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를수록 입지는 좁아지고 시야는 넓어진다.)
세상에 말 아닌 것은 없다. 말만 말이 아니라 침묵도 말이다. 인간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도 끊임없이 말을 한다. 지저귀는 새는 말할 것도 없고 모여서 피는 꽃들과 더불어 자라는 나무들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비, 바람, 아니, 떠가는 구름도 얼마나 열렬한 몸짓들로 말을 하는가.
침묵하면 고요하여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 고요함으로 인해 받는 선물이 많다. 자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듣기 좋고 피고 지는 꽃들도 보기 좋다. 산도 좋고 물도 좋다.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이 열리니 오히려 할 말이 없다. 그 많은 것 어떻게 말로 다 하나 그저 빙그레 바라만 본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이사야 55,9-11)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한평생 묵묵히 말이 없다. 말하지 않는 침묵이 내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내가 말을 많이 한 날은 마음이 허하여 좋은 기운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지만 어느 날 내 혀를 제법 다스린 날은 기분이 상쾌하다. 침묵하면 좋은 기운이 맘속에 고인 것 같다.
내가 먼저 말문을 닫고 고요 가운데 있으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고 마음에 들어 조금씩 정이 드는 것 같다. 요즘 들어 든다는 말이 진실로 좋다. 눈으로 든다는 말보다 마음으로 든다는 말이 좋다. 정이 든다는 말도 참 좋다.
잠시 나의 ‘생각’과 ‘앎’을 내려놓고 정녕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렇게 ‘나’를 내려놓으면 보이는 게 있다. 진실을 안다는 말보다 진실하게 산다는 말이 좋고 절망해봐야 진실한 삶을 안다는 말이 좋다. 나무 그늘에 든 것처럼 좋다. 고요한 산 위에는 작고 흰 구름이 세 조각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언젠가 침묵 중에 그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들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을지 모른다는 그런 느낌이 든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인간이 주고받는 말에는 물론 진실도 담겨 있지만 거짓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자연이 자연스러운 것은 진실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대로 주어진 그대로 일 뿐 꾸밈이 없다.
인간에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는 매번 서로 반대되기 일쑤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애틋하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진실들이 언제나 인간의 생각이나 기대 혹은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기는커녕 정반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기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진실은 내 생각이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다린다. 정말이지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매번 좁다. 인간의 눈에는 분명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보이는 그것이 사실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생명의 길은 ‘나’ 바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전혀 뜻밖에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내 안에 있다. 단 한 순간마니라도 지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보면 스스로 알게 되리라. 현재는 부족하지 않으며, ‘나와 삶과 세상은’ 이미 처음부터 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