 그 여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에 함께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 드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었던 회당장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탈리타꿈(일어나라.)’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로 옮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처럼 주님께 의탁하면 좋겠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비를 청했던 소경처럼 주님께 자비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의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밤하늘이 별들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오늘의 성인
성 칠리아노 (Chilianus)
활동년도 : +689년경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뷔르츠부르크(Wurzburg)
같은 이름 : 낄리안, 칠리아누스, 킬리아노, 킬리아누스, 킬리안
아일랜드 수도자이던 성 킬리아누스(또는 또는 칠리아노)는 주교로 축성된 후 11명의 동료들과 함께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코논(Conon)으로부터 독일의 프랑코니아(Franconia, 바덴과 바이에른) 지방의 복음 선포에 관한 책임을 맡았다. 그는 능력 있고 열성적인 협조자 성 콜로만누스(Colomannus) 신부와 성 토트나누스(Totnanus) 부제와 함께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성 킬리아누스와 동료들은 순교하였다고 하는데 그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다. 그는 킬리안(Kilian)으로도 불린다.
성 프로코피오 (Procopius)
활동년도 : +303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스키토폴리스(Scytopolis)
같은 이름 : 프로꼬삐오, 프로꼬삐우스, 프로코피우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 프로코피우스(또는 프로코피오)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스키토폴리스에서 살았으며, 교회의 지도자이자 구마자였으며 시리아어 통역사였다고 한다. 그는 매우 덕스럽고 겸손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그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카이사레아(Caesarea)로 이송되어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요구에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주인을 모시는 것은 옳지 못하고, 오직 한 분의 왕이신 주님만 섬겨야 합니다.” 이 말이 황제를 격노케 하여 그는 그 자리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 지방의 첫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복자 하드리아노 포테스큐(Hadrian Fortescue)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476-1539년
같은이름 : 아드리아노, 아드리아누스, 아드리안, 포떼스큐, 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안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펀스본(Punsborne)에서 태어난 하드리아누스 포테스큐(Hadrianus Fortescue, 또는 하드리아노)는 잉글랜드 데번셔(Devonshire) 가문 출신으로 앤불린(Anne Boleyn)과는 사촌간이다.
그는 두 번이나 결혼하였는데, 첫 번째는 앤 스토놀과 결혼하였으나 12년 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앤 레드와 재혼하였다. 그는 전처에게서 두 딸을, 후처에게서 세 아들을 두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고, 궁중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바스(Bath)의 기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두 차례나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가했고, 캐서린 왕비가 칼레스로 여행할 때에는 수행원으로 그리고 앤불린의 대관식에는 귀빈으로 참석하였다.
그러나 신심이 굳었던 그는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을 반박하다가 다음 해 봄에 체포되어 1539년 2월 런던탑에 갇혔다. 그는 끝까지 국왕의 수장령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그는 런던의 타워 힐에서 토마스 딘글리(Thomas Dinglay)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1895년 5월 13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복자 에우제니오 3세(Eugene III)
신분 : 교황
활동지역 :
활동연도: +1153년
같은이름 : 에우게니오, 에우게니우스, 에우제니우스, 유진
이탈리아 피사 근교인 몬떼나뇨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피에뜨로 피가넬리인데, 그가 피사 대성당의 성직자가 된 후, 성 베르나르도를 만남으로써 1135년에 클레르보에서 씨토회원이 되었다.
그 후, 로마의 성 아나스타시우스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다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교황으로 선출되자, 이름을 에우제니오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선출을 반대하던 브레쉬아의 아르놀드의 농간과 그리고 로마 원로원의 통치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을 때 그는 로마를 탈출해야만 하였다.
그는 1145년 2월 18일, 파르마 수도원에서 비밀리에 축성식을 가졌다.
그 후 몇 가지 조약을 체결한 뒤에 로마로 돌아가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초청으로 그는 1147년에 그곳을 방문하였고, 제 2차 십자군 운동을 선포하였다.
비록 이 십자군은 성 베르나르도의 노력이 지대하였지만, 루이 7세와 독일의 콘라드 2세군의 패퇴로 말미암아 실패로 끝났다.
성성을 설치하고 교황청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말타의 예루살렘 기사단을 승인하고 교황궁안에 장발 청소년들의 출입을 금했다.
늘 양털옷을 입고 고행용 피륙을 쓰고 땅바닥에서 잤다.
교황의 휴가에 대한 말을 한 첫 교황이고 세니에도 궁을 지었다
에우제니오는 1147년에 파리와 트리엘에서 시노드를 개최하고, 다음 해에는 라임스에서 시노드를 열고 아르놀드를 단죄하였다.
세상이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을 때 그는 로마로 귀향하였으나, 1150년에 재차 강제에 의하여 로마를 떠나야 하였다.
이번에는 티볼리에 거주하였고, 프레데릭 황제와 콘스탄스 조약을 체결하였다(1153년).
이 조약은 교회의 권리를 보증하는데 유익한 협약이었으나, 그해 7월 8일에 그곳에서 운명하였으며 바티칸 동굴에 묻혔다.
그는 소란스런 재임 기간을 통하여 몇 가지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동방교회와 로마와의 일치를 시도하였고, 성직자의 규율을 재정비하였으며, 명예스럽지 못한 성직자들을 제거하였고, 마니교의 재건을 봉쇄하였다.
그는 실로 용기가 많았고 단순하였으며, 항상 성 베르나르도의 영적 권고를 따라 생활하여 덕이 출중하였다.
1872년 10월 3일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