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의 첫 본문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는 내용인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어디에도 제자들이 직접 병을 고치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가서야 제자들이 병을 고치는 기록이 나타납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되,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돈도 지니지 말고, 옷도 두 벌씩은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오직 선교의 사명에 집중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본문의 원본은 마가복음 6장이고 마태복음 10장에도 같은 내용의 본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방 사람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떼에게로 가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원본인 마가복음에 그런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이방인 문제에 대해 배타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마태도 후반으로 가면서, 이방인에 대한 선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9절을 보겠습니다.
7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서 당황하였다. 그것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8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달리, 옛 예언자 가운데 하나가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9 헤롯이 말하기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하였다.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하였다.
헤롯이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했답니다.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나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라는 암시를 본문은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요한을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원본인 마가복음과 인용본인 마태복음에는 그 얘기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는 본론격인 그 이야기는 쏙 빼고 그 이후의 내용만 담아온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서학자들 중에는,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마가복음의 묘사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느 로마 원로원의 스캔들을 모델로 창작된 이야기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19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는,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차지했는데 그 일을 요한이 비판하자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가 앙심을 품고 요한을 감금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요한을 죽일 기회를 엿보던 헤로디아가 헤롯의 생일에 자기 딸이 춤을 추게 해서 헤롯의 마음을 사로잡고, 소원을 말해보라는 헤롯에게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달라고 하여 세례 요한을 죽게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원본인 마가복음에 담겨있고, 마태도 이 내용을 거의 그대로 자기의 복음서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중심 내용은 빼고, 그 일 때문에 헤롯이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만 기록에 담은 것입니다. 누가는 이 설화의 원형이 실제로는 자신의 폭정을 비판한 요한의 언행에 부담을 느낀 헤롯이 정적을 제거하려고 벌인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로마 원로원 의원의 스캔들을 모델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차마 자기의 복음서에 담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유명한 오병이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은 마가복음 6장이 원본이고, 마태복음 14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하신 분은 마태복음 14장 강해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내용과, 예수께서 자신이 당하게 될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 본문도 마태복음 16장에 더 확대된 이야기로 담겨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이야기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이야기,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다시 예고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들도 모두 마태복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하신 분은 마태복음 17장 강해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다툼에 관한 기록입니다. 46~48절을 보겠습니다.
46 제자들 사이에서는, 그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
47 예수께서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이 본문도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수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18장 1절을 보겠습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두 복음서의 기록의 차이를 느끼셨는지요. 원본인 마가복음과, 마가에서 이 본문을 가져온 누가복음에는 하늘나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라는 문제로 다투었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묻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로 바꾼 것입니다. 마태다운 왜곡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누군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걸 보고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보고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49~50절을 보겠습니다.
49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5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의 원본은 마가복음 9장에 있고, 마가복음을 강해할 때도 설명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 한 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일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복음서가 기록된 서기 70~80년대의 교회 상황을 담은 이야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때는 이미 마가공동체와 마태공동체, 누가공동체와 요한공동체 등 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 뿐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 다양한 예수공동체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거나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라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해야지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은 바로 이런 70~80년대 교회의 고민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는 없는 누가만의 고유 자료입니다. 51~56절을 보겠습니다.
51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찼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스스로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는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는데, 그들이 가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53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54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주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55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이 본문이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인지 누가의 창작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본문에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거부감과, 그래도 그들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제자들의 고민과 극복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제자도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제자가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따르겠다’고 하자 예수께서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고, 또 다른 제자가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따르겠다’고 하자 이번에도 예수님은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설명한 8장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도 예수님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다.’ 라고 말씀하셨다는 기록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내용의 기록들은 실제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서기 70~80년대 복음서들이 기록될 당시에 생존을 위협받던 예수공동체 사람들의 급박한 상황이 반영된 기록일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