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국을 따로 내온다는 데서 유래한 따로국밥은 대구 특산이라고 한다. 서울이나 안성 같은 경기도 인근의 장터국밥이나, 장국밥은 국에 밥을 말아준다. 음식은 집안마다, 동네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모두 다르다. 장맛조차 집들마다 다르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름을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혹시 ‘섞어찌개’라고 들어보셨는지. 고기를 각종야채와 두루 섞어 끓여내는 찌개를 일컫는다. 거기서도 밥은 따로 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섞어’ 국밥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방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쪽은 ‘따로’에 다른 쪽은 ‘찌개’에 강조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로 찌개’라는 말은 아예 없다.
유희처럼 들릴 수 있을 터. 하지만 여기서부터 문제다. 왜 유독 대구에만 따로국밥이 있을까. 그리고 왜 대구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만 ‘따로’ 살고 있는 것일까.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정보통신 분야에 일어난 변화의 속도와 양은 20세기 전체 97년의 모든 것을 능가한다고 한다.
무엇인가. 삶의 외적인 조건과 상황, 세상과 세계 전체가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대구만 과거를 지키며 꿋꿋하게 옛날 방식 그대로 ‘따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떤가. 폭풍한설 몰아치는 대지에 홀로 우뚝한 푸르른 소나무의 독야청청은 아름답다 못하여 고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와 흐름이 모두 변하였는데, 흘러간 옛 노래에 연연함은 어리석은 아집이나 옹고집일 따름 아니겠는가.]
지난 세기 92년 3월부터 대구에서 살았으니, 만 16년 세월이 흘렀다. 무척 빠른 속도로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대구 ‘사람’이 아니다. 오며가며 만나는 사람들이나 택시 기사들은 말한다. “대구 사람 아니네요!” 그래서 이렇게 대꾸한다. “저요? 맞아요. 대구 사람은 아니지만, 대구 ‘시민’이죠!”
그들의 생각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대구 ‘말’이다. 대구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대구에 살아도 대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나는 대구 사람이 될 수도 없지만, 대구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잘 알고 너무도 좋아하는 박근혜 의원을 예로 들어보자. 그 사람은 누가 뭐래도 대구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절대 대구 시민이 아니다. 대구에 살지도 않는데 어떻게 대구 시민이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집도 대구에 있고, 직장도 대구에 있고, 세금도 대구에 내고, 영화도 대구에서 본다. 당연히 ‘참이슬’보다 ‘참소주’를 많이 마신다.
무슨 말인가. 대구에 세금 한 푼 안 내는 박근혜 의원 비슷한 사람들이 대구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대단하고 소중하다. 나처럼 대구에서 학생 가르치고, 방송에 나가서 토론하고, 신문에 글 쓰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대구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구 사람들은 유독 내남을 따진다. 연고를 따지고, 지역을 따지고, 조상을 가리고, 어느 학교 나왔는지 기어이 묻는다. 그래야 속이 시원하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함께할 수 있는 대목이 있어야 안심한다. 이제야 말이 시작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을 만 16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해왔다.
지난 세월이 결코 짧지 않으나, 그와 같은 생활태도와 기본자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을 대구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한다. 속이 깊고 심지가 굳은 대구 사람들이라나, 뭐라나. 보수 가운데서도 핵심이 대구라면서 자부심과 흐뭇함으로 그득하다. 과연 그런가.
경북대를 마치고 서울로 간 졸업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적응하지 못하고 대구로 돌아온다. 어떤 친구들은 대구로 내려올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외지에서 대구로 온 나 같은 사람은 마치 고립무원의 ‘무인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굴러온 돌이니 박힌 돌이니 하면서 이것저것 따지는 케케묵은 사고방식이 깨지지 않는다면, 대구는 부흥은커녕 재생하지 못한다.
이제는 만 명도 되지 않는 ‘염색공단’ 노동자들이나 기업에 기대려는 얕은 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내부시설은 물론이고, 겉모양마저 부실한 ‘오페라 하우스’ 한 채 지었다고 대구가 런던이나 시드니처럼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이 사통오달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안으로만 똘똘 뭉쳐서 싸우고 견디는 것은 전쟁 때에나 가능한 전술이다. 눈을 열고, 길을 열고, 문화를 열고, 무엇보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틀린 것과 부족한 것은 찾아서 고치고, 답답하고 엉망인 것은 확 뜯어내야 한다. 언제까지 “경고 나왔수? 몇 회요? 본이 어데라고요?” 그러고 살려고 하는가.
따로국밥만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영원히 지나가버렸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제 흘러간 강물로 오늘 당신의 발을 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와 이웃, 대구와 부산, 남한과 북한, 한반도와 일본열도, 아시아와 유럽, 지구와 태양계, 태양계와 은하, 은하와 우주의 상생과 조화를 생각하면 어떤가.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식의 맹목적인 지방색. 몇몇 고교 동문출신 토호들이 굳건하게 장악하고 있는 지역의 언론과 문화. 수많은 계추모임으로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이루어진 인간관계. 사람과 시민을 반드시 구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의 닫힌 정서. 이런 것들로는 우리의 어린것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없다. 그들을 계속 대구에 묶어두고 먹여 살릴 수 있다면 모를까, 이제라도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산을 보고, 울산을 보라. 인천과 대전은 또 어떤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연면부절하게 이어진 학살정권과 구시대의 망령에서 깨어나, 21세기의 새 세상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대구 사람들이여! 섞어찌개 드시고, 속 좀 확 풀어보소! 원한다면 따로국밥도 드시구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주식으로 들지는 마시구려.
* 이 글은 영화보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은주님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쓴 것입니다. '여성회'에서 펴내는 글모음집에 실릴 모양입니다만, 영화보기 모임 회원들께서도 유쾌하게 읽어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립니다. 다음주 영화보기 모임에서 짤막한 토론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바야흐로 봄이 왔습니다. 두루 행복하시고 많이 웃으시기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첫댓글 깜빡 속을 뻔 했습니다. 근데 대구사람만 그런가요? 저는 이나라 전체가 그런게 아닌가 싶은데요. 대구가 쬐끔 심하기는 하지만.. 저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지금도 대구에서 살고있고.... 아마 대구에서 죽지 않을까 싶네요.
반성합니다. 저역시 말투로 가늠하여 "대구 분이 아니시네요?"라든가 "고향이 전주이신가봐요?"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로서는 "따로국밥"의 의미가 아니라 낯선 사람과의 말문을 여는 소재꺼리라는 상당히 선의적인 의도에서입니다만...
저는 대구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대구출신, 대구사람, 생선도 대구만 먹고......, 저는 '고소영' 자랑합니다. TK 자랑합니다. 마 - 그렇습니다. 한마디 연극 대사같네